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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조씩 늘리지만 "과학기술 정책 실패하고 있다"

[이광형 교수 인터뷰] 지금 가진 것을 버려야 인류를 위한 새 것이 나온다

입력 2014-05-16 13:41 | 수정 2014-05-19 08:54

삼성 핸드폰, 현대 자동차 [과학기술 교육]에 나서야



▲ ▲ 투피스 캔 개발과정을 설명하는 이광형 교수ⓒ뉴데일리

 
“10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던 것을 버리고 싶다.”
"과학기술 정책은 실패하고 있다. 매년 1조씩 예산 늘렸는데 무슨 성과가 나왔는가?"
"우수 인재를 이공계로 끌어오려면 매년 1,000억을 써야 한다."
"삼성 핸드폰, 현대 자동차를 이용한 새로운 과학기술 교육이 필요하다."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원장인 이광형 교수(60)가 폭탄선언을 했다. 거침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하던 연구를 모두 지워버릴 만큼 획기적인 새로운 도전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

정부에 대해서는 매년 연구개발예산을 1조씩 늘리는데 나온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통탄했다. 이공계에 진짜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야구선수를 스카우트 하듯이 매년 1,000억원의 [우수인재 유치비용]을 10년쯤 사용하라고 제안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는 초중고교에서의 과학기술 교육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RSP(Reverse Science from Product) 교육의 참여를 제안했다. 삼성 핸드폰을 가지고는 [핸드폰에 숨은 과학]을 가르치고 현대자동차를 놓고는 [자동차에 숨은 과학]을 가르치자는 야심찬 제안이다. 학교와 기업이 조금만 손을 내밀고 협력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카이스트 석좌교수인 이 교수는 교수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은 나름대로 많이 성취했다. 석좌교수도 올랐고, 515억원의 기금도 유치했다. 그가 키운 제자들은 우리나라의 주요 전산관련 기업의 창업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금까지 하던 것을 다 버린다. 지금까지 하던 것에서는 방법론만 취한다. 그 방법론을 가지고 무엇을 연구할 것인지는 새로 정하는 것이다. 새로 정하는데 무엇을 정하느냐 하면 지금까지 내가 하던 것에서 무엇을 붙여서 개선하겠다고 해서는 안되고, 기존 것을 잊어버린 다음에 눈을 감고 생각해서 인간이 궁극적을 원하는 것, 그리고 인류가 지구에서 살 때 무슨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그런 궁극적인 인간의 문제를 찾아서 그 길을 찾는 것으로 연구방향을 잡겠다.

“지금 하던 것에서 덧붙여 조금 고쳐서 연구하는 것은
혁신적인 것도 유명한 연구도 안 될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대학교 때 산업공학 공부하고 유학 가서 컴퓨터 공부하고,
그리고 컴퓨터 교수를 20년 하고 바이오뇌공학교수를 10년 했는데,
내가 했던 일을 보면 우연한 기회에 지도교수가 안내하는 것으로 논문주제를 잡았는데,
돌이켜보면 일생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인류의 문제를 붙잡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

 

인류의 문제를 붙잡고 10년을 파라



이광형 교수가 박사과정에서  전공한 것이 인공지능 방법중의 하나이다. 이 주제는 그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강제적으로 주제를 정하지 않았으며, 꼭 그가 하고 싶은 주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지도교수가 추천한 것을 붙잡았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그를 붙잡고 있다.
혁신적으로 인류에게 공헌하는 그런 연구는 하지 못했다.

이 교수는 지금 다시금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만약 내게 다시 10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대단히 혁신적으로 인류에 공헌하는 그런 연구를 하고 싶다.”

과연 그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까?
그렇다면 그런 주제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봐야 한다. 지금 인류에게 중요한 핫이슈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그것을 참조하되 그 핫이슈를 따라가면 안 된다. 그것을 반전시킬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없는가를 봐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신진 젊은 교수들은 아마 이런 반론을 던질 것이다. “다 승진도 하고 석좌교수도 되고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같이 급한 사람은 그럴 경황이 없습니다.”

아마도 좋은 논문을 몇 개 쓰고 그래야 종신교수직도 얻고 학교에서 짤리지도 않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가 월급을 받으면 가정 경제를 꾸려갈 때도 생활비 이외에 미래를 위해서 일부는 적금을 들고 투자를 한다.

연구를 하면서 급한 논문도 쓰지만, 어느 한쪽 구석에서는 10년을 대비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수입으로 들어오는 돈 다 써버리는 집안하고 적금 드는 집안은 10년 후가 다르다.

대체로 전공이라면 박사학위논문 내용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박사 연구의 세부 주제는 대부분 본인이 정하기 보다, 지도교수 영향으로 정한다. 그 것이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당시 연구실 상황을 봐서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3-4년 연구하고 나서, 박사 학위를 받으면, 그것이 그 사람의 평생 전공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고,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이 정말로 원해서 정한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연구주제가 본인이 진정으로 원해서 정한 것이 아니라면,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새로운 것 하고 싶다 할 때 쉽게 바꿀 수 있는가? 당연히 할 수 있다. 전공을 정해준 박사 학위 연구는 대체로 3년이다.

그러면 3년을 새로 투자하면 바꿀 수 있다. 한 번 박사학위 연구를 해 본 사람은 경험이 많아서 바꾸는 게 더욱 쉽다. 시도하지 않아서 안 되는 것이지, 시도만 하면 당연히 된다.

