共匪와 선동가들이 두 번 죽인 반공소년 이승복의 진실을 법정에서 살려낸 '조선일보의 변호인' 이야기
  • 1998년 8월 내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있을 때, 反共소년으로 알려진 李承福(이승복) 이야기가 조선일보 社內에서 새삼 화제가 되었다. 1968년 12월11일자 조선일보 사회부 姜仁遠 기자의 특종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조작된 것이란 주장이 좌파 진영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을 때였다. 나도 이승복 소년이 과연 그런 이야기를 하였을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무장공비에게 일가족이 沒殺(몰살)당하였는데, 누가 그 말을 들었을까, 기자가 지어낸 말이 아닐까 하는 정도의 의심이었다. 이상하게 조선일보 안에서도 적극적으로 姜 씨를 편드는 목소리가 약했다. 
      
      
    나는 조선일보에 연재 중이던 朴正熙 傳記(“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취재를 도와주고 있던 월간조선 李東昱 기자를 불렀다. 李 기자는 조선일보 수습 출신이 아니고 깊게 파고드는 취재를 잘 하였다.
      
       “이승복 이야기를 두고 말이 많은데 검증 취재를 하라. 선입감을 갖지 말라. 만약 誤報로 밝혀진다면 오보라고 써라. 그대로 싣는다.”
      
       李 기자는 강원도로 갔다. 한 열흘 뒤 나타나더니 두툼한 프린트 원고를 제출하였다. 원고를 검토하면서 비로소 특종에 확신이 갔다. 이승복의 입에서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들은 형이 살아 있었다. 李 기자는, 그 형으로부터 사건 직후 이 말을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도 여러 명 알아내 취재하였다. 조선일보 姜 기자는 이승복 一家가 참살당한 집에 갔고, 여기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승복의 말을 듣고 기사를 작성하였음이 확인 되었다.
      
      1998년 10월호 월간조선에 실린 李 기자의 기사 제목은 <“공산당이 싫어요”는 있었다>였고 副題는 <反共소년 李承福을 두 번 죽인 誤報說의 허구 입증>이었다. 당시 언론개혁시민연대(상임대표 金重培, 사무총장 金周彦)가 주최한 서울 지하철 시청역 오보 전시엔 ‘반공구호 앞엔 진실도 필요 없나?’ ‘나는 거짓말이 싫어요’ ‘기사가 아니라 소설이었다’는 표현이 등장하였다.
       
    나는 이승복 一家가 어떻게 죽어갔는가에 대한 형(李學官)의 목격 증언이 논란의 핵심이라고 보고 제목 페이지에 올렸다.
      
      <그러다가 그 공비가 “야, 너는 북한이 좋니? 남한이 좋니?”하고 물어요. 승복이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이야기한 것이겠지요. 서슴없이 “우리는 북한은 싫어요. 공산당은 싫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바로 그 공비가 ‘야~!’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승복이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순간 저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엉거주춤했는데 제 옆에 앉았던 공비가 개머리판으로 어깨를 찍어 내렸습니다. 털썩 주저앉으며 보았더니 멱살에 잡혀 버둥거리는 승복이에게 문 가까이 서 있던 놈이 칼을 들고 다가서면서 입 속으로 칼을 쑤셔 박았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죽은 승복이의 입이 오른쪽 귀까지 찢어졌다고 합니다.>
      
