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나씨, 5일 '혁신 위원장 김은경의 노인 폄하는 그녀에겐 일상이다' 글 공개"김은경, 오빠 떨어져 죽은 그 순간부터 어떤 순간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명절은커녕 남편 제사에도 한번 참석하지 않아… 우리 가족 기만한 파렴치"
  • ▲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 ⓒ이종현 기자
    ▲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 ⓒ이종현 기자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시누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김 위원장에 대해 "남편이 살아 있을 때를 포함 단 한 차례도 시부모를 모시고 산 적이 없고 공경심은 커녕 18년동안 김은경에게 온갖 악담과 협박을 받으셨고 돌아가시면서 쉬이 눈을 감지 못하셨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자신을 미국에 거주하는 작가이자 김 위원장의 시누이라고 밝힌 김지나씨는 5일 오전 브런치스토리(Brunch story)를 통해 '혁신 위원장 김은경의 노인 폄하는 그녀에겐 일상이다'라는 글을 공개했다.

    김씨는 "김은경은 1992년 제 오빠와 결혼을 했다. 둘은 이문동에 있는 한국 외국어 대학교 법대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부부는 공부를 위해 독일 유학길에 올랐고 아이는 저희 부모님이 맡아 키웠다"며 "오빠가 먼저 귀국해서 아버지 밑에서 사업을 배우고 김은경은 만하임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에 귀국했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사건은 2006년 1월에 일어났다. 오빠가 자신의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집에 아이들과 아내가 같이 있고 초저녁이었고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모두가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우리 가족은 부검을 원했지만, 아내인 김은경은 그럴 필요가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사고가 있는 직후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이제 겨우 서너 살이 된 둘째 아이의 반응은 '엄마랑 아빠가 막 싸웠어. 그래서 아빠가 화가 나서 뛰어내렸어'"라고 했다며 "어떤 말이 진실일까"라고 반문했다.

    김씨는 "친정 아빠는 전기사업을 시작으로 소방과 관련된 특허를 9개 갖고 계셨고, 특허 제품으로 승승장구하셨던 참에 오빠의 도움으로 날개를 다셨다"며 "오빠는 그 덕으로 세무조사를 받아야 할 만큼 재산이 불어났고 그 당시 강남에 있는 아파트와 빌라를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는 "활발하고 사업 수단이 좋은 덕에 경제적으로 가정에 충실한 부를 가져다주었고 아내인 김은경은 오로지 학업과 강의에만 전념하면 될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그랬는데 갑자기 집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한다?"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씨는 "200명이 넘는 오빠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왔다. 절대 믿기지 않다는 말을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자살을 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며 "김은경은 오빠가 떨어져 죽은 그 순간부터 장례가 끝난 우리가 본 어떤 순간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씨는 "더욱 황당한 일은 어수선한 틈을 타 아빠의 사업체를 자신의 친동생 이름으로 바꾼 일"이라며 "어찌된 일인지 사업체는 오빠가 죽기 직전 시아버지의 이름에서 오빠의 이름으로 전환돼 있었고 죽고 나니 곧바로 김은경의 친동생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아빠는 즉시 시정을 요구하고 법에 호소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어찌 손을 써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며 "치밀한 계획하에 이뤄진 일이고 워낙 법적으로 잘 아는 김은경이라 우리는 앉아서 당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명절은커녕 자신의 남편 제사에도 한번 참석하지 않은 사람이 남편 사별 후 18년간 시부모님을 모셨다는 그런 새빨간 거짓으로 우리 가족 모두를 기만한 파렴치한 김은경이기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이어가고 있다"며 "18년을 사시다가 2년전 어머님을 먼저 보내시고 작년 겨울, 끝내 자살한 아들이 너무도 그리운 아버지는 자식과 똑같은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남편 자살 이후 시부모의 사업체까지 빼돌린 며느리가 왜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왔겠나"라며 "잘난 금감원 부원장이라는 타이틀로 보내온 부의금을 챙겨가는 모습을 본 우리는 그만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김씨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 흙 한 줌 뿌리라는 말에 손사래 치며 거절을 한 장본인이 김은경이고 이번 노인폄하 논란의 시작이 된 그 아들 또한 눈을 부라리며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에게 흙 한 줌 넣어드리지 않았다"며 "이번 노인폄하 사태를 보면서 역시 인간은 본성을 숨길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이러한 인간이 절대로 평범하게 살아서도 안 되지만, 높은 위치에서 국민을 우롱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분통함에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신 우리 부모님이 더 이상 원통하지 않고 편안하게 이승을 떠나게 도와주시고 더 이상 남편의 죽음이 한낱 사랑 타령이라는 거짓으로 욕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고 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7월30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2030세대 청년 좌담회'에서 "둘째 아들이 22살인데 중학생 때 '왜 나이 든 사람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느냐'는 질문을 했다. 자기 나이로부터 여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 아들의 생각이었다"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맞는 말"이라고 발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논란이 거세지자 김 위원장은 3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면서 "남편과 사별한 뒤 시부모를 18년간 모셨고 작년 말 선산에 묻어 드렸다"며 "어르신에 대해 공경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산 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본지는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와 문자로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