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서' '아파서' '대리투표 싫어서' 돌아가도… 신분 확인됐다면 본투표 못해"투표용지 구경도 못했다" "사전 안내도 없었다" 항의에도… 선관위 "할 수 없다"평론가들 "말도 안 되는 상황… 선관위가 원인제공했는데 왜 유권자가 피해보나"법조계 "부정투표 가능성 열어둔 것… 발급된 투표용지 어디로 갔는지 확인해야"
  • ▲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이틀째인 지난 5일 오후 서울역 설치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및 자가격리자들이 투표에 앞서 신원 확인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이틀째인 지난 5일 오후 서울역 설치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및 자가격리자들이 투표에 앞서 신원 확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5일 치러진 코로나 확진·자가격리 유권자 대상 사전투표 과정에서 신분증을 냈다면 투표용지를 받지 않은 상태로 돌아갔더라도 본투표에 참여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각 지역 선관위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한다"는 견해이지만, 현장에서는 투표 여부를 파악하지 못한 관계로 '사실상 불허'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확진자·격리자 대상 사전투표가 치러진 5일 상당수 투표소에서는 신분증을 제시한 뒤 줄을 서서 기다리다 기표소에 들어가기 전 그냥 돌아간 이들이 상당수 발생했다. 이유는 '추워서' '아파서' '대리투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등 다양했다.

    신분증 내고 투표용지 안 받은 확진자 유권자 상당수

    7일 조선일보는 이런 사람들은 5일 투표용지를 수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9일 본투표에 대부분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확진자 사전투표장에서 신분증을 보여준 뒤, 기다리다 투표용지를 받지 않은 상태로 귀가한 유권자'의 본투표 여부에 관한 방침을 물었다. 

    이에 중앙선관위는 "각 지역 선관위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한다"는 답변을 내놨다고 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해당 사례에 대해 각 지역 선관위가 자체적으로 '사실 확인'을 거쳐 본투표를 허용할 것인지, 투표 거부 처리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확인의 방법과 관련해서는 "지역 선관위가 투표장 특이사항을 기록한 '투표록'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중앙선관위 방침과 달리 현장에서는 '사실상 불허'라는 견해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가 투표했고, 누가 안 했는지' 파악하지 못한 투표소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투표 가능 여부에… 중앙선관위 "지역 선관위 자체 판단"

    격리·확진자 사전투표는 유권자가 투표사무원에게 신분증 제시 → 투표사무원 신분 확인 → 유권자 '선거인본인확인서' 작성 → 투표사무원, 유권자 신분증과 선거인 본인확인서 가지고 정당 추천 투표참관인과 투표소 안으로 들어가 투표용지 대리 발급 → 유권자에게 신분증과 투표용지, 봉투 전달 → 유권자, 임시 기표소에서 기표 → 봉투에 투표용지 넣어 투표사무원에게 전달 → 투표사무원, 누구나 볼 수 있는 바구니나 상자에 넣은 뒤 투표참관인과 함께 투표소 안으로 이동해 투표함에 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공직선거법상 투표소 1곳당 투표함이 1개여야 하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서울 강동구 상일1동 투표소에서는 투표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 신문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5시쯤 상일1동주민센터 외부에는 '격리·확진자 사전투표장'으로 향하는 투표 대기행렬이 수십m 이어졌다. 당시 서울지역에는 초속 4.4~5.5m의 바람이 불었고, 평균 체감기온은 1도 안팎인 상황이었다.

    그때 주민센터 안에서 투표사무원이 나와 대기행렬을 돌며 투표자 신분증을 한꺼번에 수거했다. 투표가 시작됐지만 1명당 3분이 넘게 소요됐다.

    투표사무원, 걷어간 신분증 돌려주며… 대기자들에게 "기다리세요"

    오후 6시20분쯤 투표사무원이 기표된 투표지를 허술하게 들고 실내 투표함으로 가져가는 모습이 유권자들 눈에 수차례 띄었고, 대기자 일부는 "이런 식이면 투표 안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기도 했다. 투표사무원은 대기하던 유권자들로부터 걷어 갔던 신분증을 모두 돌려주고는 "기다리세요"라는 말만 했다.

    그러나 당시 대기하던 유권자들이 본투표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문제가 커졌다. 이 신문에 따르면, 당시 대기행렬에 있던 확진자 A(25) 씨는 몸이 아파 '본투표 때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귀가했다.

    6일 A씨는 강동구 선관위에 본투표 가능 여부를 물었으나 "당신 이름으로 이미 투표용지가 발급됐다고 떴기 때문에 본투표를 하실 수 없다"는 답변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신분증을 가져간 사무원이 실내 일반인 투표소에서 A씨의 투표용지를 발급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나는 투표용지 구경도 못했고, 용지가 발급됐다는 안내조차 없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따졌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A씨는 안내라도 해 줬으면 아파도 참고 기다렸을 것"이라며 "이건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선관위 "누가 투표했는지 기록 안 돼"사실상 본투표 불가

    이와 관련, 강동구선관위 관계자는 "상일1동 확진자 사전투표소에서는 200여 명이 투표지를 발급받았는데, 일부 유권자가 항의·귀가한 상황에서 투표가 끝났을 때 7장이 남았다"며 "투표록에도 항의 소동이 있었다는 것만 적혔을 뿐, 누가 그냥 갔고, 누가 투표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고 조선일보에 전했다.

    그러면서 "논란이 됐던 전북 전주 농촌진흥원 투표소처럼 봉투 외부에 이름을 적도록 했다면, 적어도 투표자 파악은 됐겠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신분 확인 후 투표지를 안 받고 돌아간 확진자 대부분은 본투표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말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이를 두고 뉴데일리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며 "어떻게 이렇게 관리가 부실할 수 있느냐. 선거 끝나고 수사해야 할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원인제공을 유권자가 했다면 투표를 못하게 하는 게 당연하지만 이번 사건의 원인 제공은 모두 선관위가 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 평론가는 "국민의 기본권인 투표권 행사에 있어 그 책임을 유권자가 지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확진자를 대상으로 사전투표를 전부 다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조계 "선관위의 미흡한 대처로 국민 기본권 침해"

    홍세욱 경제를생각하는변호사모임(경변) 대표는 "선관위의 미흡한 대처로 유권자들의 기본권이 침해받았다"고 꼬집었다. 홍 대표는 "선거 준비기간이 몇 개월이나 있었고 그동안 확진자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었음에도 환자들에게 과도한 시간을 들여 투표하도록 한 것 아니냐"며 "환자들의 상황을 예견하고 준비했어야 함에도 절차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은 선관위가 국민의 기본권 보호 의무에 반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질타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투표하지 않고 그냥 돌아간 확진 유권자들의 투표용지가 제대로 보관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선관위에서 유권자의 신분증을 가져가 대리로 투표용지를 발급받았다면, 그것을 가지고 있다가 신분증을 줄 때 한 명 한 명에게 전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며 "이는 선관위의 명백한 실수이자 부정투표가 벌어질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유권자들이 선관위의 관리부실로 투표권을 빼앗긴 셈이기 때문에 명백한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한 이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엄중히 조사해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