      이승복에게만 주의를 기울인 언론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의 두 동생과 어머니도 죽임을 당하였다는 사실을 잊는 경우가 많다. 공비들은 잠자다가 울며 깨어난 두 동생의 다리를 들어 올려 벽에다가 머리를 패대기쳐 죽였다. 이날 그들이 죽인 네 명은 地主도, 자본가도, 부자도, 계급의 敵도 아닌 가난에 찌든 火田民이었다. 김정일이 대한항공機를 폭파 시켜 죽인 이들이 대부분 중동 건설 노동자였다는 점과 비슷하다. 노동자 농민의 해방을 위한다는 공산당이 노동자 농민을 참살하였다. 선동꾼들이 ‘악마의 변호인’이 되어 한사코 두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현희와 이승복의 말과 행동을 가짜로 몰려고 한 것도 북한 입장에서 보면 ‘가장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李東昱 기자가 쓴 월간조사 기사엔 誤報說을 확산시킨 중심인물인 김종배 씨를 인터뷰한 대목이 있다. 李 기자는 묻는다.
      “‘(신문 사설 등이) 무장공비를, 인간의 탈을 쓴 이리··· (중략) 라고 맹비난했다’고 썼지요? 공산당과 무장공비를 그렇게 맹비난한 것이 잘못입니까?”
      金 씨는 “그건 가치 판단의 문제니까 저한테 질문할 사안이 아니죠”라고 했다. 李 기자가 “김종배 씨의 기사는 가치 판단을 갖고 쓴 것으로 보이는데요?”라고 재차 물었다.
      金씨는 “세계관이나 가치관의 차이로 논쟁하지 맙시다”라고 했다. 李 기자는 또 던졌다.
      “문제는 이 기사를 통해서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승복 사건을 조작으로 알게 되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이 말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럼 영광이지요. 즐거운 정보네요.”
      
      1998년 9월18일에 발매된 월간조선 10월호가, 이승복 관련 특종이 정확하였음을 확인한 데 이어 조선일보도 9월28일자 ‘이승복 기사 검증 특별 취재팀’이 작성한 기사를 4개 면에 걸쳐서 실었다. 팀장 진성호 기자는 ‘귀 막은 조작 세력’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이런 의문을 던졌다.
      
      <도대체 이 문제를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렇게 집요하게 제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럼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그 사람들의 목표는 무엇일까. 한 번만 더 확인해보면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일을 굳이 ‘대표적 오보 사례’로 선정하고 매도하는 데 대한 이유가 해명되지 않는다. 결국은 양민학살이란 사건의 성격까지 희석시키려는 것은 아닐까.>
      
      ‘조작 세력’은 그러나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검증 보도를 수긍하지 않았다. 김종배 씨가 편집국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미디어오늘>은 10월7일자에서 전면광고를 제외한 7개 면 중 5개 면을 할애하여 “조선 취재 기자 현장에 없었다” 등 13건의 기사로 조선일보를 반박하였다. 특이한 것은, 조작론자들이 “이승복군이 했던 말만 빼고 나머지는 다 사실과 다르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는 점이다.
      
      애당초 김종배 씨가 1992년 <저널리즘>에 의혹을 제기한 글을 실을 때 표적은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였다. <이 말 한 마디에 4천만은 공산주의자들을 인두겁을 쓴 짐승 정도로 여겼고, 북한을 ‘철천지 원수’로 대해온 게 사실이다>면서 그래서 <승복군이 남겼다는 외마디 절규를 추적하기로 했다>고 취재 동기를 밝혔던 것이다.
      
      ‘조선일보의 변호인’ 김태수 씨는 어제 나온 책(“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에서 <아마도 이것이 조작론자들이, 이 논쟁과 관련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했다. 조작론자들이 이승복의 말에 매달릴 경우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강인원 기자가 현장에 갔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이승복의 말도 저절로 부정할 수 있을 것이라 계산하였을지 모른다.
      
      조선일보사가 이승복 특종이 날조되었다는 글을 지속적으로 발표한 김종배씨와 ‘언론 오보 50선’ 전시회를 총괄한 김주언 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한 것은 1998년 11월17일이었다. 2002년 9월3일 1심 재판부는 공소 사실을 인정, 김주언에게 징역 6개월, 김종배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2004년 10월28일, 피고인 김주언에 대하여 징역 6개월의 집행유예, 피고인 김종배에겐 무죄를 선고하였다. 김종배는 1심에선 김주언보다 더 무거운 刑을 선고 받았지만 항소심에선 그동안 조선일보의 특종이 조작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이라고 믿었음에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서 무죄를 받았다. 사실관계의 확인을 위하여 노력한 점이 인정되어 ‘상당성 요건’의 혜택을 본 것이다. 대법원은, 2006년 11월24일 쌍방의 상고를 모두 기각, 항소심 선고를 확정지었다. 이로써 이 사건은 8년 만에 조선일보의 승리, 즉 강인원 기자의 특종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내가 金兌洙 변호사가 오래 준비해온 책의 원고를 받아 읽은 것은, 작년 7월 말 파리에서 출발, 인천공항으로 오는 에어 프랑스 機內에서였다. 나는 비행기를 타면 잠이 오지 않는다. 노르망디 여행을 마치고 귀국할 때 보려고 원고를 가지고 갔었다. 약 400페이지 책 분량을 10시간 동안 다 읽었다. 편집장으로서 인연을 맺고 줄곧 관심을 두고 있던 사건이었지만 진실에 다가가는 법정의 공방전은 어떤 추리소설보다도, 어떤 법정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기록문학 수준의 實錄이었다.
      