그러므로 석박사 과정 때 지도교수가 준 주제를 잡고 연구해 온 사람은 과감하게 버리고, 자기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가 연구 주제를 잡았어도, 혁신적인 것이 나올 가능성이 없다든지, 또는 이미 연구하는 사람이 많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어떤 연구든지 한 번 잡으면 10년은 해야 뭐가 나온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부지런해도 대략 일생에 세 가지 연구주제밖에  가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큰 것을 원하면 하던 것을 잊어라

몇년전에 KAIST 과학영재교육연구원에서 조사를 했다. 우리나라에서 큰 업적을 낸 국가과학자 10여명과 인터뷰를 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 주제는 어떻게 정했는지 물었다. 대부분이 박사학위 후에 새로이 연구주제를 정했다고 답 했다. 박사 과정에서 하던 일은 이미 다른 사람이 많이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오래된 문제이고, 경쟁이 치열하고, 연구 결과가 잘 나오지 않는 곳이다.

쉽게 말해서 기존의 문제는 금광에서 터널을 이미 깊이 파 들어간 상태와 유사하다. 그 곳에 가면 사람들이 많고 바글바글하다. 나도 여기 참여하면 뭔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위안이 된다. 그러나 그곳이야 말로 별 볼일 없는 곳이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좋은 것은 것은 다 파내어 버려서 나올 것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아예 새로운 터널을 파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연구 주제를 잡는 것이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에 가면 외롭고 불안하다. 혹시 내가 길을 잘 못 들어서 헤매고 있는가 걱정이 된다. 소위 SCI라는 연구 인용지수도 높지 않다. 이런 분야에 연구 논문을 출판해도 읽는 사람이 적어서 인용지수가 올라가지 않는다. 개척자는 언제나 외롭고 불안하다. 당연히 대박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3∼14절)

연구할 때도 위의 귀절이 딱 맞아떨어진다.
그러면 연구 분야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사람이 길을 갈 때 한 발씩 앞으로 간다. 두 발로 깡총깡총 뛰지 않는다. 연구에서도 한 발씩 바꿔간다. 한 발을 앞으로 내 밀어 보고, 좋다 싶으면 나머지 발을 이동시킨다. 두 발을 동시에 이동시키면, 갑자기 변해서 부작용이 생긴다. 현재 하던 연구를 중단하면, 몇 년간 논문이 나오지 않는다.

이교수는 개인적으로 연구방향을 크게 두 번 바꿨지만, 지금 앞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큰 계획을 가지고 바꾼 것이 아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하겠다는 필요성과 시대적인 요구 때문에 컴퓨터에서 바이오정보로 바꾸었고, 다시 바이오정보에서 미래전략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고 있다.

바이오정보로 바꾸게 된 계기는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설립하게 되면서 일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잡은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바이오 융합분야를 개척하겠다는 생각에서 했다.

그 다음에 미래예측 연구를 하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 미래전략 연구를 개척해야 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바이오 분야와 미래전략 분야를 필요로 한다고 해서 바꾼 것이지만, 이것을 통해서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상황은 못 된다.

돌이켜 보면 박사학위 받고 신임 교수된 사람은 기존의 하던 것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 해야 한다.카이스트 같은 경우 이런 문제는 비교적 관대하다. 다른 대학은 새 교수가 오면 매년 논문을 써야 하든지, 실적을 보여야 재계약을 해준다. 3년 안에 SCI 논문 몇 개 그런 식으로 교수들을 독려해왔다.

카이스트도 한 때는 그런 식으로 했는데 몇 년 전부터 바뀌어서, 부임해서 초기 7년 동안 매년 성과를 내라는 그런 조항은 없어졌다. 그래야지 좀 더 중요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카이스트에서는 영년직교수(테뉴어)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을 부임한 지 8년째 되는 해에 결정한다. 카이스트는 이 시간이 될 때 까지 중간에는 문제삼지 않고 7년째에 본다. 예를 들어 3년 계약 받아서 3년 근무했는데 3년 동안 SCI 논문 출판이 없어도 연구가 잘 되고 있다는 학과장의 평가에 의해 재계약이 가능하게 바뀌었다.
물론 그렇게 하면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마이너스 요인이 있을 수 있으나, 그 보다 젊은 사람에게 큰 것을 기대하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잘 못 가고 있는 국가과학기술정책


인터뷰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책의 효율성에 대해 이르자 이 교수는 근래에 들어와서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이 잘 못 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가 최근 15년동안 연구개발비가 1조씩 늘고 있어요. IMF 때인 1998년 연구비가 5조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17조 수준입니다. 정부가 어려운 살림에서 계속 연구개발비를 매년 증액해 온 것이죠.

그런데 최근 10년 사이에 혁신적인 기술이 나왔느냐? 그 씨앗이라도 뿌렸느냐? 저는 아니라고 봐요. 논문은 많이 나왔죠. 논문 개수 따지다 보니 숫자는 늘었는데 실제로 산업이나 국가에 도움 주는 것은 줄었어요.”


요즘 한국은 SCI라는 숫자에 중독되어 나라가 멍들고 있다. 이것은 연구 논문이 인용되는 숫자를 기록하는 지수인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모든 것 보다 중요하게 인정되어,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이 지수를 올리기 위하여 매달리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연구자들도 이것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중요시 하지 않는다. 유달리 한국만 이것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폐단이 크다.

특히 공과대학에서 실용적인 연구를 하면. 인용지수가 적게 나오고, 이론을 하면 높게 나온다. 이론은 참고하는 학자들이 많아서 인용 횟수가 많아진다. 그러나 구체적인 응용제품을 만들면, 그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분야에 학자들이 적어서, 그 논문을 인용하는 횟수가 적다.

또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면, 그 분야 연구자들이 적어서, 인용하는 사람이 없다. 인용지수가 낮으면 나쁜 연구처럼 대우하는 현 제도가 문제다. 

이 교수는 국가과학기술 정책이 10년 사이에 크게 실패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10여년간 정부는 연구비를 매년 1조씩 증가시켜서 금년에 약 17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대단한 액수다. 이 덕분에 연구 논문 개수가 많이 증가했다.

