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문술 최후의

    미래전략

  • ▲ 올 초 215억을 또 기부한 직후의 정문술 회장 ⓒ카이스트
    ▲ ▲ 올 초 215억을 또 기부한 직후의 정문술 회장 ⓒ카이스트


    카이스트를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정문술 회장이다.
    카이스트는 국가가 세운 대학이기는 하지만,
    정문술 회장 처럼 개인으로서 이 대학에 영향을 미친 인물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정문술 회장은 어떤 사람인지 하는 것이 관심사항으로 떠오른다.
    오늘날 정문술을 만든 것은 무엇일까?

    정문술은 2004년에 자서전을 냈다. 책 제목이 ‘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이다.
    3쪽짜리 서문에는 2가지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첫 번째는 어렸을 적 이야기이다. 동네 공터에서 뛰어 놀고 있는데 낯선 노인 한 분이
    어린 문술이를 불러 세우고 한참 동안 문술의 두 손을 꼭 붙잡고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허, 크게 될 놈일세.”

    정문술은 어떤 난관이 닥쳐도 그 노인의 말을 기억했다.
    크게 될 놈이라는 그 말을 마음속에 꼭꼭 숨겨놓고
    아무도 모르게 매일같이 끌어내서는 그 말을 외고 또 외웠다.

    그 한마디의 말이 그에게 미래지향성을 심어줬다고 정문술은 고백했다.
    구차하고 안타까운 과거와 현재는 털어버리고 오로지 다가올 날들만을 생각하면서
    그래 나는 결국 크게 될 놈이다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기업을 경영할 때의 일이었다.
    하루는 한 직원이 사장실을 들어왔다. 아들놈 숙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숙제는 아빠 회사의 사훈을 적어 오라는 것이었다.

    1990년대 초 미래산업에는 아직 사훈이 없었지만,
    정문술 사장은 순간적으로 준비된 대답을 내놓았다.

    “우리는 미래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상상하고 창조합니다.”

    여기까지 읽는 순간, 필자는 가슴에서 무엇인가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정문술이 어떤 인물인지를 쓰기 열흘 전 필자는 미래학 강의를 들었다.
    세계적인 미래학의 석학인 짐 데이터(Jim Dator)교수가 매년 3월말
    한국에 2주 동안 카이스트를 방문해서 미래학 강의를 연다.

    학생들이 주로 직장인이거나 전문직 혹은 공무원이다 보니 강의시간은 저녁에 몰려있다.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모두 7번에 걸쳐 21시간의 영어강의를 한다.

    이광형 교수로부터 이 같은 소식을 듣고 필자는 나도 청강하겠다고 졸라서 허락을 받았다.

    미래학이란 무엇일까? 하는 억누르기 어려운 호기심을 갖고 처음 강의실에 찾았을 때
    필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질문했다.

    “미래학에서 말하는 예측(forecast)과 예언(prophecy)은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인에게 예언이란 거역하기 힘든 신비한 세계의 하나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수많은 예언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또 수 천 년에 걸쳐 한 인물의 앞날이나 한 국가의 미래를 경고하는 예언이 널려 있다.

    그러므로 예언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대한민국의 기독교와
    그리고 수많은 교회에서는 넘치고도 넘친다.

    그러나 예언은 신비한 영역이 있는 만큼 엄청난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인간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상태에서 예언에 의지해서 좋은 예언을 받으면 좋게 풀리고,
    나쁜 예언을 받으면 나쁘게 풀린다는 일종의 무기력한 예정론에 빠질 위험이 매우 높다.

    만약 인간의 모든 앞날이 예언대로 움직인다면,
    인간은 굳이 땀 흘려 노력을 하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물론 성경에는 예언만 있지는 않다.
    인간의 타락과 실패와 좌절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발생했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도덕적 원리를 이야기한 부분이 훨씬 더 많다.

    기독교 인이 아니라고 해도 대한민국 사람들의 유전자에는
    ‘정해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이유 없는 끌림이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숨겨진 동경과 끌림이 마치 자기 운명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부모님이 남긴 떼돈같이 생각하는 투기심리 마저 없지 않다.

