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고층호텔 논란 그 후, “서울시에 배신감 느낀다”
  • ▲ 인사동 ‘쌈지길’ 입구(좌)와 전통문화의 거리(우). 평일 낮 시간이었지만, 외국인 관광객과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뉴데일리 DB
    ▲ 인사동 ‘쌈지길’ 입구(좌)와 전통문화의 거리(우). 평일 낮 시간이었지만, 외국인 관광객과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뉴데일리 DB



    서울시에 아무리 기대해 봐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삼성 측에서 인사동 주변에 호텔을 짓는 대신 인사동만의 정신과 특징을 살리기 위한 1000평 규모의 컨벤션 센터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삼성은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주민 의견도 충분히 수렴했고, 컨벤션 센터에서는 전시회나 공예전 등 인사동과 공생하면서 호텔사업과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놓았다.

    기업도 인사동의 전통을 생각하는 데 왜 서울시는 이를 무시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윤용철 인사동 전통문화보존협회 회장 


    인사동은 전통과 현재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문화관광지구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로 나와 길을 걷다보면 한국적 정서가 곳곳에 배어 있는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는 민속·공예품점과 화랑, 전통 찻집, 전통 음식점 등 한국적 멋과 맛을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공간이 곳곳에 들어서있다.

    인사동의 명물 [쌈지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진 촬영과 쇼핑을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호떡의 신기한 맛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외국인도 있다.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나온 연인들과 나들이 나온 가족들의 모습은 인사동에 활기와 낭만을 불어넣어 준다.

    그런데 최근 이 지역 개발 사업을 두고 서울시와 인사동 사람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그동안 인사동 [주가로변] 구역에는 전통문화 외 업종의 입점과 건물 높이에 제한을 두고 있었는데, 서울시가 인사동 개발 사업을 위해 일부 필지를 [주가로변]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인사동 [업종제한 구간을 축소]하는 내용의 [인사동 문화지구 관리계획 변경안]이 서울시 문화지구심의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됐다.

    만약 이 안이 통과돼 현실이 된다면 인사동 [주가로변]에서 제외된 필지에는 그 동안 금지된 업종이 자유럽게 들어설 수 있다. 고층호텔과 대형상가의 입점도 가능하다.

    인사동 사람들은 즉각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심의위에 참여한 인사동 전통문화보존협회 윤용철 회장은 “인사동의 정체성이 실추될 수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주가로변 구역 범위 조정 안건은 보류됐다.

    안건은 보류됐지만 이로 인한 후폭풍은 컸다.

    인사동 일부 필지를 [주가로변]에서 제외하는 계획안이 안건으로 상정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인사동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뉴데일리>는 18일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인사동을 찾았다.
    인사동 사람들의 민심은 [분노] 그 자체였다.

    서울시가 [주가로변]에서 제외하기로 한 필지는 인사동 네거리에 위치한 <프레이져 스위치 호텔> 주변으로 인사동 20-3과 20-5 등이 속한다.

    이곳에는 화랑과 전통한지 판매점, 한국식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다.

  • ▲ 인사동 주가로변 제외 예정 필지 주변 모습.ⓒ 뉴데일리 DB
    ▲ 인사동 주가로변 제외 예정 필지 주변 모습.ⓒ 뉴데일리 DB

    인사동 거리에서 18년간 전통찻집을 운영해온 오정식 씨는 서울시가 내놓은 [주가로변] 변경안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오 씨는 이번 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단편적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주가로변] 지역 지도를 펴보였다.

  • ▲ 오정식 씨가 제시한 주가로변 변경 적용 전·후의 지도. 오 씨는 오랫동안 이어온 인사동의 전통을 호텔에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뉴데일리 DB
    ▲ 오정식 씨가 제시한 주가로변 변경 적용 전·후의 지도. 오 씨는 오랫동안 이어온 인사동의 전통을 호텔에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뉴데일리 DB

    “호텔 바로 옆에 또 호텔을?”
    인사동 주변에만 호텔이 5개


    오 씨는 [주가로변] 지역 제외 대상으로 선정된 구역을 짚어주며 호텔이 들어설 부지까지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주가로변] 제외 예정지역은 크게 두 군데로 나뉜다.

