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기자 "우수한 인력과 장비는 정부 발표를 비판하라고 받은 것"'오보' 보다도 더욱 심각한 건 '부채의식'에 찌든 기자들의 왜곡된 시선

  • 이번 세월호 참사에선 유독 방송사들의 오보(誤報)가 빗발쳐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사고 당일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가 전 언론사를 장식하는가하면, 구조자와 실종자, 사망자수가 수시로 뒤바뀌는 촌극이 빚어졌다. 또 재난방송주관사인 KBS 마저 "시신이 뒤엉켜있다"는 사실과 다른 오보로 각계의 지탄을 받은 일도 있었다. 이외에도 자신을 민간잠수부라고 속인 홍가혜의 거짓 인터뷰를 가감없이 내보낸 MBN 뉴스특보, 세월호 참사와 무관한 다른 사고의 시신 운구 장면을 사용한 MBN '뉴스 공감'. 이종인 알파잠수종합기술 대표를 출연시켜 다이빙벨의 효능을 과장·왜곡보도한 JTBC 뉴스9 등, 다수의 뉴스 프로그램이 사실 확인없이 방송을 내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혹자는 이처럼 오보 퍼레이드가 발발한 이유가 언론사들의 과잉경쟁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한켠에선 게이트키핑(Gate Keeping) 능력이 떨어지는 군소언론사가 늘어난 탓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이종인의 다이빙벨 띄우기에 앞장서다 공무집행 방해 및 사기죄로 고발당한 이상호 (고발뉴스)기자의 경우를 보면, 인터넷 언론의 '난립'이 오보 양산의 이유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특종과 단독 보도에 눈이 먼 언론사의 지나친 욕심이 국민에게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지난 7일 KBS 입사 1~3년차 기자들이 사내보도정보시스템을 통해 올린 '집단 반성문'에는 속보 경쟁에 내몰려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기사를 써 내려간 일부 기자들의 자아 비판이 담겨 있었다.

    사고 현장에 가지 않고 리포트를 만들었고, 매 맞는 것이 두려워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썼습니다. 우리는 정부와 해경의 숫자만 받아 적으며 냉철한 저널리스트 흉내만 냈습니다.


    현장에 가지 않았으면서 취재 리포트를 쓰고, 실종자 가족을 만나지도 않고 기사를 썼다는 얘기는 이들이 써낸 일부 기사가 조작·왜곡됐다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좀 더 검증을 해 봐야 하는 문제이나, 38~40기 40여명의 생각이 여타 KBS 기자들과 다르지 않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한 방송사 기자는 "이들의 일방적 주장을 전체로 확대·해석해선 곤란하다"며 "기자들이 사실 확인도 없이 기사를 쓰고 보도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이들의 주장 중 일부가 사실에 가깝다면, 전시상황에 준하는 현장에서 빚어진 우발적 실수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자는 "속보 경쟁으로 오보가 남발됐다는 일부 기자들의 '자아비판문'보다도 더욱 심각한 것은 젊은 기자들의 왜곡된 시선"이라며 "이들은 재난구조방송이 가장 우선시 해야 할 의무를 '정부 비판'이라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오보 보다도 심각한 건 기자들의 왜곡된 시선

    실제로 7일 문제의 반성문을 올린 38~40기 취재·촬영 기자들은 대통령과 정부 당국에 책임을 묻지 않는 보도 행태를 지적하는 등 기사에 '비판 의식'이 결여된 것을 문제 삼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울부짖을 때 우리는 정부와 해경의 숫자만 받아 적었습니다. 우수한 인력과 장비는 정부 발표를 비판하라고 국민들로부터 받은 것 아닌가요? 왜 우리 뉴스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가요?


    어떤 기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만난 현장에서 (유가족들의)혼란스러움과 분노를 다루지 않았다"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당시 대통령과 가족들의 즉석 면담은 생중계로 이뤄졌다. 각 지상파 방송국을 통해 양측간의 대화가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체육관에 모여든 가족 일부가 고함을 지르는 모습도 여과 없이 방영됐다. 그러나 다수의 가족들은 대통령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고, 앞으로 정부가 어떤 대처 방안을 내세울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이를 보도한 매체들은 현실이나 사실을 왜곡하지 않았다. 다만 주된 포커스가 정부의 향후 수습 계획에 맞춰졌을 뿐이었다. 상식적인 선에서 보도가 이뤄졌지만 KBS의 특정 기사는 당시 기자들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체 누가 그런 왜곡 보도를 했단 말인가?

    한 기자는 "자신들이 받은 우수한 장비는 정부 발표를 검증하고 비판하라고 국민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비뚤어진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우수한 인력과 장비는 정부 발표를 비판하라고 국민들로부터 받은 것 아닌가요? 왜 우리 뉴스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가요?


    기자에게 주어진 책무는 건전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사실과 정보 전달이 최우선이다. 특히 재난구조방송에선 효율적인 구조 작업을 위해 정확한 정보 전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에 개인적인 감정을 결부시킬 경우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기사가 흘러갈 공산이 있다. 과연 재난 방송에서 대중을 선동·흥분시키는 게 언론의 제1 덕목일까? 대중을 잠재적 '적대세력'으로 만드는 게 공영방송의 할 일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보가 남발되는 구조적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언론은 누구보다 냉정해야 하며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덧붙여 절망보다는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발빠른 진단을 내리고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게 급선무다. 정부 비판을 하지 않는다고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정부나 특정 대상에만 원성을 토해내는 선동적 기사들을 비판해야 옳다. 사태가 위중할수록 무조건적인 비판보다는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며 격려를 해주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만연돼 버린다면 가뜩이나 황폐해진 대중의 마음 속엔 분노와 갈등, 무질서만이 자리잡게 된다.

    ◆ 아직도 다이빙벨을 '성공'으로 치부하는 일부 언론

    다이빙벨을 '잠깐' 담궜다가 뺀 이종인 대표에게 "대성공"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일부 언론 매체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대중이 '헛된 희망'을 품었는지 모른다. 이들은 이종인 대표가 성공했다는 뉴스와 트윗만 보고, 조만간 다이빙벨을 통한 구조 작업이 속개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종인 대표는 바지선을 풀고 유유히 팽목항으로 돌아갔다. 애당초 구조에 뜻이 없었던 그는 해경에게 모든 공을 양보한다는 말만 남긴 채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이종인 대표의 주장은 일부 언론에 의해 상당 부문 왜곡됐거나 과장됐음이 드러났지만, 아직도 다수의 네티즌은 그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해경 측의 방해로 이 대표가 제대로 된 구조 작업을 하지 못했다며 끝까지 그를 감싸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인식이 자리잡게 된 것은 팩트TV 등 일부 선동적 매체들의 역할이 컸다.

    7일 반성문과 성명를 발표한 일부 기자들도 이종인의 다이빙벨을 마지막 희망으로 믿고 있었을까? 애써 '정부 비판'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일부 기자들에게 일종의 부채 의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진정으로 부채 의식을 갖고 있다면 어떤 것이 대중을 위하는 길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와 각을 세워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기사들이 결코 대중을 위한 길이 아님을 깨닫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