    그래서 기독교인이든 기독교 인이 아니든 간에 이 노다지 같은 금덩어리를 찾기 위해 
    점집을 드나들거나 역술가를 찾거나 타로 상점을 기웃거리거나
    신문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오늘의 운세에 슬쩍 슬쩍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점집을 찾지는 않는다고 해도 아주 많은 기독교인 조차 성경에 기록된 예언을 예로 들면서
    자기 인생이 어떤 예언의 길을 따라 전개될 것인지 궁금증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과연 내 인생이 어디까지가 예정된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나의 영역인지
    골머리를 싸매면서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생을 돌고 돌아도 결말이 나지 않는다.

    이 호기심을 억누르기 힘든 사람에게 미래학이란 바로
    [서양학문]이란 옷을 입은 예언 또는 학술의 형태를 취한 점(占)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이다.

    미래학은 미래를 예언하지 않는다

    데이터 교수의 강의로 돌아가자면, 미래학에서는 미래를 절대 예언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미래를 예언할 수 없다고 딱 자른다.
    데이터 교수의 강의 중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은 “미래학은 미래를 연구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미래학은 무엇을 연구하는가?
    미래학은 미래의 이미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미래의 이미지라는 것은 매우 광범위한 표현이다.
    잡지를 1쪽부터 마지막 쪽 까지 훑어보듯이 파라락 하고 넘겼을 때
    스쳐 지나가는 여러 가지 사진과 제목과 같은 다양한 이미지들이 그런 이미지에 해당한다.
    웹 서핑을 할 때 나타나는 수많은 이미지들도 대상이다. 

    모든 분야의 학문에서 다루는 모든 주제가 다 미래학을 하는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내용들이다.
    미래학이 다뤄야 할 주제와 분야가 너무나 많고 다양할 뿐 더러 한도 끝도 없다.
    앞으로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것은 수 백만 가지 또는 수십 억 가지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학자들은 대체로 4가지의 공통적인 미래의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 첫 번째 미래는 현재와 같은 형태로 계속 발전한다고 본다.(Grow)



  • 두 번째 미래는 현재와 같은 형태가 무너지는 붕괴과정을 겪는다고 본다. (Collapse)


  • 세 번째 미래는 붕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고난의 과정을 겪는다고 본다. (Discipline)




  • 네 번째 미래는 붕괴를 넘기 위해 변신을 거쳐 전혀 다른 단계로 도약한다고 본다.(transform)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붕괴라고 해서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래학자들은 붕괴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파괴를 좋아하고 변화를 즐기듯이 미래학은 붕괴의 긍정적인 면을 더 본다.
    왜냐하면 붕괴 후에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붕괴는 시작이다.

    미래의 4가지 모습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비유할 수 있다.
    어느 중년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배가 불러서 크게 걱정이 돼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아주 건강하네요.

    이 부인은 뭔가 찜찜해서 다른 의사를 찾아갔다. 그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안됐습니다. 암이 있네요. 담배도 많이 피우고 술도 많이 마시니 암에 걸릴 만 하지요?

    부인은 낙담이 됐지만, 두 의사의 의견이 다른 것을 보고 또 새 의사를 찾아갔다.
    세 번째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암이 있네요. 그렇지만 염려 마세요. 제가 확실히 고쳐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전부일까 싶었다. 부인은 다시 새 의사를 찾아갔다.
    네 번째 의사는 전혀 딴 소리를 했다. “축하합니다. 임신했습니다.!”

    첫 번째 의사의 이름은 Grow이다.
    두 번째 의사 이름은 Collapse이고,
    세 번째 의사는 물론 Discipline이다.
    그렇다면 네 번째 의사의 이름은? Transform이다.