그러나 국민을 먹여 살릴 기술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계속되고 있다. 과연 기술 투자를 잘 하고 있는 것인가? 아미 획기적인 변화 없이, 이런 방식으로 투자하고 연구자들을 평가하면, 10년 후에도 똑 같은 한탄을 하고 있을 것이다. 15년 전부터 이공계 기피현상이 생겼는데, 지금도 그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국가가 매년 1조씩 늘려가면서 투자하는데 그 현상을 못 고쳤다.

그러면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 이것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내지 않으면 5년 뒤 10년 뒤 똑 같은 이야기할 것이다.

물론 현재 이공계를 졸업해야 취업이 잘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회사들이 국제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품의 본질에 충실해야만 하는 사대가 되었다. 국내에서만 제품을 파는 회사는 제품의 품질보다 국내에서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다. 영업하기 위하여 술도 먹어야 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위하여 로비도 해야 했다.

그러나 외국에서 경쟁하는 회사는 오직 품질로 경쟁하기 때문에, 제품의 본질을 잘 아는 사람을 우대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기술을 아는 사람이 승진을 잘 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 기업이 국제화 될수록 이러한 현상을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이공계 출신들이 회사에서 우대 받게 될 것이다.

이공계 기피의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아주 우수한 최고 인재가 이공계로 오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축구 선수가 많아야 월드컵에서 잘하는 것이 아니라, 딱 30명의 잘하는 선수만 있으면 월드컵 같은 좋은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금 주요기업의 CEO들이 이공계출신이라고 하지만, 이들은 20~30년전에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한 사람들이다. 오늘날의 번영은 이 사람들이 이공계로 진출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이것이 유지되려면 계속 우수한 인재가 이공계로 진출해야 한다.

이공계 인력의 질적 저하는 대덕연구단지를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대덕연구단지에 지원하는 신입연구원들의 학력이 예전과는 매우 다르다. 연구소들이 과거에 CDMA같은 좋은 기술을 개발하던 우수 인재들을 확보할 매력을 잃어버렸다. 국가 성장 엔진이 될 핵심 기술을 개발할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을 타개할 혁신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정책이 헛 돈을 쓰는 측면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매년 증액되는 1조의 10% 라도 이공계 우수인력 유치에 쓰면 효과가 날 것이다. 그렇다면 1000억원으로 어떻게 우수한 인재를 유치할 것인가?

"답은 현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실에서 정책을 만드는 탁상공론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1000억원을 손에 쥐고 고등학교 학부모에게 가서 이 돈을 어떻게 쓰면 자식을 이공계에 보내겠습니까 물어 보세요. 이렇게 물어보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거의 학부모들이 처우개선 사회적인 배려일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공계로 가면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면 이공계에 우수한 인재가 모일 것입니다."

매년 1000억으로 1000명의 우수 인재를 골라 1억 씩 이니센티브로 나눠주는 방안도 매우 효과적이다. 우리나라 전체에서 1000명의 우수인력을 고르기는 쉽다. 물론 공평하지 않다고 불만이 나올 수도 있다. 온 나라가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 충격을 10년 정도 주면 바뀌지 않을까 한다. 예전에는 장학금을 줘서 유도했지만, 이제는 장학금으로 안 통한다. 취업 후에 아무리 열심히 연구개발해도 처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 정부가 조금만 인력 유치에 신경을 쓰면 우수인력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앞으로 의대 졸업생들의 진로가 어둡기 때문이다. 매년 5,000명씩 쏟아져 나오는 의사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인구는 늘지 않고 신도시 개발이 주춤하니, 개업할 곳이 별로 없다. 이제 개업하려면, 이미 있는 병원들과 경쟁해야 한다. 레드오션이다. 이미 부도나는 병원이 늘어가고 있다.

5,000명의 신규 의사들이 갈 곳은 대형병원에 취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년에 채용되는 의사는 1,000명 미만이다. 나머지는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하는데, 시장은 과거와 달라졌다. 이미 한의사들의 진로는 막혔다고 말한다. 의사들의 경우도 이제 시작되었다. 머지 않아 현명한 학부모들은 미래예측에 의한 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 변호사들의 처지와 비슷해질 것이다.

           
              제품에서 배우는 과학: RSP



이 교수는 학생들이 이공계를 택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중고등학교에서 수학 과학 과목이 흥미가 없다는 점이라 말한다. 학생들은 이 것이 뭐에 쓰이는지도 모르면서 외우고 시험을 본다. 시험만 보고 나면 잊어버리는 공부를 한다.

그렇게 공부하니, 흥미를 갖고 이공계로 갈 동기가 없다. 과학교육의 목적은 이해력을 기르고, 호기심을 기르고,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과학교육의 흥미를 돋우는 새로운 교육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상품에서 배운다”는 개념의  RSP : Reverse Science from Product 교육이다. 이공계로 좋은 학생들 유치하기 위해서는 흥미를 끌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중고등학교 교육이 아쉬움이 있다. 수학 물리 생물 화학 과목들이 구분이 돼서, 학생들이 숙제하고 배우면서도, 어디다 써 먹는지 모른다. 왜 배우는지 모르고 배운다.

그렇지만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이 모든 과학의 원리는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 가지 과학기술의 산물들 안에 모두 녹아있다. 이 렇게 주변에 널린 상품에서 과학을 배우고, 기술을 분석하고 그 기술이 초중고교 과학교과서에 나온 어떤 공식, 어떤 윈리와 연결된 것인지를 가르친다면 학생들은 엄청난 호기심과 기쁨을 맛볼 것이다.

휴대폰에 들어있는 바이오 화학 물리 수학의 모든 원리를 다 분석해내서, 휴대폰의 어떤 기능이 어떤 과학과 연결됐는지를 가르치면 획기적인 교육이 될 것이다. 이것을 중고등학교 교과서로 연결시킨다.

