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손현주 런던 초대전 "섬은 부표다"(The Island is a Buoy) 성황리 끝나
  • 안면도(安眠島)는 우리나라에서 여섯번째로 큰 섬이다.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반도에 있다.
    섬의 왼쪽은 황해이고, 오른쪽은 김-굴-바지락 약식으로 유명한 천수만이다.
    원래는 태안반도에 붙어 남쪽으로 길게 흘러내린 육지였다.
    동서는 좁고(5.5km) 남북이 긴(24km) 특이한 갑(岬) 모양의 반도,
    이른바 곶(串)이란 지형이다.
    그러니 원래는 안면도가 아니라 안면곶이었던 셈.

    1638년(조선조 인조 16년),
    충청관찰사 김육(金堉)이 섬 북단의 좁은 목을 파내 운하를 만들었다.
    삼남(영남-호남-충청)에서 조세로 거둔 현물을 서울로 운반하는,
    조운(漕運) 거리가 짧아졌다.
    더불어 안면도 서쪽 거친 황해서 자주 벌어진 난파도 줄었다.
    육지에 붙어있다 강제로 바다로 떨어져 나가 섬이 된 경우는,
    이게 유일하다.

    섬 아닌 섬 안면도는,
    1970년에 다리가 건설되어 다시 육지로 이어졌다.
    기묘한 운명이다.
    지금도 안면도에 가다보면,
    언제 육지에서 바다를 건너 섬으로 갔는지 모를 정도다.
    섬을 육지와 다시 연결하는 안면교의 경우,
    다리 길이가 겨우 208m로 섬의 북단은 육지와 바짝 붙어 있다.

  • ▲ 황해로 돌출한 태안반도 남단의 섬 아닌 섬 안면도.ⓒ네이버 지도 캡쳐
    ▲ 황해로 돌출한 태안반도 남단의 섬 아닌 섬 안면도.ⓒ네이버 지도 캡쳐

    섬나라 영국의 수도 런던안면도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ica)의 영화를 자랑하는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맞은 편. 
    런던 심장부에 위치한 <목 스페이스>(mok space) 갤러리에 안면도를 주제로 한 사진전이 열렸다.
    지난 6월25일부터 7월5일까지 2주간,
    안면도 섬 사진들이 [섬에서 섬으로] 시간여행을 한 것이다.
    20년간의 경향신문 기자 생활은 물론,
    와인 칼럼니스트-푸드 칼럼니스트-여행작가로 널리 알려진,
    사진작가 손현주의 초대전,
    <섬은 부표다>(The Island is a Buoy)가 바로  그 무대. 


  • ▲ 손현주 초대전 포스터ⓒ손현주
    ▲ 손현주 초대전 포스터ⓒ손현주


    손현주 작가는,
    섬과 바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찍은 안면도 섬 사진 시리즈 25점과
    물의 드나듦을 통해 우주의 순환을 그린 동영상을 선보였다.
    대한민국
      섬 사진이 서구문명의 중심점 런던에서 집중조명을 받기는 처음.

    안면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지 섬을 떠나지 않았던 작가는,
    5년전 신문사에 사표를 던지고 섬으로 돌아와 카메라를 잡았다.


  • ▲ 손현주 작가ⓒ강윤중
    ▲ 손현주 작가ⓒ강윤중

    "안면도를 걸어서 일주하며,
    가장 많이 발견한 부표를 통해
    [푼크툼]
    을 느꼈다.

    부표는,
    위치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바다 위에 띄우는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구조물이다.
    바람이나 어떤 환경으로 인해
    [관계가 끊어졌을 때]

    부표는 배회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쓰레기로 보일 수 있었던 부표가,
    카메라 속으로 들어와 작가와 관계를 형성하며,
    물성을 버리고,
    시공간에서 의식을 확장 시켰다.

    [섬은 부표이고, 부표는 가라앉지 않는다]는 명제를,
    인간의 욕망과 대비,
    강렬한 빛(light)과
    섬(island)의 결(Texture)로
    표현하고 싶었다."

      - 손현주 작가

    편집자 주 :
    예술 전문용어 푼크툼(Punctum)은,
    사진-회화 등의 예술작품에서
    관객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다른 연상작용을 통해
    작가가 의도한 것 외에 추가로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반면 스투디음(Studium)은,
    작가가 의도한 바를 관객이 동일하게 느끼는 것을 뜻한다.
    아우라(Aura)는,
    작가가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은 것을
    관객이 의식적으로 인지하려 않았는데도
    무의식적으로 교감하는 것을 의미한다.