      김태수 변호사는 이 책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 기자 같이 취재하고, 수사관처럼 파고들며, 철학자처럼 사색한다. 그가 확정해야 할 사실은 법정에서 통하는 것, 즉 입증 가능해야 하는 것이니 방증 자료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사진과 증언, 그리고 합리적 추리로 쌓아올려야 하는 구조이다. 더구나 상대방이 끈질기게 공격하는 허점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막아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즉 金 변호사의 분투에 힘입어 이승복의 진실은 더욱 단단해졌다. 많은 공격을 받아내고 살아남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8년간의 법정 공방을 통하여 우리는 이승복의 결정적 발언에 대하여,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교육적 배경에 대하여, 그리고 조선일보의 특종 과정에 대하여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이것이 8년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이 책을 읽으면 조선일보 특종을 조작이라고 몰아붙이는 세력의 주장은 정교하고 복잡한데 방어 논리는 간단하다. “나는 현장에 갔고, 그 말을 들었다”뿐이다. 문제는 自明(자명)하게 보이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과정의 어려움이다. 의혹 제기는 쉽지만 결백 입증은 어렵다. 광우병 선동이 좋은 예이다.
      
      金 변호사는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고문 변호사를 맡아 좌익 선동가들과 여러 차례 싸워본 사람인데, 이 책에서 아주 철학적인 소감을 피력하였다. 좌경 선동에 속지 않으려면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오컴의 면도날’이란 명제를 제시하였다.
      
      <한 마디로 진리는 단순하고 명쾌해야 한다는 뜻이다. 짧지만 정직한 것, 이것이 과학이다.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는 너무나 自明한 이치여서, 왜 그 체제로 가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데는 여러 말이 필요가 없다. 그냥 “그게 속편하니까”이다. 복잡한 이론과 화려한 말의 성찬으로 포장된 좌파의 이념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끝없는 세뇌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지탱될 수 없는 빅 브라더의 체제를 감싸려다 보니 말이 자꾸 길어지고 어려워지고 비틀리게 되는 것이다.>
      
      김태수 변호사는 법정 공방전 과정에서, 그리고 이 책에서 김종배 씨의 글을 정밀 분석하여 그 모순점들을 낱낱이 지적하고 특종을 誤報로 몰아가려다가 스스로 오보를 하게 된 원인을 파헤쳤다. 筆誅(필주), 즉 글로써 사람을 베는 수준의 엄정한 비판이다. 글을 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이기도 하다.
      김종배씨는 <저널리즘) 기사에서 스스로 “냉전의 잔영을 깨고자” 취재에 나섰다고 밝혔는데 이런 자세가 문제의 핵심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나선 것이 아니라, ‘깨려고’ 나섰다는 얘기다. 이처럼 그 대상이 조작된 것임을 전제로 하고 추적에 들어갔으니, 취재과정에서 접하는 자료들이 제대로 보였겠는지 의문이 든다. 어떤 목적에 사로잡히면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의 말 대로 김종배 씨는 “이승복 신화(神話) 이렇게 조작됐다”는 식의 흥분된 단정을 하였는데, 글의 後記에서 예의 없는 표현을 남긴 점을, 김태수씨는 놓치지 않았다.
      
      <대학신문사에서 편집국장을 지냈다고 하니 글쓰는 재주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기자의 생명인 취재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지 못했고 경험도 부족했을 것이다. ‘대응 논리를 마련해 놨을지 모른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애써 취재에 응해준 취재원의 ‘뒤통수에 돌을 던지는’ 그야말로 무례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 아닌가. 나는 기사열람을 하면서 이런 표현을 발견하면 해당 기자를 엄하게 나무라곤 한다. 직설적인 표현보다 이런 식으로 빙빙 돌려서 비꼬는 것이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기사 검증, 그리고 김태수 변호사가 강인원 기자의 특종을 증명하려고 모은 사실들의 축적, 그리고 법정에서 확정된 판결에 힘입어 이제 우리는 ‘조작세력’이 내걸었던 구호-‘반공구호 앞엔 진실도 필요 없나?’를 되돌려줄 수 있게 되었다.
      ‘이념 앞엔 진실도 필요 없나?’ ‘신념이 사실보다 위인가?’
      
