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한제국군 당시 노백린 장군.ⓒ보훈처
    ▲ 대한제국군 당시 노백린 장군.ⓒ보훈처

    일제시대 독립군 비행사를 양성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총리를 지낸 노백린 장군 90주기 추모식이 오는 22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노백린장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거행된다.

    이날 추모식은 고인의 나라사랑 정신을 선양하고 항일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한 행사로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및 회원, 유가족,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행사는 추모예배, 추모사, 헌화 및 분양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노백린 장군은 1975년 1월 10일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나 한학을 배웠다. 1895년 관비(官費) 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으로 유학갔다. 1899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00년 귀국해 육군 참위(소위)로 임관한 뒤 한국무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후진들을 양성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군을 해산하자 안창호, 이 갑, 이동녕, 신채호 선생 등과 신민회를 조직, 구국운동을 펼쳤다. 이때 노백린 장군과 동지들은 만주에 독립운동 전초기지를 건설하는 계획을 세웠으며, 그 자신은 고향 황해도에 광무학당이라는 학교를 세워 교육운동을 전개했다.

    노백린 장군은 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완전히 빼앗자 미국으로 망명, 박용만 등과 하와이 오아후 섬 가할루 지방에서 국민군단(國民軍團)을 창설, 김성옥, 허 용과 함께 별동대 주임을 맡아 3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했다.

  • ▲ 노백린 장군이 美캘리포니아 윌로우스에 세운 비행학교 훈련생과 장군(가운데)의 모습. 독립신문에도 실렸던 사진이다..ⓒ보훈처
    ▲ 노백린 장군이 美캘리포니아 윌로우스에 세운 비행학교 훈련생과 장군(가운데)의 모습. 독립신문에도 실렸던 사진이다..ⓒ보훈처

    장군은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군무부 총장으로 임명돼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파견되기도 했다.  이후 미국에 머물면서 1920년 2월 20일 캘리포니아州 윌로우스에서 김종린(金鍾麟) 선생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독립군 비행사 양성소를 세우고 N-4D 2대를 이용선·이초 두 사람이 조종한 것이 한국인 최초로 비행기를 조종 하는 등 성과를 내고 양성소는 1923년까지 7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22년 6월에는  국무총리 서리에, 1923년 1월에는 정식 국무총리로 추대됐다. 1925년 3월에는 국무총리에 임명됐고, 교통 겸 군무총장직을 겸직하면서 임시정부를 이끌다가 1926년 1월 22일 향년 51세로 중국 상해에서 별세하였다.

    정부는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1993년 8월 10일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역(9호)에 안장됐다. 

    국립서울현충원(원장 이선근)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고인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이 후세에게 계승․발전될 수 있도록 이번 행사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