    그러므로 현대 미래학은 인간이 미래를 건설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주목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 부분이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창의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미래학의 논리를 충분히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활용해서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고
    세계의 미래와 인류의 미래를 또한 인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인간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인류역사가 붕괴나 파멸로 갈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이같이 진취적인 미래관을 가진 사람에게 미래는 밝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온갖 핑계와 변명 꺼리를 내세워서
    안 되는 이유를 수 십 가지 만들어내고 찾아내는 사람이나 민족이나 회사에서는
    그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거나 퇴행적이 될 것이다.

    정문술 회장이 자기 자서전의 서문에서 즉석으로 만든 사훈은
    미래학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정확하게 핵심을 집어낸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상상하고 창조합니다.”

    정문술 회장이 말했던 것 같이 상상하고 창조하는 미래는
    바로 인간이 자기 의지와 노력과 열정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현실이 된다.

    물론 그 앞에 정문술 회장이 회상한 에피소드는 약간 성격이 다르면서도 공통점이 있다.
    어렸을 적에 낯선 할아버지가 자신의 손을 붙잡고
    “허, 크게 될 놈일세.”라고 했다는 말에 힌트가 숨겨져 있다.

    그 할아버지가 정문술을 붙잡고 한 말은 예언일까,
    아니면 상상하고 창조하는 미래의 이미지를 보여준 것일까?

    얼핏 생각하면 크게 될 놈이라는 말이 예언같이 보일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한국사람이라면 그 표현이 예언이었다고,
    신령한 도인의 예언이었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어쨌거나 정문술 회장이 밝힌 자서전 서문의 두가지 에피소드는
    미래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두 개의 키워드를
    자신도 모르게 적절하게 내놓았다.

    그가 사업체 이름을 [미래산업]이라고 짓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면서 내놓은
    첫 번째 카이스트 기금으로는 미래지향적인 융합학과인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세우고,
    두 번째 기금으로는 [미래전략대학원]을 설립한 것은
    그의 인생이 너무나 일관성 있게 진행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죽음 앞에서 얻은 교훈


    물론 그것이 다가 아니다.
    정문술 회장이 개인으로서는 최초로 거금을 대학에 기부하는 선례를 남겼을 때
    많은 사람들은 과연 정문술이라는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카이스트에서 인간 정문술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시 교육감을 맡고 있는 문용린 박사 등이 
    정문술을 교육학적으로 분석한  ‘그러나 그의 삶은 따뜻했다’가 그 책이다.
    ‘정문술의 다중지능분석 보고서’라는 부제에서 보여주듯이 ‘다중지능’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한 것이다.

    정문술 회장이 쓴 자서전을 보면 그의 근본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문술은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강진면은 빨치산 남부군 사령부가 처음 자리잡은 회문산과 가깝다.

    정문술은 국군이 빨치산 남부군 사령부를 토벌하는 장면을 직접 봤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빨치산이 파상공격을 벌여 들어오면 주변 지역은 빨치산 해방구로 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금융조합을 비롯해서 정문술의 집이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정문술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국군과 빨치산이 하루가 멀다 하고 동네 주도권을 잡는 장면을 보면서
    어린 정문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주변 집이 하루아침에 시커먼 잿더미로 변하는 사건을 보면서
    초등학생은 어떤 충격을 받았을까?


  • ‘그러나 그의 삶은 따뜻했다’는 제목으로 나온 정문술 분석 보고서(문용린, 이광형, 안태진 지음)를 보면 이 시기에 어린 정문술은 바로 옆집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 장면도 목격해야 했다.
    매일 밤 갖은 고문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신음소리도 들어야 했다.

    초등학생 시절의 경험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뿐 더러 의외로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사건은 그에게 '정치적 세력의 어느 편도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줬을 것이다. 
    어느 한 편에 서면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극심한 고통을 가져오는 고문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생한 체험을 하게 했다.

