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 구도' 불리했지만 극복 가능… 오히려 전략 부재가 패인
  • ▲ 16일 오전 국회본청에서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이 치러진 직후, 석패한 나경원 의원이 굳은 표정으로 의원총회장을 나서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16일 오전 국회본청에서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이 치러진 직후, 석패한 나경원 의원이 굳은 표정으로 의원총회장을 나서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친박(親朴)이 왜 이겼나"가 아닌 "비박(非朴)이 왜 졌느냐"고 물어야 할 판이다. 승인(勝因) 분석보다 패인(敗因) 분석이 과제가 될 만큼, 비박계는 '질 수 없는 싸움'에서 졌다.

    16일 소집된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 경선을 실시한 결과, 친박계가 내세운 정우택 원내대표~이현재 정책위의장 후보가 62표를 얻어, 55표를 얻은 비박계 나경원 원내대표~김세연 정책위의장 후보를 눌렀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천시(天時)는 비박계에 있었다는 게 새누리당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민심에 역주행하는 친박계의 무책임 정치에 당심(黨心)도 지쳤다. 정점을 찍은 것이 13일 있었던 '윤리위 파문'이다. 당 윤리위에 마치 공수부대를 투입하듯 진박(眞朴) 의원들을 내리꽂아 장악을 시도했다.

    이에 의원들은 동요했고, 친박계 의원들의 이탈은 가속화됐다. 홍철호·성일종 의원이 친박계 사조직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혁통)' 명단에서 빼달라고 요청했고, 윤리위에 투입됐던 이양수 의원은 윤리위원 사퇴도 모자라 '혁통'에서도 탈퇴할 뜻을 내비쳤다.

    이정현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박명재 전 사무총장조차 "경악을 금치 못했고, 절망을 느꼈다"며 분노로 몸을 떨었고, 당 사무처 당직자들은 '사무처 선배' 이정현 대표에 대항해 총궐기했다. 그야말로 친박계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배했다. 일부 매체도 '충격적' '예상외의 결과'라는 수식어를 달아 타전하고 있다. 분당(分黨)까지 공공연히 거론되는 흉흉한 분위기에 최후결전의 자세로 겨뤘던 것이기에 패배는 더욱 뼈아프다.

  • ▲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이 치러진 16일 의원총회에서 이현재 정책위의장 후보가 정우택 원내대표 후보에게 귓속말을 건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이 치러진 16일 의원총회에서 이현재 정책위의장 후보가 정우택 원내대표 후보에게 귓속말을 건네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대체 왜 졌을까.

    구도의 측면에서 볼 때, 친박계의 '스타트'가 좋았다는 평이 나온다.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만약 친박에서 홍문종 의원을 내고, 비박에서 주호영 의원을 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친박계는 '조직 지도부'를 유지한 채 친박 색채를 최대한 빼고 승산이 높은 주자를 내세우는 등 구도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갔다.

    반면 비박계는 본인이 출마를 희망한 나경원 의원의 의사를 받아들여 지원하기로 하는, 소극적인 자세에 그쳤다. 애초부터 비박계 자체가 비상시국회의 대표자 하나를 정하는데도 중구난방(衆口難防)하다가 결국 정하지 못하고 발전적 해체를 맞았을 정도로 강력한 구심점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중심이 돼서 구도를 만들어간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일단 대결 구도가 정해진 뒤에는 비박계도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계파로서의 응집력을 보여줬다. '옅은 친박'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15일 하루 동안 비박계 중진의원들로부터 나경원 의원 지지를 호소하는 전화를 수 통이나 받았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원포격에 나섰다.

    친박~비박계가 각자 자기 계파 의원들을 최대한 결집시켰다고 보면, 결국 이날 오전까지 향배를 정하지 못했던 중립·중도 성향 의원들이 승패를 갈랐다는 말이 된다.