휴대폰 속에 있는 반도체 칩을 만드는데 질소하고 수소의 관계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 내용이 교과서 물리 몇 페이지, 화학 교과서 몇 페이지에 들어있는지를 알려준다면, 학생들이 얼마나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낄 것인가? 오늘 학교에서 물리 시간에 배운 이 원리가 지금 학생들이 가진 휴대폰의 어느 부분, 어느 기능에 응용됐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기업들은 자기 회사의 제품을 분석하여, 그 속에 담긴 기술을 중고등학교 교과서로 설명한다. 각 회사들이 가지 제품을 가지고 RSP 교육 교재를 만든다. 그리고 교육 기부 차원에서 직업 학생들에게 설명한다. 회사들은 전국의 판매점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자신들의 제품을 이용하여 RSP 과학 교육을 한다.

이것이 사회교육으로 정착되면 예컨대 이번 토요일은 삼성전자 가는 날로 정해서 엄마 아빠와 손 잡고 삼성대리점이나 삼성서비스센터에 가서 핸드폰 과학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이번 토요일은 현대자동차 가는 날로 정해서 자동차 과학을 함께 배우고 익히고 경험하는 날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기업이 바로 국가의 교육에 직접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가 물건만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받는 그런 새로운 관계로 형성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서울시내 삼성 대리점 10곳을 정해서 토요일 오후 3,4시 되면 동네 꼬마들과 부모들을 초대한다. “이번 주는 휴대폰 중학생 수업입니다”라면서, 중학교 교과서 내용이 휴대폰에 이러저러하게 이용된다고 가르친다면, 얼마나 재미가 넘칠까?

물론 교재도 새로 만들고 강사교육도 시키고 교사도 동원하고 회사간부도 나오고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고등학교에 자동차 열어놓고 교재 가지고 설명하는 방식도 동원될 수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학생도 흥미를 느끼고, 회사도 이미지 제고에 도움 받고, 국가는 과학 교육해서 좋고, 모두가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 국가를 위해서 이런 RSP 교육을 필생의 사업으로 키워보고 싶다.
그렇게 해서 우수 인재들이 흥미를 느끼고 이공계로 오게 만들고 싶다."


 

            학생을 지도하는 두가지 방법


교수가 석박사 학생을 지도하는 것은 두가지 철학의 서로 다른 유형이 있다. 첫 째는 대학원 석박사 과정 연구할 때 교수가 연구방향 잡아주고 “이런 연구해야 좋다, 이것이 노다지다” 하고 시키는 타입이다. 그러면 그 교수는 자기의 큰 꿈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필요한 연구를 하나씩 하나씩 대학원생과 해결해서 큰 집을 짓고 그것이 업적이 된다.

두 번째 유형의 교수들의 철학은 전혀 다르다. 교수의 업적이라는 것은 사람을 기르는 게 업적이지 연구결과를 내는 게 우선될 수 없다고 본다. 사람을 기르는 게 첫째이다 보니 모든 연구는 학생중심으로, 학생이 원하는 과제, 학생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하도록 한다. 이들은 학생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도와주어야지 교수가 원하는 것을 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구 주제를 교수가 정해주는 연구팀은 큰 업적을 낼 수 있다. 교수가 큰 밑그림을 가지고 연구를 차근 차근히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단점은 학생들의 독창성이 줄어들고, 학생은 큰 연구의 일부를 맡아 하는 부속 담당자가 된다.

이런 경우는 선배들이 A부분 연구를 마치면 후배들은 B 부분의 연구를 하고, 그 다음 학생 역시 연구를 이어 받아 C를 계속한다. 그런 연구팀은 결과가 좋고 유명해지고 연구비도 많이 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런 연구팀을 졸업한 학생은 만족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두 번째 타입은 교수가 학생 중심으로 이끌어 간다. 이런 교수 밑에서는 학생의 관심은 아주 다양하다. 똑똑한 학생일수록 앞의 것 이어받기를 싫어한다. 10중 8,9는 앞의 학생 연구과제를 따라가지 않는다.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하는 과제는 학생이 찾아온다.

처음에는 학생들은 교수가 연구주제를 정해 주면, 편하다고 좋아 하기도 한다. 주제를 잡는 작업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 스스로 주제를 찾게 되면, 일이 학생 중심으로 진행되니까 학생의 만족도가 올라간다. 그리고 그 연구실의 성과는 학생이 정한 과제에서 나온다. 물론 이런 유형의 단점은 연구가 일관성이 없고 큰 업적이 나오지 않는다.

이광형 교수는 두 번째를 취한다. 모든 것을 학생중심으로 하고 학생이 하자는 대로 하다 보니 연구실에서 큰 업적이 안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교수는 좋은 학생이 나온 것을 자랑한다. 이 교수는 학생이 연구주제를 스스로 잡기 위하여 고민하고 자료 찾고 하는 과정이 교육에서 무엇보다고 소중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문제를 정의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가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물론 주제를 교수가 준 적도 있다. 그러나 그 때는 학생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서 준 경우라 기억한다. 이런 일은 가능하면 피한다고 한다. 좋은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학생들이 연구실에서 어떤 주제를 잡든, 창업하여 회사를 운영하든, 졸업 후에 진로를 어떻게 잡든, 대체로 학생의 관점에서 조언했다.


       이론 연구하다 보니 허무함이 몰려와

이 교수도 연구에서 응용연구와 이론연구를 모두 해봤는데 장단점이 다르다.
이론연구는 연구도 빨리 되고 나중에 다른 사람이 인용해주기도 하는 그런 장점이 있다. 초기에 주로 이론 연구를 많이 했다. 그런데 10년 지나고 보니까,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했는지 남는 게 없었다. 물론 이력서에는 이러저러한 논문을 썼다고 기록되지만, 인생이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이론 연구에서 허무함을 느꼈고, 그래서 응용연구를 해야겠다 싶어서 실제 생활에 매우 필요한 응용연구를 강조했다.