    20세기 프랑스 신비평(新批評)의 대표 평론가인
    롤랑 제라드 바르트는,
    스투디음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공유되고 상징화된 정보이고
    푼크툼은 개인의 감정을 자극하는 요소라고 정의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학 [Photography] (학문명백과 : 예술체육, 형설출판사)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학 [Photography] (학문명백과 : 예술체육, 형설출판사)



  • ▲ 전시회에 온 런던 시민들이 손현주 작가의 작품을 관심있게 감상하고 있다.ⓒ손현주
    ▲ 전시회에 온 런던 시민들이 손현주 작가의 작품을 관심있게 감상하고 있다.ⓒ손현주


    손현주 초대전 <섬은 부표다>(The Island is a Buoy)를 기획한
    <목 스페이스>(mok space) 갤러리의 큐레이터 쥴리 목(Julley Mok)은,
    작가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본질적으로 섬 유전자를 지닌 작가가,
    내면 깊숙이 잠재한 무의식을 동력으로 퍼낸
    섬 작업들을 지켜보아 왔다.

    작가 특유의 비현실적이며 사유를 갖게 하는 현대 작업들은
    런던 오피니언 리더들과 아티스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 ▲ The Buoy_2021,디지털 프린트 68X100cmⓒ손현주
    ▲ The Buoy_2021,디지털 프린트 68X100cmⓒ손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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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현주 초대전 영문 브로슈어에 게재된 해설 번역본>


    섬은 부표다(The island is the buoy)


    *작가 히스토리와 도전 및 솔루션


    동양의 깊숙한 안쪽, 섬 유전자를 지닌 순례자.

    "이 섬의 경계에 선 난 누구인가.
    난 왜 여기에 서 있는가.
    난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작가가 경외의 눈으로 파고든 섬의 경계는,
    대한민국 서쪽, 중국과의 사이 서해에 있는 안면도다.
    안면도는 대한민국에서 6번째로 큰 섬이다.
    남북 길이 24㎞, 동서 길이 5.5㎞.
    해안선 길이만 120㎞이다.

    이 섬은 태고로부터 우주의 기운이 몰린 신비의 땅으로 전해진다.
    한국의 역사서적은 이 섬을 [나라에 환란이 일었을 때 안전한 피신처]로 적고 있다.
    과거 종교박해가 있을 때,
    지도자들이 섬으로 숨어들어 마을을 이룬 기록이 있다.
    무엇보다 한국전쟁 등 시대적 풍란을 피해 간 그곳이야말로
    [동양의 깊숙한 안쪽]이다.
    섬의 폐쇄성과,
    닫혀있는 안쪽에서
    피안(彼岸, 불교에서의 깨달음)의 사유를
    순응과 기도로 풀어가는 섬사람들의 문화적 파편을,
    작가는 [카메라를 맨 순례자]가 되어 짚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과거에 생명이 존재했던 순간부터 섬사람들이 수도 없이 드나들었을,
    안이면서 바깥쪽인,
    [섬의 경계]를 따라간다.
    서해안은 밀물과 썰물의 조수간만 차가 심하다.
    하루 두 번,
    물이 섬 방조제까지 차올랐다가
    썰물에는 먼 수평선으로 물러난다.

    작가는,
    물이 들어오면 뒤로 물러나고,
    물이 빠지면 다가갔다.

    경계를 걸으면서
    때로는 막대기로,
    때로는 스티로폼(styrofoam) 덩어리로 존재하는,
    [인간의 흔적]에 대해,
    푼크툼(punctum)을 느꼈다.

    뱃길을 표시해 주는 대나무가 음표처럼 춤을 추고,
    물고기를 잡는 그물과 함께 꽂아놓은 막대기가,
    점점 물속으로 잠긴다.
    투망을 따라 선(line)을 형성하는 깃발,
    굴 양식을 위해 띄운 스티로폼 연결 줄이 끊겨 갯벌로 흘러 들어온 [인위적인 것들],
    바로 부표(buoy)다.

    부표는 섬사람들에게 친절한 안내판이자 길이다.
    안전한 통로다.
    자신과의 약속이자 사회적인 표시다.
    [집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따뜻한 희망이다.

    바다에 떠 있는 스티로폼(과거에는 유리) 부표 아래에는,
    자신들의 생계인 양식 굴이 숨겨져 있다.
    [약속된 문(door)]이다.

    하지만 섬은 부표로 인해 환경적인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느 순간부터 부표들이 나방처럼 흘러 들어와 섬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흰 인공 부스러기들이 섬을 어지럽히고
    섬은 훼손되고 있으며
    대가를 감당하고 있는 중이다.

    부표가 주는 이런 긍정적-부정적 상징성들은,
    작가의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시각적 사유로 변주되었다.

    경계에서 바라보는 작가의 이러한 시선은,
    끊임없이 변증적 사고를 키워내고 있다.
    이 접근 행태는 결코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다.

    작가의 조상은 대대로 수 백 년간 이 섬에서 살아왔다.
    이미 체화된 유전적 바탕을 기조로 한다.
    부표를 통해,
    작가는,
    궁극적으로 섬 유전자를 지닌
    [원시적 섬사람]
    으로서 기의를 꼽고 싶었던 것이다.