    이날 오전 의원회관에서 이주영 의원이 주재한 중립·중도 성향 의원 모임에는 17명의 현역 의원이 참석했다. 한 표가 아쉽다며 양 측이 전날 맹렬히 선거운동을 펼쳤는데, 경선 당일 오전에 17명이 중립·중도라며 모였다는 것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비박계가 이들 중립·중도 성향 의원들의 표심을 확실히 끌어오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서는 그 이유를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 ▲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과 정진석 전 원내대표·김광림 전 정책위의장 등 중립·중도 성향 의원 17명이 원내대표 경선 직전인 16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모여 회동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과 정진석 전 원내대표·김광림 전 정책위의장 등 중립·중도 성향 의원 17명이 원내대표 경선 직전인 16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모여 회동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첫째로는 '윤리위 파문'을 효과적으로 파고드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윤리위 파문'은 친박계 입장에서 보면 경선 직전에 자초한 최악의 악재로, 의원들을 대단히 격앙시켰다.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친박계 최고위원들조차 엄청난 역풍에 당황했을 정도였다. 조원진 최고위원은 14일 의원총회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김무성·유승민 전 대표를 출당하려고 (윤리위를 장악)한 게 아니다"라며 "제발 소설들 좀 쓰지 말라"고 항변했다.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친박계가 대체 왜 그런 무리수를 뒀는지 모르겠다"며, 일찌감치 "패착(敗着)"이라고 규정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16일 경선 당일에는 의외로 이를 쟁점화하는데 실패했다. 나경원 의원은 정견발표에서 "어제 새누리당 사무처 당직자들이 윤리위원 임명에 반발해 당무를 거부했다"며 "참으로 부끄럽다"고 언급하는 정도로 넘어갔다.

    상호토론에서 '윤리위 파문'에 대한 공격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나경원 의원은 △친박계 원내대표를 세우면 야당이 '협상 상대'로 인정치 않는다는 문제 △싸우는 게 싫어서 의총에 자주 참석하지 않는다는 인터뷰 발언 등을 문제삼았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질문이 다 변죽만 울릴 뿐, 정작 의원들이 가장 심각하게 여겼던 윤리위 사태를 찌르고 들어가지 못했다"며 "특히 첫번째 질문은 우리 당의 체면 문제라 내심 야당의 공세를 불쾌하게 여기는 의원들이 많았는데, 이걸 질문한 것은 가점 요인으로 보기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 ▲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16일 오전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정진석 전 원내대표로부터 축하의 꽃다발을 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16일 오전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정진석 전 원내대표로부터 축하의 꽃다발을 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둘째로는 경선 직전 비박계에 불리한 여론조사가 발표됐다는 것이다.

    정우택 의원은 이날 상호토론에서 이 점을 치고들어갔다. 정우택 의원은 "친박계 정당과 비박계 정당이 생기면, 친박계 정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배 이상으로 나왔고, 비박계 정당 지지는 절반 이하"라며 "(경선에서) 패배하면 정말 탈당할 것인지 밝혀달라"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나경원 의원은 "내가 본 여론조사는 다르다"며 "여론조사가 친박·비박(계 정당) 똑같이 나왔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의 말이 틀린 것은 없다. CBS라디오의 의뢰로 〈리얼미터〉가 조사해 15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를 대상으로 놓고볼 때 친박계 정당과 비박계 정당의 지지율은 12.6%로 동일했다. 이는 현재의 야당 지지층·무당층까지 전부 포함한 수치다.