이미 많이 알려졌듯이 이광형 교수의 연구실은 우리나라 굴지의 벤처기업들이 탄생한 것으로 이름이 높다. 넥슨(김정주), 아이디스(김영달), 인젠(김창범, 김병학), 네오위즈(신승우), 올라웍스(김준환) 등이 이 교수의 연구실 학생들이 창업하여 성공시켰다. 그런데 이렇게 한 연구실에서 이렇게 많은 벤처 기업이 창업된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이 교수는 나중에 사람들이 자꾸 물어보니까 생각해 봤다고 한다. 그 당시는 잘 몰랐다고 한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첫째는 이 교수가 평소에 이론 연구보다 응용연구를 강조했던 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학생들이 산업체 연구 등을 하면서 현장과 가까운 연구를 하니, 자연스럽게 회사가 가깝게 생각되었을 것이다.

두번째는 이 교수가 1990년대 중반에 스탠포드대학에  초빙교수로 가 있는 동안, 학생들을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불러서, 벤처기업 현장을 구경시킨 것이 크게 효과를 봤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논문 연구를 주로 하다가 교수나 연구원으로 취직하는 것을 꿈꾸다가, 실리콘밸리에서 기술창업으로 백만장자가 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 ▲ 미국 체류 시절 초청한 학생들과 함께 한 이광형 교수ⓒ 뉴데일리


미국에 체류하던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벤처기업이 일어나고 있는 실리콘밸리를 보여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였다.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미국회사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하여 학생이 미국에 오는데, 6개월마다 교체했다. 많은 학생들에게 경험을 갖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회사에서는 학생이 자주 바뀌는 방침에 반대했다. 이 교수는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학생 연수임을 명확히 하고, 관철시켰다. 이렇게 하여 6명 정도가 실리콘밸리 경험을 했다.

셋째로는 이교수는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지도한 것이 크게 효과를 보았다. 앞서 말했듯이 이교수는 연구주제도 비교적 학생이 원하는 것으로 하고, 학생지도도 비교적 자유 방임형으로 한다. 학생이 뭘 한다고 말하면, 대체로 격려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좋은 교육은 칭찬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학생들의 창의성이 개발되고 주도성이 길러졌을 것으로 본다.


          정문술과 이광형의 운명적인 만남

이 교수는 정문술 회장으로 부터 기부금을 두 차례에 걸쳐서 515억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문술 회장과 처음 알게 된 것도 사실 이교수의 응용연구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 볼 수 있다. 1996년 정문술 회장과 이 교수는 서로 알만한 사이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문술 사장에 대한 기사가 어느 신문에 실렸다.

기사 내용은 미래산업이라는 기술중심 중소기업이 있는데, 이 회사의 정문술 사장은  정도경영, 기술중심 경영, 거꾸로 경영으로 이름이 높고, 특히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언을 했다는 기사가 났다. 특히 자식들이 보면 탐이 날까 봐 아예 구경을 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우연히 이 기사를 본 이광형 교수는 수소문 끝에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정문술 사장실에 전화를 했다.

"카이스트 이광형 교수라고 합니다. 사장님에 관한 기사를 봤습니다.
한번 찾아 뵙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환영입니다. 언제든지 오세요."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1996년 가을이었다.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회사를 보여주기 위하여 연구실 학생 7명과 함께 갔다. 정 사장을 만나고, 회사 소개를 듣고, 공장을 둘러봤다. 반도체 검사 장비를 생산하는 회사였다. 신문 기사에서 봤듯이 정도 경영, 기술경영의 모습이 보였다.

반도체 장비는 작은 택시 정도 되는 크기로 고가의 첨단 장비다. 이런 장비를 작동시키려면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이 교수의 전공이 바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이다. 이교수는 정 사장에게 자신의 전공이 소프트웨어이니, 장비 개발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좋다고 말했다.

그 후 몇 달 동안 회사의 개발팀과 협의하며, 개발에 참여했다. 개발이란 것이 쉽게 되는 것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기대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찾아와서 공연히 업무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중에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어느 날 정문술 사장이 이 교수에게 물었다.

"왜,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와서 일하고, 연구비 말이 없습니까?"
"저는 그 동안 국가와 사회로부터 큰 혜택을 받고 자랐습니다.
장학금도 많이 받았고 지금도 카이스트라는 좋은 환경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미래산업과 같이 훌륭한 회사를 위해서 그 동안 진 빚을 갚는다면,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이 교수는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체로 그런 내용으로 답변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당시에 그의 연구실에는 연구비가 많아서 굳이 연구비를 달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이 대화가 있은 후부터 두 사람 사이는 종전과 다른 아주 특별한 관계로 발전되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는 이제  연구 개발뿐만 아니라 회사 경영에 관한 사항도 포함되기 시작했다. 회사의 일상적인 일과 신제품 개발 계획에 대한 사항도 협의하는 일이 잦아졌다.

▲ ▲ 정문술 회장과 이광형 교수 ⓒ 뉴데일리


어느 날 정문술 사장은 이 교수에게 회사의 사외이사가 되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제 정식으로 회사의 경영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1999년의 일이다. 사외이사는 비상근 회사 임원으로서 회사의 이사회에 참석하여, 회사의 중요 사항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의결에 참여하는 중요한 자리다.

그 후 2001년에 징문술 회장은 스스로 회사에서 은퇴하고 약속한 바와 같이, 경영권을 회사 직원에게 물려주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돈을 이광형 교수를 통하여 카이스트에 기부했다. 그러면서 BT+IT 융합 분야를 연구 교육하는 학과를 만들어서, 융합 학문을 선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돈으로 카이스트에 바이오및뇌공학과가 설립되고, 이 교수의 연구 방향도 컴퓨터 인공지능에서 바이오정보 분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교수의 인생관도 바뀌어 개인의 영달보다, 기부금 사용의 성공을 위한 삶으로 바뀌었다.

