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중위 강승우, 육군하사 안영권․오규봉
  •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당시 국군 제9사단 소속으로 중부전선 철의 삼각지내 백마고지 전투에서 육탄으로 적의 기관총 특화점을 격파한 후 장렬히 산화한 백마고지 3용사 강승우 중위와 안영권․오규봉 하사를 10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백마고지 육탄 3용사 중 강승우 소위는 1930년 남제주군 성산읍 출생으로 일본 오사카 흥국 산업학교를 졸업한 후 1951년 8월 갑종7기로 소위로 임관했고, 안영권 일병은 1925년 전북 김제시 금산면 출생으로 1952년 2월 27일에 입대했으며, 오규봉 일병은 1928년 충남 천안군 성환읍 출생으로 성환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1952년 4월 11일 9사단 30연대 1대대 1중대 소총병으로 참전 했다. 

    철원평야 일대 중부전선의 전략 요충지 백마고지(395m)는 ‘한 치의 땅도 거저 얻은 땅이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군의 전설이 피로 새겨진 현장으로 정전협정을 앞둔 1952년 10월 6일부터 열흘 동안, 무려 7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등 아군과 중공군간의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9사단은 청명한 날씨가 계속되자 적의 공격을 예상하고 진지를 보강하던 중 적의 집중적인 기습공격으로 395고지를 피탈당했다. 이에 제9사단 제30연대는 즉각 역습을 실시했으나,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중공군의 수류탄과 기관총사격으로 아군의 피해가 극심해 돌파구 마련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역습부대인 제30연대 제1중대의 공격이 실패한 상황에서 제1중대 제1소대장인 강승우 소위는 목표 60m 측방의 기관총사격으로 피해가 극심해지자 대공포판을 등에 멘 채 죽음을 무릅쓰고 적의 자동화기 진지로 돌진하는 오규봉 일등병을 엄호하기 위해 안영권 일등병과 화력으로 엄호했다.

    한 소대장 자신이 직접 TNT와 박격포탄으로 적 특화점을 공격하기로 결심한 후 기관총진지 7m 전방까지 포복으로 전진하여 폭발물을 투척하는 순간 우측 팔에 총상을 입고 떨어뜨린 폭발물을 안영권 일등병이 신속히 주워 투척했다. 

    마찬가지로 적 진지에 근접한 오규봉 일등병도 수류탄을 투척하여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고 산화함으로써 중대가 공격을 재개해 목표를 탈환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6․25전쟁 사상 최대의 격전지 중 하나인 이 전투에서 육탄돌격을 결행한 3용사는 오늘날 백마 3군신으로 불리고 있으며, 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정부는 1953년 7월 1일 을지무공훈장 수여와 함께 강승우 소위는 중위로, 오규봉․안영권 일병은 하사로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