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취급하듯 바라보는 시선에 마음 상처 받아”
  • ▲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의 탈북장학생들이 14일 현충원 봉사에 나섰다.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 제공
    ▲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의 탈북장학생들이 14일 현충원 봉사에 나섰다.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 제공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이하 민주평통재단) 소속 탈북자 출신 대학생들이 현충원을 찾아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목숨바친 순국선열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민주평통재단이 후원하는 탈북자 출신 대학생 30여명은, 14일 오전 국립 서울 현충원을 방문해 현충탑을 참배한 뒤, 6.25 전사자 묘역에 있는 비석의 먼지를 털어내고 주변을 정리하는 등 봉사활동을 벌였다.

    대학생들은 봉사활동에 앞서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을 통해 봉사활동의 의미를 되새겼다.

  • ▲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의 탈북장학생들이 현충원을 찾아 순국선열을 참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 제공
    ▲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의 탈북장학생들이 현충원을 찾아 순국선열을 참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 제공

    현충탑 참배와 묵념에 임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러나 긴장하거나 경색된 표정은 아니었다. 봉사활동 내내 학생들은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 대학생 무리는 참배를 마친 뒤 봉사활동을 하러 이동하면서 서울말과 북한말, 연변말의 특징을 주제로 담소를 즐기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현장 봉사활동에 매우 열심이었다. 학생들은 주최 측이 마련한 생수 1병과 마른수건 1장을 가지고 뿔뿔이 흩어져, 묘역에 안치돼 있는 비석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일부 학생은 자기가 마실 물을 수건에 적셔가며 비석을 닦아내기도 했다.

    그 결과,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현충원 10~24번 묘역과 그 주변이 몰라보게 깔끔해졌다.

  • ▲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의 탈북장학생이 봉사활동으로 묘역 정리를 하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 제공
    ▲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의 탈북장학생이 봉사활동으로 묘역 정리를 하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 제공

    한 학생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허리를 펴면서 “아휴 허리야” 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속에서, 보통 대학생이라면 볼멘소리를 낼 법도 할 텐데, 학생들은 마치 자기 가족의 묘역을 대하듯 정성을 다해 봉사활동에 집중했다.

    탈북 대학생들은 봉사활동이 끝난 뒤, 현충원을 견학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해설사의 안내를 들으며 새로운 정보를 머릿속에 채워갔다. 대한민국의 건국과정과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한 무장독립투쟁의 역사를 듣는 학생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 ▲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의 탈북장학생이 현충원을 견학하며 해설을 듣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 제공
    ▲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의 탈북장학생이 현충원을 견학하며 해설을 듣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지원재단 제공

    이번 봉사활동을 기획한 탈북 장학생 자치회 지성호 회장은 “자유와 인권을 위해서 싸우다 산화하신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우리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준 대한민국, 민주평통재단에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직접 현충원 봉사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 대학생들이 털어놓는 솔직한 고민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작지 않았다.

    자신을 가톨릭대 재학생이라고 소개한 서모(22) 군은, “웬만하면 북한사람들과 안 만나려고 한다”면서, “북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말투도 변하지 않고, 행동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남한이 갈라선지 60여년이 지난 만큼, 말투와 어의(語義)는 물론 생활양식이 크게 달라져 남한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한양대에 재학 중인 최모(28) 군은 “이번에 장학재단(민주평통지원재단)이 처음으로 생겨 제가 그 혜택을 받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넉넉지는 않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이런 활동을 포함해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서 2기에게 좋은 전통을 물려주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최군은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동요, 시, 역사를 다르게 배우고 문화도 차이가 분명히 있다”면서 아직도 적응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 학생은 일부 국민들이 탈북자를 이방인처럼 취급하는 태도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다 그렇지는 않은데 한 두 명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며, “그 시선이 굉장히 상처가 돼, 내가 탈북자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만난 탈북 대학생들은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탈북자’에 대한 국민들의 그릇된 ‘고정관념’이 더 견디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김창남 경희대 교수는 탈북 학생들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 어린 관심을 당부했다.

    김 교수는 “이들은 탈북자 사회에서 리더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대부분 학생들이 북한에서 배웠던 내용과 너무 다르거나 표준어에 익숙하지 않아, 힘들어 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북한식 교육이나 생활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와 근본적으로 달라, 탈북 청소년들이 적응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평통재단 관계자는 탈북 학생들에 대한 국민적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언어나 문화적인 부분에서 오는 차이 때문에 어려움이 있지만, 학생들은 이를 극복하려고 정말 열심”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봉사활동에 나선 학생들은, 우리가 흔히 길거리에서 만나는 20대 대학생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최근 유행하는 투블럭(앞 머리카락을 길게 남기는 대신 뒤와 옆 머리를 짧게 자르는 방식)을 한 남자대학생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체제의 폭압에서 벗어난 이들은 대한민국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수백만 명을 아사시킨 공산주의 경제체제의 해악을 경험한 사람들답게, 경쟁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의지가 남달랐다.

    김창남 교수는 “탈북대학생들은 매사에 열심이며, 경쟁 또한 게을리하지 않는다. 또래 대학생들과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싶어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는 소박한 꿈도 있다”고 전했다.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통일 이후 2천500만명에 달하는 북한주민들이 새로운 체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경대 수석부의장은 “탈북민들의 정착을 돕는 일은 통일과 남북통합을 위한 시작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