    우주에서 지구는 섬이다.
    지구에서 대한민국의 안면도는,
    점 하나 찍기도 어려운 아주 작은 섬이다.
    이 섬에서 소우주인 인간은,
    부표라는 인위적인 섬을 띄웠고,
    부표는 순환기점의 문명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도중,
    자연과 문명이 교차되는 접점에서
    [순리](providence)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길목에서 작가는,
    자신과의 관계를 탐색한다.
    이 시리즈는,
    다양한 형태의 주제로 파생되어 다음 작업을 연결시키면서
    끊임없는 창작 모멘텀(momentum)을 제시할 것이다.


  • ▲ 런던 전시회 관객들과 대화하며 활짝 웃고 있는 손현주 작가.ⓒ손현주
    ▲ 런던 전시회 관객들과 대화하며 활짝 웃고 있는 손현주 작가.ⓒ손현주


    늘 그림을 그리던 농부이자 한학자의 딸

    1965년 겨울 안면도.
    작가는 농부이자 한학자의 넷째로 태어났다.
    작가의 관점을 키워 준 스승인 아버지는,
    첫 딸을 얻은 감사의 마음으로 마당에 금줄을 걸고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 해 겨울,
    어머니가 산후통을 오랫동안 겪을 만큼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

    또 눈이 내렸고,
    매년 다르지만 같은 눈이 내렸다.
    그 눈을 밟으며 아기는 건강한 소녀로 성장했다.

    바다와 바람, 모래밭, 깊은 안개, 태풍......
    섬 특유의 거친 자연은,
    소녀가 삶을 평면으로 보지 않도록
    굴곡의 시선을 안겨줬다.
    학교 공부는 큰 관심 없었다.
    다만 그림 그리기와 책읽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화가의 꿈을 키웠다.
    8살 소녀는 해질 때까지 학교에 남아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렸고,
    혼자 30분 산길을 걸어 귀가 했다.
    담임선생님이 가능성을 엿보고 개인지도를 한 것이다.
    소녀는,
    수시로 산에 올라,
    바닷가로 달려가,
    도화지를 펼쳤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9살 때까지 섬을 떠나지 않았다.
    화가의 꿈을 버려본 적이 없다.


  • ▲ 서양화가 강형구씨가 전시장을 찾아, 손현주 작가와 포즈를 취했다.ⓒ손현주
    ▲ 서양화가 강형구씨가 전시장을 찾아, 손현주 작가와 포즈를 취했다.ⓒ손현주


    20년간 신문기자로 에디터 역할

    아버지가 들려주던 섬의 역사와 고전을 통한 인문학적 지식은
    소녀의 내면을 두텁게 했고,
    무수한 은유와 텍스트를 쏟아내게 했다.
    섬을 담은 글과 그림은 적잖은 수상 경력을 안겨줬다.

    하지만 꿈은 우회하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던 날.
    그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펜탁스 필름 카메라를 얻고 사진학 수업을 엿듣는다.
    꼭 시인이 되라는,
    국어선생님의 권유를 못 잊어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어떤 연유인지 사진작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훗날 대학원에서 신문방송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신문사에 입사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편집기자 역할을 20년간 했다.
    사회학습과 내면이 투쟁하는 불면의 시기였다.
    이 때 결정적으로 사진을 골라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사진에 대한 눈을 틔웠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진실을 선택했고,
    파격적인 감성 사진을 신문전면에 게재하면서 이슈가 되었다.
    <사진기자가 뽑은 올해의 사진편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도인 서울에서 늘 급진적인 뉴스를 다뤘지만,
    작가는 자신의 근원적 뿌리인 섬,
    안면도를 잊지 않았다.



    2번에 걸친 [섬의 위기]

    [근원]인 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심리적 갈등은,
    2번의 겨울, 큰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1990년.
    [고요하게 잠자는 섬]
    이라는 별칭이 붙은 안면도
    한국정부는 핵폐기장 건설을 발표한다.
    신문기자 시절이다.
    주민들은 격렬하게 저지했고,
    핵으로부터 섬을 지켰다.
    11월 시위 당시 섬 지도자였던 아버지는 연행되어 갔고,
    어머니가 눈물로 아버지 솜바지를 만들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또 한 번의 고비는 2007년이다.
    섬 인근에 거대한 유조선이 침몰하여
    바다는 검은기름으로 출렁거렸다.
    모든 생물은 고통을 겪었다.
    새들은 날지 못했다.
    어패류는 힘을 잃고 갯벌 위로 올라왔다.
    작가는,
    자신의 영혼 또한 죽은 물고기처럼 물 위로 떠올랐다고 여겼다.
    섬으로 돌아갈 시기였던 것이다.

    사건 전,
    정신적인 지주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010년.
    작가는 절정의 시기를 달리던 신문사 데스크를 접고
    섬으로 귀향했다.
    그러나 섬이 고통을 겪을 때 바로 회귀 하지 못한 것을
    평생의 짐으로 여기고 있다.
    프랑스 작가 에밀졸라의 <전진하는 진실>에 나오는 글귀가
    끊임 없이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걸어서 15일, 섬을 낱낱이 만나다

    섬으로 돌아온 첫 해,
    작가는 카메라를 쥔 섬 순례자가 되기로 한다.
    섬을 걸어서 일주를 한 것이다.
    15일 걸렸다.

