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당 현실 바꿔야 국민의 시선 돌아올 것
  • ▲ 새누리당 인명진 신임 비대위원장과 마찰을 빚고 있는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인명진 신임 비대위원장과 마찰을 빚고 있는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친박 핵심으로 불렸던 서청원·최경환 의원이 궁지에 몰렸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의 '인적 청산'에 홀로 반대하며 외로운 신세가 됐다.

    두 사람은 친박계의 핵심이자 새누리당의 맏형 역할을 자임하면서 당을 이끌어왔다. 4·13 총선에서는 180석을 목표로 지원유세를 돌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안정적인 하반기 국정운영을 이끌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주변에 자신들을 도와줄 의원들을 찾기 어렵게 됐다. 주요 당직을 쥔 당 소속 의원들을 비롯한 복수의 의원들은 인명진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에 자신의 당적을 맡겼다.

    심지어 친박계 세력의 핵심축이었던 재선 의원들도 지난 3일 오찬 회동을 통해 "상징적 의미가 있는 소수 의원에 한해 인적 쇄신을 수용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의 말대로 두 사람이 정치적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기로에 선 것이다.

    ◆ 사건의 발단은 인명진의 '고립작전'

    사실 인명진 목사가 신임 비대위원장으로 내정될 때만 해도 두 사람이 고립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두 사람의 위력은 당에서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된 바 있다. 가까이는 현직 정우택 원내대표 전임이었던 정진석 원내대표 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당 혁신위원장으로 김용태 의원을 내정하려 했지만, 친박계가 전국위원회를 보이콧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당 대표 권한대행의 결정이라 할지라도 당시 친박계에는 실력으로 저지할 힘이 분명하게 있었던 셈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인명진 신임 비대위원장은 서청원 의원과 최경환 의원을 향해 '나가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대신 "자진 탈당하라"면서, 동시에 당 소속 의원들에게서 '거취를 일임해 달라'는 탈당계를 받기 시작했다.

    당 혁신을 이미 자처한 친박계로서는 반발할만한 뚜렷한 명분이 없었다. 친박계 의원들은 인 비대위원장의 행보를 내켜 하지 않으면서도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 한 재선의원은 "그렇다면 인명진 비대위원을 사퇴시킨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는데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정현·정갑윤 의원이 탈당의사를 밝히고 후배 의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서청원 의원은 기자회견을 자처하고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인적 청산은 없다고 말하더니 '거짓말쟁이 성직자'라는 주장이었다.

    "죽음을 강요하는 성직자는 처음 보았다"는 원색적 비난이 이어진 서 의원의 기자회견은, 침착한 대응이 아닌 인명진 비대위원장에 대한 분노 표출에 가까웠다는 것이 당 관계자의 전언이다.

    당내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초·재선 의원들의 여론을 업고 있는 인명진 비대위원장의 대응은 여유로웠다. 인 비대위원장은 지난 5일 "정치를 8선 하신 분인데 그렇게 직선적으로 얘기하겠느냐"면서 "나는 그걸 보면서 스스로 탈당하겠다는 선언이라 생각했다"고 맞받았다.

    6일에는 "성직자를 구하긴…. 당인 줄 알았더니 와보니 교회"라며 서청원 의원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 ▲ 김용태 의원. 그는 새누리당에 있을 당시 친박계에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인사다. 사진은 서청원 의원 관련 기자회견을 한 후 씁쓸해 하는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김용태 의원. 그는 새누리당에 있을 당시 친박계에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인사다. 사진은 서청원 의원 관련 기자회견을 한 후 씁쓸해 하는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朴 대통령도 그렇게 고립됐다…다음 차례 왔을 뿐

    원내 1당의 최대계파의 수장으로 불린 두 사람이 왜 여기까지 몰렸을까. 시계를 되돌려보면 최근에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정국이다.

    당시 친박계는 이른바 '최순실 사태'가 터지자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 애썼다. 청와대에 있는 인사는 물론 친박계 정치인들도 저마다 '최순실의 존재를 몰랐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침묵으로 일관했다.

    친박계 의원들이 최순실을 실제로 몰랐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최순실이 박 대통령의 흔한 지인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취지로 박 대통령을 옹호하고 나선 사람은 이정현 전 대표밖에 없었다.

    단단한 것처럼 보였던 친박계 의원들의 응집력은 국민적 여론이 더욱 차가워지자 흩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탄핵안 표결에는 최경환 의원이 홀로 불참했다. 여기엔 보수세력의 시선도 싸늘했다.

    〈조갑제 칼럼〉은 "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탄핵 열차가 출발한 뒤에 했느냐"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다면 그동안 왜 침묵했느냐"고 일갈했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도 단 한마디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애국 시민들이 최경환류의 친박세력이 피신한 자리를 대신해 촛불 시위대와 맞서는 동안 어디에 있다가 상황이 끝나가는 시점에 비장한 격문을 남기고 표결엔 기권했느냐"고 덧붙이기도 했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고립되는 동안 단일대오를 이루는 데 실패한 것은 물론이고 분당 수순에 돌입하기 바빴다. 친박계는 당권을 내놓지 않으려고 버텼고, 비박계는 이정현 전 대표의 사퇴 이외에 어떠한 대안도 내놓지 못하며 서로 엇갈렸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의 접근방식이 탄핵 때와 정확히 같다. 그가 "인적 청산은 핵심만 제거하면 된다"고 발언하자 중도는 물론이고 강성 친박으로 알려졌던 의원들도 침묵에 들어갔다.

    사실 새누리당 의원실 한 관계자의 말대로 "그런데 서청원 의원이 탈당해야 하는 이유가 콕 집어 어떤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답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정국에서 서청원 의원과 최경환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서청원 의원과 최경환 의원이 다음 타자가 됐다. 두 핵심 의원이 이제 와 억울함을 호소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 ▲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 최경환 의원은 친박계의 핵심으로 지목된다. 지난 8·9 전당대회에서도 "백의종군 하겠다"면서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 최경환 의원은 친박계의 핵심으로 지목된다. 지난 8·9 전당대회에서도 "백의종군 하겠다"면서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비참한 당 현실 바꿔야 국민의 시선 돌아올 것

    이같은 친박계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먼저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보수세력 일각에서 제기된다. 정치적 동지 의식을 복원하고 확실하게 보수의 가치를 세워 야당과 전투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떠나간 '집토끼'를 다시 모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은 비주류였던 김무성 전 대표 시절 여러 차례의 계파 갈등에도 불구하고 줄곧 40%대 지지율을 고수하며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김 전 대표는 당내에서 친박계와 끊임없이 다퉜지만 길게 싸우지 않았고 야당과의 공세가 올 때면 곧바로 한목소리를 냈다.

    계파를 초월하며 일치단결한 모습이 이어지자 '자력으로 총선을 이기기 불가능하다'고 느낀 문재인 전 대표는 김종인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친노의 수장으로 불렸던 이해찬 의원 등을 출당시켰지만 결국 그는 무소속으로 당선돼 돌아왔고, 친노는 친문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새누리당에도 이같은 자세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야당이 추진하는 정책 몇 개를 들어주는 무늬만 개혁이 아닌 하나로 뭉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보수정당의 자세를 견지해야 국민의 시선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정치에서 사실 이념보다 중요한 것은 동지의식인데 최근 보수정당에 그런 게 있는지 의문이 든다"면서 "모든 의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립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