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군대의 대응조치에는 한계가 없고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우리 혁명무력은 수십 년 세월 다져온 모든 군사력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적들에게 천백 배 무자비한 섬멸적 보복타격을 가하고 최후 승리를 이룩할 것이다.”
    김정일이 지난해 3월 15일 노동신문을 통해 밝힌 대남협박이다.
    김정일이 공언한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대응조치란 무엇일까?

  • ▲ 양구 제4땅굴 ⓒ 자료사진
    ▲ 양구 제4땅굴 ⓒ 자료사진

    많은 국방 관계자들은 그것이 핵이 아닌 남침땅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역시 북한의 남침땅굴에 대해 확인하는 발언을 했다. 황 전 비서는 “북한의 땅굴 능력은 비행기가 지하터널에서 지상으로 나올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능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며 “북한의 10여만 특수부대원들이 대한민국 땅에 일시적으로 나올 수 있는 도구가 무엇이라고 생각느냐? 바로 땅굴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은 남침용 땅굴을 1954년, 즉 6.25 종전 직후부터 파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화곡 광산의 땅굴이 해방 전 광석 굴착 목적으로 이미 임진강 밑에까지 뚫려 있음을 알게 된 김일성은 초기에는 전술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굴착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은 당시 "땅굴을 열심히 파서 전쟁 초기에 의정부, 동두천 일대의 미군을 포로로 해야 한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아군 전방 부대의 무력화가 땅굴 공사의 초기 목표였다는 것이다. 30~50km 이하의 단거리 땅굴을 파려고 작업을 하다 휴전 상태가 길어져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고 TBM(tunnel boring machine)이 1970년대에 수입되자 자연히 장거리 땅굴로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탈북 참모장 "내눈으로 땅굴서 연천읍 확인"
    탈북한 전 북한군 38여단 참모장(상좌, 대령급) 박명철은 대남땅굴에 대해 “지난 1992년 38여단 참모장으로 재직할 때도 남침땅굴 작업은 계속되었다”며 “1986년에 연천읍까지 완료했고 1992년에는 내가 직접 땅굴 속으로 들어가 연천읍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 땅굴은 연천에서 파주로 이어진 뒤 세 갈래로 갈라져 중심 1개는 청와대로 향하는 땅굴”이라며 “청와대 상공에 깃발을 꽂는 것이 목표였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장거리땅굴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세우고 있다.
    첫 번째로 지하수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고 위성으로 24시간 북한을 감시하는 속에서 어떻게 굴착으로 나오는 버럭(굴착으로 퍼낸 흙-암석)을 비밀리에 처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환기 문제와 자금문제를 생각하면 장거리 남침용 땅굴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지하수 처리 방식 두가지
    지하수 처리에 대해 김철희 전 중앙정보부 정책심의관은 북한이 두 가지 방식으로 해결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하수맥의 경우 물이 나오는 수맥이 있으면 빠지는 수맥도 있다는 것. 이 수맥을 연결해 처리하거나 양수기를 이용한 처리도 가능하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함께 물을 흘려 처리하기 위한 1000분의 3의 기울기 역시 간단하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땅굴의 출구가 산이나 고지대의 경우라고 상정하면 이 기울기는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땅굴의 출구가 꼭 평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커다란 생각의 오류라는 지적이다.
    굴착으로 나오는 버럭 역시 처리가 간단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북한은 이미 남한지역의 폐광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 굴착으로 생기는 버럭의 경우 남한의 폐광이나 휴전선 인근의 폐광을 이용하면 감쪽같이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땅굴 공사에 동원됐던 전 북한군 6사단 장교 출신인 김남준씨는 “버럭 처리는 야간에 운반하기도 하고 주로 폐광에 버린다”며 “자동굴착기 TBM에도 버럭 자동처리기능이 있다”고 증언했다.

    환기 안돼 사망자 많아...보조 땅굴 함께 뚫어
    땅굴 굴착을 맡았던 북한 인민무력부 직속의 583부대 출신 한 탈북자는 “땅굴을 뚫는 데 가장 큰 난관은 환기 문제였다”며 “일반 광산에선 바깥으로부터 압축공기를 주입받거나 별도의 斜坑(사갱)을 뚫어 공기를 소통시키지만 남침용 땅굴은 그렇게 하면 한국측 고공정찰기에 노출이 됨으로 쓸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병사들이 다이나마이트로 바위를 폭파한 뒤 작업을 하다가 유독가스에 질식하거나 산소부족으로 죽기도 했다”며 “잠수함에서 사용하는 산소발생장치를 갱 안으로 갖고 들어가 산소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시켰지만 땅굴 굴착 중 사망자가 많았다”고 증언했다. 
    또 땅굴 1개 라인에 2~3개 보조라인을 같이 굴착해 공기를 순환시키기도 하고 중간 중간에 순환 구멍을 내는 방식을 사용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김철희씨는 이 같은 사실을 한국광물자원공사 기술진에 문의한 결과 “충분히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 북한군 38여단 참모장 박명철씨는 “땅굴 작업자는 땅굴 속에서 기거한다”며 “땅굴 속에 대형 벙커도 있는데 이는 평시에는 땅굴 유지보수를 위한 자재-장비 보관소로 사용하다 유사시에는 북한군의 침식 및 대기 장소, 무기-탄약류 저장고로 활용된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미 국무장관과 CIA국장의 대화
    문제는 연합사 정보판단과 우리 국방백서에도 북괴의 남침 땅굴이 모두 22~24개로 예상된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찾은 것은 4개. 나머지 20여 개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일본 산케이신문 소오마 마사루(相馬勝) 기자는 지난 2006년 ‘북조선 최종 섬멸계획’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의 기본 자료는 1998~1999년 미국에서 입수한 ‘Operation Plan 5027'과 미 해병대의 대북 군사작전을 위한 군사작전교본이다.
    소오마 기자는 이 책에서 “(북한의) 어떤 부대는 40개 이상이 존재하고 았다는 비밀땅굴을 통해 한국군의 배후로 나와 서울 시내에 돌입해 오는 것도 있을 것이다”라고 남침땅굴 존재를 강력히 시사했다. 또 책 110쪽에는 워렌 크리스토퍼 당시 미 국무장관과 우르지 CIA 국장의 대화 내용도 기록돼 있다.
    워렌 크리스토퍼 장관이 “그러고 보니 비무장지대에는 북한군이 팠다고 하는 한국 영토 내로 통하는 비밀터널이 있다고 하는 말인데...”라고 묻자 우르지 국장은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4개 밖에 없습니다만 실제로는 40개나 되는 터널이 파여 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TBM 300대 수입, 1대 하루 30m씩 20년 굴착
    북한은 1970년대 후반에 스위스 등에서 TBM 300여대를 수입했다. 우리나라에도 20대 밖에 없는 TBM이 북한에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할까? TBM의 크기와 굴삭능력은 다양하지만 하루 평균 30m를 굴착할 수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 TBM을 사용하는 토목 기사들의 말에 의하면 직경 2.5m일 경우 하루(24시간)에 60m는 굴착할 수 있다고 한다. 300대의 굴착기가 20여년간 땅굴을 굴착했다면 남한의 지하가 거미줄처럼 뚤려있다는 남굴사 등의 주장이 억지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종창 신부는 “아직 못 찾은 땅굴이 20개라고 가정해도 1개 축선 당 20개의 출구가 있다면 총 400개의 출구가 남한에 있다는 것”이라며 “30분이면 1개 출구 당 최소 500명씩의 북한군이 뛰쳐나올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