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상고심, 핵심 변수는 ‘RO’ 존재 및 성격에 관한 대법원 판단
  • ▲ 2013년 8월, 이정희 구 통진당 대표와 이석기 전 의원이 나란히 앉아 국정원 해체를 주장하는 모습.ⓒ 사진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2013년 8월, 이정희 구 통진당 대표와 이석기 전 의원이 나란히 앉아 국정원 해체를 주장하는 모습.ⓒ 사진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 해산 결정 후, 내란음모 및 선동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석기 전 의원의 상고심 결과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상고심 판결은 그 결과에 따라, 구 통진당 구성원들의 친북 혹은 종북성향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으며, 이는 구 통진당 잔존세력의 대체정당 창당 및 이와 유사한 정당 활동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통진당 해산 결정과정에서 헌법재판소가 밝힌 ‘방어적 민주주의’, 즉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까지 보호할 수 없다”는 우리 헌법의 기본 원칙이, 사법부의 대원칙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석기 전 의원의 상고심 재판이 갖는 비중은 매우 크다.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상고심 재판은, 항소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내란음모 혐의를 대법원이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에 방점이 찍혀 있다.

    무엇보다 이른바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의 존재와 성격을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전체 재판의 흐름을 좌우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새롭게 주목을 해야 하는 판결이 최근 서울고법에서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황병하)는 7일, 구 통진당 핵심당원이자, 민족춤패 ‘출’ 대표인 전식렬(45)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특수잠입·탈출 등) 항소심 판결에서, 전씨에게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다.

    전식렬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선고형량은, 원심 재판부가 내린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의 형보다 가중된 것으로, 최근 공안사건 재판에서 항소심이 원심보다 피고인의 선고형량을 높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무죄로 본 일본 조총련 공작원과의 회합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인정하면서 선고형량을 높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전씨가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하도고 반성은커녕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죄질이 무겁다”고 형량 가중의 이유를 밝혔다.

    구 통진당 분당의 계기가 된 당내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동 당시, 통진당 영등포구 선관위원장을 맡는 등 핵심당원으로 활동한 전씨는, 2011년부터 구속 전까지 2년간 통진당 내부 상황을 북한 공작원에게 수시로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전씨는 비밀 텍스트 문서를 그림 파일에 숨기는 간첩 암호화 프로그램인 ‘스테가노그래피’를 이용해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뚜렷한 종북활동으로 공안당국의 수사를 받아 왔다.

  • ▲ 전식렬 피고인이 암호 프로그램을 이용해, 북한 김일성에게 보낸 충성맹세문.ⓒ 사진 뉴데일리DB
    ▲ 전식렬 피고인이 암호 프로그램을 이용해, 북한 김일성에게 보낸 충성맹세문.ⓒ 사진 뉴데일리DB
     
  • ▲ 전식렬 피고인이 암호 프로그램을 이용해, 북한 공작원에게 보낸 보고문 일부.ⓒ 사진 뉴데일리DB
    ▲ 전식렬 피고인이 암호 프로그램을 이용해, 북한 공작원에게 보낸 보고문 일부.ⓒ 사진 뉴데일리DB

    전씨의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눈 여겨 볼 부분은, 통진당 핵심당원이었던 그가 최근까지 ‘RO’ 조직원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북한 대남공작부서인 225국 소속 공작원에게 포섭된 전씨는 당 내부 사정을 구체적으로 북에 보고할 만큼 철저히 세뇌된 종북인사로 볼 수 있다.

    전씨를 포섭한 225국은 우리 정치권, 군부, 사회단체 등 각계 인사들을 포섭한 뒤 지하혁명당을 구축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225국은 지하혁명당을 통해, ‘결정적 시기에’ 남한체제를 전복한다는 최종 목적을 갖고 있다.

    225국의 이런 속내는 이들과 연계된 간첩사건에서 드러난 북한지령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2006년 적발된 일심회 사건기록을 보면, 225국은 포섭된 인사들을 통해 “민노당을 장악하여 노동당의 영도실현을 위한 고지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225국은 2011년 전모가 밝혀진 왕재산 사건 피고인들에게, “민주로동당을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에 선차적인 힘을 넣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라는 지령을 내렸다.