    낮에는 국군이 들어왔다가 밤에는 빨치산이 지배하는
    그런 험악한 공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는 어느 한 편에라도 속하지 말아야 하고,
    두 번째로 자기가 아무런 흠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이 교훈은 그가 후에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으로 잡은 중앙정보부에서
    오랫동안 실력을 인정받으며 18년 동안 근무하는 밑바탕이 된다.
    당시 상당한 권력기관인 중앙정보부에서 정문술은 3가지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다.
    사병출신, 지방대 출신에 전라도 출신이었다.
    이런 것들은 육사출신들이 지배하던 박정희 시절의 큰 약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핵심부서에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일을 잘 했을 뿐 아니라, 불편부당하게 처리하고 일체의 사적 관계를 배격한 상태에서
    청탁과 전혀 관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전화를 받지 않기 위해 아내와 등산을 떠났고, 일부러 골프는 배우지 않았다.

    도덕적으로 보면 매우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사업적으로 보면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문술 회장이 사업을 벌이면서 어떤 권력자나 정치세력에게도 손을 대지 않았다.
    어렸을 적 기억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는 대목이다.
    선악과 피아를 구분하기 어려웠던 초등학생이 보기에 어느 날은 국군이 동네를 장악하고,
    어느 날은 빨치산이 총을 메고 설치면서 마을 주도권을 장악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편에 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과 손을 잡지 않겠다는 신념은 필사적이라고 할 만큼 절대적이었다.
    정회장에게는 최근까지도 정치권의 유혹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 근무 시절에는 업무 특성상 그렇다 치더라도,
    회사를 운영할 때는 이러저러한 일로 정치인들과 사귀게 된다.
    그러나 절대로 어느 선 이상으로 가까이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한때는 장관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었다.
    그 기사가 나오자 연락하지 않던 옛날 친구들이 전화하기 시작했다.
    서둘러 연락을 끊고 해외 여행을 떠나 버렸다.

    어느 정치인은 후원회장을 맡아달라고 삼고초려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원칙을 깨지 않았다.
    어느 서울시장은 당선되자 마자 자문위원으로 도와달라고 했다.
    이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안철수 의원하고 친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안철수씨가 정치인이 된 후에 서로 연락해 본 적이 없다.

    정 회장도 마음 속으로 더욱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후원금을 보낸다든지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정문술이 학창시절이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자기 상급자에게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동료 등을 규합해서 일을 꾸미기를 좋아하는 성격인 것으로 볼 때 이는 다소 의외이다. 사람을 멀리하거나 낯을 가리거나 주변 사람과 대인관계에서 충돌을 빚을 만큼 모난 성격은 아니었다.

    그가 어린 시절, 빨치산과 국군 사이의 전투장면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자기 눈앞에서 이웃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밤 새 고문을 당해 신음하는 그 잔혹한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그는 누구보다 원만한 대인관계로 폭넓게 교제하면서 인간관계를 넓혀갔을 것이다.

    어느 편에 속하지 않은 것은 좋은 처세술인지는 모르지만,
    거기에는 한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가치판단이 빠진 것이다.

    어린 나이에 국군과 빨치산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어느 군대가 대한민국과 인류를 위해 더 필요한 세력인지를 초등학생은 판단할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정문술 회장이 정치권과 손을 잡지 않거나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권 또는 정치적인 인사들과 손을 잡기도 하고 손을 끊기도 하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고도의 판단력과 결단력을 가져야 발휘할 수 있는 처세술이다.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상태에서 이렇게 처신한다면
    상대방의 페이스에 말려 잘 못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정문술 회장으로서는 그러므로 이들과 일체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 최선의 처세술이었다.
    정치인과 관계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만은 없듯이,
    정치인과 전혀 관계하지 않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업이라는 것이 외형을 키우고 많은 종업원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국가 경제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다라면 정문술 회장은 분명히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문술 회장은 다른 길로 갔다.
    자기 표현대로 하자면 낭만적인 길, 기술개발의 길,
    탁하고 풍성하기 보다는 깨끗하고 소박한 그런 길을 선택했다.

    어린 시절 군사대결의 장면은 그에게 사업가로서는 다소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약점과 상처를 남겨놓았다. 정문술 회장은 자신이 가진 상처와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자기 안에 상처를 가진 조개는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한다.
    그런 고통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진주이다.