그런 일이 있는 후에 13년이 흐른 2014년 초에 다시 정문술 회장은 215억원을 기부하며, 이번에는 미래전략 분야를 개척하고, 미래전략 분야의 인력 양성을 당부하였다. 이 교수는 이번에도 연구방향을 바꾸고 미래예측 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일이 이처럼 진행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왜, 이 교수는 어떻게 정문술 사장에 관한 신문 기사를 보게 되었을까?
왜, 이 교수는 당돌하게도 정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을까?
왜, 이 교수는 '왜, 연구비 요청을 안 하느냐'는 질문에, 그런 답변을 했을까?


일이 이렇게 진행되어 온 것을 보면, 마치 미리 계획된 것처럼 절묘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의 전개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는 일이라 말한다.


             퍼지 엘리베이터 개발 연구

아직도 이광형 교수는 퍼지(fuzzy) 엘리베이터를 개발한 교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가 한 응용연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바로 퍼지 엘리베이터 개발이다. 이 교수팀은 1990년대 중반에 LG산전하고 엘리베이터를 개발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엘리베이터 회사가 동양, LG, 현대 중 가장 큰 게 LG였다. 그런데 기술은 다 일본에서 들어왔고 우리나라는 엘리베이터 박스를 만들어 파는 정도였다. 엘리베이터 제어 컴퓨터는 일본에서 사다가 판매했다. 90년대 중반까지 대형건물에 엘리베이터가 4~5개 있으면, 모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다 눌러서 빨리 오는 것을 탔다. 여러 대의 엘리베이터가 모두 분리된 상태로 운행되다 보니 전기와 시간 낭비가 많았다.

199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는 그룹 관리 엘리베이터가 나와 있었다. 4개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면, 손님은 하나의 버튼만 누른다. 4개 중 가장 가깝게 있는 것이 손님을 실으러 온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4개 중 가장 빨리 오는 것이 실어가므로, 효율도 올라가고, 전기도 절약하고, 적은 갯수의 엘리베이터로 많은 사람 수용하는 하이테크 제품이었다.

LG산전과 제휴하고 있는 일본 히타치는 이런 그룹관리 엘리베이터를 판매할 때에는, 컨트롤 컴퓨터는 기존 것의 3배를 매겼다. 물론 기술은 주지 않았다. 회사에 어두운 그림자가 내리기 시작했다.

LG산전은 급하게 이것을 자체 개발하려고 노력했다. 일본의 히타치는 그룹 컨트롤 엘리베이터를 개발할 때 퍼지기술을 사용했다고 한다. LG산전이 그것을 흉내 내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이광형 교수팀과 연결되었다. 이 교수팀은 엘리베이터의 원리를 공부하고 작동방법을 연구했다. 2년이 흘렀다. 드디어 성공했다. 곧바로 상품화 되었다. 상품은 FX7600, FX7800이란 이름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제품이 나오고 건물에 설치되니까 논문 몇 개 쓴 것 보다 훨씬 보람 있게 느껴졌다.

그 전에는 일본에서 부품을 쥐고 흔들었기 때문에 LG산전 회사 분위기가 희망이 없었다. 1개 엘리베이터만 운행하는 값싼 아파트용만 팔지, 대형 건물용 비싼 것은 팔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형 퍼지 엘리베이터가 나오면서 회사가 활기가 돌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을 보았다. 아, 이거구나. 이런 거 해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 ▲ 퍼지 기술을 적용한 서울의 한 엘리베이터 ⓒ 뉴데일리


이 교수는 지금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느 회사 제품인가 상표를 본다고 한다. LG 산전의 엘리베이터 사업이 OTS에 넘어가서, 이제 OTS란 이름으로 팔린다. 몇 년 전에 OTS 사장을 만나서 10여년전 연구개발 인연을 말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OTS 사장이 LG 산전 시절에 개발된 그룹 관리 핵심 기술이 지금도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하는 이 교수는 무척 신나 하는 표정이었다.



            특허권 대학에 주도록 바뀌어야


이렇게 퍼지 엘리베이터를 개발하고 기술을 넘겨주고 프로젝트가 끝났다. 당시만 해도 대학교수가 특허를 내는데 관심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LG산전이 특허를 냈다. 그 뒤 몇 년 후에 동양엘리베이터에서 연락이 왔다. 회사를 방문하고 얘기를 들어 봤더니, LG산전이 한 것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었다. 물론 LG산전과 관계를 생각하여 도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  정중하게 사양하고 추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퍼지 엘리베이터 기술은 카이스트 연구팀이 특허를 내는 것이 더 바람직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술을 대학에서 보유하고, 각 기업에게 무상으로 실시권을 주는 방안을 도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모르긴 해도 카이스트 엘리베이터 연구팀이 세계최고의 엘리베이터 연구 전문그룹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원천 특허권이 없는 분야를 연구하면 나중에 큰 낭패를 당하기 쉽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그 것의 뿌리가 되는 원천 특허에서 허락해주지 않으면, 상용화 할 수 없다. 그러니 아예 그 쪽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나중에 미국 대학 이야기를 들으니까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미국은 기업이 비용을 대고 대학교에서 연구하면, 특허권을 대학교가 갖는다. 물론 비용을 댄 기업은 특허권을 무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갖는다. 그래도 특허권은 대학이 갖고 있다. 이래야 처음 연구를 한 그 교수는 그 지식을 가지고 계속 발전된 연구를 할 수 있다. 계속 연구하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방침이 기술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더 타당하다.  앞에서 봤듯이, 대학에서 퍼지 엘리베이터기술을 개발했는데, 특허권이 회사에 귀속되어 있으면, 그 대학은 퍼지 엘리베이터를 더욱 발전시키는 연구를 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학협력 특허권 소유 관행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어느 분야이든 최고 전문가로 양성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권리가 대학에 있어야 편리하다. 일단 회사가 특허권을 가지고 가면, 원래 개발한 그 교수는 권리가 없기 때문에 계속 연구하면 걸린다.