    걷기위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은 당초부터 없었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따라 푹푹 빠지는 갯벌과 모래밭을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비를 만나고 바람은 눈을 못 뜨게 했다.
    걷기는 혹독했다.

    하지만 섬의 테두리에는,
    모든 자연의 시간이 고스란히 머물러 있었다.
    시간 속으로 흘러들어가며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내는 [층간]이,
    바로 이 경계였다.

    섬이라는 우주의 덩어리에 인간은 둥지를 틀었고,
    욕심과 문명의 부유물이 흘러 나와 아프게 뒤척거리며
    순환의 한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그 흔적들은,
    바람과 바닷물에 잠겼고,
    갯벌이 품어 안았다.
    생명을 다하고 내려앉은 새 한 마리,
    내장이 드러난 들짐승,
    태풍에 쓸려 내려온 나무,
    어느 집 안방에서 흘러나온 텔레비전-변기-그릇들.
    섬에서 태어나 섬의 50년을 내면에 담고 있는 작가의 셔터가
    [인과]로 눌러지고 있었다.

    때론 가슴으로 느리게,
    때론 매처럼 매섭게,
    대상을 잡아냈다.
    걸으면서 멍이 든 두 개의 발톱이,
    1년에 걸쳐 서서히 뽑혀져 나갔다.

    그러는 동안,
    카메라와 함께 걷는 동안,
    작가는,
    저장과 망각,
    소멸되어가는 다층적 팰름시스트(palimpsest, 글자가 거듭 쓰인 고대 양피지원고)를 복원하게 된다.
    50년간 들락거리던 섬 유전자가 재생되고 있다고 보았다.

    영국의 동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생명체란,
    유전자가 잠깐 쓰다 버리는 생존기계이자 꼭두각시이며,
    이 꼭두각시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주인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유전자다”
    라고 썼듯이,
    조상 대대로 몸에 밴 섬 내력의 유전자가 지배하는 힘은 컸다.

    진화를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유일한 방법은,
    유전자의 시선에서 개체군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이란 것을,
    카메라를 통해 재생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루 2번씩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며
    우주가 재생되는 [달의 시간]이 순환되듯이,
    섬의 모든 생물과 인간의 배출이
    파도에 덮이고 쓸려 나가면서,
    시간의 다층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으니까.
    이 과정은,
    섬과 섬사람들에게
    순환이며 순응이며 순리다. 


  • ▲ 작품을 감상 중인 런던 시민들. ⓒ손현주
    ▲ 작품을 감상 중인 런던 시민들. ⓒ손현주



    무인도에서 죽음의 경계에 서다

    그 후로도 작가는,
    늘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통로인 [바다의 문] 앞에 서 있었다.
    [가벼운 것은 모두 날아올랐다]고 SNS에 표기한 8월,
    태풍이 섬을 관통하며 거세게 경계를 통과할 때도,
    작가는,
    바다의 경계에서 바닥에 납작 엎드려 셔터를 눌렀다.
    흰 눈이 바다에 흩뿌리던 혹독한 겨울날과
    안개 자욱한 새벽,
    푸른색이 깃드는 저녁시간에도,
    탐색자의 카메라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안면도의 부속 섬인 무인도 내파수도에 잠입한 날은,
    섬 일주 도중 사고로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아직도 상처가 얼굴에 남아 있으며,
    그 날의 [아픈 환희]들이,
    작품 <검은 돌>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경계 너머(Over the Hedge)에서 만난 부표(Buoy)

    불과 5달 전인 2014년 혹한의 1월.
    작가는 다시 안면도 섬 일주를 감행한다.
    내면과 동질화,
    섬과 교감하며,
    끈질기게 울타리(Over the Hedge)를 넘나든다.
    바다와의 경계인 방조제,
    울타리 너머 펼쳐지는 바다는,
    개인의 기억에 머물지 않았다.
    이웃의 기억,
    한 마을의 기억,
    안면도라는 섬의 기억이 통째로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숨통이자 배출 통로였다.
    어머니가 꽃가마타고 이 섬에 와 안착을 하고,
    이 섬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계를 이어가고,
    다시 이 섬을 떠나는 이승과의 이별 시점이,
    헷지다.

    작가는,
    바다로 뚫린 현재의 길에서 끊임없이 과거를 호출하며
    인과의 사물들을 짚어간다.
    부러져 바다로 흘러 들어온 나무 조각,
    항로를 표시하는 깃발,
    양식장에서 끊겨 나온 스티로폼 부표까지,
    모든 오브제가 과거의 아카이브에서 굴절되어
    하나의 이미지로 상징된다.
    따라서 작가의 사진은,
    현재의 [컬러]가 아니라,
    존재의 기억 속에 머물러
    팰름시스트(palimpsest, 글자가 거듭 쓰인 고대 양피지원고)를 만들어내며
    잔영처럼 잡아낸 [흑백]의 힘,
    또한 크게 작용한다.
    대상으로서의 바다와 오브제 속에서,
    작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마을사람들을,
    주술사의 주문처럼 불러낸다.
    대화를 나눠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좁히는 작업이다.


