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민 가구 모두에 임대주택 공급토지주 반발, 주민 갈등 '산 넘어 산' 네티즌 "진짜 복지도 모르면서..." 박 시장 비판
  • ▲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연합뉴스(자료사진)
    ▲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연합뉴스(자료사진)

    잘하면 우리나라 주택정책사에 길이 남는 ‘작품’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현실을 모르는 순박한(?) 시민단체 출신 시장의 대표적 ‘실정’으로 기록될 수 있다.

    잘하면 대박, 아니면 쪽박인 제로섬 게임이 서울 강남 대표적 판자촌인 구룡마을 개발을 놓고 시작됐다.

    서울시가 지역 최대 무허가 판자촌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대한 공영개발 계획을 본격 추진한다. 앞서 20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SH공사를 사업자로 하는 구룡마을 공영개발계획을 심의, 조건부 통과시켰다.

    시가 내놓은 공영개발 방식의 핵심은 모든 거주민 가구에 대한 임대주택 공급에 모아져 있다.

    그동안 무허가 판자촌 개발의 역기능으로 지적돼 온 거주민 주거권 문제를 임대주택 공급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시는 구룡마을에 임대주택 1천250세대, 일반 분양주택 1천500세대 등 모두 2천750가구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임대주택을 제외한 나머지 가구는 일반에 공급한다.

    시의 계획이 차질 없이 시행된다면 이 지역은 무허가 판자촌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하는 모범 사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벌써부터 격앙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토지주 등 공영개발 반대 주민들의 저항이 예사롭지 않다.

    이들은 지난해에도 시청 난입을 시도하면서 시의 공영개발 방식에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거주민 가구 전체에 대한 임대주택 공급이라는 큰 틀만 내놨지 구체적인 임대조건, 임대대상자 선별을 위한 기준 등이 아직 나오지 않아, 세부안에 따라 또 다른 갈등이 불거질 우려도 있다.

    거주민 중 임대조건에 맞지 않거나 시가 내놓은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실제 이 지역은 개발방식을 놓고 해묵은 갈등이 계속돼 왔다.

    토지주와 거주민간의 갈등에 더해 주민사이에도 개발방식에 대한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외부 투기꾼들의 위장전입사례도 적지 않아 주민 갈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구룡마을 문제가 서울시와 주민간의 법정다툼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시의 공영개발에 맞서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행정소송 및 효력정지 가처분을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일부에서는 구룡마을 개발 문제는 결국 법정에서 결론이 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시가 공영개발 방식을 밝히면서 온라인 상에서는 박원순 시장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현실을 모르는 박 시장이 ‘이상(理想)’만으로 섣부른 복지정책을 남발한다는 지적이다.

    “구룡마을에 진짜 빈민들 몇이나 될까...죄다 외제차 몰면서 건물 있는 인간들...보상 미끼로 들어와서 빈민인척 사는 사람들 천지인데...진짜 복지가 뭔지도 모르고 겉으로만 빈민마을의 부자들에게 노다지를 안겨주는구나” -네티즌 po*****

    “내 돈 안 들어가니까....팍팍 쓰자. 내 돈이면 절대 안 쓴다. 복지정책도 팍팍하고. 재정이야 되든 말든. 다음 시장이 알아서 하겠지” -ur*****

    “부채도 많은 SH공사 동원해서 일회성으로 퍼주기 사업 벌이는 게 과연 올바른 정책인가요? 이런 식이면 누가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 살라고 하겠습니까? 판자집에 가서 몇 십 년 버티고 말지요. 국가는 서민을 잘 살게 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 방법이 자력갱생하는 직업교육같은 쪽으로 해야지 세금을 이런 식으로 퍼주기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정책일까요?” -ro********

    처음 민영개발 방식을 제안했다 뒤늦게 공영개발방식으로 방향을 바꾼 시의 무원칙 행정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다.

    구룡마을은 1980년대 말, 도심재개발 과정에서 밀려난 도시 빈민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 현재 1천242가구에 2천53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서울 최대의 무허가 판자촌이다.

    이 지역에 대한 개발 및 주민 주거권 보장 문제는 역대 서울시장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고민해 온 난제 중 하나였다.

    개발방식을 놓고 빚어지는 토지주와 거주민들의 극단적인 갈등, 거주민 사이 이해관계의 충돌, 시와 해당 자치구인 강남구 사이의 의견차 등 개발에 앞서 풀어야 할 걸림돌이 많아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개발방식을 둘러싼 지역 거주민들의 의견은 크게 둘로 나뉜다.

    민간 건설업자를 통한 민영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은 임대주택 공급에 초점을 맞춘 공영개발 방식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민영개발 방식의 당위성과 함께 공영개발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20년 넘게 살아온 거주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서는 민영개발을 통해 분양권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영개발로 임대주택을 모든 거주민에게 제공한다고 하지만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반면 공영개발을 찬성하는 주민들의 의견은 이와 딴판이다. 이들은 ‘진짜’ 구룡마을 주민들은 임대주택 방식을 원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룡마을 진짜 주인들은 공영개발을 통해 임대주택에서 편히 살 길 원한다. ‘딱지’니 분양권이니 하는 거 다 필요 없다”

    “민간개발하면 건설회사가 분양권을 거줘 줄 리 없지 않느냐? (분양권을)줘도 무슨 돈이 있어 들어가나?”

    주민 사이의 극심한 갈등은 시 역시 고민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시가 꺼내든 카드가 눈길을 끈다. 시가 해결방안으로 내놓은 것은 ‘마을공동체’. 박원순 시장의 핵심 정책 중 하나다.

    시는 이를 구룡마을 개발에 도입해, 주민 갈등을 풀면서 개발을 진행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시는 현재 구룡마을에 상주하는 강남구 소속 공무원에 외부전문가를 추가로 투입해 거주민 대표들과 협의체를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마을에 14명의 구청 공무원이 상주하고 있다. 여기에 전문가들을 추가해 주민자치회 등 주민 대표들과 공사 전반에 대해 협의를 진행할 것”

    “임시 이주대책, 토지 보상, 공사 착수에 따른 각종 현안들을 주민들과 함께 논의하며 풀어 나갈 계획이다”
    - 서울시 관계자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은 지금까지의 개발사업과 달리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했던 시민들에게 쾌적한 주거환경과 현지 재정착의 기회를 제공하는 개발사업의 대표적 모델이 될 것”
    - 이제원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구룡마을 개발사업은 공무원, 전문가, 주민 협의체 구성 → 토지보상계획 및 주민이주대책 수립 → 실시계획인가 등을 거쳐 2014년 말 착공에 들어가 2016년 말 마무리 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