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지금까지 약속 지킨 적 없어"… 헛스윙하는 타자 또 나올까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국회의원 수가 400명은 돼야 한다"는 발언을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6일 당이 국회에서 개최한 정책엑스포에 참석한 자리에서 "국회의원 수를 늘리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있다"며 "직능전문가를 비례대표로 모시거나 여성 30% (비례대표 보장)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생산성 없는 제왕적 국회에 대한 반감이 국민 정서의 큰 흐름이다. 이런 기류에 반하는 발언이 난데없이 터져나온 셈이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이 "국무총리 인준도 여론조사로 하자던 분이 왜 대다수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발언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막연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러한 맥락을 파악한데 따른 논평이다.

    더욱 의아한 것은 문재인 대표가 같은 날 오후 돌연 "오늘 발언은 퍼포먼스에 참여해 가볍게 장난스럽게 한 것"이라고 발을 뺀 것이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6일 열린 정책엑스포에서 적절한 국회의원 정수를 묻는 스티커 설문조사에 351명 이상이라고 답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6일 열린 정책엑스포에서 적절한 국회의원 정수를 묻는 스티커 설문조사에 351명 이상이라고 답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유인구로 승부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동교동계 등 비노(非盧)와 갈등을 겪고 있는 문재인 대표가 과감한 직구 승부보다는 '의원 정수 확대를 통한 지분 나눠먹기'라는 유인구를 던졌다는 것이다.

    지난 2·8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로 선출된 문재인 대표는 당권, 즉 내년 총선에서의 공천권을 장악하고 있다.

    의원 정수를 400명으로 확대하고 비례대표를 늘리면 대표가 공천 과정에서 재량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더욱 넓어진다. 문재인 대표가 자신의 의향을 슬쩍 내비치면서 '치고 빠지기'를 구사했다는 분석이다.

    발언이 나오게 된 전후의 정치권 움직임을 살펴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문재인 대표는 발언 직전날인 5일, 저녁 6시 40분부터 8시 20분까지 1시간 40여 분간 비당권파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새정치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과 박지원 의원실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이 자리에서는 "여러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설명했"으며 "그간의 오해를 다 풀었다"고 한다.

    그 이튿날인 6일, 문재인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이나 기자회견 등 격식을 갖춘 자리가 아닌 정책엑스포장에서 가볍게 '의원 정수 400명 확대' 발언을 던졌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2월 8일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뒤, 낙선한 박지원 후보를 등지고 꽃다발을 받은 채 미소짓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2월 8일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뒤, 낙선한 박지원 후보를 등지고 꽃다발을 받은 채 미소짓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다시 그 다음날인 7일 오전, 권노갑 상임고문은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대표의 긍정적인 메시지가 있었다"며 "주류 60%와 비주류 40%를 배합했던 정당정치의 관행을 문 대표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같은날 오후, 권노갑 상임고문과 만난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동교동계는 4·29 재보궐선거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지난 2월 13일, 2·8 전당대회 직후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 간의 첫 만남이 파국(破局)으로 끝났던 이유가 '지명직 최고위원을 사전 논의 없이 지명했기 때문'인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간의 오해'를 풀고, 의원 정수를 확대하고 비례대표 공천권을 통해 비주류의 지분을 일부 보장해줄 수 있다는 뜻으로 이심전심 교감이 이뤄진 모양새다.

    이런 '유인구'를 던지지 않고 자신에게 비협조하는 동교동계를 모두 축출하는 식으로 마치 19대 총선 때 '공천 대학살'을 했던 친노(親盧) 한명숙 지도부처럼 '직구 승부'를 했더라면, 성공했을 때는 당을 친노가 완전 장악할 수 있었겠지만 실패할 경우의 위험 부담이 크다.

    직구는 삼진을 잡아낼 수 있지만, 잘못되면 장타를 얻어맞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재인 대표의 독주에 반발한 동교동계가 당을 깨 '분당'이 현실화되면, 내년 총선과 후년 대선의 전망이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당을 깨고 나갔던 비노는 여지 없이 모두 실패했다. 2010년 지방선거 때 한화갑 총재의 평화민주당이 그랬고, 2012년 총선 때 한광옥 대표의 정통민주당이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새정치연합 밖에 강력한 인력을 가진 제3세력이 대기하고 있으며, 번번이 당한 호남 민심도 폭발 직전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 동교동계에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박영선 전 원내대표 등 비노 중진, 여기에 정동영·천정배 전 장관 등이 결합하고 정의당이 합류한다면 야권의 대표 주자가 바뀌는 그림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 "대선에 나가지 않을 한명숙~이해찬 의원이라면 (19대 총선 때 '공천 학살' 당한) 한광옥 대표가 정통민주당을 차려 나갔듯이 당이 깨져도, 남은 당을 친노가 장악할 수만 있다면 상관 없다"며 "하지만 대권을 생각하고 있는 문재인 대표라면 강경 진압보다는 유인구가 상책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비례대표 확대와 공천권 행사를 통해 야권의 수많은 정치 낭인들에게 '내 밑으로 줄을 서라'는 메시지를 던짐과 동시에 당내 타 계파와의 협상력을 강화한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개헌 가능성도 내다보고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문재인 대표가 암시했듯 지역구와 비례대표 공천에서 비주류 지분이 보장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동교동계 인사인 김방림 전 의원은 7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참배에서 "밥 한 번 같이 먹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라며 "(친노가) 지금까지 약속을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과연 이번에는 문재인 후보가 던진 '유인구'에 크게 헛치는 정치 낭인들이 얼마나 늘어설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