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이승만 전략 모르나...복지타령 치우고 '통일 비용' 집중해야
  • 統一(통일)의 막이 올랐다.

    許文道(허문도) /前 통일부 장관

    집안에 대사가 닥칠 판인데, 얼마쯤 생기게 된 여유는 우선 갈라 먹고 보자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온 식구들이 성화다. 지금의 한국 모습이다.

    산 정상 못 오르고
    중도에 하산하는 꼴의 한국,
    하늘이 제동 걸어

    무역 1조 달러가 되면서, 부자 1% 대 가난한 사람 99%의 양극화 현상 얘기는 더욱 우심해졌고, 동시에 격차감 해소에 ‘비상한’ 정책통을 자부하는 자들이 아이디어 경합을 벌리고 있다.
    무상복지냐 선택복지냐 하고 있지만, 결국은 무상복지 경주판이 될 것이고, 나라 살림에 무책임한 쪽이 통 크게 나와, 올해 닥칠 선거판을 휩쓸어 갈 것이다.

    한국은 산꼭대기도 한 번 못 쳐다보고 2만달러 정도의 중턱에서 서둘러 하산하고 말 형국이다. 대처 정권 전의 영국이나, 그리스가 갔던 길일지라도, 내다보는 지도자가 없는데 어느 국민이 마다 할 것인가.

    그런데 하늘이 제동을 걸고 나왔다. 이렇게 읽어야 할 일이 벌어졌다.
    하늘이 지난 연말에 김정일을 불러갔다. 김정일이 누구인가. 민족통일을 가로막던 최대-최강의 장벽이 김정일이었다. 뼛속을 저미는 추위에 주린배를 움켜쥐고 허구한날 떨어야 하는 북녘 동포가 살 길은 중국식이라도 개혁개방 뿐인데, 그 요지부동의 장애물, 거부자가 김정일이었다.

    김정일은 영악하고 막강했다. 김정일은 중국의 밥줄을 붙들고 있으면서, 종북 분자를 조종하여 남쪽의 달러를 수혈 받아, 그 등에 업힌 중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유일초대국인 세계경찰 미국의 무력불사의 위협을 전략계산으로 견뎌내며, 2차의 핵실험을 유유히 감행, 핵을 손에 넣고 말았다. 지상에 일찍이 없었던 2강 미국. 중국을 상대한 핵 게임에서 김정일이 이긴 것이다.

    김정일의 권력합리주의와 전략 감각의 수준은 역사상 일곱 나라를 하나의 제국으로 만든 진시황이나 중국사상 최고의 영걸로 치는 당태종의 침략을 패퇴시킨 고구려의 연개소문급이라할 수 있겠다.

    진시황은 이후 2천년 간의 중국인의 생활공간을 획정하고, 문자와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하여, 중국 사회, 문화의 기초를 놓았다. 그러나 그는 仁(인)과 德(덕)을 몰랐고,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다. 강대한 권력과 권위는 승계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진시황 권력의 승계 음모에 가담했던, 최고의 권신 승상 李斯(이사), 황제의 측근 환관 趙高(조고), 2세 황제 胡亥(호해) 등은, 진시황 권력의 환영을 쫓다가, 그 무게에 짓눌리기라도 하듯, 일, 이년 사이에 서로 죽이고 자멸한다. 진시황이 죽은 지 3년만에 제국은 사라졌다.

    진시황 죽은 지 3년만에
    제국 사라지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한자리에서 최고의 귀족 백여명을 도륙하고 권력을 거머잡았다. 안하무인으로 호기를 부렸다. 귀족 관인의 등을 밟고 말에 올랐다고 사서에 적혀있다. 신라의 동시대인 김춘추가 고구려와 화해하고자, 평양에 갔을 때의 담판상대는 연개소문이었다. 백제에 쫓기고 있는 김춘추의 신라를 하찮게 보았던지 연개소문은 차버렸다.

    양웅의 평양회동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김춘추가 바다를 건너 唐(당)으로 가서 신라를 통일케 한 것은 연개소문이었던 것이다. 연개소문이 죽은 지 3년만에 고구려는 羅․唐(나․당)연합군에 멸망한다.