    섬은 부표다, 부표는 가라앉지 않는다

    손현주 작가는,
    섬의 기억들을 끌어내 작업과의 연관성을 얻기 위해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 (Marcel Proust, 1871-1922)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In Search of Lost Time)를 인지,
    보편성을 부여했다.
    소설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과자의 냄새나 소리 등을 통해 기억을 발생시키는데,
    이렇듯 특정한 냄새에 무의식적으로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푸르스트 현상(The Proust Effect)이라고 한다.
    이는 심리학의 무의지적 기억(involuntary memory) 개념과 통한다.

    작가는,
    섬을 일주하면서
    바닷물이 드나들며 내는 소리와 짠 냄새,
    그리고 마을에서 흘러나온 섬사람들의 관계적 물건들을 오브제로 인식,
    사진적 관점으로 재발견했다.
    걷기를 통해 작가가 주목한 부분은,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
    라는
    푸르스트
    의 가치관이다.

    작가는,
    섬을 일주하며 가장 많이 발견된 부표를 통해
    푼크툼을 느꼈고,
    섬을 인식하는 [새로운 눈]을 발견한 것이다.

    부표는,
    위치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바다 위에 띄우는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구조물이다.
    제 자리에 있을 때,
    가치가 있고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바람이나 어떤 환경으로 인해 [관계가 끊어졌을 때],
    부표는,
    배회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한갓 쓰레기로 보일 수 있었던 부표가,
    카메라 속으로 들어와 작가와 관계를 만들어가며,
    부표는 물성을 버리고 시공간에서 의식을 확장 시켰다.
    작가가,
    주제를 통해 범 우주를 통찰하지만
    섬의 결(Texture)을 놓치지 않은 이유다.

    [섬은 부표이고, 부표는 가라앉지 않는다]는 명제는,
    불나방처럼 떠도는 인간의 욕망마저도
    [성찰]
    이라는 연료에 의해 구동되며,
    소멸되지 않고 사유로 재탄생되어 잔재로 남는다.
    이런 작업을 통해 작가는,
    끊임없이 화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 안의 부표는 안정적인가.
    허투루 띄워지지는 않았는가.
    희망이라는 부표를 간직하고 있는가.


    오디세이의 숙제, 우리는 언제 행복해질 수 있는가

    작가는 한동안
    고대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Odyssey)에 몰입하였다.
    자연환경과 대치해야 하는 섬의 전쟁터 같은 혼돈을 호출하기도 하고,
    탄생과 고난-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고도 처연한 과정이
    섬사람들의 속성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귀향하는 과정의 사진은,
    관조적이거나 명상의 저음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오디세이 ‘일리아스’에서 숙지하게 되는 공통된 질문은,
    곧 인류에게 던지는 답이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언제 행복해질 수 있는지,
    왜 죽어야하는지조차 모르고 신들과 뒤섞여 사는 모습이,
    이유를 모르고 바다에 순종해야 하는 섬의 일생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사는
    우리 인생의 시뮬라크라(Simulacrum의 복수형, 플라톤이 말하는 사물의 왜곡된 복사)가,
    <오디세이> 속에 들어있지 않은가.

    작가는,
    이 경계의 철학적 감성을 사진적 상징 언어로 끌어내고자
    사유하고 배회한다.
    따라서 작가의 사진은,
    현장에서 배설한 날 것처럼 보이지만,
    느리게 내면을 파고들면,
    긴 시간 숙성되어 추상의 힘으로 재탄생한 휴머니즘 잔영이다.
    작가가 2000년부터 꾸준히 탐색해 온
    <오디세이>라는 타이틀 속의 한 카테고리가 바로,
    [섬은 부표다]이다.


  • ▲ 김갑수 런던문화원장(오른쪽)은 두 번이나 전시회를 찾았다. ⓒ손현주
    ▲ 김갑수 런던문화원장(오른쪽)은 두 번이나 전시회를 찾았다. ⓒ손현주


    섬에서 섬으로, 안면도에서 런던으로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지구는 섬이다.
    또 작가가 서 있는 안면도는,
    동양의 [대한민국 한 점 섬]이다.

    작가는,
    이 동양의 한 섬에서,
    서양의 한 섬으로 시간이동을 한다.
    사진이 걸리는 귀착점, 서쪽 섬 런던사람들에게
    [당신의 섬은 안녕 하시냐]
    [당신 존재의 섬은 안녕 하시냐]

    웃으며 묻는다.
    태생적 물음을 같이 사유하자고 제안한다.
    섬의 길목에서 우연히 만난 당신과 내가
    우리 안의 심연을 파고 들어
    [스스로가 순환 속의 오브제]인 것을 알아
    삶의 순간에서 [섬은 부표다]라는 주제로
    진실성 추구라는 원초적 명제에 집중해 보자고 제안한다.