    문제는 실제 이 지역이 [주가로변]에서 제외된다면 그 사이에 있는 나머지 필지와 함께 전부 호텔 부지로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호텔이 들어선다고 소문이 난 부지 바로 옆에는 이미 <프레이저 스위츠>라는 대형 호텔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 ▲ 인사동 프레이저 스위츠 호텔과 인사동 주가로변 상가들의 대조적인 모습.ⓒ 뉴데일리 DB
    ▲ 인사동 프레이저 스위츠 호텔과 인사동 주가로변 상가들의 대조적인 모습.ⓒ 뉴데일리 DB

    오씨는 서울시와 종로구의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폭로]했다.

    내용을 정리하면 서울시와 종로구청이 이미 오래 전부터 [주가로변] 일부 지역을 제외시켜 고층호텔 신축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특히 그 과정에 주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오씨를 비롯한 인사동 사람들은 “서울시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시에 대한 이들의 [불신]은 상당히 깊었다.

    서울시와 종로구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사업의 개발목적은 [관광호텔 입지를 통한 인사동 관광 활성화 및 야간 공동화 현상 개선]이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서울시청 앞은 이곳보다 더 공동화 됐다.

    시청 주변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왜 하필 주변에 숙박시설도 넉넉한 인사동인가?

    고궁을 늦은 시간까지 관람하자고 고궁 내 전통건물을 허물고 호텔을 세운다는 어리석은 발상과 무엇이 다른가.



    “지키고 싶은 것은
    밥그릇이 아닌
    지금까지 일궈온 전통거리


    오 씨는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앞으로 서울시가 추진한다는 공청회에 대해서는 “전혀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1년 전부터 서울시가 이곳을 공동개발지구로 검토했고, 그와 동시에 호텔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후 해당 필지 지주들만 참석하는 공청회가 열렸고, 얼마 전 종로구청으로부터 문화지구 관리계획 변경 안건이 이미 끝나 위에 보고됐다고 전달받았다.

    황당한 나머지 인사동 주변 상인들의 탄원서를 받아 구청 문화과에 갔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주민 공청회를 4회 이상 실시했고 협의가 됐다고 말했다.

    이미 다 끝난 일처럼 말했다.
    주민들은 이 공청회에 참가한 적이 없고, 결과를 통보받은 일도 없다. 말장난일 뿐이다.


    오 씨는 호텔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한 시행사가 도로부지들을 자기 명의로 매입해 물밑작업을 해왔다며 “지주들에게는 서운하고, 서울시에는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후 서울시와 종로구가 제대로 된 공청회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주민들과의 가두시위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 씨가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는 사이, 옆자리에 앉은 이웃 상인도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이번 일이 일반 국민들에게는 골목상인들의 단순한 [밥그릇 지키기]로 비춰질 수도 있다며 걱정했다.

    인사동은 서울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화·관광명소이고 자랑거리다.
    단순히 우리 상인들이 살고 있다고 해서 우리만의 재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사동은 전 국민의 것이다.
    우리는 그 정신하나로 인사동 전통거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지켜오고 일궈온 이 공간을, 단지 땅값이 오르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유만으로 호텔을 집어넣으려 하다니 전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오정식 씨의 전통찻집은 과거 외국 방송에서도 소개된 바가 있는 인사동 명소로 관광책자를  손에 든 일본인 관광객과 대학생 손님들로 가득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한 일본인 관광객에게 “이곳에 호텔이 들어서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 하는가”라고 묻자 그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왜 여기에 호텔이 세워져야 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오정식 씨와의 인터뷰가 끝난 뒤 <인사동 전통문화보존협회> 윤용철 회장을 만났다.

    그는 인사동 [주가로변] 업종 제한 변경과 관련된 주민상담과 오는 22일 열릴 예정인 인사동 전통문화 행사 홍보로 바쁜 모습이었다.

    그러나 윤 회장은 지친 기색도 없이 진지한 분위기로 인터뷰에 응했다.