    정문술 회장 역시 어렸을 적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일생을 노력하다 보니
    진주같이 영롱한 열매를 얻었다.
    경제적으로 풍성한 양을 선택하기 보다,
    깨끗하기 이를 데 없이 투명하고 원칙에 입각한 질적으로 우수한 경영의 길로 나갔다.

    바로 이 점이 정문술 회장이 번 수 백 억 원의 돈이
    그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기업을 이뤄서 모은 수 천 억, 수 조 원 보다 더 무게가 나간다.

    또 죽음 앞에서 얻은 최후 전략

    정문술은 나중에 성인이 돼서도 비슷한 규모와 강도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는 경험을 한다.
    사업이 잇따라 실패하고 기술개발이 벽에 부딪히면서 여러 번 죽음을 생각했던 내용이
    ‘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과 ‘그러나 그의 삶은 따뜻했다’에 나타난다.

    1983년에 미래산업을 창업한 후에 계속 실패하며 빚에 쫓기자 죽는 수 밖에 없어 보였다.

    강원도 어디쯤에서 승용차를 타고 가던 일가족이
    벼랑에서 떨어져 익사했다는 뉴스보도가 있었다.
    내게는 소형 승용차 한 대가 있었다.
    식구는 많고 차는 작아서 문제가 좀 되겠지만
    한 가족이 자살을 하기에는 그 방법이 가장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내를 불러 앉히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죽읍시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이 없구려.”
    말없이 눈물을 흘리던 아내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동반자살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한 달 동안 수면제를 한 병 가까이 사 모으고
    소주를 사 들고 산에 올라갔다가 실컷 울고 내려오기도 했다.
    청평호수를 자동차로 돌면서 어떻게 추락하면 실패없이 완전하게
    온 가족이 빠져 버릴 수 있을까도 연구했다.

    바로 그 시점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을 때  정문술은 종교에 입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여고 2년생인 둘째 딸이 권유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정문술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압구정동에 어느 목사님이 설교 잘 한다고 그러는데 한번 가 보세요.”
    설교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그때 목사님의 설교제목이 ‘욥의 고난’에 관한 것이었는데
    내 귀에 쏙 들어옵디다. 욥이 사탄과 하느님 사이의 게임 대상이 되거든요.
    욥은 자기가 직면하고 있는 고난은 죄 때문에 주는 징벌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주는 은사라고 받아들입니다.
    ‘고난이 은사다’, 이게 딱 들어왔어요.
    그래서 교회를 다니고 심취하는거 아닙니까.
    사실 교회 다니는 것이 내 삶도 그렇지만 내 기업경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진리에 따라서 결정을 많이 내립니다.

    종교에 입문한 다음 정문술은 경영에 이 원리를 적극 도입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만약 예수같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곤 했다.
    진리에 대입하는 성격이 생겼다. 이렇게 내린 결정이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가져온 경우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항상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고 정문술은 회상했다..

    정문술은 1999년 이장우 교수와의 대담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업 성장의 과정속에서도 자만의 결과로 지옥같은 고비를 겪거나 아찔했던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자만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데는 신앙의 힘이 컸습니다.
    매일 나는 겸손, 정직, 사랑을 제목으로 기도합니다.

    정문술은 지금도 가끔 "전략이 진리를 이기지 못한다"고 말한다.

    " 전략만으로 일을 하면 초기에는 이것이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결국 진리가 이긴다.
    진리가 불리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결국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의 눈에는 진리가 보이기 시작하여, 진리가 이긴다."

    필자가 보기에 죽음을 목격하거나 죽음 앞에 선 이 두 사건이
    정문술을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체험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6.25 전쟁 와중에서 목격했던 죽음과 고문의 고통스런 흔적은
    그로 하여금 투명하고 깨끗하고 공정한 대인관계를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오직 기댈 곳은 "진리"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그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강하게 그를 자극했다.

    “허, 크게 될 놈일세.”

    어렸을 때 길가던 낯선 노인이 던진 말이다. 그 말은 그의 인생에서 초강력 자석이 되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은 건냈다.

