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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을 무심히 보낼 수는 없다!
                  = 힘든 봄날을 보내는 레퀴엠 =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세월호가 침몰(4월 16일 오전)한지 벌써 수일이 지났다.
억울하게 희생된 사망자의 명복을 머리 숙여 빌고,
실낱같지만 아직도 희망을 품고 실종자의 귀환만을 바랄 뿐이다.
이렇게 상투적인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무기력과 참담함에 가슴이 저려온다.
 
  너무나 일찍 왔다던 올 봄은 이렇게 우리를 슬프게 해 놓고 간다.
무심하게 때 이르게 덥기까지 한 날씨가 한스럽기만 하다. 
  내 몸을 대신 주어도 아깝지 않을 생때 같은 자식을 여윈 부모의 심정을
어찌 당해보지 않고 알 수 있겠는가. 집안에 하나(많아야 둘) 밖에 없는 자식인데...

  그리고 수많은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들려온다. 만시지탄의 진한 아쉬움과 함께 말이다.
왜 이런 사고를 사전에 막지 못 했나, 구조는 왜 이렇게 늦었나. 예방은 고사하고 사후처리조차 제대로 못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분개와 회한이 들끓고 있다. 

  사고 직후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승객을 팽개친 채 배를 버린 선장과 선원들에게
돌을 던지지만, 과연 그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 사태가 얼마나 위중(危重)한지 모르는 고위공무원... 그러하니 기념사진 운운하는 얘기가 나오지. 사태의 위중함을 너무나 잘 아는 관료들, 그래서 위만 쳐다보고 복지안동(伏地眼動)하고 있었다. 또한 언제부터 그렇게 절차와 규범을 철저히 준수했는지, 그것만 따지는 공무원들....
  정부가 욕을 먹어도 싸지만, 시시콜콜 그리고 매사를 작심하고 물어뜯는 하이에나 같은 언론들... 더러 오보와 추측기사까지 곁들여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소위‘조선민중의 표현기관’이라는 D일보마저도 작전투입조차 되지 않고 조선소에서
성능 점검중인 군함(통영함)을 구조 활동에 출동시키지 않았다고 힐난하지 않았나.

  더욱 우리를 슬프고 화나게 하는 것은 이 사건과 관련한 괴담과 악담이 난무하는가 하면,
“때가 왔다!”는 듯 이 사건을 사회혼란 확산과 대정부 투쟁, 아니 체제전복에 까지 이용하려는
세력의 작태이다. “미군 잠수함과 충돌설”을 유포하고, 모든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망한 이들을 살려내지 못하면 퇴진하라”고 억지를 부리는 주체(主體)의 전사(戰士)들도 여럿이 있었다. 헌데 진정 민중을 위한다면, 신(神)의 영역에 있다는 “구름을 타고 다니신” 천출맹장(賤出盲腸)의 손자 돈엄(豚嚴)에게 실종자 구조와 사망자 환생이나 부탁해 보지, 왜 우리 정부를 탓하나.
  하기사 이런 일이 생겼는데, 북녘의 돈엄(豚嚴)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남녘의 자기네 전사들의 활약에 발맞추어 억지 선전질을 해 대고 있다. ‘악어의 눈물’ 까지 흘리면서... 더군다나 “핵이든 전선이든 4월 30일 이전에 큰 한방을 준비 중”이라며, 우리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협박하고 있단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의도 철새 떼(새무리·새연합)들은 이상할 정도로 잠잠하다.
하긴 괜히 떠들었다가는 국민들의 지탄을 받을 것이 뻔하니까 그런다지만 원래 아가리가 열려(口開) 있는데... 잠깐 잠깐 심심치 않게 새(鳥)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그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새떼들의 속사정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마음은 콩밭(선거판)에 가 있으니 어련 하겠나 만은 “세월호 침몰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표계산에만 들어간” 사실을 국민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 진정성을 바랐다면, 순간 실수한 것이 된다. 새(鳥)판은 역시 새(鳥)판이다. 벌써 “내각 총사퇴” 등 운운하며, 주먹질 해댈 기미가 여기저기 보인다. 