    하지만 지금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응답자만을 대상으로 놓고 보면, 친박계 정당의 지지율은 54.0%였던 반면 비박계 정당의 지지율은 25.4%였다. 의총장의 동료 의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은 이 영역이었고, 정우택 의원은 바로 이 부분을 찌르고 들어간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날 모인 새누리당 의원들 중에서 불과 얼마 전의 '탄핵 정국'에 전화번호가 공개돼 각종 욕설과 협박 문자를 안 받아본 사람들이 없다"며 "긴가민가 했던 것은 이렇게 이반한 민심에 8개월 전 치러졌던 총선에서 '나를 찍어준 사람'들이 포함돼 있는지, 아니면 원래 민주당 찍던 사람들만 있는 것인지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지금 민주당 지지하는 사람들이 새누리당이 분당된다고 새삼 우리 지지층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며 "결국 정치는 표를 주는 핵심 지지층을 바라보며 해야 하는데, 새누리당 지지층 사이에서 친박계 정당의 지지율이 비박계 정당의 2배 이상으로 나왔다는 것이 중립·중도 성향 의원들의 표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 ▲ 새누리당의 중립·중도 성향 의원들을 대표하는 5선 중진 이주영 의원이 16일 원내대표 경선에 앞서 마지막으로 합의추대를 호소하는 내용의 의사진행발언을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조경태 선거관리위원장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의 중립·중도 성향 의원들을 대표하는 5선 중진 이주영 의원이 16일 원내대표 경선에 앞서 마지막으로 합의추대를 호소하는 내용의 의사진행발언을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조경태 선거관리위원장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셋째로는 이주영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중립·중도 성향 의원들의 합의추대 노력을 외면한 것도 모자라, 불필요하게 의혹 어린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표를 흩었다는 것이다.

    '혁통'이나 비상시국회의 어느 쪽에도 몸담고 있지 않은 5선 중진 이주영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15~16일 이틀 연속으로 회동을 주재해 20명 안팎의 현역 의원들을 모았다. 이날 경선 결과가 말해주듯이, 이는 양 계파의 승패를 좌우하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당초 이들 의원들은 친박계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혁통 즉각 해체'와 '윤리위 원상회복'을 의결한 15일 결의문에서도 그와 같은 시선이 읽힌다. 15일 회동에서는 공개 모두발언에서 지나치게 친박계를 향한 비판적 강경 발언이 쏟아져 중립·중도 성향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지경에 이르자, 이주영 의원이 급히 공개 발언을 중단시켰을 정도였다.

    이들은 충분히 비박계 쪽으로 움직일 수 있는 표였다. 그러나 정작 비박계 일각에서는 이들을 향해 의혹 어린 시선을 던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의 주재자인 이주영 의원이 한때 범친박(汎親朴)으로 분류되는 등 출신이 원래 친박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경원~김세연 후보 진영에서 이주영 의원의 '경선 연기와 합의추대 추진' 제안을 일축한데 이어, 일부 비박계 의원들은 조경태 경선관리위원장에게 "연기는 절대 안 된다"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한 중진의원은 중립·중도 성향 의원 회동을 향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경선을 원래 일정대로 강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 강행의 결과는 이날 드러났듯이 패배였다.

    비박계가 비상시국회의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외연을 확대하겠다고 한 마당에, 합의추대를 추진한 의원들을 '원래 출신이 친박'이라는 이유로 미심쩍게 바라보고, '경선 연기' 주장을 "해괴한 꼼수"라고까지 매도한 것은 회동에 참여했던 많은 중립·중도 성향 의원들을 실망시켰다는 후문이다.

    김광림 전 정책위의장은 이날 중립·중도 성향 의원 회동에 참석해 "(경선 연기와 합의추대 제안이) 잘 돼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왜 결국 안 됐느냐"고 의아해 했고, 이에 회동이 비공개로 전환된 뒤 자세한 사정 설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천시(天時)는 인화(人和)만 못한 법인데, 명분을 등에 업고 있다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해 동료 의원들 사이에 이는 화합을 촉구하는 움직임을 경시한 결과는 석패를 초래하고 말았다.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친박계가 흔들리고 이탈자가 속출하는 마당에 문호를 활짝 열어 '귀순 용사'를 받아들여도 모자랐을 비박계가 지나치게 협랑(狹量)한 자세를 보여 패배를 자초했다"며 "중립·중도 성향 의원들의 '경선연기·합의추대' 제안을 받아들여 경선이 연기됐다면 21일 지도부의 총사퇴를 공언했던 친박계는 진퇴양난에 처했을 것"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이날 원내대표 경선이 당초 일정대로 강행된 이후 친박계가 내세운 정우택 의원이 승리하자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전원은 같은 날 전원 총사퇴를 단행했는데, 이것은 친박계도 얼마나 막다른 골목까지 몰려 있던 상황이었는지 보여준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