    "나는 크게 될 놈이다. 나는 뭔가 다르다. 일이 잘 될 거야."

    그리고 주요한 결정을 할 때에도 이 말이 튀어 나왔다.

    "나는 뭔가 다르게 해야 해."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가족경영으로 운영하여도, 정문술은 이를 거부하였다.
    심지어 회사를 은퇴할 때까지 아내나 자식들에게 회사를 구경시켜준 적이 없다고 하면
    정말 곧이 들릴까? 보면 욕심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사회에 기부할 때도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교나 고향에 기부하는 경우를 본다.
    그에게도 이러한 유혹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본능을 거부했다.
    전혀 연관이 없는 카이스트를 선택했다.

    사업의 실패앞에서 죽으려고 했던 그 처절한 패배와 실패의 경험은
    한 번 더 그의 인생을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하는 촉매역할을 했다.

    정치인과 멀리하거나, 진실를 추구하거나, 남과 다른 거꾸로 결정을 즐기던 것 보다,
    더 정문술의 깊은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자녀에게 사업체를 물려주지 않는데 있다.

    그는 2001년 은퇴 선언을 위한 시무식을 앞두고 점심시간에 두 아들을 음식점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이렇게 통고했다.

    “이제 물러날 생각이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나는 너희들에게 회사를 잘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래산업은 아쉽게도 내 것이 아니다. 사사로이 물려줄 수가 없구나.
    애비가 너희를 위해 내놓은 게 너무 없구나. 미안하다.”
    이런 말을 듣고 두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결정 잘하셨습니다.”
    “아버님 훌륭하십니다. 아버님께서는 저희에게 정신적인 유산을 남겨주셨습니다.
    저희는 언제까지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할 겁니다.”

    인간에게 부모 자식 관계만큼 그 마음을 애잔하게 묶는 대상은 결단코 없다.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석가는 부모자식의 인연을 끊는 수도를 통해서 불교를 창시했다.
    기독교에서는 이보다 더 처절하다.
    성경을 통 털어서 2개의 산 이야기만큼 심금을 울리는 내용도 없을 것이다.
    한 산의 이름은 모리아 산이고, 다른 산의 이름은 갈보리 산이다.

    모리아 산은 인간이 하나님에게 자신의 최고의 사랑을 표현한 장소이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평가를 받는 아브라함은 수십 년 동안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살아왔다.
    그의 인생의 막바지에서 아브라함은 그를 인도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점점 더 마음 깊숙이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됐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가장 좋을 때,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사랑으로 가득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했다.

    '너는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
    내가 지시하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제물로 바쳐라'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인생 최후의 시험지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때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4000년 전 이야기이다.
    이 당시 여러 종교들은 자기 자식을 죽여 우상에게 바치는 의식이 퍼져 있던 때이다.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죽여 바치는 그런 제물을 요구하는 신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도 네 아들을 바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그 아들은 외아들이었다. 단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그것도 아브라함이 아주 나이 들어 낳은 귀하고 귀한 아들이었다. 아들을 바치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브라함은 이 일을 진행한다.
    그것도 아주 은밀하게 진행했다. 아내에게는 비밀로 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집에서 모리아 산으로 향했다. 모리아 산까지 가는 데는 3일이 걸렸다.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과 함께 3일 동안 가면서 아들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문술 회장에게 아마도 기업을 사회에 환원하려고 했을 때
    가장 크게 마음속에서 저항을 일으키는 부분은 자녀였을 것이다.
    어느 부모가 피땀 흘려 일군 자신의 성취물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인간의 마음이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미덕이다.
    더구나 정문술 회장 같이 깨끗하게 기술력 가지고 기업을 이룬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 이렇게 이야기했을 때 두 아들의 반응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다. 
    아버지나 아들은 어느 누구도 핑계 꺼리를 만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 사업을 물려줄 수 없다고 말했을 때
    두 아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답변했다고 해보자.

    “아버님,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런데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떠하신지요?”

