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 스트레스라는 말도 한 적 없어"… 김병기 정보위 간사 "국정원이 만든 표현" 밝혀
  • ▲ 지난 20일 국회 정보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한 박지원 국정원장. ⓒ박성원 기자.
    ▲ 지난 20일 국회 정보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한 박지원 국정원장. ⓒ박성원 기자.
    ‘김정은 위임통치’라는 단어는 국정원이 만들어 낸 표현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위임통치’라는 표현으로 관심을 끌었던 지난 20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가정보원 보고는 박지원 원장의 데뷔 무대였다. 그가 이끄는 국정원의 첫 국회 보고에서 새로운 부분은 ‘김정은 위임통치’밖에 없었다. 국정원의 보고 이후 국내 여론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김정은 건강과 관련된 이야기도 일절 없어

    국정원이 20일 국회 정보위에 업무보고를 한 뒤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과 미래통합당 간사인 하태경 의원이 기자들에게 내용을 전했다. 

    국정원이 보고한 북한 관련 내용 가운데 최근 집중호우로 황해북도와 강원도지역 농경지가 침수돼 큰 피해를 입은 것, 우한코로나 때문에 국경을 봉쇄하고 이로 인해 경제 사정이 악화한 것, 신포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이 포착된 것, 영변 핵시설의 5MW급 원자로 2018년부터 가동이 중단됐다는 것 등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들이다. 새로운 내용은 김정은에 관한 것뿐이었다.

    국정원은 이날 "김여정이 김정은을 대신해 국정 전반을 위임통치한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정보위 여당 간사인 김 의원은 ‘위임통치’와 ‘통치 스트레스’는 북한이 아니라 국정원이 한 표현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김정은이 여전히 절대권력을 행사하지만 과거에 비해 조금씩 (김여정에게) 권한을 이양했다”면서도 “후계자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날 보고에서 김정은의 건강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북한 내부 이상설 vs. 북한 정상화로 여론 갈려 

    “김정은이 통치 스트레스 때문에 위임통치를 한다”는 말을 믿는 사람은 주로 여당이다. 야당과 북한 관련 업무 종사자들은 김정은 신변이상설을 제기하는 쪽이다. 여기서도 “김정은 건강이 악화했다”는 의견과 “김여정이 김정은을 제치고 실권을 장악했다”는 의견으로 또 나뉜다.

    가장 많은 의견은 역시 김정은 건강이상설이다. 탈북민단체와 북한인권단체 관계자들은 지난 4월 김정은 식물인간설·사망설이 나왔던 사실을 지적하며 건강 이상에 무게를 실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20일 “북한에서 절대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일부 이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실이라면 김정은 신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 김여정. 국정원은 김여정이 김정은 대신 국정 전반을 위임통치 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데일리 DB.
    ▲ 김여정. 국정원은 김여정이 김정은 대신 국정 전반을 위임통치 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데일리 DB.
    김 대표는 “김정은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정보는 몇 달 전부터 들어왔다”며 “하지만 권력을 여동생과 최측근들에게 줘야 할 정도라면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으로서는 열 살도 채 안 되는 자녀들에게 권력을 물려줄 수도 없기 때문에 일단 여동생에게 권력을 내주고 체제를 유지하려는 의도라고 김 대표는 풀이했다.

    세계와동북아포럼 장성민 이사장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장 이사장은 20일 페이스북에 “북한 같은 신정일치체제에서 최고지도자를 대신해 위임통치한다는 말은 모순”이라는 글을 올렸다.

    “북한 상황에 정통한 중국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이 사실상 코마(의식불명) 상태로 거동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 장 이사장은 “리설주가 120일 지나도록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은 것 또한 김정은의 건강이 그만큼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장성민·허광일 “김여정이 김정은 제치고 권력 잡았을 수도”

    장 이사장은 “김정은을 대신할 완벽한 후계체계를 구축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렇다고 장기적으로 국정공백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김여정을 내세워 그의 리더십 공백을 조금씩 보강해 나가려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장 이사장은 이어 “김정은의 건강에 이상이 없는데도 권력을 이양했다면 쿠데타에 의해 실권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공개석상에 나서는 김정은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최룡해 등이 실권을 쥐었다는 지적이었다.

    허광일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도 “북한 체제에서 최고지도자가 권력을 조금이라도 이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김정은의 건강 악화 아니면 실권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실권했다면 김여정이 권력을 잡았을 수 있다”며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가 된 이후를 떠올려보라”고 주문했다.
  • ▲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종현 기자.
    ▲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종현 기자.
    김정일은 1974년 후계자로 공식 지정된 이후 김일성의 주변을 자신의 측근으로 채우며 차츰 권력을 장악해 나갔다. 1980년대 후반에는 사실상 북한 최고권력자가 됐다. 이때부터는 김일성의 말을 듣지 않았다. 김일성이 1994년 7월 김정일이 말을 듣지 않아 격노해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설이 있다. 김정일 또한 2011년 12월 김정은이 자신의 말을 무시하자 큰딸 김설송의 집에서 술을 마시며 분을 삭이다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설이 있다.

    김여정 또한 건강이 나쁜 김정은을 대신해 조직과 권력을 관리해오다 나름대로 통치에 자신감이 생기자 오빠를 내치고 직접 권력을 장악했을 것이라는 게 허 위원장의 분석이었다.

    홍익표 “김정은 위임통치, 북한 노동당의 정상화 과정”

    반면 여당은 국정원의 보고를 듣고는 “김정은이 통치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21일에는 한 술 더 뜨는 주장도 나왔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과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임통치는 북한 노동당 시스템이 정상화되는 것”이라며 “김정은의 1인 권력체계에는 큰 문제가 없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위임통치라고 하니까 (일각에서) 조금 과잉해석을 하는 것 같다”며 “김정일 때부터 ‘성분정치’라고 해서 일부 군 인사를 중심으로 한 비상정치 시스템이 계속돼왔는데, 최근 북한은 노동당의 여러 기능이 정상화되면서 각자 지위와 역할에 맞는 권한을 행사하는 시스템으로 정상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