    연개소문은 죽기 전 강대한 권력의 핵심인 군권을 아들 삼형제에게 나눠줬다. 국내에 적이 많고 아들들의 됨됨을 아는 연개소문이 한 아들에게 왕창 넘기는 일이 불안했을지 모른다. 맏형 남생이 지방 순시에 나선 사이에, 두 동생 남산, 남건이 형의 평양귀환을 막고, 그 권력을 차지해 버렸다. 외톨이가 된 남생은 적국인 唐(당)에 투항하고, 그 군대를 고구려 내지 깊숙히 끌어들였던 것이다.

     김정일 유훈통치의 제1조는
     “핵을 保守하라” 였을 것

    세 아들에 군권을 나눠주고, 큰 아들이 나라의 일부를 들어 적에게 투항하기까지가 연개소문 권력의 승계과정인 것이다. 나․당 연합군이 평양에 닥치기 전에 이 승계과정에서 고구려는 망국의 문이 열리고 만 것이다.
    절대 권력의 승계에서 분배된 권력은 절대 권력의 잔영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갈구하면서 권력체제는 무너져 내리도록 역사는 설계되어 있는 것인가.

  • 김정일의 경우는 어떨 것인가.
    임진년을 나흘 앞둔 지난 달 28일, 평양광장에서 김정일의 영구차를 둘러싸고 걸었던 일곱 사람에게 김정일의 절대 권력은 분배되었을 것이다. 투철한 권력합리주의자인 김정일은 스스로의 체험도 있었던지라 大器(대기)인지 그릇을 테스트하고 단련할 시간이 없었던 김정은에게, 핏줄이라고 절대 권력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핵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압력을 견뎌낼 전략의지의 주체를 어떻게 있게 할 것인가, 김정일은 생각했을 것이다. 유훈통치의 원조 김일성은 핵을 남기지 못했지만, 김정일은 핵을 남겼다. 김정일 유훈통치의 제1조는 ‘핵을 保守(보수)하라’일 것이다. 김정일의 핵 권력은, 명목은 핏줄 김정은이지만 영구차의 7인에게 분배되었을 것이다. 분배된 권력간의 '체크 앤드 밸런스(check and balance)'에 의해 핵 권력의 의지 주체는 그의 사후에도 작동할 것이라고 김정일은 기대를 담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하나 생각 안한 것이 있는 것 같다. 분배된 권력간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질서는 살아있는 김정일의 절대권위 하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읽지 못한 것 같다.

    그동안의 핵 게임을 통해, 북한체제에서 '개혁개방'과 '핵 보수'는 모순관계임이 드러났다. 모순의 통합은 절대 권력자의 인격의 내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북한의 경우 핵을 수단화 할 수 있는 권위의 소유자는 김정일뿐이었다. 개혁개방과 핵을 한 손 안에서 카드화 할 수 있었던 김정일이 사라져 버렸다. ‘핵 보수’는 유훈 통치 제 1조가 되고, 핵은 불가촉의 物神(물신) 영역으로 진입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강성대국’ 100년이라는 올해 임진년, 북한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도 중국을 향해 좀 더 문 열기를 소망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응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이 죽고 나서, 북경에서는 벌써부터 올해는 북을 개혁 개방하여 핵을 받아낼 수 있으리라 들떠있다고 특파원들이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굶어죽지 않기 위한 절체절명의 개혁개방 요구가, ‘핵 보수’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북한을 남겨 놓고, 그를 조정해 낼 권위는 쓸어 담아 김정일은 가버린 것이다.

    개혁개방과 ‘핵 보수’의 모순이 폭발하는데 긴 시간은 필요 없을 것이다. 모순의 폭발선은 김정일의 영구차를 둘러쌌던 김정은 외의 7인 사이에 그어질 것이다. 이 얘기를 누가 일러준다 해도, 그만두지 못한다. 모순하는 저들 쌍방의 대의는 김정일의 유훈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알아도 모순폭발의 불구덩이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권력의 떼어낼 수 없는 속성이기도 하다.

    ‘자결과 자유’ 원칙 지킨 콜 수상
    올해 민족 지도자 될 사람은
    ‘통일의 막’ 오른 판을 읽을 줄 알아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 통일을 가로막던 최대의 장애가 치워졌으니, 통일의 막은 드디어 올랐다. 올해 민족의 지도자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이 판을 읽어야 할 것이다. 기약 없는 고통으로부터 북녘 동포를 구출해야 할 때는 금년 중에 닥칠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서독의 매스컴과 지식계는 이를 통일에 유관한 사안으로 보지 않았다. 동-서독의 긴장이 하나 더 완화되는 계기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통합유럽과 통일독일의 궤도를 깐 아데나워의 정치제자 콜 수상만이 통일의 신호를 읽었고, 통일의 대원칙 ‘자결과 자유’를 내외에 걸었다.

