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 뿐 아니라 일선서 일할 일꾼도 못구해, "권한도 미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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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분노의 글이 빗발친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온통 문창극 후보에게 청문회란 해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저버린 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이어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글을 박 대통령에 전달해줄 사람도 없다.

    청와대 홈페이지 관리 업무를 맡은 곳은 홍보수석실 산하 국정홍보비서관실이다.
    국정홍보비서관실은 지난 5월9일 백기승 비서관이 사임한 이후로 책임자가 없다.

    사실 비서관이 없다고 해서 꼭 청와대 홈페이지 관리라는 업무가 마비된 건 아니다.
    상급자인 홍보수석비서관도 있고 이하 비서관들과 행정관들이 맡을 수 있는 업무이며, 또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업무조차 담당자 없이 몇달이 지난다는 것은 업무 효율성 부분에서 간단치 않은 점이다.

    유독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 내부에 공석으로 남은 자리가 많다는 점은 박 대통령의 인사 방침과 무관치 않다.

  •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소식에 전 국민이 기대감을 내뿜고 있고 전 세계 이목이 집중돼 있지만, 이를 담당하는 교육문화수석실 관관진흥비서관 자리도 2달 가까이 비어있다.

    국회와 소통을 담당하는 정무수석실도 그렇다. 각종 법안통과나 국정운영 협조를 요청하는 정무비서관에 같은 수석실 내 국민소통비서관으로 있던 신동철 비서관이 수평이동했다. 정무비서관에 앉힐 사람이 마땅치 않았던 이유가 컸다.

    초선인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임명되면서 전통적으로 초선 의원이 맡았던 정무비서관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실망스러운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때문에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다.

    진통을 앓고 있는 총리 이하 내각 장관 인사가 문제가 아니다.

    얼굴을 내세워야 하는 각 부처(부서) 수장(장관 혹은 수석비서관)을 임명하는 것도 어렵지만, 정작 실무를 추진할 일꾼이 없다는 게 진짜 심각한 딜레마다.

    공무원이라면, 그리고 정치에 발을 담근 보좌관들이라면 한번쯤은 꿈꿀 청와대라는 일터를 꺼리게 된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도 벌써 1년4개월. 1년 이상 청와대에서 비서관이나 행정관으로 근무하다 나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올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개 고개를 젓는다.

    MB정부 시절 한 선임 행정관은 "청와대 근무는 다른 부처나 국회 보좌관 업무보다 배는 더 힘들다. 근무강도도 그렇고 국정을 조율한다는 점에서 일이 잘못됐을 때 쏟아지는 책임감도 무겁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 청와대가 능력있는 공무원이나 정치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꿈의 직장일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를 경영한다는 자부심]과 [업무를 잘 수행했을 때 보장받는 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이 대부분 사라진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좀처럼 가고 싶지 않은 '좌천지'로 전락하고 있다.

    우선 청와대 직원들의 권한이 극도로 줄었다. 찬반 공방이 있는 정책을 추진했을 때 일어나는 반대 여론에 청와대가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탓이다.

    한 내부 행정관은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야당부터 하부 부처 눈치까지 봐야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인 걸 뻔히 알면서도 추진했다 돌아오는 책임론이 무서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가만히 출퇴근만 하다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퍼지는 이유다.

    청와대 근무가 끝나면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기피 대상으로 떠오른 원인이다.

    일반적으로 과거 정권까지는 청와대에 차출돼 근무하고 나면 1계급 승진은 관례적으로 가능했다. 일반 부처보다 2배 이상 힘든 격무를 수행한 것에 대한 일종의 포상이었다. 그래서 승진을 꿈꾸는 공무원들이나 국회 보좌관들은 힘들더라도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곤 했다.

    하지만 이런 관례가 상당수 사라진 현 정부의 청와대는 업무가 끝나면 다시 본래 부처로 돌아가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경제관련 부처에서 청와대로 차출돼 근무 중인 한 공무원은 "청와대에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처로 원대 복귀하고 나면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혹시 청와대에 내부 고발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선부터 불편한 내부의 분위기를 견뎌대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한 국회 보좌관도 "청와대 행정관은 국회 보좌관에 비해 월급도 150~200만원 가량 줄어드는데 할당되는 업무는 2배 이상 많아진다"며 "청와대 근무 후에 보장되는 진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했다.


  • 이런 분위기는 행정부 최고 기구인 청와대가 구인난을 겪게 하고, 제대로 된 업무 추진을 할 수 없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는 "일한 만큼 보상해주지 않는다는 인식, 반대로 책임질 일이 생겼을 때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분위기는 청와대가 점점 고립되고 아무것도 못하는 식물 기구로 전락하는 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이어 "국정운영 최고 기구인 청와대가 필연적으로 가지는 권력 모두를 대통령이 말하는 비정상으로 매도한다면, 어떤 정책도 추진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대통령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