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 주도 강경파 “다람쥐 쳇바퀴 집회 그만, 청와대 가야”
  • ▲ 7일 서울시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는 참석자들의 모습 ⓒ뉴데일리=유경표 기자
    ▲ 7일 서울시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는 참석자들의 모습 ⓒ뉴데일리=유경표 기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범국민 촛불집회로 유가족과 진보좌파단체의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고 있다. 유가족들이 참사의 정치적 이용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주최 측인 참사국민대책회의 지도부와 일부 강경파 사이에 분열양상도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을 빚었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는 서울시 청계광장에서 7일 오후 7시경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촛불시위를 열었다. 지난 일 열렸던 집회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든 숫자를 보인 이번 시위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와 진보단체들의 정치적 요구사항을 집요하게 연관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추모라는 명분을 걸었지만 집회의 메시지는 지극히 정치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집회 참석자들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 규제완화 및 비정규직 철폐 등의 플랜카드를 들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을 비판하는데 열을 올렸다. 거리행진이 시작된 후에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라고 씌어있는 차량이 확성기로 반정부적인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을 선동했다. 

    이날 청계광장을 출발한 시위대가 경찰과의 별다른 충돌 없이 종착지인 서울광장에 들어옴으로써 집회가 마무리 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일부 강경파들은 “청와대로 가자”며 목소리를 높였고 대책회의 지도부는 이를 애써 외면했다. “청와대로 가자시는 분도 있지만 다음 주에 오셔서 말씀해 주시길 바란다”며 지도부 관계자는 청와대 행진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 특별법제정 천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될 것을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지도부 관계자는 집회가 끝난 후 “행진 중에 일부 시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외쳐 유가족들이 들을까봐 노심초사 했다"고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강경파 측에서는 매번 똑같은 형태로 끝나는 세월호 집회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한 참여자는 자신이 “세월호 촛불집회를 6번 참여했는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 바퀴 돌고 끝나버린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한 이들중에는 단순히 집회에 참석한 시민이 아님을 암시하는 발언도 나왔다. 집회참여자 A씨는 청와대로 행진하지 않는 지도부에 강한 비난을 쏟아내며 “2008년 광우병 당시 행진 때도 지도부가 앞의 차량을 빼버리는 바람에 앞서가던 시위대만 경찰에 연행됐다”고 말했다. 

    강경파를 위시한 일부 시민은 청와대로 행진했고 이에 A씨는 “저렇게 소수가 가봐야 경찰한테 연행되기만 한다. 지도부가 제 역할을 못해 경찰에 건수만 주고 있다. 청와대가 저 앞쪽인데 집회행진은 왜 매번 뒤쪽으로 돌아서 가나”라며 격노했다.

    지도부 관계자는 강경파 측의 불만에 대해 “집회에는 800여개의 단체가 참여하고 있고 그분들의 의견이 조금씩 달라 조율에 어려움이 있다. 정치적 연관성을 부담스러워 하는 유가족들의 당부도 있어 현실적으로도 여러 문제가 있다. 이해해 달라”고 밝혔다.

    강경파 측은 이에 “유가족과 우린 별개”라며 “조율이 어려우면 조율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지도부에 앉으면 된다”고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흥분한 모습을 보이던 한 사람은 큰소리로 “왜 내말을 듣질 않느냐”며 손으로 땅바닥을 치고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등 이성을 잃는 모습도 보였다.

    추후 열릴 세월호 촛불집회는 14일로 예정돼 있지만 청와대 행진을 요구하는 일부 강경파들의 강한 불만이 나오고 있어 마치 화약 도화선에 불이 붙은 형국이다. 세월호 집회의 파행을 막기 위해 대책회의 지도부가 어떤 포지션을 취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집회참여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집회는 연휴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 추산 5천여명, 경찰 추산 2천 5백여명의 시민이 모여 지난번 집회보다 규모가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