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순간, 공군이 최선봉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터"
  • ▲ FA-50 전투기에 탑승해 하늘로 비상한 김두만 前총장(후방석)이 엄지를 들며 최초 국산 전투기 FA-50의 성능에 만족감을 표현하고 있는 모습.ⓒ공군
    ▲ FA-50 전투기에 탑승해 하늘로 비상한 김두만 前총장(후방석)이 엄지를 들며 최초 국산 전투기 FA-50의 성능에 만족감을 표현하고 있는 모습.ⓒ공군

    ‘한국 공군 최초 100회 출격’의 주인공인 제11대 공군참모총장 김두만(88) 예비역 대장은 6・25전쟁 65주년을 앞둔 23일, 최초 국산 전투기인 FA-50에 탑승해 후배 조종사와 함께 그가 목숨 걸고 지켜낸 하늘로 다시 한 번 비상했다.

    대한민국 공군 창설부터 역사를 함께했으며 6・25전쟁에서 용전분투하며 조국 영공을 수호했고, 최고 수장인 참모총장으로서 공군을 이끌었던 원로 빨간 마후라 김두만 前총장이 그의 인생 마지막 비행을 우리 손으로 만든 전투기로 이룬 뜻 깊은 순간이었다.

  • ▲ 김두만 前총장이 FA-50 전투기에 탑승해 엄지를 들며 만족감을 표현하고 있는 모습.ⓒ공군
    ▲ 김두만 前총장이 FA-50 전투기에 탑승해 엄지를 들며 만족감을 표현하고 있는 모습.ⓒ공군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 前총장은 지난 5월 12일(화), 항공우주의료원(충북 청주시 소재)을 방문해 전투기 탑승을 위해 거쳐야하는 공간정위 상실훈련, 가속도 내성훈련(G-테스트) 등의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모두 수료한 바 있다.

    전투기 탑승을 위해 제8전투비행단 103전투비행대대를 방문한 김 前총장은 비행임무 브리핑을 진행하며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달렸다”라며 “세계 최고의 실력을 구비한 정예 조종사가 될 수 있도록 부단한 자기계발과 발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다”라고 후배 조종사들에게 당부했다.

    비행장구를 착용하고 전투기 앞에 선 김 前총장은 잠시 지난 날에 대한 회상에 잠겼다. 6・25 전쟁기간 공군은 한반도 자유수호를 위해 매일같이 밤낮으로 출격했다. 김 前총장은 “풍전등화에 놓여있는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적의 대공포화망을 뚫으며 목숨 걸고 공격했다.

    오직 조국 수호라는 목표 하나로 사력(死力)을 다해 적과 싸웠다”라고 당시 상황을 되새겼다. 최종 항공기 점검을 마치고 원주기지에서 이륙한 김 前총장은 충북, 경기 지역 일대와 철원(철의 삼각지) 상공을 돌아보며 반세기 만에 급속한 성장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비행을 마치고 무사히 기지로 복귀한 김 前총장은 비행 소감을 전했다.

    “당시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현대화된 비행단 시설과 최첨단 고성능 전투기로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하고 있는 후배 조종사의 모습에 자랑스럽고 든든할 따름이다.언젠가 통일의 순간이 왔을 때 공군이 최선봉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

  • ▲ (좌)김두만 前총장이 1952년 1월 11일, 한국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 기록을 수립해 동료 조종사 및 정비사들에게 축하받고 있는 모습. (우) 6월 23일(화), FA-50 비행을 마친 김두만 前총장을 축하하기 위해 제8전투비행단 103전투비행대대 조종사들이 무등을 태워 100회 출격 당시 축하받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공군
    ▲ (좌)김두만 前총장이 1952년 1월 11일, 한국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 기록을 수립해 동료 조종사 및 정비사들에게 축하받고 있는 모습. (우) 6월 23일(화), FA-50 비행을 마친 김두만 前총장을 축하하기 위해 제8전투비행단 103전투비행대대 조종사들이 무등을 태워 100회 출격 당시 축하받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공군


    김두만 前총장과 함께 동승한 제8전투비행단 103전투비행대대 소속 FA-50 전투기 조종사 한성우 소령은(공사 51기, 37세) “짧은 시간이었지만 호국 영웅을 모시고 비행하게 돼 공군 조종사로서 큰 영광이다”라며 “김두만 前총장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이어받아 혼신의 힘을 다해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하겠다”라고 결의를 다졌다.

    “제일 침착할 때가 출격입니다. 벌써 조종복을 입고 조종석에 앉으면 그때부터는 무념무상입니다. 오직 자기가 할 일은 그것 뿐입니다”살아있는 6·25전쟁 영웅 김두만 前총장이 F-51D(무스탕) 전투기 100회 출격을 달성하고 남긴 말이다.

    한편 해방 이후 1949년 10월 1일, 1,600여명의 병력과 20대의 연락기로 시작한 공군은 전투기 1대 없이 6・25전쟁을 맞아 열악한 환경속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싸워야만 했다. 그러나 65년이 지난 현재, 지속적인 전력증강과 현대화 사업으로 그 누구도 쉽게 대한민국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선진공군으로 발전했다.

    대한민국 공군은 동북아 최강 전투력을 자랑하는 F-15K, ‘날아다니는 전투지휘소’ E-737 항공통제기, 정밀유도무기인 합동정밀직격탄(JDAM : Joint Direct Attack Munition)을 운용할 수 있는 최초 국산 전투기 FA-50 등 약 750여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스텔스 기능을 갖춘 5세대 전투기인 F-35 전투기 및 공중급유기 도입, KFX 사업 등을 통해 확고한 대북 억제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 ▲ 6.25 전쟁당시, 출격하는 F-51무스탕 편대.ⓒ공군
    ▲ 6.25 전쟁당시, 출격하는 F-51무스탕 편대.ⓒ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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