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영(安相英) 부산시장 자살과
    채동욱 부장 검사


    친구인 최병렬(崔秉烈) 한나라당 대표는
    『안상영(安相英) 시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인간적인 모멸』이었다고 했다.

    趙甲濟    


  • ▲ 조갑제 대표.ⓒ
    ▲ 조갑제 대표.ⓒ

    [뉴데일리 편집자 주]

    <안상영 부산시장 자살 사건>

    서울시 7급 토목직으로 시작,
    25년 만에 관선 부산시장 오른 기술직 공무원의 대부

    “억울하다”, 죽음으로 무죄 항변..
    [서울 중앙지검 조사자 릴레이 자살] 이때부터 시작


    2004년 2월 4일,
    수뢰 혐의로 구속기소 돼
    부산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안상영(당시 64세) 부산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당시 검찰의 수사를 받던,
    [사회 유명인사 릴레이 자살]의 시발점이 됐다.

    이 가운데  
    안상영 시장,
    부산지방국세청 공무원 전모씨,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등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채동욱)에서
    수사를 받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안상영 시장은
    4일 오전 1시 3분께
    부산 사상구 주례동에 있는 부산구치소 병사 상층 10호실
    출입문 옆 선풍기 걸이에 러닝셔츠를 찢어 만든 끈을 걸어 목을 맸다.

    2003년 10월 진흥기업 박모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로 구속돼
    재판을 받던 안상영 시장은 자살 당시
    부산지역 운수업체인 동성여객으로부터 3억원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새로운 혐의로 검찰의 추가 조사를 받고 있었다.

    안상영 시장의 자살은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안상영 부산시장의 빈소에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을 보내 조문을 했다.
    사회적으로는 검찰의 [강압수사] 논란이 불거지는 계기가 됐다.

    안상영 시장이
    끝까지 억울함을 호소하며 무죄를 주장했고,
    추가 혐의 수사를 이유로
    안상영 시장을 부산에서 서울로 이송한 검찰이
    조사도 하지 않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 보낸 직후
    자살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사건 진상조사에서는
    부산-서울 이송과정에서
    안상영 시장이 [포승줄]로 결박당한 상태에 있었으며,
    소변을 보게 해달라는 그를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하고,
    교도관이 깡통을 가지고 소변을 받아 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이 의도적으로 [욕보이기]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자살 직후 발견된 유서에는
    “희망 없는 고통의 시간, 사회적인 [수모]를 감내하기 어렵다”
    글귀가 적혀있었다.

    안상영 시장이 자살하면서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크게 당혹스러워했다.

    법무부는 즉시
    정상명 차관을 반장으로 22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특별진상조사반을 편성,
    수사과정 및 수감생활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파악했다.

    [욕보이기] 논란이 제기된 부산-서울 수감 과정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다.

    서울중앙지검측은
    안상영 시장에 대한 [강압수사]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부산에서 불러 올린 그를 조사도 하지 않고 다시 내려 보낸 이유에 대해서는
    부인과 함께 조사할 필요가 있어 소환했으나
    갑자기 부인이 검찰에 나올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4년 3월호 <月刊朝鮮>은 옥중에서 자살한
    안상영(安相英) 부산시장 사건을 깊게 다뤘다. 


    安相英 부산시장은 2003년 10월16일 「진흥기업 朴英俊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고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安시장은 朴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며 재판을 진행 중, 2004년 2월4일 새벽 1시에 부산 구치소에서 목을 매 숨졌다.

    安시장은 구속 당일부터 2004년 1월27일까지 일기를 썼다.

    安시장의 일기는 安시장이 구속 후 자살하기까지 심경 변화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처음엔 재판에 강한 집념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명예의 실추」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2004년 1월27일, 「安시장이 부산 동성여객 대표 이광태씨로부터 3억원을 받았다는 사건」이 추가로 발표되었고, 安시장은 1월29일 이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安시장은 서울지검에서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고, 2월3일 서울구치소에서 부산구치소로 再이송되었으며, 이날(4일) 새벽 목을 맸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채정(65), 딸, 혜원(37), 아들 정훈(30)씨가 있다.


    李相欣(이상흔) 기자가 쓴 이 기사는
    서울지검으로부터 받은 '대우'가 자살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주장하였다.
     
    [1월29일 安相英 시장은 「이광태 사건」을 조사받기 위해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朴相憲 특보는 『서울구치소로 이감한 것이 安시장을 죽게 만든 직접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1월29일 오전 8시에 安시장을 수갑을 채운 뒤 포승줄을 묶고 호송차에 태워 서울로 끌고 갔습니다. 호송차에서 오줌을 누겠다고 하니까, 교도관이 깡통을 가지고 와서 받아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검찰은 安시장을 한 번도 조사하지 않고 2월3일 부산구치소로 다시 보냈습니다.
    安시장이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겠습니까?』
      
    1월30일 오전 9시30분 서울지검은 安시장을 서울지검 구치감에 데려와 기다리게 했다.
    安시장은 이날 오후 4시30분까지 일곱 시간 동안 구치감 독방에서 조사를 기다렸다.
    朴相憲 특보의 얘기다.
      
    『구치감에는 이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허리가 아픈 분이 추운 데서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安시장이 어디 도망갈 사람입니까? 도대체 조사도 안 할 거면서 왜 노인네를 서울지검에 불러 간 겁니까』
      
       당시 서울지검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安시장을 조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安시장이 「부인을 통해 이광태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을 돌려줬다」고 주장해서 부인에 대한 수사를 동시에 할 필요가 있었다. 1월30일 시장 부인 金埰貞씨에게 소환통보를 했고, 이에 따라 安시장은 서울지검의 구치감까지 왔다. 그러나 安시장 부인이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출석하지 않아서 安시장을 서울구치소로 돌려 보낸 것이다』
      
       安시장은 2월3일 부산교도소行 죄수 5명과 함께 호송되어 부산구치소에 되돌아 온 후 곧바로 자살했다.
      
