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 격식 찾을 것 없다" 靑 거들면서도 "세월호 배지 달고가겠다" 예고
  • ▲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12일 의원회관에서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만나 악수를 하며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다. 현기환 수석은 앞서 접견실 안으로 들어올 때도 문을 넘어서자마자 먼저 와 있던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꾸벅 허리를 굽히며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12일 의원회관에서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만나 악수를 하며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다. 현기환 수석은 앞서 접견실 안으로 들어올 때도 문을 넘어서자마자 먼저 와 있던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꾸벅 허리를 굽히며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여소야대 정국에서 대통령을 모셔봤던 '선배'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후배'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36분간 전했다는 '옛 이야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현기환 정무수석이 12일 국회를 찾아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에 이어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를 만났다. 이례적으로 공개 모두발언을 생략하다시피 하며 2분 만에 마친 두 사람은 이후 문을 걸어잠근 채 배석자 없이 36분간 독대를 이어갔다.

    독대 도중에 현기환 정무수석이 수첩을 꺼내 뭔가를 메모하거나 품 속에서 세로로 잘 접은 A4 용지를 꺼내 펼쳐드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현기환 정무수석이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는 가운데, 박지원 원내대표는 종종 두 손을 들어 큰 제스처를 취해가며 대화에 열을 올렸다.

    두 사람 사이에 아주 격의 없는 대화가 진행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단순히 13일의 청와대 회동에 대비하는 의제 조율의 성격을 넘어섰다는 관측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회동을 끝마친 뒤 "지금 현기환 수석이 대통령을 모시면서 겪는 이야기, 내가 DJ를 모실 때도 이랬다 하는 이야기, 그런 옛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서로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모셔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격의 없이 이심전심으로 통했다"고 설명했다.

    4·13 총선의 결과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됐기 때문에, 청와대는 싫더라도 지금까지의 스타일을 확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협치'와 '소통'을 키워드로 내세웠지만 구체적인 방향이 문제다. 이에 따라 현기환 수석이 이미 여소야대 정국에서 청와대를 경영해본 경험이 있는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구체적인 조언을 구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대중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띈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정국이 형성됐었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133석으로 제1야당이 됐고, 연립여당인 새천년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은 각각 115석과 17석을 획득해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당시 137석)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자 DJ 청와대는 자민련 이한동 총재권한대행을 국무총리로 지명하면서 민주당과 자민련, 그리고 한나라당 탈당파로 결성된 민국당을 묶어 140석을 만들어 국정 운영에 나섰다. 그 결과 연립여당에서 이만섭 국회의장을 배출했고, 이한동 국무총리 임명동의안도 가결시킬 수 있었다.

    그러다가 연립여당이 재·보궐선거마다 연전연패하면서 2002년 16대 국회 후반기부터는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국회의장도 야당이자 제1당인 한나라당의 몫으로 돌아가 박관용 의원이 선출됐다. 이 무렵에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중용됐다.

  • ▲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12일 의원회관에서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두 사람은 공개 모두발언을 2분 만에 거의 생략하다시피 끝내고 곧바로 36분간 배석자 없이 독대에 들어갔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12일 의원회관에서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두 사람은 공개 모두발언을 2분 만에 거의 생략하다시피 끝내고 곧바로 36분간 배석자 없이 독대에 들어갔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야당이 단독 과반을 확보한 제1야당이라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청와대를 운영해본 것이다. 지금의 현기환 수석에게는 박지원 원내대표의 이러한 경험과 노하우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현기환 수석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전달하며 격의 없이 조언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기환 수석은 이날 모처럼 국회를 찾았지만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과는 소통을 해보지도 못했다. 외견상의 이유는 우상호 원내대표가 1박 2일 간의 워크숍으로 국회를 비우고 광주광역시로 향했기 때문이라지만, 더민주 일각에서는 "사전에 일정 조율 없이 불쑥 찾아온 것이 불쾌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첫 걸음부터 스텝이 꼬이는 모양새가 됐는데,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러한 거대 야당을 다뤄본 경험담도 이야기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본인 스스로 해당 정당에 워낙 오래 몸담아 그들의 기질에 정통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도 감안한 노하우가 전달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회동을 마치고 나와 더민주와 현기환 수석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에서 현기환 수석을 거들고 나선 것도 이를 반증한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대화를 하자고 하면 그렇게 격식을 찾을 것은 없다"며 "내가 청와대에 있을 때에도 여야 의원들을 많이 만났는데, 같이 국회의원을 했었으니 이름도 알고 얼굴도 알고 전화번호도 아는데, 다 아는 사이이니 서로 전화도 하고 같이 만나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것 아니냐"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치인은 서로 만나고 이야기하는 게 직업"이라며 "오늘이라도 먼저 만나 대통령이 이런 말씀을 하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청와대의 진정성이 이해가 된다"고 현기환 수석의 손을 들어주었다.

    반면 현기환 수석에게 경험에서 우러나는 이런 저런 조언을 한 것과는 별개로, 13일 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현안에 대해 할 말은 할 전망으로 보인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내가 5년간 대통령을 모셔봤는데 내일 대통령에게 무슨 말을 하겠다는 것을 미리 이야기하는 것은 예우에도 벗어나고 지켜야 할 금도에도 벗어난다"면서도 "(세월호) 배지 다는 것까지도 다 허락 맡고 해야 하느냐? 하고 가겠다"고 밝혀,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전달할 것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