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록‧조범동 재판부, 정씨 '교사범' 아닌 '공범'으로 표현… 현행법상 자기 사건 직접 증거인멸 처벌 못해
  • ▲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 씨. ⓒ권창회 기자
    ▲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 씨. ⓒ권창회 기자
    조국(56) 전 법무부장관의 아내 정경심(58) 씨의 증거은닉‧교사 혐의에 연루된 한국투자증권 프라이빗뱅커(PB) 김경록 씨와 조 전 장관 5촌 조카 조범동 씨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김씨는 정씨의 지시를 받아 관련 증거를 은닉한 혐의, 조씨는 정씨와 함께 증거은닉‧인멸을 교사한 혐의다.

    이들 두 사람의 '유죄' 판결로 증거은닉을 지시한 '몸통' 정씨의 증거은닉‧인멸 또는 교사 혐의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두 사람의 유죄 판결이 정씨에게 불리한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는 '당연한' 여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정작 정씨는 증거은닉‧인멸 교사 혐의를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졌다. 자기 사건과 관련해 직접 증거를 은닉‧인멸하거나 교사했더라도 직접 가담한 정황이 입증되면 처벌할 수 없다는 현행법과 대법원 판례 때문이다. 

    실제로 앞서 김경록·조범동 사건 재판부가 피고인들과 정씨의 관계를 '교사범과 정범'이 아닌 '공범'으로 적시해, 정씨가 증거은닉‧인멸 교사 혐의를 빠져나갈 명분을 만들어준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정씨 지시 받은 김경록‧조범동 '유죄'

    정씨와 함께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 직원들에게 증거은닉을 교사한 혐의를 받던 조범동 씨는 지난달 30일 1심에서 증거은닉 교사 혐의와 관련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증거인멸 교사 혐의는 피고인이 자백했고 법정에서 다투지 않아 구체적으로 고지하지 않았지만, 피고인이 공범(정씨)에게 '정○○(정씨 동생) 이름이 드러나면 큰일난다'는 전화를 받아 증거인멸을 지시하고 실제로 증거가 인멸 및 은닉된 사실에 비춰 보면 피고인(조씨)은 공범(정씨)과 공모해 범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전 장관 일가를 대상으로 한 수사가 본격화하던 지난해 8월 정씨의 지시를 받아 정씨 자택의 개인용PC 하드디스크 3개와 정씨 동양대 교수실PC 1대를 숨긴 혐의로 기소된 김경록(38) 씨도 지난 6월26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김씨는 "정씨의 지시에 따라 소극적 가담만 했다"며 자백과 동시에 선처를 구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씨는 정씨에 대한 압수수색이 개시될 사정을 알자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본체를 은닉하는 대담한 범행을 저질러 국가 형벌권을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정씨 '공범'일 경우 처벌 불가한데… 선행 재판부 '공범' 명시

    조범동·김경록 관련 1심 판결로 정씨는 증거은닉‧인멸 교사 등 혐의에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씨와 김씨의 재판부가 정씨를 증거은닉 혐의와 관련해 '교사범'이 아닌 '공범'으로 판단했다는 점 때문이다.

    조씨 재판부는 정씨를 '공범'이라고 명시했고. 김씨 재판부는 김씨와 정씨의 관계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선고 과정에서 "공범인 정경심"이라고 표현했다. 

    현행법상 증거은닉‧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 증거를 은닉·인멸·위조한 경우 처벌할 수 있고, 자신의 죄와 관련한 증거를 은닉·인멸·위조했을 경우에는 처벌할 수 없다. 자신을 위한 직접 방어권을 인정한다는 취지다. 

    즉, 김씨와 관계에서 정씨가 김씨에게 증거은닉을 지시만 하고 자신은 관여한 바 없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정씨도 직접 가담해 김씨와 함께 증거를 은닉한 '공범'이라면 처벌받지 않는다. 

    조씨와 함께 코링크PE 직원들에게 증거은닉‧인멸을 교사한 혐의도 마찬가지다. 조씨는 '타인'인 정씨의 사건과 관련한 증거은닉‧인멸을 교사했기 때문에 유죄를 받았지만, 정씨는 방어권 차원에서 자신의 직접 가담 행위를 입증하면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 

    실제로 '타인에게 증거은닉‧인멸을 교사하면서 자신도 함께 증거은닉‧인멸에 가담했다면 증거은닉‧인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정씨, '증거인멸 직접 가담' 입증 주력할 것" 

    결국 정씨의 지시를 받아 증거를 은닉하거나 은닉‧인멸을 교사한 김씨와 조씨는 처벌받고, 정씨는 법망을 피해가는 역설적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말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앞선 재판에서 정씨와 피의자들의 관계를 '교사범과 정범'이 아닌 '공범'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라며 "정씨 재판에서 증거은닉‧인멸 관련 혐의에 무죄 선고를 내릴 '구실'이 될 수도 있다. 정씨 변호인 측은 정씨가 합당한 방어권 차원에서 증거인멸 및 교사에 직접 가담했다고 입증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정씨 측 변호인은 김경록 씨의 선고 이후 "김씨의 행동은 운전을 하고 PC와 하드디스크를 보관한 것이 전부"라며 "정 교수가 동양대에 직접 가서 보관을 맡긴 것 등을 보면 공동행동이라고 봐야 한다"고 한 언론을 통해 주장했다. 정씨가 '교사범'이 아닌 '공범'에 해당하므로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