    서울시,
    문화지구 보호는커녕
    관광지구전락 시켜

    윤 회장은 오 씨의 주장처럼 서울시와 종로구청이 주최한 공청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구청이 인사동 상인들을 제외하고 지주 몇 사람만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고, 주민들과는 납득할만한 내용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 인사동의 정체성을 벗어난 개발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윤용철 회장.ⓒ 뉴데일리DB
    ▲ 인사동의 정체성을 벗어난 개발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윤용철 회장.ⓒ 뉴데일리DB

    우리 단체는 인사동 전통거리를 위한 유일한 단체다.

    그런데 서울시는 [주가로변]에 속한 필지를 일부 제외하는 중대사업을 추진하면서 해당 주민들에게 통보도 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주민들 모두 사업 진행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나를 불러내 [가로변 범위조정] [수복형] [소단위 맞춤형] 등 생소한 용어를 써가며 사업 설명을 했다.

    구청은 이런 복잡한 일에 대해 [수복형]이 무엇이고 [맞춤형]이 무엇인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청회를 열었어야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배제시킨 채 지주 몇 사람만을 두고 공청회를 열었다.


    윤 회장은 서울시가 사업을 추진하며서 주민들이 이전할 장소와 권리금과 관련된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한 달 가까이 보류 상태로 있는 공청회도 일정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윤 회장은 서울시 스스로 인사동 문화지구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사동 고유의 정서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서울시가 지난 2002년 인사동 일부 지역을 문화지구로 설정했다.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의 70~80%가 인사동을 오는데 문화지구는 그리 넓지 않고 아직 보완해야 할 곳이 많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이를 문화적으로 더 발전시켜 나갈 방안을 마련해줘야 할 텐데 오히려 호텔을 허가해 인사동을 단순한 관광지구로 만들어 버리려고 한다.



    [서울시]가 해야 할 일,
    오히려 [삼성]이 해결해 줘


    윤 회장은 인사동 주변 호텔이 5개나 된다는 사실과 주변 지역 내 숙박시설이 충분하다고 주장하면서 서울시가 해야 할 일을 일반기업인 삼성이 지원해줬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시에 아무리 기대해 봐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삼성 측에서 인사동 주변에 호텔을 짓는 대신 인사동만의 정신과 특징을 살리기 위한 1000평 규모의 컨벤션 센터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삼성은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주민 의견도 충분히 수렴했고, 컨벤션 센터에서는 전시회나 공예전 등 인사동과 공생하면서 호텔사업과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놓았다.

    기업도 인사동의 전통을 생각하는 데 왜 서울시는 이를 무시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윤 회장은 “홍대에 가면 젊은이들의 정서가 있듯이 인사동 문화지구에는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정서가 있다”라고 말하며 인사동 개발을 위해서는 인사동만의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정서와 정체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사동 거리를 지키기 위한 국민들이 관심도 당부했다.



    서울시, 종로구,
    “주민들 반대하면 호텔 입점은 불가능”


    종로구청 도시계발과 관계자는 <뉴데일리>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인사동 문화지구 관리계획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종로구 측은 “필지별 용도는 정비구역 변경시 문화지구의 조례에 따른다”며 이번 일에 대한 언론보도에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사업 초기, 주가로변 문화지구에서 요구하는 필지와 개발을 위해 필요한 필지가 차이가 있어 우리가 먼저 고시를 했다.

    단지 필지별 용도와 구획선은 정비구역 변경 시 문화지구의 조례에 따른다고 전제조건을 달았다.

    따라서 호텔이 들어오는 길은 열려있을지는 몰라도 문화지구에서 호텔 입점을 반대한다면 들어올 수 없다.

    언론이 종로구 측 입장도 충분히 듣지 않은 채 보도했다.


    서울시는 이번 논란에 대해 “정해진 원칙과 절차대로 할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 문화정책과 관계자 역시 언론보도에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인사동에 호텔이 들어서기로 결정돼 부동산 업자들이 주민 동의서를 받고 있다는 언론보도는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절차대로 할 뿐이다.

    관리계획변경에 관해서는 중앙 부서와 의견을 거쳤고 인사동 측과도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