    섬의 길은,
    섬에서 부유하며 나방처럼 떠돌아다니는 부표는,
    인생의 길과 다름 아니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의 길인 따뜻한 부표나,
    비록 영혼 없이 흔들리는 줄이 끊긴 쓰레기로서의 부표가,
    우리 인생과 다르지 않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 근원적인 질문을 해볼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얼마나 나를 깊이 응시하고 있는지,
    동 시대를 살고 있는 동쪽과 서쪽의 [우리]는,
    동시에 무엇을 관조하고 있는지,
    길 위의 순례자로 악수를 나눠보자는 것이다.


  • ▲ 대영박물관 직원들이 전시회를 찾아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사진이 너무 매력적이라면서 뷰티풀 원더풀을 남발하며 전시장을 떠나지 못했다. ⓒ손현주
    ▲ 대영박물관 직원들이 전시회를 찾아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사진이 너무 매력적이라면서 뷰티풀 원더풀을 남발하며 전시장을 떠나지 못했다. ⓒ손현주




    * 작가 노트-섬은 부표다(The island is the buoy)

    내게 부표(buoy)는 무엇일까.
    내 안에 든 섬 유전자가,
    어떤 학습을 통해 부표를 투시했을까.
    내가 부표를 통해 사유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 겨울 난 찬 바다에 서 있었다.
    [카메라를 든 순례자]로 나홀로 섬 걷기 일주를 단행한 것이다.

    작업은 춥고 고독했다.
    아니 가혹했다.
    바람은 눈을 뜰 수 없게 불고,
    어떤 날은 눈보라가 몰아쳐 렌즈를 덮었다.
    셔터를 누르는 손끝은 늘 얼어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대상을 의식하는 내 촉수는,
    날카롭게 작동했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
    당초에 길은 없었다.
    스스로 길을 내고 헤쳐 나가야 했다.
    그 길에서 마주친 수많은 오브제들이,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건네 왔다.
    수백 년간 가문을 이어 온,
    존재론적 근원의 빛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왔고,
    기억 속에 공간을 형성했다고 믿었다.

    대한민국의 섬 안면도.
    동쪽은 검은 갯벌이고,
    서쪽은 흰 백사다.
    걸어서 다시 원점과 마주치는 데는 꼬박 15일 걸린다.

    어쩌면 난,
    안면도 경계를 따라 일주한,
    최초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그 고행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으니까.

    밀물에 도망치고
    썰물을 따라가며,
    육체와 정신은 직관과 사유로 포박되었다.
    하루, 이틀, 사흘...
    그러면서 난,
    섬의 어느 특징에 매몰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무언가 내 심장을 찌르고 상처를 입혔다.
    바로 부표다.
    3만 여장 결과물이다.
    이 걷기는 5년 전 가을 이후 두 번째다.

    부표는,
    섬을 돌면서 가장 [아팠던] 감성 오브제이기도 하다.

    먼 바다에서 섬으로 돌아오는 배들에게,
    대나무 부표는,
    [안도]다.
    그들이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는 [안전한 길] 표시이고,
    그 행간에는 따뜻한 밥상과 아이들 웃음소리가 담겨있다.
    시간과 존재가 스며든 푼크툼(punctum)이다.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암호는,
    가슴을 뛰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굴 양식 줄이 끊겨 섬으로 흘러들어온,
    흰 나방처럼 온 섬을 날아다니는 스티로폼 부표는,
    현대인들에게 반성을 촉구했다.
    그러나 모순은 섬사람들의 생계라는 점이다.
    오염이라는 대치된 명제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했고,
    판단의 혼재를 불러왔다.
    언어학자 비트케슈타인의 말처럼,
    두가지 사이에서의 에포케(epoche)다.
    그럴 때는 [과거의 내 아버지처럼]
    바위에 앉아 수평선을 응시했다.

    섬 일주하는 내 배낭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매달려 있었다.
    걸으면서 갯벌이나 모래에 파묻힌,
    반복된 시간의 오브제를 지속적으로 주워 담았다.
    인식-판단-기회의 시간을 관장하는,
    녹색의 유리 카이로스(Kairos)다.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유리부표의 조각]이다.
    시간은 이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둥글고 맨질맨질한 보석으로 다듬어 놓았다.
    유리부표 조각을 모으면서
    난 섬의 근원을 찾아 맨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숙명의 힘을 느꼈다.

    하찮은 깃발 하나가,
    섬이라는 우주의 섭리 속에서 흔들린다.
    보름달이 뜨면 물은 섬으로 가장 많이 들어온다.
    달의 힘을 받아 그 깃발이 휘어지고,
    섬과 섬사람들의 흔적을 존재론적으로 인식하며
    사진의 숭고함은 열리는 것 아닐까.
    삶의 진정성이 탐색되는 것 아닐까.

    따라서 부표라는 오브제의 미학이,
    우주라는 큰 틀에서,
    섬과 섬사람들,
    내 개인의 유전적 깊이로 사유하면서,
    희망이 되고 길이 되었다.
    때론 부표는,
    본질과 본성을 잃고 부유하는 현대인의 허상으로 다가왔다.