    콜은 미국․영국․프랑스․소련의 4강이 아니라 독일 민족이 자결하는 통일을 강조했고, 자유를 희생하는 통일 행보는 철저하게 배제했던 것이다. 이 콜 조차 독일 통일의 보다 구체화된 원칙으로 10개항을 제시하면서, 통일에 5년이나 10년 걸릴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일년도 아닌 329일 걸렸을 뿐이다.

    콜 수상은 ‘자결과 자유’의 원칙하에 아낌없이 돈을 썼다. 서독정부의 비축된 경제력으로, 무너져 내리는 동독의 재정을 떠 바쳤고, 소련과 동구의 개혁개방을 아낌없이 도와 적대의 가시를 뽑았고, 독일 사람들 앞을 막은 철조망을 걷어내게 하여, 베를린장벽 붕괴의 도입로를 만들었던 것이다.

    통일의 막 올랐는데
    우리 지도자들은
    지금 뭐하고 있는가

    통일작업 완결의 지표라 할 동독의 소련군 철수 문제 또한, 콜은 고르바쵸프가 달라는 대로 돈을 주어 머뭇거림이 없었다.
    콜 수상의 아데나워의 제자다운 때의 결단, ‘자결과 자유’ 원칙의 엄수, 독일국민의 경제비축과 희생각오, 이런 요소들이 통일을 가져왔다 해도 될 것이다.

    냉전을 종식시킨 미국의 메시아적 교통정리, 이웃과의 신뢰 위에 다시 태어나고자 전범의 민족적 과거를 참회해낸 역대 지도자들의 구도자적 자세는 따로 얘기해야 할 것이다.

    통일의 막이 올랐는데, 우리 지도자들은 지금 뭐하고 있는가.
    전작권 타령은 분단 관리책에 불과할 뿐임을 통일마당 앞에서는 국민에게 알게 해야 할 것이다.
    한다면 독일 같은 통일인데, ‘자결과 자유’를 내걸만큼, 우리 정치권은 자기 관리를 해 왔는가. 북한 인권법 하나 처리 못하면서 부끄러워 할 줄 모르지 않는가.

    요새 여당의 ‘비상한’ 관심은 양극화, 격차 문제에 신발견이라도 한 듯 쏟아져 있는데, 흩뿌리기식 복지 포퓰리즘 말고 그 답으로 들리는 얘기가 없다. 그 길은 누이 망하고 매부 망하는 길임을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그 길은 야당에 권력을 넘기는 길이고, 나라경제의 앞날을 닫는 길임을 앞서간 나라들이 이미 보여 준 것 아닌가.

    김정일이 죽자, 기일을 넘긴 예산안을 여당은 1조 수천억의 복지비를 일거에 늘려 성립시켰다. 정작 나라에 돈 들 일이 생겼는데, 한 치 앞도 못내다 보고, 자기표 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정치 맡겨도 되는 것인가.

    정작 나라에 돈들 일 생겼는데
    한치 앞도 못 보는 자기표 밖에 몰라

    삼류제국주의 日帝(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민족에게, 해방은 분단이었다.
    그러므로 통일은 해방의 완결이고, 독립의 완수이고, 건국의 완성이다.

    통일의 때 앞에서 무지는 죄악이다. 때를 모르고, 계산이나 하고, 포퓰리즘의 잔머리나 굴리고, 대국의 하회나 기다리고, 목숨이 아깝다면, 그것은 역사에의 범죄이고, 민족에의 반역이다.

    통일을 통해서만, 일본 야마토 족이 우리 민족 위에 끼친 해독이 청산되는 것임을 모른다면, 우리민족은 역사를 모르는 하루살이 민족이고 내셔널 프라이드를 모르는 민족이다.
    불세출의 전략가인 건국의 국부 이승만이 왜 맨주먹으로 북진통일을 외쳤던지, 그 뜻을 깨달을 때는 오늘이다.

    우리민족의 정체성(아이덴티티)의 산실 신라통일은 위대했다.
    신라의 동맹전략은 탁월했고, 그 전략적 주체의식은 오늘날도 목표가 되고 남는다.
    신라는 초월자적 지배의식의 권화였던 唐太宗(당태종) 앞에 엎드려 통일전쟁의 동맹무력을 얻어 내지만, 백제, 고구려 땅에 중국(唐)이 고삐(기미주 羈縻州)를 매려들자, 엎드렸다 일어나는 동작으로 그대로 들고 받았다. 당은 반도에서는 나둥그러졌다. 그리고는 다시 엎드린 신라의 자세 앞에 중국은 반도 통일의 동아시아 전후 질서를 수용했던 것이다.