  이런 와중에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일과 또 다른 안타까움이 교차하고 있다.
여러 자원봉사자들의 조용한 활약, 민간 잠수부들의 분투, 그리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공무원과 해경·해군 요원들 등등... 낮은 곳에서 헌신하는 이들이야 말로 진정 이 나라를 받치는 기둥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증명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제자들의 희생을 막지 못하고 구조되어 엄청난 가책을 받고 자살하신 교감선생님(평소 많은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전한다),
구조를 위해 현장에 투입되었다 사망한 해군 병장도 잊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은 아까운 죽음을 막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집단적인 아노미 상태에 있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엄청난 희생을 치룬 어처구니없는(?) 사고 앞에서, 더구나 생때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여기저기 하이에나들이 물어뜯겠지만, 슬퍼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은가.
여행과 관광이 중단되면, 정말 어려워지는 이들은 관광버스 기사들과 안내원들이고, 관광업소 종업원들이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없어진다면, 누가 힘들겠는가. 이들은 희생자와 실종자의 가족과 같은 서민들이다. 

  물론 슬픔을 그냥 거두자는 게 아니라, 아픔·회한·참회·교훈은 가슴에 깊이 새기되,
냉정한 머리로 다시 정상의 일상에 복귀하자는 것이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쳐야 하고, 또 다른 소를 잃지 않도록 대비해야만 한다.
아마도 사망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뜻도 그러리라 믿고 싶다. 

  많은 국민들은 심적으로 무척이나 피곤하다. 생활이 팍팍한 서민들은 더욱 그렇다.
희생자에 대한 숙연한 마음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무한정 손을 놓는다면,
 ‘세월호’에 이어 우리 사회 전체가 침몰할 수 있다.

  특히 우리 군 장병들은 지난해 북녘의 어린 돈엄(豚嚴)이 지난해 3월 ‘정전협정 무효화’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이래 거의 휴식 없이 대비태세를 유지해 오고 있다. 인간의 긴장 지속성에는 한계가 있다. 최근의 “핵이든 전선이든 4월 30일 이전에 큰 한방을 준비 중”이라는 위협에는
우리 군의 피로감을 연장하려는 심리전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큰 거 한방’에 대비하고
응징할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적정한 휴식도 보장해야 한다.
 ‘생때 같은 자식’이 국가 안보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공동체의 안위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우선 철새 떼들은 그 못된 속성을 잠시 버리고, 진정한 새(新)정치를 생각해야 한다.
 구개이언님(口開異言님 : 아가리만 열면 딴소리하는 님)들은 국회의원(國會議員)이 되어
구개의사당(口開議死堂 : 아가리는 열렸는데 토의/논의는 죽은 곳)이 아닌 국회의사당(國會議事堂)을 제대로 빨리 열어라. 그리고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이제 슬퍼만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진심으로 빌어야 한다. 외양간을 고칠 일과 또 다른 소 잃지 않을 방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언론은 하이에나의 야성을 버리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괴롭고 피곤한 우리 이웃을 보듬으면서 민·군·관이 혼연일체가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상황을 정리하고 정상의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검·경찰은 사고의 진상을 조속히 밝히고 책임자를 강력히 처벌해야 하며,
이번 일을 계기로 공동체를 파괴하려 한 세력에 대해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정부는 개념 없는 공직자와 복지부동(伏地不動)·복지안동(伏地眼動)의 관료들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확실하게 내치고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사고가 수습되는 대로 희생자 위령탑(탑이 아니라도 상징물)은 필히 세워야 한다.
 그리고 매년 4월 16일 대통령과 장관들은 위령의 의식을 행해야 한다.
위령은 안타깝게 희생된 원혼을 달래는 의미와 함께, 살아 있는 자를 위한 일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현재와 미래는 없다.

  ‘세월호’가 세월처럼 무심히 흘러가서는 안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다시 힘차게 뛰어야 한다.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