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초중고 학생선수 5만7557명 전수조사… 성 피해 2000명, 신체폭력 8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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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하다 보면 도복이 풀어져 몸이 바로 보이거든요. 그럼 구경하던 남자애들이 '한 번씩 하자'고 그래요. 운동에 집중해야 하는데 가슴을 보고 있어요. 후배들이 운동 끝나면 '누나 B컵이에요?'라고 노골적으로 묻기도 합니다"(고교 유도선수)

    초·중·고교 학생선수 중 2200여 명이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었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7~9월 전국 5274개 초·중·고교 선수 6만3211명을 대상으로 한 '초·중·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7일 발표했다. 

    실제 응답자 5만7557명(91.1%) 중 성폭력을 경험한 학생선수는 2212명(3.8%)에 달했다. 특히 어린 초등학생 응답자 중 438명(2.4%)이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해 인권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폭력 시 괜찮은 척 웃어넘기는 등 소극적 대처를 했다'는 초등학생 응답자가 252명(57.5%)으로 조사됐다.

    "괜찮은 척 웃어넘기곤 했다"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성폭력 피해는 더욱 두드러졌다. 선수들 중 9명이 "성관계를 요구당했다"고 밝혔으며 5명은 "강간당했다"고 답했다. '누군가 자신의 주요 신체 부위를 만졌다'는 응답은 131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누군가 내게 강제로 키스나 포옹, 애무를 했음' 45건, '누군가 나의 신체부위를 몰래 또는 강제로 촬영했음' 76건 등으로 집계됐다. 피해 장소는 대부분 훈련장소와 숙소 등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곳이었다.

    고등학교 학생선수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누군가 나의 가슴이나 엉덩이, 성기 등을 강제로 만졌다'는 응답이 7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누군가 자신의 가슴이나 엉덩이, 성기 등을 강제로 만지라고 했다'(22건), '누군가 내게 강제로 키스나 포옹, 애무를 했다'(18건), '누군가 나의 신체부위를 몰래 또는 강제로 촬영했다'(61건), '누군가 성관계를 요구했다'(9건), '누군가 자신을 강간했다'(1건) 등으로 나타났다.

    학생선수들은 이밖에도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에도 시달렸다. 전체 응답자 중 9035명(15.7%)이 언어폭력을, 8440명(14.7%)이 신체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언어·신체폭력은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졌다. 초등학교 선수 중 3423명(19.0%)이 이 같은 폭력을 당해봤다고 답변했다. 

    언어폭력 경험자 69% "코치-감독이 가해자였다" 

    언어폭력 경험자의 69%는 코치·감독 등 지도자가 주 가해자였다고 응답했다. 이밖에도 초등학생에게 원치 않은 각종 심부름이나 빨래·청소를 시키는 사례도 779명(4.3%)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생선수들은 폭력을 훈련 또는 실력 향상을 위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높았다. 초등학생 선수들은 '신체폭력을 경험한 뒤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898명(38.7%)이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변했다. 이는 중·고교 선수들도 비슷했다.

    인권위는 "학생선수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2007년 12월 합숙소 폐지를 포함한 종합대책 마련을 권고했다"면서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학생선수들이 고통받는 것으로 드러나 초·중·고 학생선수 인권 보장을 위한 종합적인 정책 개선을 마련해 관련 부처 등에 재차 권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