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정부 예산 자동 삭감, 이른바 '시퀘스터'(sequester) 또는 '시퀘스트레이션'(sequestration) 발동 시기가 21일(현지시간)로 일주일을 남겨놓고 있다.

    미국 백악관과 행정부, 의회 등 정치권은 이 사안이 경제, 정치, 사회 전반에 줄 후폭풍을 너도나도 경고만 하고 있고 정작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고 있다.

    850억달러에 달하는 정부 지출이 깎일 시점이 시한폭탄처럼 다가오고 있지만 의회는 한가롭게 이번 주 아예 문을 닫아걸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의회 비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재계와 시장 전문가들은 새해 벽두 미국 정치권이 초읽기에 몰려 '재정 절벽'(fiscal cliff) 협상을 타결했던 것처럼 막판 극적 합의를 기대하고 있다.

    합의에 실패해 백악관ㆍ민주당과 공화당의 관계가 경색되면 이후 임시예산안 종료(3월 27일), 예산결의안 마감(4월 15일), 부채 한도 일시 증액 종료(5월 18일) 등의 협상도 정치권 대립으로 난항을 겪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 시퀘스터 또는 시퀘스트레이션이란 = 미국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가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1985년 의회는 '균형 예산 및 긴급 적자 통제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예산을 강제 조정하는 것을 시퀘스터나 시퀘스트레이션이라고 한다.

    누적되는 재정 적자를 줄이려 다음 회계연도에 허용된 최대한의 적자 규모 내로 적자의 폭을 줄이지 못하면 지출 예산을 애초 설정된 목표에 따라 자동으로 삭감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 제도에 따라 1986년부터 매년 적자 규모를 축소해 1991년 균형 예산달성에 성공했으나 최근 적자가 눈덩이처럼 다시 불어나고 있다.

    이 법이 적용되는 것이 애초 올해 1월 1일이었으나 정치권이 세금 인상과 예산 삭감이 한꺼번에 겹칠 경우, 즉 재정 절벽에 빠지면 미국 경제가 회복 불가능의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해 세금은 일부 인상하면서 시퀘스터 발동 시기를 두 달 뒤로 미뤄놓는 미봉책에 합의한 것이다.

    이런 임시방편 조처 이후 미국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예산 삭감 및 세수입 확대 등을 위한 진지한 토론을 벌여야 했지만 총기 규제, 이민 개혁 등 산적한 현안으로 미적대다가 다시 초읽기에 빠진 것이다.

    ◇ 예산 삭감 규모는 = 계산식에 의하면 미국 정치권이 3월 1일 이전에 예산 삭감안에 합의하거나 시퀘스터 발동 시기를 다시 연기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정부 지출이 감축된다.

    미국 회계연도가 10월 1일 시작돼 다음해 9월 30일 끝나기 때문에 올해 3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줄여야 하는 예산이 850억달러다.

    이어 올해 10월부터 시작되는 2014회계연도를 비롯해 향후 10년간 회계연도별로 1천100억달러씩 총 1조2천억달러가 자동으로 깎인다.

    미국 정치권 합의에 따라 감축 예산 중 절반은 국방비이고 나머지 절반은 비국방 내수 예산이다.

    메디케어(노인 의료보장),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장) 등 각종 사회복지 프로그램 예산도 대폭 줄어들게 된다.

    ◇ 왜 협상이 지지부진한가 = 공화당은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등을 중심으로 한 사회보장 및 각종 공제 프로그램을 대거 손질함으로써 재정 적자를 줄이자고 주장한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부유층 및 기업을 상대로 한 세금 인상을 통한 세수입 증대에는 공화당 지지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극구 반대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는 저소득층 등을 위한 프로그램에 칼을 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대신 기업이나 부유층의 탈루를 막음으로써 세수를 늘려 부족한 예산을 메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통적 유권자층을 뒤에 업고 있어서 협상이 쉽사리 진전되지 않는 것이다.

    ◇ 예상 시나리오는 = 합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시간이 촉박한 점을 고려하면 현재로는 발동 시기를 연기하는 방안이 실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시퀘스터가 미국 경제에 줄 파장과 그에 따른 비판을 정치권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권이 재정 절벽 협상 때 시퀘스터 발동 시기를 미뤄놓은 것을 비롯해 국가 부채 한도 조정 시점도 연기하는 등 '땜질 처방'으로 일관해온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막판에 몰려 마지 못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연기안을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

    반면 공화당 일각에서는 '실제 시퀘스터에 맞닥뜨려보자'는 강경론도 있어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지극히 미지수다.

    오바마 대통령과 협상 파트너인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여전히 상대방 비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 어떤 영향 미치나 = 정부 지출 축소는 공공 부문에 집중적으로 타격을 준다.

    국방비가 대규모로 삭감돼 해외 주둔군 및 전력 배치에 상당히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방산업체 등 관련 업계도 직격탄을 맞는다.

    국방부는 전날 리언 패네타 장관 이름으로 의회와 80만명에 달하는 민간인 직원에게 상당 기간 무급 휴가를 시행해야 할 것 같다고 공식적으로 알렸고 존 케리 국무장관은 예산 감축으로 외교 공관을 철수해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시퀘스터가 장기화하면 일부 정부 기관이 문을 닫을 수도 있고 무급 휴가가 아닌 대량 해고로 이어질 소지도 있다.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고용 상황이 다시 악화하고 기업 투자 및 소비 지출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4분기 재정 절벽에 대한 우려로 정부 지출이 425억달러 감소하면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3% 끌어내렸듯이 시퀘스터가 작동하면 올해 성장률을 0.5~1.0%포인트 깎아 먹을 수 있다.

    ◇전망도 먹구름 = 미국은 3월 27일로 임시예산안이 종료되고 5월 18일에는 일단 미뤄놓은 부채 한도 일시 증액 조치가 종료된다.

    시퀘스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단행된다면 정치권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해 모든 이슈에서 사사건건 부닥칠 수밖에 없다.

    국가 부채의 법정 한도를 상향조정하지 못하면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또 한 번 강등될 공산이 크다.

    미국 국가 부채는 이미 지난해 12월 31일 법정 상한선인 16조4천억달러를 넘어섰고 재무부가 긴급 조치를 통해 2천억달러를 조달함으로써 약 2개월간 시간을 벌었으며 미국 의회가 법정 상한선을 5월 19일까지 단기적으로 적용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 한시적 증액안을 가결처리했다.

    ◇ 한국에 미칠 영향은 = 세계 금융 시장이 긴밀하게 연결돼 유럽 채무 위기나 미국 재정 절벽 위기가 한국 증시에 큰 영향을 줬던 점을 고려하면 시퀘스터가 발동하면 우리 경제에도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미국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국방 예산 감축이 지속되면 주한미군 감축이나 방위비 분담 확대 요구 등으로 이어질 공산도 있다.

    레이먼드 오디어노 육군참모총장은 최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2013회계연도 국방비 감축이 이미 태평양군사령부(PACOM) 전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으며 향후 몇 년간 태평양 지역에서의 군사 운영 능력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북한 위협에 대비해 한국 내 방어력은 최고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지만 해외 주둔 미군을 상대로 한 가족 동반 프로그램과 군인 프로그램, 미국 시민 프로그램 감축이 한국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 합의로 시퀘스터 단행 시점이 다시 연기된다면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더라도 미국이나 한국 등의 경제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