    신라는 상위동맹 당나라에 조공하면서 전쟁했고, 그 당과 전쟁하면서 외교했던 것이다. 그 극난했던 국가전략 운용의 고뇌와 분위기를 오늘에 전하는 문장이 있다. 삼국사기에 열전이 있는 强首(강수)의 것에 틀림없을 것이다. 반도에서 얼찐대는 당나라 군대를 들이 치고는, 당 高宗(고종)에게 보낸 문무왕의 사죄의 表文(표문)이다.

    “… 근자에 백제 때문에 직공(조공)을 결하게 되어, 드디어 聖朝(성조)로 하여금 聲言(성언)을 내고, 장수를 명하여 나의 죄를 치니 나는 죽어도 餘刑(여형)이 있을 것이다. 남산(중국 장안의 종남산)의 대(竹)로도 나의 죄를 다 쓸 수 없고… . 우리 종묘와 사직을 헐어 쏘를 파고 내 몸을 죽여 찢어 발겨도 (황제가) 이 사정에 귀기울여 친히 판단해 준다면 죽임을 달게 받겠다. 내 관과 상여가 옆에 놓였고, 죄를 빌어 땅에 쳐박은 내머리 진흙이 아직 마르지 아니한 채 피눈물로 조명(조정의 명령)을 기다리고 刑命(형명)을 엎드려 받고자 한다. 생각컨대 황제폐하는 밝으심이 日月(일월)과 같고, … 덕은 천지와 합치하여… 仁(인)은 새나 물고기에 까지 미치니, 만일 服捨(복사, 치죄하여 석방함)의 용서를 내리시고, 은혜를 주신다면, 비록 죽는다 해도 산 것과 다름이 없겠다. … ”(삼국사기, 문무왕 12년 (672)조)

    이글을 두고 문무왕의 신라가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졌고, 비굴하다고 평가하는 학자가 있다 한다. 역사의 追體驗(추체험)을 학자라고 못하란 법이 있을까. ‘반도를 차지하여 당신 앞에 엎드린 신라를 당신이 받지 않겠다면, 온 신라는 나라와 만백성의 생명을 걸고 당신의 목을 물겠다.’는 각오의 표명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일까. 측천무후의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당 고종은 이 문장에 기가 꺾였을 것이다. 조조의 아들 말대로 역시 ‘문장은 경국의 대업’일 수 있다.

    김정일이 죽어 통일의 막이 오른 이 마당에, 삼국통일로 오늘날 한민족의 원천을 만든 신라 사람들이 17년간 통일전쟁을 치러 낸 위대한 고초를 한번 떠올려 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정치하겠다는 사람들
    무상복지 타령 거두고
    나라살림 추스려야 할 것

    통일과정에서 백제 땅에 와 있던 당나라 군사를 신라가 돌변하여 공격하자, 당의 장수 설인귀는 ‘신라가 天軍(천군, 상위동맹 당나라의 군사)에게 무슨 짓이냐’고 항의 편지를 보냈다. 이에 대한 문무왕의 답신 속에 보인다. 평양과 웅진(공주)에 주둔하는 당나라 군대에게 군량미는 신라가 댔다.

    “… 전후 보낸 곡식이 수만여 斛(곡, 1곡 10말)으로, 남으로 웅진에 수송하고, 북으로 평양에 공출하여, 조그만 신라가 두 곳에 이바지 하느라, 인력은 지쳐 빠지고, 소와 말은 다 죽어 넘어지니, 농사는 때를 잃고, 곡식은 흉년을 피하지 못한데다, 저축했던 창곡은 다 털어 보냈으니, 신라의 백성들은 풀뿌리도 오히려 족하지 못하였다.”(삼국사기, 문무왕 11년조)

    통일의 막이 올랐다 함은, 북녘 동포의 주린 배를 남쪽의 우리가 채워줄 때가 왔다는 말이다.
    신라 사람들처럼은 못해도, 독일 사람들 정도로는 저금을 털어야 할 각오가 지금 필요하다.
    먼저, 올해 정치하겠다는 사람들이 무상복지 타령부터 거둬들이고, 나라 살림 추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