    부표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일은,
    카메라를 든 섬 사유자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난 문득문득,
    유년시절 두렵고 고단했던 바다의 기억 속에 함몰되었기 때문이다.
    그럴 땐 섬이 시간의 노래로 만들어놓은 표면의 질감이,
    탈출구로 작용했다.
    조개껍데기와 색색의 돌들,
    모두 삭아 자연으로 돌아가는 난파선의 부품.
    섬의 기호를 해독하는 표면 사유 방식은,
    기억의 확장을 도왔다.

    덧붙이자면,
    분명한 것은 안면도는,
    인간적 위험으로부터 온전하더라는 것이다.
    그 잠자는 평화의 섬에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귀하게 생각한다.
    중국 사상가 루쉰(魯迅)의 말처럼,
    길(섬)은 나로 인해 생긴 것이고
    희망의 근거(부표) 또한,
    인식의 출발이지 않은가. 




  • ▲ 런던 전시회를 마치고 안면도로 돌아온 손현주 작가가 페북에 올린 사진. 작가는 이 사진 아래 이렇게 글을 썼다. "다시 바다. 금방이라도 울컥 비가 쏟아질 것 같아요. 물기 잔뜩 머금은 하늘. 잠시 그 하늘과 바다가 닿아 있는 곳을 바라보고 왔습니다. 살 것 같습니다." ⓒ손현주
    ▲ 런던 전시회를 마치고 안면도로 돌아온 손현주 작가가 페북에 올린 사진. 작가는 이 사진 아래 이렇게 글을 썼다. "다시 바다. 금방이라도 울컥 비가 쏟아질 것 같아요. 물기 잔뜩 머금은 하늘. 잠시 그 하늘과 바다가 닿아 있는 곳을 바라보고 왔습니다. 살 것 같습니다." ⓒ손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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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 마치고 귀국한 손현주 작가 인터뷰>


    “몸 속 섬 유전자가 카메라를 들게 했죠”

    런던에서 안면도 사진전 개최한 사진가 손현주씨


    혹자는,
    기억의 저장고에서 끄집어 낸 비현실적 [섬 배설물]들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더러는 사진의 결에서 우주를 읽었다고 했다.
    누구는,
    사진 오브제들이
    막 집어 먹고 싶은 눈깔사탕처럼 달콤한 과거를 호출해냈다고 했다.

    하지만 엄지발톱을 두 개나 빼먹고 죽음의 고비를 넘긴 작가는,
    이미지 생성과정에 애틋함이 녹아있는 듯싶었다.

    그는,
    “밤바다에 한 시간이상 앉아 있어본 적 있느냐”고 운을 떼며
    “시각적으로 아무것도 인지할 수 없을 때 진정 내면이 투영 되더라”
    선문답 같은 질문으로 이야기로 풀어 갔다.

    “짠내와 비린내는 섬의 눈물이며,
    섬사람들 몸에 흐르는 유전자입니다.
    섬을 깊숙이 탐색하는 동안 섬과 자신이 동일시되었음을 경험했고,
    동화적 상상이나 비현실성, 신화적 깊이가,
    이미지로 끌려 나오고 있음을 느꼈죠.
    그것은 공기놀이처럼 자연스러운 손놀림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맨 섬 사색자],
    안면도 사진가 손현주(50)씨.
    그는 지난겨울 혹한 때 안면도를 걸어서 일주했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따라 길 없는 길을 무던히도 걸었다.
    물이 들어오면 뒤로 물러서고,
    빠져 나가면 수평선 가까이로 다가갔다.
    섬을 일주하여 동그라미를 완성 하는 데는,
    딱 보름 걸렸다.
    바람은 눈을 못 뜨게 했고,
    어떤 날은 눈보라가 카메라 렌즈를 가렸으며,
    손가락은 늘 굽어 있었다.

    도보일주는 2010년 가을 이후 두 번째다.
    그는 왜 고통을 자초하며 섬을 말없이 걷고 있는 것일까.



  • ▲ 어느 비 오는 날, 안면암 앞 바닷가에서 촬영중인 손현주 작가 모습. 한용훈 작가가 찍어준 것이란다.ⓒ손현주
    ▲ 어느 비 오는 날, 안면암 앞 바닷가에서 촬영중인 손현주 작가 모습. 한용훈 작가가 찍어준 것이란다.ⓒ손현주


    “제 조상은 수 백년간 안면도에서 살아왔습니다.
    몸 속에는 섬 유전자가 잠복해 있죠.
    육지에서 30년을 보내는 동안,
    수시로 복통처럼 기운이 흔들리곤 했어요.
    열아홉에 섬을 떠났죠.
    상경하여 사회적으로 많은 일들을 했지만,
    근원이 섬사람인데 섬을 떠나니,
    아프고 힘들고 그랬던 거예요.
    이유 없이 혈소판수치가 떨어져 병원을 전전했어요.
    어느 날이던가,
    내가 가장 건강했을 때가 언제인지 짚어보게 되었는데,
    가장 아팠던 때도,
    건강했던 때도,
    섬에 있을 때였습니다.”