    ▲구 통진당의 전신인 민노당 장악을 지시한 225국의 비밀지령 ▲225국에 포섭된 전식렬씨가 구 통진당 핵심당원으로 활동하면서 당내 상황을 수시로 북에 보고한 사실 ▲전씨가 ‘RO’ 조직원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 ▲헌재의 위헌정당 심판을 통해 확인된 ‘RO’의 존재와 그 성격을 고려한다면,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는 더 구체화된다.

    이런 사정은 이석기 전 의원을 비롯한 구 통진당 핵심 구성원들이, ‘RO’를 구심점으로 북한 대남공작기구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구 통진당 핵심 구성원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가, 이석기 전 의원을 넘어 더욱 광범위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식렬씨가 주로 문화 영역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청년들과 교류를 이어왔다는 점에서, ‘문화’를 매개로 한 ‘북한의 남한사회 분열 선동’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995년 건국대 법학과를 졸업한 전식렬씨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이적단체인 범민련, 한총련 등과 함께 반정부 집회와 시위 등을 지속적으로 벌여왔다.

    1999년 2월에는 서울지역 대학 탈춤동아리 운동권 출신들을 규합, “노동자와 농민 등 ‘기층민중’이 주인 되는 통일세상”을 표방하면서, ‘민족춤패 출’을 결성하고, 이 단체 대표를 맡았다.

    2006년 10월부터 2013년 7월까지는 7개 좌파문화단체의 연대체인 ‘새시대예술연합’ 사업단장도 겸직했다. ‘새시대예술연합’ 소속 문화단체는 춤패 ‘출’, 노래패 ‘아름다운 청년’, 극단 ‘꾼’, 미술패 ‘획’, 영상 ‘시선’ 등이다.

    전식렬씨는 이런 이력을 인정받아 2010년 1월부터 2013년 5월까지, 대표적인 친북·반정부 단체인 한국진보연대 문예위원장으로 일했다.


    지하혁명조직 ‘RO’, 주사파 출신들이 밝힌 뿌리는 ‘민혁당’

    - 과거 민혁당 RO 조직원, 민노당 거쳐 통진당 지도부 장악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는 지난해 2월17일,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1심 재판을 맡은 수원지방법원 재판부(형사 12부, 부장판사 김정운)가, 이 조직을 ‘내란모의’의 주체라고 인정하면서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이석기 의원이 내란모의를 통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국헌 질서에 실질적 위협을 초래하는 등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RO는 내란음모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으로 후방을 교란하고 무력을 통한 대한민국 전복을 꾀했다”고 판시했다.

    수원지법 재판부의 당시 판결은 “내란모의의 주체는 RO이며, 총책은 이석기 의원”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비록 1심 재판부의 판단은 지난해 8월11일 열린 서울고법 항소심 판결에서 뒤집어졌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RO의 존재 및 성격’을 전면 부정한 것은 아니다.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형사9부, 이민걸 부장판사)는 ‘RO’ 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존재가 엄격하게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이유를 밝혔다.

    반면 재판부는 “이석기 의원이 국헌문란과 폭동의 목적으로 내란을 선동했으며, 이 전 의원을 정점으로 구체적인 위계질서를 갖춘 특정집단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를 인정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RO’에 관한 제보자의 진술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높다는 판단을 내렸다.

    ‘RO의 존재 및 성격’은 그 이후 열린 헌재의 위헌정당 해산심판 과정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정부측 대리인인 법무부는 공개변론 과정에서,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씨를 비롯한 주사파 출신인사들의 증인진술을 통해, ‘RO의 존재와 그 성격’을 규명해냈다.

    지난해 10월21일 김영환씨는 통진당 해산심판 16차 공개변론에 나와, 당시 통진당에 몸담고 있던 핵심 당직자들의 이름을 실명으로 언급하면서, 이들이 과거 민혁당과 그 산하 RO조직원이었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