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당시 MBC 보직자 89%가 노조원' 문서 공개"사용자이익 위해 행동하는 자가 노조활동해선 안돼"MBC노조 "언론노조, 부당노동행위로 고용부에 고발"언론노조 "현재 보직자 다수, 조합원 권리·의무 '유예'"
  • ▲ 지난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언론노조원 간부 리스트 문건'을 공개하고 있는 오정환 MBC노조위원장(비대위원장). ⓒ정상윤 기자
    ▲ 지난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언론노조원 간부 리스트 문건'을 공개하고 있는 오정환 MBC노조위원장(비대위원장). ⓒ정상윤 기자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해 업무를 수행하는 간부들이 동시에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조활동을 겸할 수 있을까?

    2021년 기준으로 MBC 보직자 148명 중 132명이 MBC의 교섭대표노조인 '언론노조MBC본부(이하 '언론노조')' 소속이었다는 충격적인 문서가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MBC노동조합(이하 'MBC노조')에 따르면 2019년 MBC가 자사 직원과 소송을 벌이는 과정에서 2021년 2월 15일 당시 전체 보직자 중 89.1%가 언론노조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구성원 명단을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적으로 보직자들은 노동자단체에서 탈퇴하는 게 원칙이나, MBC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간부가 된 이후에도 언론노조원 신분을 유지한 직원들이 많아, 노·사가 혼재된 독특한 인적구조를 보였다는 게 MBC노조의 지적.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해 행동하는 사람이나 △근로자가 아닌 사람의 참가(가입)를 허용할 경우 이 단체를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일 노조가 이를 허용할 경우 행정관청은 즉시 시정을 명하고, 바로잡지 않으면 '법외노조'를 통보할 수 있다.

    법외노조가 되면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쓰지 못하며 △단체협약 교섭권 △쟁의행위 △노조전임자 파견권 등 노조로서의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

    MBC, 법원에 '2021년 당시 보직자 명단' 제출

    MBC노조에 따르면 2019년 당시 한 MBC 직원이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현재 모든 보직부장 및 팀장이 언론노조 소속"이라고 주장하자, MBC가 2021년 8월 "회사의 모든 보직부장 및 팀장 148명 중 16명은 비노조원"이라며 해당 직원의 주장을 반박하는 준비서면을 보직자 명단과 함께 서울고등법원에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명단을 입수한 MBC노조는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2월 15일 당시 MBC 직원들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경영본부장과 인사부장, 법무부장이 언론노조원이었다"며 "보직자 가운데 MBC노조원 등 다른 노조원은 없었다"고 밝혔다.

    MBC노조에 따르면 △당시 사장직속의 정책 및 비서 기구인 '미래정책실'의 실장과 팀장들도 노조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고 △직원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부서인 인사부장과 △법무부장(노무도 담당) △정책기획부장은 물론 △경영을 직접 책임지는 경영본부장도 언론노조원이었다.

    또한 보도국장과 스포츠국을 제외하고 △보도국의 정치국제에디터 △사회에디터 △경제산업에디터 △탐사기획에디터 △디지털뉴스에디터 △뉴스데스크에디터 △정치팀장 △인권사회팀장 △경제팀장 등 보도부문의 간부 대부분이 언론노조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징계를 결정하는 인사위원회에 참여하는 '본부장'들도 언론노조원이었다. 또한 인사위원회에 참여해 징계권을 행사하거나 노사동수의 편성위원회에 회사 대표로 참석하는 △예능본부장 △시사교양본부장 △라디오본부장 △경영본부장도 언론노조원 신분을 유지해 이해충돌 상황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관리자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드라마 제작을 총괄하는 △드라마스튜디오 대표(국장 급)와 안형준 현 MBC 사장 △당시 메가MBC추진단장도 2021년 당시 언론노조원 신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보도본부 간부 대부분 언론노조원

    MBC노조는 "MBC는 보직부장이 직원의 인사고과 가운데 성과평가를 최종 결정짓기 때문에 보직부장은 직원의 근로조건을 결정짓는 역할을 상시적으로 담당하고 있다"며 "보도국의 경우 취재지시, 출장지시 등의 구체적인 업무지시 및 관리감독권한을 회사를 대표해 행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회사의 보직 가운데 90%를 장악한 언론노조는 사실상 '어용노조'라 아니할 수 없다"고 주장한 MBC노조는 "엄정한 노동청의 조사를 통해 MBC 사업장에서 퇴출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MBC노조는 "그동안 '어용노조'이면서도 교섭대표노조의 권한을 행사해 각종 단체협약과 근로시간면제협정을 맺어온 언론노조를 MBC노조의 근로시간면제를 부당하게 축소하고 MBC노조의 교섭을 방해한 혐의(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로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MBC노조 관계자는 "이 문건에 따르면 보직자 148명 가운데 132명이 언론노조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보직을 수행하고 있었음이 확인됐다"며 "노조와 대척점에 있는 인사부장과 노무부장도 언론노조원이었으고, 본부장·국장·부장·팀장 등 인사위원회에 들어가 징계를 결정하는 고위관리자들도 노조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보도본부의 간부는 보도국장과 스포츠국을 제외하고 대부분 언론노조원으로 임명됐다"며 "언론노조의 '정치적 색깔'을 보도에 그대로 투영할 수밖에 없는 인적구성을 갖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한편 언론노조는 "제3노조(MBC노조)의 주장은 2021년 기준"이라면서 "현재 본부장들은 언론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고 경영본부장도 조합원이 아니며, 국장급 및 인사·노무 담당 보직팀장 등은 조합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유예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MBC노조가 '언론노조원 간부 리스트 문건'을 공개하며 언론노조원의 자격을 문제 삼은 것과 관련,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