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銀星 前국정원 차장의 증언:
    "김정일, 수금 다 안됐다고 김대중 訪北 연기했다” 

     
     趙甲濟    
      
    *2012년 3월호 월간조선 게재
    ⊙ 국정원이 중국은행내 김정일 비자금 계좌로 보낸 네 번째 돈(4500만 달러)이 기재 착오로
        송금 차질을 빚다
    ⊙ “6월 10일 오전, 북측에서 보낸 방북거절 電文을 본 임동원 국정원장이 긴급회의를 소집하였다.
        나도 전문을 읽었다”
    ⊙ ‘기술적 문제’로 연기되었다는 정부발표 뒤집는 증언
    ⊙ 김정일, ‘김일성 屍身 참배하지 않으려면 들어오지 말라’고도 협박
    ⊙ 김정일, 회담장에서 김대중에게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압박

     
  • ▲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2000년 6월 15일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만찬에서 잔을 부딪치고 있다.
    ▲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2000년 6월 15일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만찬에서 잔을 부딪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 국가정보원 국내담당 차장이었던 김은성(金銀星)씨는 <조갑제닷컴>에 자주 안보 관련 글을 써 올린다. 작년 12월 30일 그는 독재자 김정일(金正日) 사망 후의 남북한 정세를 분석, ‘보수(保守)는 둥지에서 뛰쳐나와 핵(核)개발도 고려해야’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필자가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퍼주기식 원조가 저들을 상전으로 만들었다. 북한은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방북(訪北) 하루 전에 돈을 보내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전문(電文)을 보냈다.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결국 경호와 통신기기 보완을 구실로 방북 일정을 하루 연기했다고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앞으로 북한에 대한 모든 지원은 반드시 반대급부가 있도록 해야 한다. 식량을 직접 북한 당국에 인도하면 주민통제를 위한 배급용으로 이용하거나 옥수수로 바꿔 주민들에게 나눠 준다. 배급제도를 해체시켜 시장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모든 물자에 대하여는 차관 형식을 밟아 지하자원 등의 현물(現物)상환이라도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이래야만 그들에게 책임감을 주고 통일자금을 쌓아 나갈 수 있다.>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하루 전에 돈을 보내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전문을 보냈다’는 문장이 나를 긴장시켰다. 정부 발표를 부정하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김 전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을 들었다. 김씨는 이 문장의 엄청난 의미를 잘 모르는 듯 강조점 없이 평이하게 설명했다. 다음 날 그를 찾아가 만났다.
        
      “돈 다 보낼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
     
      “그날이 2000년 6월 10일인데,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러 방북하기로 한 6월 12일(월) 전 토요일이었습니다. 6월 10일은 국정원 창설 기념일이고 직원들은 오전에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하였고, 저는 오후에 골프를 쳤으므로 기억이 또렷합니다.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던 운동장 스탠드엔 임동원(林東源) 국정원장, 권진호(權鎭鎬) 해외담당 차장, 그리고 병중(病中)이던 국내담당 차장을 대리한 제(당시 對共실장)가 앉아 있었습니다.
     
      오전 10시30분쯤이었습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김보현(金保鉉) 제5국장이 황급히 우리한테 왔어요. 그는 김대중-김정일 회담 준비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김 국장이 문서 한 장을 임 원장에게 건네면서 당황한 말투로 ‘정상회담 못하겠다고 합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원장도 문서를 읽더니 안색이 변해요. 일어서면서 ‘차장들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청 원장실로 옮겼습니다. 여기서 원장이 한 페이지짜리 문서를 회람시켰습니다. 북(北)에서 보낸 전문이었는데, 두 문장 정도 되었습니다. ‘나머지 돈을 다 줄 때까지 회담을 연기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컨대 수금(收金)이 완료되지 않았으니 평양에 올 수 없다는 협박조 글이었습니다.
     
      임동원 원장은 당황하기도 하고 화도 난 표정이었는데, 권 차장과 저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없느냐’고 했습니다. 남북회담을 여러 차례 치르면서 경험한 전례(前例)가 있어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북측에서 경호와 통신문제로 회담연기를 요청해 왔다고 발표하면 안 될까요.’ 북한과 회담할 때 늘 문제가 되는 게 경호와 통신이었거든요. 임 원장도 좋은 생각이라고 했어요. 한 15분 요담한 뒤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아마 그날 우리가 북측과 급하게 협의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을 거예요.” 
        
      김대중 회고록도 정상회담 연기이유 제대로 안 밝혀
       
    2000년 4월 27일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김은성 국정원 2차장(오른쪽).
      일요일이던 2000년 6월 11일 오전 청와대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이 6월 12~14일에서 13~15일로 하루 연기됐다”고 발표했다. “북한에서 준비가 덜됐다는 이유로 연기를 요청해 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김정일은 그러나 방북 첫날인 6월 13일 평양 백화원초대소에 머물던 김대중 대통령을 찾아가 만난 자리에서 “외신(外信)들은 미처 우리가 준비를 못해 (김 대통령을 하루 동안) 못 오게 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은성 전 차장의 증언은 정부 발표와 청와대 측의 설명을 뒤엎는 것이다. 김대중은 회고록에서 평양 방문이 하루 연기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돌연 북에서 평양 방문을 하루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10일 대남(對南)통신문을 보냈다. “기술적 준비관계로 불가피하게 하루 늦춰 13~15일 2박3일 일정으로 김 대통령님이 평양을 방문토록 변경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당시 대공(對共)실장 김은성씨가 보았다는 전문 내용엔 물론 그런 내용이 없었다. ‘하루 연기’가 아니라 ‘나머지 돈을 다 보낼 때까지 연기한다’는 엄포였다고 한다. 김대중-김정일 회담의 핵심 사안에 대한 김대중의 증언은 그동안 너무나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 평양회담 준비에 핵심적으로 관여했던 다른 국정원 간부도 “연기 사유가 돈 문제였다”고 확인해 주었다.
     
      10일 오전 ‘방북 불가’ 통보를 받은 국정원 측이 송금에 차질을 빚은 점에 대하여 북한측에 설명하고, ‘은행이 문을 여는 12일 중에 나머지를 송금할 것이니 하루만 연기하자’고 설득, 북측이 그날 오후에 다시 김대중 회고록에 나오는 그런 내용의 대남전문을 보냈을 가능성은 있다.
     
      김대중 정부와 현대그룹이 평양회담 이전에 김정일에게 송금(送金)하기로 약속했던 4억5000만 달러를 다 받지 못했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통보를 했다면, 떳떳하지 못한 비밀거래를 연상시킨다. 김은성씨 주장대로 수금 차질로 회담이 연기된 것이라면 김대중-김정일 회담의 본질적 성격은 ‘정상회담 구걸 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
      <全文은 월간조선 3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