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의회 ‘월미도 피해주민 보상’ 조례안 통과…“배상 근거 없다”는 법원 판결 뒤집어
  • ▲ 2016년 3월 인천 월미도에서 중국 관광객을 초대해 벌인 치맥파티. 이제 월미도는 인천의 유명 관광지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6년 3월 인천 월미도에서 중국 관광객을 초대해 벌인 치맥파티. 이제 월미도는 인천의 유명 관광지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천시의회가 ‘월미도 과거사 피해주민의 생활안전지원 조례안’을 지난 18일 통과시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월미도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가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과거 ‘월미도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 특별법’을 발의한 적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뉴스1' 등에 따르면, 안병배 더불어민주당 인천시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조례안에는 “인천상륙작전으로 피해를 입은 월미도 원주민과 상속인에게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2017년 9월 이미 통과된 ‘인천 월미도 장기민원 조정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통해 월미도 원주민과 그 상속인에 대한 피해보상을 심사하도록 했다. 지원금 규모와 지급기간, 수령범위 등은 조정위원회에서 정하도록 했다.

    생소하지만 ‘월미도 과거사 진상조사 및 원주민 피해보상’ 요구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월미도 원주민들이 말하는 피해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즈음해 일어난 유엔군의 함포공격과 공습으로 인한 인명피해다.

    과거사위가 말하는 1950년 9월10일 월미도 공습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월미도를 무력화해야 했다. 인천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월미산에는 북한군 대대병력이 주둔 중이었다. 이들은 인천만을 감시하며 유엔군의 진입을 저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반면 유엔군으로서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인천으로 상륙하다 썰물을 만나면 몰살당할 수 있었다. 때문에 먼저 월미도를 장악해야 인천에 상륙할 수 있고, 이어 김포비행장을 확보해야 ‘인천상륙작전’은 완성되는 상황이었다. 유엔군은 결국 공군과 해군을 동원해 월미도를 공격했다.

    다음은 과거사위와 월미도 원주민들의 주장을 토대로 한 상황 재구성이다. 1950년 9월10일 오전 7시 무렵, 월미도 주민들은 평소처럼 북한군에 동원돼 밤새도록 참호공사를 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이때 공습이 시작됐다. 월미도 동쪽에 떨어진 네이팜탄 95발은 마을을 초토화했다. 주민들이 놀라 도망치자 유엔군 전투기가 기총사격을 시작했다. 정오 무렵까지 5시간 동안 계속된 유엔군 공습으로 월미도 주민 10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120가구 600여 명이 살던 마을은 잿더미가 됐다.

    유엔군의 공습은 12일과 15일에도 있었다. 15일 오전 5시 미 해군의 공습이 끝나자 순양함 6척과 구축함 4척이 월미도에 포격을 가했다. 인민군 병력이 주둔했던 월미산 일대가 목표였지만 민가도 피해를 입었다. 1시간 뒤 만조가 되자 유엔군 해병대원들이 월미도로 진입했다. 지원함에 장착한 로켓포가 불을 뿜었다. 로켓 1000여 발이 월미도로 날아들었다. 오전 6시30분 무렵 상륙정 7척이 해안에 다다랐고, 해병대원들이 상륙했다. 하늘에는 해병대원을 엄호하는 유엔군 전투기가 전방을 향해 기총사격을 했다. 오전 6시55분 해병대는 월미산 정상에 유엔기를 게양했다.
  • ▲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당시 월미도. ⓒ인천상륙작전 기념재단 홈페이지 공개사진.
    ▲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당시 월미도. ⓒ인천상륙작전 기념재단 홈페이지 공개사진.
    “과거사위 구성” vs. “실향민 인정 및 피해보상” 주장 대립

    이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난 것은 2006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민원이 제기되면서부터였다. 이후 2006년 7월 한광원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월미도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주민 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그러나 특별법에 포함된 진상조사와 피해보상 범위 등에 대한 의견차이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2008년 5월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12년 9월 문병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월미도 특별법’을 다시 발의했지만 또 임기만료로 2016년 5월 폐기됐다. 그리고 2017년 3월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새로운 법률안을 내놨다. 하지만 한광원·문병호 의원과 안상수 의원의 법안은 내용이 크게 달랐다.

    한·문 의원의 법안은 “국무총리 직속으로 월미도 사건 진상조사 및 피해보상위원회를 만들어 당시 상황을 조사하도록 하고, 그 피해자로 밝혀진 사람과 상속인들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것과 “피해보상 관련 위원회는 인천광역시장이 위원장을 맡아 운영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들은 법안을 통해 월미도 원주민과 그 상속인에게 보상금·의료지원금·생활지원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근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반면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안 의원의 법안은 월미도 원주민을 ‘실향민’으로 인정하고, 6·25전쟁 당시 정부에 강제수용당한 고향 땅을 되돌려받거나 그 피해를 보상받는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안 의원의 법안에는 월미도 원주민들의 인명피해에 대한 보상은 포함되지 않았다.

    안 의원실에 따르면, 이는 6·25전쟁의 특수성 때문이다.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좌우익 간 학살, 군사적 목적에 따른 민간자산 강제수용 등이 전쟁 때는 물론 그 후로도 적지 않게 일어난 게 현실이라는 지적이었다. 안 의원실은 “6·25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양민이 학살당하고, 군사적 목적에 의해 자기 땅을 빼앗겼느냐”며 “이런 문제를 모두 파헤치려다가는 이제 몇 분 남지도 않은 월미도 원주민들이 모두 돌아가시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미도 보상법’ 부활은 문재인 정부 법제처에서
  • ▲ 2012년 9월 국회 정론관에서 월미도 원주민 피해보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2년 9월 국회 정론관에서 월미도 원주민 피해보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월미도 원주민들에게 국가가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권고는 과거사위원회가 2008년에 내놓은 결론이다. 국방부가 2001년 내놓은 땅을 인천시가 받아서 공원으로 만들어 원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천시의회는 이 권고에 따라 2011년과 2014년 ‘월미도 원주민 피해보상’을 위한 조례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지자체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지적에 따라 조례 제정은 무산됐다.

    정부가 과거사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자 ‘월미도 원주민들’이 모였다는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는 2011년 2월 인천지방법원에 “국방부와 인천시, 미국정부, 유엔은 월미도 원주민 가구당 300만원씩 모두 1억35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2011년 3월1일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는 소장에서 “과거사위의 월미도 사건 진실규명 이후 3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월미도에 가해진 무차별 폭격으로 고향과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쫓겨난 사실이 확인된 만큼, 이와 관련된 손해는 반드시 배상받아야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재판에서 졌다. 2013년 11월 서울고등법원은 이들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정부는 “원주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월미도에 살았다는 토지대장 등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고, 월미도 원주민 측은 “미군 폭격으로 모든 자료가 소실됐다”고 맞섰다. 하지만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옴으로써 월미도 원주민 측은 보상받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법원 판결이 5년 만에 뒤집힌 것이 이번 조례 제정이다. '뉴스1'에 따르면, 법제처가 올해 ‘월미도 원주민에 대한 보상은 지자체 업무’라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덕분에 인천시의회의 조례 제정으로 이들에 대한 보상의 길이 열린 것이다.

    다만 ‘월미도 원주민들’이 말하는 자기 소유의 토지면적이 어느 정도이냐, 보상 시세를 어느 시점에 맞출 것이냐에 따라 인천 지역사회가 술렁일 수도 있다. 인천시 소유 월미도 토지 면적은 약 42만㎡(약 12만 평)으로 알려져졌다. 이를 3.3㎡당 1000만원만 잡아도 1200억 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