•  [미디어펜] 조우석의 문화비평

    리콴유와 박정희는 현대아시아의 위대한 설계자
    둘 사이의 닮은꼴 리더십과 정치문화유산을 다시 생각한다
    조우석  |  media@mediapen.com

  •  현대아시아의 거인이 오늘 새벽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리콴유(李光耀· 91) 전 총리가 노환으로 23일 91년의 삶을 마감했다고 싱가포르 총리실이 이날 공식 발표했다. 세계의 주요 통신과 언론매체가 이 부음 기사를 앞다퉈 전하는 건 그게 고인의 위대한 삶에 걸맞기 때문이다.

    좀 개운치 않은 건 국내 뉴스다.
    국가기간 통신사라는 연합뉴스의 경우 부음기사 1보를 내보내면서 삐딱한 기사를 연속 내보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라고 소개하면서도 그가‘아시아의 작은 히틀러’로 불렸다는 사실, 한때 싱가포르의 국민행복지수는 150개국 중 최하위권인 149위였다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그건 시각은 서구언론의 선입견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걸 저들은 막상 모를 것이다. 싱가포르는 한국과 함께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신생국가인데, 그럼에도 서구의 평가는 반드시 호의적이진 않다.

    서구언론은 왜 리콴유 평가에 호의적이지 않나

    “동남아의 작은 히틀러”라는 독설은 미국 유명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의 발언이다. 왜 서구 언론은 리콴유를 이렇게 볼까? 그건 그가 아시아적 가치를 주창한 것과 관련이 있다. 아직도 기억에 훤하다. 1994년 싱가포르 곳곳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등의 혐의로 구속된 미국의 불량 청소년 마이클 페이 사건 때 태형(笞刑)을 내린 리콴유 정부의 결정 말이다.

    볼기를 내리치는 그 형벌을 두고 서구는 그게 전근대적인 형벌이고, 보편적 인권의 기준에 위배된다며 맹비난했다. 리콴유는 눈도 깜짝 하지 않았다. 그런 싱가포르를 두고 지금도 서구는 잔디 위를 걸어도, 담배를 피워도, 껌을 씹어서도 안 되는 나라라고 비판한다. 영국으로부터 물려받은 반명예훼손법이 정치인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어 누구도 싱가포르 건국자들을 공개 비판 못하는 이상한 나라라고도 여긴다.
    국가가 시시콜콜한 시민의 일상생활까지 간여한다 해서 유모국가(the nanny state)라고 조롱하기도 하는데, 연합뉴스는 부지불식 중에 이런 서구의 시각을 반복한 셈이 아닐까? 연합뉴스의 보도가 개운치 않은 것은 따로 있다.

    박정희와 리콴유 사이의 특별한 인연을 언급치 않은 점이다. 국내 독자들에게는 결정적인 사실을 누락했지만, 실은 박정희와 리콴유는 너무도 닮은꼴의 정치철학과 리더십을 발휘했던 정치지도자다. 둘 사이에는 은근한 경쟁의식까지 있었다.

    박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외국 지도자도 리콴유였다. 그는 1979년 10월 16일에 방한했다. 박정희가 그를 초청한데는 “내가 건설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욕이 없지 않았는데, 한국 땅을 두루 둘러본 뒤 청와대 환영만찬에서 리콴유는 이런 찬사를 보냈다. “어떤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관심과 정력을 언론과 여론조사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데 소모합니다. 다른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정력을 오직 일하는데만 집중하고 평가는 역사에 맡깁니다. 각하께서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하는 분이셨다면 오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 ▲ 2006년 5월 20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와 면담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2006년 5월 20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와 면담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리콴유와 박정희가 공유하는 강력한 리더십 DNA

    아직도 울림이 여전한 명연설인데, 사실 둘은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추종을 거부했다. 그래서 리콴유가 변종(變種) 민주주의자라면, 박정희도 그러했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걸 독재자의 권력욕으로 규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그런 판단이야말로 시야 짧은 헛소리이고, 보편주의자들의 몽상이다.

    리콴유와 박정희가 공유하는 정치문화 DNA인 강력한 국정 리더십, 효율 제일주의와 엘리트 시스템 그리고 서구 민주주의와 또 다른 토착화된 아시아적 정치철학이란 너무도 흥미진진한 비교연구의 대상이다. 유감스럽게도 그걸 천착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게 이 나라 불구(不具)의 지식사회 현실임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런 통치철학의 유사성은 어쩌면 아시아적 개발전략 혹은 아시아적 민주주의로 새롭게 규명되어야 할 대목이 아닐까? 리콴유의 정치철학과 리더십이 흥미로운 이유는 또 있다. 

    박정희의 정치철학이 일본 군국주의와 1930~40년대 만주체험에서 나왔다는 게 그간의 가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리콴유가 보여준다. 상식이지만, 리콴유는 서구민주주의의 요람인 영국에서 대학교육을 받았다. 그런데도 둘은 너무도 유사한 정치리더십을 발휘했고, 효율 제일주의를 무기로 현대적 네이션 빌딩에 성공했다. 

    이게 무얼 말해줄까? 둘은 유교문화를 포함한 아시아적 가치를 공유했다고 볼 순 없을까? 실제로 리콴유는 각종 저술에서 이런 말을 자주했다.“싱가포르는 서구국가들과 출발점부터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들과 같을 순 없다. 당연히 목표도 다르다.

    싱가포르는 리콴유의 작품, 대한민국은 이승만-박정희의 작품

    필자의 판단으로 이런 정치문화 DNA는 싱가포르와 한국이 생존 위험을 안고 만들어진 국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의 경우 리콴유의 말대로 1965년 건국(말레이시아연방에서 분리 독립)과 함께 “몸통이 없이 심장만 물려받았던 국가”(리관유 지음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 69쪽)였다.

    당시를 회고하며 리콴유는 “생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운명”이라고 했다. 식량은 물론 식수조차 자국 내에서 구할 수 없는 인구 200만 여의 작은 섬 국가, 내륙지역이 없는 도시국가의 한계였는데, 이런 환경에서 비상한 경제, 뛰어난 정치를 추구하는 것은 리콴유의 싱가포르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현대 싱가포르는 그걸 뛰어넘는 20세기 기적의 신화가 분명하다. 지금의 한국사회? 그건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과, 부국 대통령 박정희의 작품이다. 그래서 또 하나의 위대한 성공신화이지만, 지금의 변화된 모습은 또 다르다. 다시 훑어본 리콴유의 책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 말미에 한국 관련 서술이 눈에 번쩍 뜨인다.

    그는 1987년 전후 격렬한 노동쟁의와 학생 시위를 보며 "한국인들은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이 시위할 때는 중세의 검투사처럼 플라스틱 방패를 들고 보호구를 얼굴에 쓴 전투경찰만큼이나 매우 조직적이고 훈련이 잘 되어있었다. 정부당국에 반대할 때는 거세고 폭력적으로 행동한다." IMF 이후 한국사회는 발전과 퇴보의 기로에 서있다고 진단한 그의 언명이 더욱 리얼하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미디어펜 칼럼=뉴데일리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