이것이 결국 기술의 전문화를 방해하는 환경이 될 것이다. 혹은 그 회사하고만 연구를 계속해야 하므로 제한된 조건에 갇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경험을 이미 해서 좋은 제도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온 서남표 전 카이스트 총장은  기업과 하는 모든 연구의 특허권은 카이스트가 갖고, 기업에는 무상 실시권을 주도록 했다. 미국 대학들이 하는 방침이라고 했다. 이 같은 방침에 기업들이 당연히 반발했다.

그러나 서남표 총장은 삼성이나  LG같은 대기업이 하바드나 MIT 같은 미국 대학에 연구비를 줄 때는 특허권을 대학에 귀속하도록 하면서, 어째서 한국 대학에 대해서는 이중잣대를 적용하느냐고 질문했다.

미국 기업들은 대학에 연구비를 주고 연구를 할 경우 특허권이 대학에 귀속된다는 방침을 당연하게 여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카이스트에 연구과제를 주면 특허권을 카이스트에 준다.

이 같은 전향적인 특허권 소유에 관한 개선은 지금 시점에서 매우 필요하다. 왜냐하면 현재 국가 경쟁력을 확대하려면 산업체와 대학 사이에 산학공동연구를 많이 해야 하는데, 10년 전에 비해서 산학협동연구가 현격하게 줄었다. 줄어드는 이유가 여럿이겠지만, 그 중 하나는 이런 특허권 갈등이다.

대학 연구비 중에 산학공동 협력연구비 비중은 15.9%(2004년) => 12%(2008년) => 11%(2012년)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매년 1%씩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전에는 회사가 대학에 연구과제를 “주면 감사합니다”하고 받았지만, 지금은 대학이 깨여서 무조건 덥석 받지 않는다. 그렇게 종속적인 관계가 되면 결국 대학연구는 그저 하루살이 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모순을 깨달았다. 이런 추세를 돌리기 위해서라도 특허권을 대학에 귀속시키는 제도가 필요하다.

물론 대학이 종종 시급하게 연구비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학을 마치 연구과제를 주기만 해도 좋아하는 관계로 맺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목표는 어떻게 하면 특허권 소유권 문제를 잘 해결하여 산학협력을 활성화 시키느냐 이었다. 2011년부터 학계, 기업, 법률 관계자들이 모여서 거의 일년을 토의했다. 2012년에 보고서를 발간했으나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이것은 쌍방의 계약에 의한 것이라 법으로 어떻게 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는데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 돼버렸다. 그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 대학소유로도, 기업소유로도, 공동소유로도 할 수 있다는 애매모호한 결론이다.

만약 이교수팀이 엘리베이터 연구를 계속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이 교수가 특허의 중요성을 깨달아 특허권을 소유하고, 엘리베이터 연구를 계속했더라면, 지금 전세계에서 카이스트연구팀을 능가하는 연구팀이 나왔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쪽 회사 기술이 저쪽 회사에서도 사용된다면 처음 연구개발을 의뢰한 기업에서는 불만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두리째 싹을 자르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기업에서는 기업대로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기업이 돈을 냈는데 돈을 낸 기업이 소유하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회사는 자신들이 보유한 특허 개수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기업의 가치는 특허 등 무형자산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실은 우리나라 대기업이 미국대학에 연구비 줄 때 특허권을 미국 대학에 주면서, 대한민국 대학에 줄 때는 안 준다는 이 기막힌 이중잣대이다. 이 같은 이중잣대가 산학공동연구를 줄어들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음은 틀림 없다.


              광양제철소 음료수 철판 개발


이론 연구 대신 응용연구로 방향을 바꾼 이광형 교수가 또 보람을 느낀 것 중 하나는 음료수 캔 연구이다. 요즘 나오는 음료수 보면 캔이 살짝만 눌러도 들어갈 만큼 얇고 물렁물렁하다. 그리고 몸체가 한 덩어리로 되어 있어서 캔의 이음새가 없고, 위에 뚜껑만 붙인 투피스 캔(two-piece can)이다.

이에 비해 그 전에 나오던 음료수 캔을 잘 살펴보면, 옆에 금속 이음새가 있는 쓰리피스 캔(three-piece can)이다. 쓰리피스 캔은 철판을 3개 연결하여 만들 것으로 철판이 약간 두꺼워도 된다.

투피스 캔은 철판을 뜨겁게 달군 뒤 찍어서 만든다. 그러려면 철판이 얇아야 하고 또 철판 두께가 균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프레스로 금속판을 눌러 찍었을 때 찢어진다. 투피스 캔을 만들기 위해서는 철판 두께가 약 0.2mm로 얇아야 한다.

90년대 초반에 일본 기술자들이 지금  유행하는 투피스 캔을 개발했다. 소비자들은 내용물도 좋지만 캔이 멋이 있으니까 자꾸 손이 그리로 간다. 국내 음료수 회사들은 그래서 일본에서 캔을 수입해서 사용했다.

철판 판매가 줄어들게 된 포스코에서 큰일났다 싶어 연구를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얇은 철판 생산을 담당하는 광양제철소가 난리가 났다. 제조공정을 보면 의외로 단순하다. 두꺼운 철판을 밀가루 반죽 밀듯이 미는데 두께가 0.2mm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철판을 프레스로 누르면 갈라지기도 하고, 철판이 식은 뒤엔 뒤틀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철판의 두께가 균일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제철소를 가 보니 양쪽에서 철판을 밀어 내면서 큰 프레스로 누르는데, 이 프레스는 위에 커다란 롤러가 3개 아래에 큰 롤러가 3개씩 달렸다. 중요한 것은 어떤 때는 얇고 균일한 철판이 나오다가 어떤 때는 잘 안되다가 한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일본 히타치 제철소 기술자들은 동일한 장비를 이용하여 균일하게 얇은 철판을 만들어댄다. 철의 성분이 좋아야 하고, 누르는 힘이 적절해야 하고, 온도도 맞아야 한다. 포스코 기술자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균일한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

하루는 포스코에서 카이스트 이광형 교수를 찾아왔다. 제철하고 전산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싶지만, 일본 히타치가 퍼지기술로 얇은 철판을 만들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었다.