    적극적인 반대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답변이 나오면 아버지 마음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그래, 더 좋은 방법이 있을지 몰라, 우리 아들이 저 종업원들보다 더 회사를 잘 경영하고 더 크게 키울 수도 있는 거 아냐?’
    정문술 회장이 흐트러짐 없이 인생을 살아온 만큼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아들들 역시 반듯하게 자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기에 2세 경영인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 그들에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들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권유했을 때 정문술은 그래, 더 생각해보자라고 발을 뺄 수도 있다. 일단 그렇게 망설이는 수순으로 돌입하면 시간은 흐르고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은 보통 사람의 정서가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에도 몇 번씩 과연 내가 사회에 전 재산을 환원하는 것이 잘 하는지 아닌지 수 없이 내면에서는 고민하는 마당에 아들의 권유는 너무나 달콤한 핑계 꺼리가 될 것이다.
    슬그머니 원래 생각을 철회했다고 해서 크게 비난할 사람도 없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단 한마디 토를 달지 않았고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다.
    이 모습이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을 떠 올리게 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아 죽여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 이삭의 나이는 혈기왕성한 청소년이었다.
    아브라함은 이미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기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고 밧줄로 결박할 때
    이삭은 얼마든지 저항해서 도망갈 수 있었다.
    아버지가 노망이 드셨나 보다, 생각했다면 노망든 아버지의 망령된 행동을 막아주는 것이 아들 된 도리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삭은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밧줄로 묶을 때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았다.

    이삭을 밧줄로 묶어 눕힌 뒤 아브라함은 칼을 들었다.
    그리고 자기 외아들을 향해 칼을 내리 꽂았다.
    실제로 칼이 이삭에게 꽂히지는 않았지만,
    아브라함의 행동은 자기 아들을 칼로 찔러 죽이려고 했음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죽이려고 칼을 내리꽂으려 할 때
    이 모습을 보던 신이 하늘에서 급히 천사를 보내 이를 말렸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때서야 아브라함은 칼을 멈추고 부근에 숨어있던 숫양을 잡아
    제물로 바쳤다는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 미래'라는 제단에 바치다


    이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려고 흉내만 낸 것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칼을 들어 자기 아들을 찔렀다.
    비록 천사가 말려서 막았지만, 그 마음을 보면 실제로 아브라함은 아들을 죽인 것이고,
    아들은 순순히 아버지의 칼을 받은 것이다.

    정문술이 자기 재산을 기부하는 행동에서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의 모습이 보인다.
    정문술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재산을 넘겨주지 않으려고 했고,
    사랑하는 두 아들은 그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자기 외아들 이삭을 ‘인류의 구원’이라는 제단에 바쳤다.
    정문술은 자기 인생을 ‘대한민국의 미래먹거리’라는 제단에 바쳤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신에게 바친 뒤에 비로서 그는 모든 인류의 믿음의 조상이 됐다.
    그리고 그의 민족은 영원히 대대손손 영원히 사는 길고 들어섰다.
     

  • 카이스트 미래전략 대학원 수강생과 교수진 ⓒ 카이스트
    ▲ 카이스트 미래전략 대학원 수강생과 교수진 ⓒ 카이스트


    정문술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혈육의 정을 극복함으로써 더 높은 차원의 평화를 얻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던 그의 마음이 안정을 찾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업인으로서 또는 한 인간으로써 가장 고귀한 성취를 얻었다.

    그는 지금도 가끔 말한다.

    "나는 가장 행복한 기업인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기업인들을 보면 한 번 쯤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감옥에 가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기업을 오래하다 보면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일에 얽히게 마련입니다.
    대한민국의 기업 환경이 혼자서 고고하게 한다고 하여 되지 않아요.
    사업을 키우고 운영하려면 뭔가 석연치 않는 것과 연루되는 일이
    한 두 번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일을 경험하지 않고 은퇴했어요.

    또한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려 했다면,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일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부터 해방되었어요.
    어쩌면 가장 명예롭게 은퇴하는 기업인으로 기록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바로 이러한 행운을 가지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