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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주한미군 이전하자 난장판이 시작됐다… '이태원 18년' 토박이 기자가 본 이태원 참사

연말이나 핼러윈 같은 축제 열리면, 미군 군사경찰(CP)이 카투사 병사들과 순찰 돌아주한미군 감시·감독, 미군 사칭 외국인 단속, 국내외 취객도 처리… 거리 질서 유지주한미군 평택으로 이전하자 군사경찰 순찰 중단… '관광 활성화' 겹쳐 무질서 확대

입력 2022-10-31 15:42 수정 2022-10-31 17:23

▲ 2020년 5월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 확산 사태가 벌어진 뒤 방역 작업을 하는 방역요원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29일 밤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를 두고 이런 저런 말이 많지만, 지역주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언론은 어디에도 안 보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태원 주민들에게 ‘핼러윈 축제’는 ‘그들만의 광란’일 뿐이었다.

‘핼러윈’ 때만 되면 주택가까지 파고드는 취객들

2004년 초여름 이 일대로 이사한 뒤 현재까지 이태원에 살고 있는 기자는 몇 년 전부터 10월 마지막 주말이면 일찍 귀가한다. ‘핼러윈 축제’ 운운하며 해밀턴호텔과 이태원역 주변에 몰려든 인파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 인파는 코로나 대유행 이전부터 이미 10만 명을 넘었다.

이들은 ‘핼러윈 축제’를 즐긴다며 이태원에 와서는 주변 주택가를 휘젓고 다닌다. 어떤 사람은 주택가에 마구잡이로 차를 세우고 사라진다. 때로는 연락처를 떼고 불법주차해 놓은 뒤 다음날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또다른 일부 사람은 일대 술집이나 술을 파는 식당에 ‘발렛파킹’을 맡긴다. ‘발렛파킹’ 업체는 그러나 종종 주택가까지 올라와 남의 집 대문 또는 거주자우선주차구역에 차를 대놓고 사라진다. 주민들은 그 어디에도 하소연하지 못 한다.

밤이 늦어지면 만취자들의 행패가 시작된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다 만취한 사람 가운데 일부는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폭죽을 터뜨리거나 고성방가를 한다. 어떤 사람은 ‘핼러윈 술자리’에서 만난 외국인들과 함께 밤새도록 떠들며 주민들의 수면을 방해한다. 지역주민들이 “조용히 좀 하라”고 외쳐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이를 즐기러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그들 덕분에 돈을 버는 식당, 유흥업소에는 즐거운 ‘축제’이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매년 되풀이되는 ‘악몽 같은 광란’에 불과하다.

이태원에 관광객 몰려오면 상인들만 이익… 지역주민은 죽을 맛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를 해서 수많은 사람이 와서 소비하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말을 이태원 주민들에게 하지 말기를 바란다. 화낸다. 이태원 주택가는 관광지가 아니다.

뒤집어 생각해보자. 강남 아파트단지 상가에 유명한 맛집이 들어서고 전국 곳곳에서 손님들이 몰려와 아파트 내부에 불법주차하고 아무데나 쓰레기를 투기하고 고성방가한다고 생각해보라. 주민들이 나무라자 오히려 욕설을 하며 덤빈다고 하면, 누가 좋아할까.

많은 독자들은 알지 못한다. 이번에 압사 참사가 난 곳 일대에서 장사하는 상인 대부분은 이태원 주민이 아니다. 이태원 클럽 가운데 일부는 강남 유명 클럽이 자본을 투자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규모가 크다. 다른 일부 클럽은 주인이 외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외국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장사를 하는 주민들은 보통 영세한 식당이나 작은 자영업을 하지 술집이나 대형식당, 클럽 등의 유흥업소를 운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분들마저 몇 년 전 무슨 ‘경리단길’ 마케팅이 요란해지자 대부분 장사를 접었다. 유흥업소가 늘어나고 경리단길 땅값이 치솟으면서 기자가 아는 60년 역사의 고깃집도 문을 닫았다.

지금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유명한 이태원 맛집 대부분은 ‘마케팅 맛집’이다. “이태원이 뜬다” 하니까 주택가까지 파고들어와 장사하는 ‘마케팅 맛집’이다. 진짜 이태원 맛집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미 수 년 전 조용히 사라졌다.