       1월27일 이후 일기쓰기를 중단한 安시장은 1월29일 「서울구치소」로 옮겨간 이후의 생활에 대해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친구인 崔秉烈 한나라당 대표는 『安相英 시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인간적인 모멸』이었다고 했다.
       『부산구치소에서 서울구치소로 호송해 가는데, 손에는 수갑을 채우고 그 위에 포승줄을 꽁꽁 감았다고 해요. 安相英이가 도망갈 흉악범입니까. 화장실도 못 사용해서 교도관이 깡통으로 오줌을 받았답니다. 이게 얼마나 모멸감을 주겠어요. 그렇게 갔으니 얼마나 심신이 지쳤겠어요.
    그런데 다음날 조사한다고 서울지검에 불러 다 놓고 앉혀서 오후 4시까지 기다리게 했다고 해요. 계산된 건지는 몰라도 엄청난 모멸감을 안겨 준 거예요』
      
       친구 朴煐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安시장은 명예를 제일 소중하게 여겼어요. 그런 사람이 자신이 부산시장 관용차를 타며 자랑스럽게 오르내리던 경부 고속도로를 수갑을 찬 채 올라갔으니 죽고 싶었을 거예요』
      
       한나라당의 진상조사단은 安시장의 자살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은 安시장을 무리하게 이감 지휘를 해서 서울로 올려 보냈다.
    검찰 구치감에 불러 하루 종일 대기시켰다. 조사도 하지 않고 다시 安시장을 부산구치소에 돌려보냈다. 수갑과 포승을 찬 채 서울-부산을 장시간 오르내리도록 하면서, 용변을 호송차 안에서 처리하도록 했다. 극도의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케 만들었다.
    이것이 安시장을 자살로 몰아간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법원가에는 「6조지」라는 재미있는 속설이 떠돌아다닌다.
       『형사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조사한다고 불러 조지고, 판사는 기일 연기해서 조지고, 감옥 간 사람은 먹어 조지고, 가족들은 재판 비용 마련하느라 재산을 팔아 조진다』는 얘기다.
      
       모든 피의자는 법원의 판결이 있을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해야 하는 것이 형사소송법의 정신이다. 판결할 때까지 피의자는 무죄라는 얘기다. 하지만 피의자 신분인 安시장은 흉악범들과 똑같은 처우를 받았다. 수갑에 묶이고 그 위에 포승줄까지 묶여 경부고속도로를 오르내렸다. 여론은 힘있는 사람들을 구속하고 수모를 주는 검찰에 박수를 보냈다. 검사는 서울로 安시장을 불러 올려 놓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법무부는 2월14일 「수사 관련자들은 구속 피의자를 소환해 구치감에 장기 대기토록 하였다가 조사 없이 돌려보내는 경우, 조사하지 못한 사유를 설명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서울지검에 주의를 줬다.

       한국의 사법부는 이 피의자가 자살할 때까지 보석 신청을 허용하지 않았다.
    40년 가까이 공직자로 근무한 그의 경력, 400만 시민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고려대상이 되지 못했다.

    安시장의 한 친구는 『安시장의 죽음은 야만적인 검찰권의 행사가 초래한 것』이라며 『누가 검찰에게 피의자를 무조건 감옥에 가두고 시들어 죽게 하는 권한을 주었느냐』고 흥분했다.

       우리는 安시장이 닦은 사직터널을 지나며, 목동 新시가지를 지나며, 올림픽대로를 달리며
    그를 기억할지 모른다. 『나는 코피 난다고 쉴 만큼 한가한 팔자가 아니다』며
    밤낮 없이 일한 개발연대의 神話 安相英은 그렇게 갔다.
    그는 무죄인으로 죽었고, 그런 점에서 검찰은 패배했다.] 
      

    국민일보는 2004년 2월4일자에서 이렇게 보도하였다.
    이 기사에 채동욱이란 이름이 나온다.


  • ▲ 채동욱 전 검찰총장ⓒ
    ▲ 채동욱 전 검찰총장ⓒ



    그동안 안 시장을 수사해왔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채동욱)는 이날 불필요한
    의혹을 차단하기 위한 듯 극히 이례적으로 수사경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검찰은 안 시장이 동성여객 등 부산 운수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지난달 29일 부산구치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감한 뒤 다음날 서울지검내 구치감으로 데려왔다.
    검찰은 중요 참고인인 안 시장의 부인 김모씨가 ‘몸이 아프다’며 출석하지 않자 안 시장을 조사하지 않고 구치소로 돌려보냈고,그 뒤 사건을 부산지검으로 이첩하면서 3일 안 시장을 부산구치소로 재이감시켰다. 따라서 안 시장에 대한 조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과정에서 강압이나 가혹행위가 벌어질 개연성 자체가 없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그러나 동성여객으로부터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아왔던 부산지방국세청 공무원 전모(53)씨가 지난 2일 승용차안에서 분신자살한 데 이어 안 시장마저 자살함으로써 수사방식에 문제가 있었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검찰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법무부는 사안이 중대하다고 보고 이날 곧바로 법무부차관을 반장으로 22명이나 되는
    초 매머드급 특별진상조사반을 편성했다. 조사반은 부산 및 서울구치소의 수감관리 소홀 및 질병치료 관련 의혹,서울지검 및 부산지검의 관련자 수사과정 등에서의 문제점 등을 집중조사하게 된다.


    [조갑제 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