      김 변호사는 이 책에서 말한다.
      
      <우리는 사실의 聖域(성역)이 의견에 의해 오염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정직하게 사실을 좇아야 하고, 드러난 사실 앞에 겸허해야 한다. 의견은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
      
      왜 이승복 一家가 피살된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은 많았지만 강인원 기자만 특종을 했는가. 바로 이 점 때문에 언론계 안에서도 誤報라는 말을 들었다. 이 책에서 그 의문도 풀린다. 姜仁遠씨는 이렇게 말하였다.
      
      “시체를 직접 봤다는 사람들을 찾아 시체가 어떤 모습이냐고 물었더니 참상을 자세히 말해 주었는데, 입이 찢어져 죽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너무 끔찍하고 이상하게 생각돼 ‘왜 그렇게 죽였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공비들에게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입을 찢겨 죽었다고 해 그 말을 받아 적었습니다. 기자 초년병으로서 원칙대로 취재를 하다가 보니 특종을 건진 것 같습니다.”
      
      기자가 당연히 가져야 할 ‘왜?’라는 의문이 특종을 만든 것이다. 원칙의 중요성이다.
      
      김태수 변호사는 <이승복(李承福) 사건의 본질은 간단하다>고 했다. 승복이도, 공비도 ‘평소 배운 대로’ 말하고 행동했을 뿐이란 것이다. 당시의 반공교육은, 惡을 惡이라고 말하도록 가르쳤다. 사실대로 가르친 것이다. 敵과 惡의 편을 들고자 작심한 이들로선 이게 불만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조선일보 특종을 부정하면 반공교육을 부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태수 변호사가 지켜낸 이승복의 진실은 생명, 시간, 돈, 노력 등 비싼 代價로 얻은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 굴복하는 자에게 자유란 없다. 저 凍土(동토)의 왕국의 멈춰버린 시계에서 볼 수 있듯이 압제에 맞서 싸우지 못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건 고달픈 노예의 삶뿐이다. 그러므로 자유의 裏面(이면)은 투쟁이다. 한 아이가 피로써 이를 증명했다. 그 울림이 국민들을 하나로 모았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밑거름이 되었다.>
      
      김태수 변호사는 이 책을 써나가다가 문득 45년 전에 죽은 이승복 군이 사실은 자기와 동시대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만 남아 있는, 먼 과거에 존재했던 그런 인물이 아니라, 지금 어디서든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그 낯익은 선배들 중 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에게는 이 법정투쟁기를 쓰는 과정이 지나간 세대와의 만남이자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끼리의 대화이기도 했다. 이 대화를 통하여 그는 기성세대들이 戰後의 폐허 속에서 얼마나 이 나라를 살찌워 왔는지 그들이 얼마나 단단하게 이 나라를 지탱해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와 기준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인의 가장 큰 도덕적 타락은 ‘악마의 변호인’이 된 점이다. 恩人(은인)을 핍박하고, 원수를 비호하는 背恩忘德(배은망덕)의 죄를 지었다. 잔인한 자를 동정하니, 동정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잔인하였다. 천사 같은 이승만, 박정희, 국군, 미국, 이병철, 박정희를 미워하고 악마 같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편을 드는 인간은 저지르지 못할 죄가 없고 하지 못할 거짓말이 없다.
      
      악마를 감싸기 시작하면 모든 도덕률의 기반이 무너진다. 眞僞(진위)분별, 善惡(선악)구분, 彼我(피아)식별 기능이 마비된다. 그런 타락의 代價(대가)는 ‘악마의 핵무기’와 ‘종북 得勢(득세)’로 나타나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모든 게 自業自得(자업자득)이다.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 진실도 공짜가 아니다. 용기가 있어야 진실을 볼 자격이 있다. 爭取(쟁취)한 진실 위에 正義(정의)를 세워야 자유를 지킬 수 있다. 이승복은 피의 외침으로 그런 진실을 말하였다. 이 진실 앞에서 ‘악마의 변호인’은 無力해진 것이다.