포스코 연구진은 철의 성분, 온도, 힘, 냉각수 등의 가능한 조합으로 실험을 해봤지만, 원하는 규격으로 균질한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퍼지 인공지능 기술로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

퍼지기술로 엘리베이터를 개발했다고는 하지만, 카이스트 전산학과 연구팀이 제철 기술을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바닥부터 제철소 공부를 하고 시행착오를 하며 3년을 매달렸다.

이광형 교수를 비롯해서 석박사 전공 학생들이 3년을 발 품을 팔았다. 순천역에서 기차를 내리면 광양제철소 행 총알택시들이 활주로에 대기하듯이 늘어서 있다. 시속 130km속력으로 달리는 일을 수 없이 했다. 이 때는 좌석에 엉덩이를 살짝 붙이고 손잡이를 꼭 잡아야 했다. 우람한 제철소 정문에 도착하면 손에 땀이 그득하다.

제철소에 가면 용광로에서 나오는 뜨거운 철 용액을 뜨거운 상태에서 누르는 열연과정이 있다.  이어서 약간 식은(그래도 1,000도이다) 다음에, 눌러 철판을 만드는 냉연 과정을 거쳐서 철판이 만들어진다. 압연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롤러 프레스가 3층집 정도로 크다. 빨리 뽑으면 초속 20m의 속도로 철판을 뽑아낸다.

카이스트 연구팀은 이 거대한 프레스를 제어하는 기술을 포스텍 엔지니어와 함께 도전했다. 현장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현장 기술진과 함께 개발했다. 처음에는 컴퓨터 상에서 철판을 눌러 뽑는 실험을 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어느 정도 되니까 현장 실험을 하려 했다.

그런데 압연 장비가 워낙 비싼 장비라서, 함부로 세울 수 없었다. 잠시 정지시켜도 수 억원의 손해가 발생한다. 컴퓨터 실험에 성공했어도 원하는 때에 현장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기계는 24시간 돌아간다. 기계를 유지보수 할 때에 세운다고 하는데, 그것도 1년에 두 세번 정도라고 했다. 학생들이 그 시간을 맞출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결국 현장 실험은 현장 기술자들에게 맡기고 카이스트 연구팀은 철수했다. 다행히 현지 기술자들이 마지막 부분을 성공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국산 투피스 캔에 담긴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필자는 어떻게 컴퓨터 학자가 철판 뽑는 일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여 더 자세히 질문해 봤다. 철판을 프레스로 눌러 얇게 만드는 방법은 밀가루 반죽을 만드는 과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프레스의 힘과 속도, 그리고 물을 쳐가면서 온도를 식혀주는 쿨란트 이 세가지 요소를 어떻게 균형을 맞춰 조절하는가에 달려있다.

포스텍 기술자들이 수동으로 작업하면 어떤 때는 원하는 제품이 나오고, 어떤 때는 뒤틀리는 제품이 나오고 했다. 사림이 하는 일이라 기계를 균일한 상태로 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 조건을 24시간 긴장해서 유지할 수 없지만, 기계에게 시키면 잘 할 수 있다.

일정한 상태로 기계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기계(컴퓨터)가 조정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컴퓨터가 사람이 하는 정교한 일을 대신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인공지능의 문제이다.

퍼지 인공지능 기술로 인간의 노하우를 프로그램 해서 컴퓨터에 입력한다. 이 교수팀은 인간이 말하는 내용을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일을 했다. 현장 기술자가 “이렇게 이렇게 하니까 되더라” 하고 말로 설명하면, 그 지식을 프로그램으로 작성하여 컴퓨터에 입력한다. 이것이 퍼지 기술이다.

힘을 400톤을 주고 쿨런트(냉각수)는 얼마 뿌리고, 그런 정보들을  컴퓨터로 프로그래밍 해서, 항상 그 조건을 유지하도록 자동화하는 것이 개발의 핵심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두께 0.2mm짜리 음료수 캔 철판이 국산화됐다.

컴퓨터 앞에서 인공지능 공부를 하던 이 교수와 석박사 과정 학생들은 난생 처음으로 제철소에 가서, 3층짜리 집 같은 압연 기계를 구경했다. 이 어마어마한 일에 손을 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의 히타치가 “퍼지기술로 했다더라”는 소문이 유일한 실마리였다.

" 그런 일을 시작할 때, 자신감이 있었습니까?"
"해보지 않은 일이라 자신은 못하지요. 하지만, 일본 사람이 했는데, 우리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
그리고 일본 기술자 보다 우리 학생들이 우수하다는 자신감이 붙잡아 주었습니다. 또한 이런 일은 꼭 해내야 하는데, 우리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각오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교수는 음료수를 마실 때면 총알 택시와 학생들의 얼굴(지금은 대학교수가 되어 있는)이 생각난다고 한다. 그 당시의 땀으로 우리는 지금 국산 음료수 캔을 사용하고 있다. 음료수를 다 마신 다음에는 항상 손으로 찌그려 뜨려 본다고 한다.

광양제철소의 얇은 철판 만드는 기술은 노하우라 특허로 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말로 설명해줘도 못한다. 글로 써 줄 필요도 없다. 이런 노하우를 보호하는 것은 특허를 내지 않고 영업비밀로 보호한다.

특허를 출원한다는 것은 글로 써서 공개한다는 뜻이다. 이와는 반대로 특허를 내지 않고 비밀로 해서 보호받는 법도 있다. 갈수록 영업비밀로 하는 경향이 많아진다. 코카콜라 성분을 특허내지 않고 영업비밀로 유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광형 교수의 새로운 도전이 과연 어떤 성과를 낼 지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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