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화위원회의 징계요구권 효력없다" 현원섭 전 기자 해고 무효 판결
  • ▲ 해고된 현원섭 전 MBC 기자의 소송대리를 맡고 있는 임응수 변호사. ⓒ뉴데일리
    ▲ 해고된 현원섭 전 MBC 기자의 소송대리를 맡고 있는 임응수 변호사. ⓒ뉴데일리
    지난 1월 'MBC정상화위원회'의 핵심 기능(징계 요구권 등)들을 중지시키는 결정을 내린 법원이 이번엔 정상화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해고된 기자를 복직시키라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사내 적폐청산'을 목적으로 세워진 위원회가 출범 1년여 만에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안팎으로 나오고 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는 지난 3일 현원섭 전 MBC 기자가 낸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MBC가 현 전 기자를 조사하는 근거가 된 정상화위원회 운영규정의 출석, 답변, 자료 제출 의무권과 징계 요구권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데, 노조나 근로자의 유효한 동의를 얻지 못했으므로 효력이 없다"며 현 전 기자에 대한 MBC의 해고 처분 역시 무효라고 판단했다.

    현 전 기자는 2012년 10월 당시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박사논문 표절 의혹을 보도했는데, 정상화위원회는 ▲리포트에 대한 제보 검증이 부족했고 ▲사실 확인에 오류가 있으며 ▲공정성을 외면하는 등 MBC 방송강령과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 윤리강령을 위반한 점이 인정된다며 지난해 5월 현 전 기자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이에 MBC는 같은해 5월 11일 인사발령을 내고 현 전 기자를 사규 및 취업규칙 위반으로 해고 처분했다.

    이에 현 전 기자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리포트를 쓰지 않았고 ▲반대의견을 가진 학자를 인터뷰했으며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5년이 지난 이후에 해고 처분이 내려진 것은 과잉징계라며 MBC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과잉징계로 '언론의 자유' 억압해선 안돼"


    현 전 기자의 소송대리를 맡은 임응수(사진) 변호사는 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현 전 기자가 인사위원회에 회부될 때부터 법률자문 역할을 맡아왔는데, '2012년 당시 MBC의 안철수 대선후보 검증보도가 사실상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는 정상화위원회의 보도자료를 접하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소중한 언론의 자유가 방송사 내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표절이 의심되는 정황을 보도함에 있어 의도와는 달리 조금 단정적인 내용을 전했다는 이유로 기자를 해고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의도적인 왜곡보도가 아닌 이상, 기자에게 오보나 과실에 대한 책임은 묻되 결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억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설령 어떤 비위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근로자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정당한 징계가 내려져야 하는 건 당연한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또 "과거 MBC '피디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사실관계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보도였지만 '언론의 자유'와 '근로자의 기본권'이라는 두 가지 측면 때문에 회사에서 진행한 해고 처분을 법원이 무효로 되돌린 사례가 있다"며 "당시엔 '언론의 자유'를 외쳤던 이들이 현 전 기자의 경우에 대해선 침묵을 지키는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정치적 성향을 떠나' 절대로 흔들려선 안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번 소송을 통해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전 기자에 대한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에 대해 아직까지 MBC의 공식 입장은 받아보지 못했지만, 지난 2월 28일 MBC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맺은 단체협약에 따라 사측은 판결문이 접수되는 대로 현 전 기자의 직원 신분을 회복시켜야 한다"며 "오는 10일경 판결문이 송달되면 그때 현 전 기자의 복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작성 기자, 무혐의 처분 받아

    지난해 5월 해고된 최대현 전 MBC 아나운서의 해고무효확인소송도 진행 중인 임 변호사는 "최 전 아나운서는 ▲2017년 대선 직전 '클로징멘트'가 부적절했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지도 처분을 받은 것과 ▲일명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했다는 의혹 ▲시간외 수당 일부를 규정과 다르게 받은 점 등이 징계사유로 거론돼 해고됐는데, ▲현 전 기자와 마찬가지로 정상화위원회의 징계 요청을 인사위원회가 받아들여 이뤄진 해고인 만큼 절차상 문제가 있고 ▲사측로부터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권지호 전 기자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점 등으로 볼 때 최 전 아나운서에 대한 징계는 부당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근로자로서의 기본적인 이익이 침해당할 수 있는 취업규칙을 변경하기 위해선 조합원들의 동의를 받는 등의 절차가 필요한데 그런 절차를 무시하고 징계가 이뤄진 것에 대해 효력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고, 이번 현 전 기자의 경우도 그런 차원에서 승소판결이 내려진 것 같다"며 "최 전 아나운서의 소송에 대해서도 법원이 정확한 판단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조계에선 자사 직원들을 해고한 MBC의 처사가 노동법 등 기본 원칙을 허물어뜨린 측면이 있어 동의하거나 지지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배한 상황"이라며 "MBC의 해고 처분을 묵인한다면 여타 기업에서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해당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