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땄다"는 친구 자랑에 처음 시작…수백만원 도박빚호기심에 가입한 후엔 문자‧전화로 '게임 이벤트' 유혹 계속작년 9월부터 올 3월까지 청소년 도박범 1035명 검거
  • ▲ ⓒ황유정 디자이너
    ▲ ⓒ황유정 디자이너
    "친구가 돈을 땄다고 자랑하길래 호기심에 해봤어요. 사이트 이름 검색해 바로 찾을 수 있었고 가입도 간단했어요. 처음에는 돈을 따니 신기했는데 금세 다 잃었어요. 바로 그만 뒀는데 이후에도 갑자기 문자로 ‘게임 이벤트’가 있다면서 연락이 왔어요"

    인터넷상에서 도박을 경험했다는 박모(17)군 이야기다. 도박 사이트에서 돈을 잃은 박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본전만 찾자'는 생각에  사이트에 다시 접속했다. 하지만 몇 만원에서 시작한 손실은 순식간에 200만 원으로 불어났다. 

    박군은 "다행히 부모님께 들켜 더는 온라인 도박을 하지 않았다"며 "처음 도박 사이트를 알려준 친구는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도박 빚을 충당하다가 지금은 그만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불법 도박사이트가 성행하고 있는 가운데 박군과 같은 미성년자들까지 도박에 빠지는 사례가 빈번해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선 온라인 도박으로 돈을 따고, 이를 자랑하고, 친구에게 권유하는 일이 만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 PC나 휴대폰만 있으면 특별한 인증 절차 없이 검색만 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탓이다. 

    23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지난 3월31일까지 6개월 간 청소년(19세 미만) 사이버 도박 전국 특별단속을 실시한 결과 1035명이 적발됐다. 이 중 직접 도박을 한 도박 행위자가 무려 1012명에 달했다. 도박사이트를 운영(12명)하거나 광고(6명)와 대포물건 제공(5명)을 한 청소년도 있었다.  

    성별로는 남성 청소년이 98%, 연령대로는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이 약 70%로 가장 많았다. 

    도박 유인 경로는 박군과 마찬가지로 '친구나 지인의 소개'가 57%로 가장 높았고 용돈벌이(23%)와 호기심(14%), 도박광고(6%)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청소년 명의 금융계좌 1000여개가 도박자금 관리 등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도박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고 일종의 ‘놀이’처럼 일삼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상계동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군은 "주변에 도박하는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며 "도박을 하나의 온라인 게임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고 쉽게 돈을 따고 잃으니 실제 돈인데도 사이버머니처럼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청소년 도박은 그 자체로도 범죄이지만 '2차 범죄'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단순 도박범행에서 도박자금 마련을 위한 청소년 간 갈취 등 학교폭력, 인터넷 사기, 대리 입금 등 파생범죄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3월 중학생 B군은 온라인 도박으로 한 달 새 1600만 원을 탕진하고 추가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절도 행각을 벌였다 경찰에 붙잡혔다. B군은 절도 범죄로도 모자라 고리대금업자들에게 300만 원을 빌렸다가 매일 빚 독촉을 받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22년에는 후배에게 온라인 도박을 권유한 후 도박 빚을 씌우고 머리와 눈썹을 깎는 등 폭력을 저지른 10대 청소년들이 경찰에 붙잡힌 사례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청소년 도박이 사회문제화된 가운데 올해를 '청소년 도박 근절'의 원년으로 삼아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라며 "도박 유인 경로 차단을 위해 도박프로그램 개발, 서버 관리, 도박 광고, 대포물건 제공, 고액·상습 도박 행위자 등 도박사이트 자체와 연결된 범죄수익 카르텔을 완전히 와해시킨다는 목표"라고 밝혔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급속도로 확산하는 온라인 불법 도박은 청소년의 미래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며 “한층 강화된 경찰 선도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소년범의 재범방지와 예방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