    [출처 : 조선 pub (http://pub.chosun.com)]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 책 소개|
      
      

      
      
      ‘反共자유의 보루’가 된 50代에 이 책을 바친다!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조갑제닷컴 刊, 김태수 著, 416페이지, 1만 5000원)는 선동가들의 허구와 위선을 가차 없이 폭로, ‘反共소년’의 진실을 법정에서 살려낸 ‘조선일보의 변호인’ 김태수(金兌洙) 씨의 實錄이다. 이 책은 어떤 추리소설보다, 어떤 법정드라마보다도 감동적인 記錄문학이자 斷罪文이다.
      
      이승복에 대한 이야기는 교과서에서도 사라지고, 그의 동상도 사라졌다. 이승복이 살았다면 56세이다. 깨어 있는 모든 국민들, 특히 ‘反共자유의 보루’가 된 50代에 이 책을 바친다.
      
      
      이승복은 배운대로 사실대로 말했다!
      
      눈 덮인 강원도 산골의 火田民(화전민)들을 학살하며 北上(북상)하던 무장공비들은 1968년 12월9일 밤 외딴집으로 잠입, 공부하는 초등학교 2학년생 이승복에게 묻는다.
      “야, 너는 북한이 좋으냐, 남한이 좋으냐?”
      “우리는 북한이 싫어요. 공산당은 싫어요.”
      이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공비가 “야!”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승복이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올렸다. 버둥거리는 승복이에게 공비 한 놈이 다가가 칼을 입 속으로 쑤셔 박았다. 두 동생도 깨어나 울기 시작했다. 공비들은 둘을 거꾸로 들어 올린 뒤, 벽에 머리를 패대기쳐 죽였다. 어머니도 죽였다. 형(이학관)은 수십 군데 찔리고도 살아남아 역사의 證人이 되었다.
      
      
      ‘왜’가 특종을 만들다!
      
      공산당이 사랑한다는 바닥 삶 속의 그 불쌍한 민중을 공산당이 학살한 치명적 증거는 승복이의 찢어진 입과 특종으로 남았지만, 언론과 기자의 탈을 쓴 ‘악마의 변호인들’은 조선일보 姜仁遠(강인원) 기자의 특종을 조작이라고 몰아붙였다. 강인원 기자의 특종은 ‘왜?’라는 의문에서 나왔다.
      
      “시체를 직접 봤다는 사람들을 찾아 ‘시체가 어떤 모습이냐’고 물었더니 참상을 자세히 말해 주었는데, ‘입이 찢어져 죽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너무 끔찍하고 이상하게 생각돼 ‘왜 그렇게 죽 였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공비들에게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말했다가 입을 찢겨 죽었다고 해 그 말을 받아 적었습니다. 기자 초년병으로서 원칙대로 취재하다 보니 특종을 건진 것 같습니다.” (姜仁遠)
      
      
      조선일보와 姜仁遠의 승리
      
      1998년 11월17일, 조선일보는 ‘이승복 특종’이 날조되었다는 글을 지속적으로 발표한 김종배(前 미디어오늘 편집장) 씨와 ‘언론 오보 50선’ 전시회를 총괄한 김주언(前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2002년 9월3일 1심 재판부는 공소 사실을 인정, 김주언에게 징역 6개월, 김종배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2004년 10월28일 피고인 김주언에 대하여 징역 6개월의 집행유예, 피고인 김종배에겐 무죄를 선고했다. 김종배는 1심에선 김주언보다 더 무거운 刑(형)을 선고 받았지만 항소심에선 그동안 조선일보의 특종이 조작이라고 주장했던 것이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이라고 믿었음에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서 무죄를 받았다. 즉 취재를 통하여, 사실관계의 확인을 위하여 노력한 점이 인정되어 ‘상당성 요건’의 혜택을 본 것이다. 대법원은, 2006년 11월24일 쌍방의 상고를 모두 기각, 항소심 선고를 확정지었다. 사법부는 8년 만에 조선일보의 승리, 즉 姜仁遠 기자의 특종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의견은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神聖)하다.”
      