이태원 주민 다수가 싫어하고 구청은 좋아하는 ‘핼러윈 축제’

1동과 2동으로 나뉜 이태원 일대는 지역의 80% 이상이 주택이다. 2개 동에 걸쳐 삼성·신세계·LG·GS·아모레퍼시픽·현대기아 등 대기업 오너 일가가 거주하는 주택들이 있고, 그 주변으로는 고급 빌라와 함께 평범한 주택이 어우러져 있다. 그 사이 사이 인도·쿠웨이트 등 여러 나라의 대사관저가 있다. 오래 전부터 이런 식으로 동네가 구성돼 있어서인지 소위 ‘있는 척’ ‘힘센 척’하는 주민은 만나 보지 못했다.

이 지역 고급 저택가와 평범한 주택가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30년 이상 장기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세를 들어 사는 사람들은 최소 5년 이상은 살아야 동네 사람들이 “아, 이 동네에 새로 이사 왔구나” 하며 인정해 주는 정도다.

배타적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동네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서로 인사하고, 어른들은 놀이터에 온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곳이 이 동네다. 

동네 주민들은 또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는 거의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사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짜증나는 일’을 벌이면 조용히 항의한 뒤 그래도 안 되면 경찰을 불러 ‘큰 소리’가 나지 않게 해결한다.

이런 이태원 주민들이 굉장히 싫어하는 행사 중 하나가 ‘핼러윈 축제’다. 지역 주민은 배제하고 상인들이 돈벌이에만 신경을 쓰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이들 상인 가운데 주민들을 위해 뭔가를 한 사람은 거의 없다.

주한미군 평택으로 이전한 뒤 심각해진 무질서

과거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온 소위 ‘관광객’이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거리를 엉망으로 만들어도 이전 구청장 때는 ‘관광산업 활성화’에만 집착했다. 

코로나 대유행 때도 그랬다. 2020년 5월 이태원 클럽에 갔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코로나가 급속히 퍼진 적이 있다. 클럽이 ‘밀접접촉 장소’라서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한 것일까. 솔직해지자. 이태원과 홍대 일대, 강남 클럽이 정녕 춤만 추러 가는 곳이던가.

다른 문제도 짚어보자. 이번에 참사가 일어난 해밀턴호텔 옆 골목은 몇 년 전 ‘관광 활성화’를 한답시고 기존의 아스팔트 도로를 뒤집어엎고 타일 형태의 블록을 깐 곳이다. 비만 와도 꽤 미끄럽다. 관광을 활성화한다면서 도로를 왜 이렇게 위험하게 만들었나. 게다가 수많은 술집이 거리에 테이블을 내놓고 장사한다. 이래도 되는가. 불법 아닌가.

또한 해밀턴호텔 뒷골목부터 이태원소방파출소 주변 골목들은 10년 넘게 거리 질서 유지가 잘 되지 않는 곳이다. 핼러윈 축제 때나 연말에는 경찰이 출동해도 말을 듣지 않는 취객들로 넘친다. 연말이나 ‘핼러윈 축제’ 때처럼 이 지역에서 ‘어떤 축제’가 열리면 “법 질서를 잘 지키는 착실한 청년”은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2017년 4월 주한미군이 평택기지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태원 일대에서는 주말이나 핼러윈, 연말연시면 미군 군사경찰(CP)이 카투사 병사들과 함께 순찰을 돌았다. 한국 경찰도 함께였다. 

이들은 주한미군 감시·감독은 물론 외국인 가운데 미군을 사칭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거나 취객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경찰을 도왔다.

이들이 한국 경찰과 함께 순찰을 돌면 외국인 취객도 얌전해졌다. 아무리 복잡한 거리라도 어느 정도는 질서가 유지됐다. 이때까지는 이태원에 거주하는 외국인 어린이들이 ‘전통적인 핼러윈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대부분 평택기지로 이전하면서 미 군사경찰이 순찰을 중단한 이후 무질서가 확대했다. 

이에 이태원 주민들은 당연히 불만을 제기했지만 ‘관광 활성화’에 꽂힌 이전 구청장 때는 주민들의 불만을 사실상 외면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주택가에 상가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태원 압사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는 분명히 다르다. 다만 예방이 가능했다는 아쉬움은 비슷하다. ‘관광 활성화’가 아니라 ‘지역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주민 위주의 정책을 펼치고, ‘질서 있는 관광’을 추구했다면 이번과 같은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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