    기자생활 딱 20년 시점,
    아슬아슬하던 [향수 복통]이 터져 버렸다고 한다.
    세상물정 생각 않고 무작정 사표를 냈다.
    이튿날 초등학교 6학년짜리 막내딸을 앞세워
    고향 안면도로 들어왔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잘 한 결정]이라고 여긴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이를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연결시키며 팔자 타령할 만큼 바쁘기 때문이다.

    사계절 먹을거리가 풍부하며 빼어난 관광자원을 지닌 안면도가,
    제주도보다 뒤질 이유가 없다는 그녀의 지론은,
    태안 로컬푸드의 새 장을 열었다.
    3년 전부터 국내 최초로
    태안지역 식재료를 이용한 파인 다이닝을 기획하여 매체의 주목을 받았고,
    관련된 강의나 글쓰기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국내 사진가들에게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타이틀들을 여럿 지녔다.
    신문기자에서 사진가로 돌아서면서
    와인 칼럼니스트-푸드 칼럼니스트-숲 해설가-여행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외국 사진가들의 경우,
    다채로운 이력가들이 많아요.
    배우이면서 환경 보호론자, 시인, 철학자 등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 사진을 접근하여
    깊이 있는 사진을 선보이는 경우가 흔하죠.
    이는 사진이,
    사유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며
    다채로운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이미지를 형성해야 하는 시각언어이기 때문이에요.
    사진 본성이 가지고 있는 그 찰나의 순간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함의가 없는 사진은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독하게 길을 걷고 내면을 후비는
    날카로운 푼크툼이 작동했을 때,
    내 안의 지식과 버무려져
    비로소 사유하는 사진이 된다고 보거든요.
    전 본격적으로 사진을 한지는 5년이지만,
    [50년 결과물]이라고 말해요.
    제 나이만큼 몸속에 박힌 섬 유전자가,
    학습된 과거의 기억이,
    팰름시스트(palimpsest,
    글자가 거듭 쓰인 고대 양피지원고)
    재생되었다고 믿거든요.”


    작가는 두 차례에 걸쳐 안면도를 걸어서 일주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발견하고 [감성적 찌름]을 느낀 것이 부표다.
    부표는,
    위치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바다 위에 띄우는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구조물이다.
    먼 바다에서 섬으로 돌아오는 배들에게
    대나무 부표 [안도]다.
    그들이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는 [안전한 길] 표시이고,
    그 행간에는 따뜻한 밥상과 아이들 웃음소리가 담겨있다.
    시간과 존재가 스며든 푼크툼(punctum)이다.

    하지만 바람이나 어떤 환경으로 인해 [관계가 끊어졌을 때],
    부표는,
    배회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쓰레기로 보일 수 있었던 부표가,
    카메라 속으로 들어와 작가와 관계를 형성하며,
    물성을 버리고,
    시공간에서 의식을 확장 시켰다.
    [섬은 부표이고 부표는 가라앉지 않는다]는 명제를,
    인간의 욕망과 대비, 강렬한 빛과 섬의 결(Texture)로 표현했다는 평가다.

    부러져 바다로 흘러 들어온 나무 조각,
    항로를 표시하는 깃발,
    양식장에서 끊겨 나온 스티로폼 부표,
    눈발 성성한 갯벌과 죽은 산비둘기 한 마리.
    모든 오브제가,
    과거의 아카이브에서 굴절되어 하나의 이미지로 상징되었다.
    따라서 작가의 사진은,
    현재의 비현실적인 컬러사진이 작용하지만,
    존재의 기억 속에 머물러 팰름시스트를 만들어
    잔영처럼 잡아낸 흑백 사진의 힘 또한 크게 작용했다. 


  • ▲ 런던 전시회 모습.ⓒ손현주
    ▲ 런던 전시회 모습.ⓒ손현주


    작가는 런던 전시회의 반응을 이렇게 소개했다.

    "런더너들의 반응은 굉장히 호의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에피소드>라는 주제로 걸린 10개의 소품에 대해,
    큐레이터 공부를 하는 한 젊은이는,
    '비현실적이고 또는 현대적인 작품들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우리 세대는,
    이런 비현실적 색상과 영상을 보고 자라선지

    이 작품들에 친근감을 느낀다. 공감한다'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작가는,
    서울에서도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섬의 둘레에서 카메라를 매고 서성거린다.

    ‘이 섬의 경계에 선 난 누구인가,
    난 왜 여기에 서 있는가,
    난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라는
    내면의 독백에 귀 기울이면서.




    *****************************************

    사진가 손현주 Hyunjoo Son 孫賢珠 프로필


    사진가이면서 와인칼럼니스트-푸드칼럼니스트-여행작가-문화기획자다.
    안면도문화학교 운영.
    전 경향신문기자.
    20년간 일간지 기자생활을 했다.
    2004년 <사진기자가 뽑은 올해의 사진편집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이 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계절밥상여행>(2012.01, 아트북스),
    <와인 그리고 쉼>(2009.05, 포북),
    <태안 섬 감성스토리>(2013.11, 태안군)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