      “이승복(李承福) 사건의 본질은 간단하다. 승복이도, 공비도 ‘평소 배운 대로’ 말하고 행동했을 뿐이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 굴복하는 자에게 자유란 없다. 저 동토(凍土)의 왕국의 멈춰버린 시계에서 볼 수 있듯이 압제에 맞서 싸우지 못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건 고달픈 노예의 삶 뿐이다. 그러므로 자유의 이면(裏面)은 투쟁이다. 한 아이가 피로써 이를 증명했다. 그 울림이 국민들을 하나로 모았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밑거름이 되었다.” (本文 중)
      
      “의견은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神聖)하다. 우리는 사실의 성역(聖域)이 의견에 의해 오염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정직하게 사실을 좇아야 하고, 드러난 사실 앞에 겸허해야 한다. 의견은 그 다음이다. 궤변은 복잡하지만 진실은 간단하다. 이승복은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피의 외침으로 이를 증명했다.” (本文 중)
      
      
      이념 앞엔 진실도 필요 없나?
      
      김태수 변호사는 이 책을 쓰다가 문득 45년 전에 죽은 이승복 군이 “사실은 나와 동시대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만 남아 있는, 먼 과거에 존재했던 그런 인물이 아니라, 지금 어디서든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그 낯익은 선배들 중 한 사람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金 변호사에게는 이 법정투쟁기를 쓰는 과정이 지나간 세대와의 만남이자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끼리의 대화이기도 했다. 이 대화를 통해 그는 기성세대들이 戰後(전후)의 폐허 속에서 얼마나 이 나라를 살찌워 왔는지 그들이 얼마나 단단하게 이 나라를 지탱해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와 기준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姜仁遠 기자의 특종을 검증하고 증명하려는 義人들의 노력, 정직하게 증언해준 순박한 사람들, 그리고 법정에서 확정된 판결에 힘입어 이제 우리는 ‘조작세력’이 내걸었던 구호- ‘반공구호 앞엔 진실도 필요 없나?’를 이렇게 되돌려줄 수 있게 되었다.
      ‘이념 앞엔 진실도 필요 없나? 당신들은 신념을 사실 위에 놓는가?’
      
      
      |차례|
      
      머리글 \ 老兵을 위하여
      
      1장\조작론의 습격
      제1절 상징의 파괴가 시작되다
      제2절 이승복이 불편한 사람들
      제3절 <저널리즘> 1992년 가을호
      보 론 오보 전시회 유감
      
      2장\1968년 12월9일 밤
      제1절 쟁점의 구조
      제2절 이승복 사건의 배경
      제3절 살육의 현장
      제4절 학관씨의 기적적인 생환
      제5절 다음날 현장을 찾아간 사람들
      제6절 이승복의 외침은 역사적 실체다
      
      3장\억지와 궤변의 향연
      제1절 이어지는 공방
      제2절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제3절 다른 신문들은 어떻게 보도했는가?
      제4절 조작론의 또 다른 논거, 他社 기자들의 증언
      
      4장\姜 대 姜의 진실게임
      제1절 강인원씨의 중대한 착각
      제2절 조선일보 기자와 경향신문 기자의 엇갈린 진술
      
      5장\낡은 현장사진 속의 진실
      제1절 낡은 필름의 발견
      제2절 현장사진과 관련된 몇 가지 쟁점
      제3절 검증을 마치면서
      
      6장\1968년 12월10일 현장
      제1절 항소심 재판의 개시
      제2절 항소심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
      
      7장\사실은 신성하다
      
      후기\고영일씨의 시체 사진
      
      
      |著者 소개|
      
      金兌洙(김태수)
      
      
      
      고려대학교 법학과(1986년 입학)를 졸업하고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양 극단의 주장과 이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분쟁의 한복판에서 ‘고용된 총 잡이’가 아니라 ‘온건한 합리주의자’로서 의뢰인에게 유익하고 正義의 요구에도 어긋나지 않는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다.
      
      조선일보사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언론의 자유와 한계에 관한 중요 판례들을 많이 이끌어 냈으며, 현직 대통령이 제기한 소송에서 세 번씩이나 맞붙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바둑이나 당구, 포커 게임 등을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십대로 2011년 겨울 법조인으로서는 최초로 도박 관련 서적 《51% 게임 손자병법》을 출간하기도 했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