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내부에 빈번히 생겨나는 이산가족 상봉은?

    박주희 기자    /뉴포커스
     
    '이산가족 상봉'이란 말은 6.25전쟁이후 남과 북으로 갈라지면서 생겨났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명실공히 대한민국과 북한에 나뉘어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
    서로 만나거나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책 또는 그 행사를 말한다.

    그런데 최근에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내부에도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이산가족은 어떤 사람들이며 왜 만남을 이루지 못하는지
    뉴포커스가 그 진실을 진단해보았다.

  • ▲ '피난열차'?  북한의 열악한 교통수단. / 구글 이미지
    ▲ '피난열차'? 북한의 열악한 교통수단. / 구글 이미지

    현재 북한에는 남과 북의 친척들이 만남을 규정짓는 이산가족 상봉도 있지만
    만날 수 있어도 볼 수 없는 이산가족들이 많다.
    특히 북부내륙지방에서 사는 사람들은 친형이나 누나가 황해도 쪽에서 산다면
    10년이 되어도 얼굴 한 번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다.

    평양을 비롯한 국경을 낀 지방은 특별 통행증이 있어야 외출이 가능하다.
    여느 통행증과는 차원이 다르게 빨간색으로 두 줄을 표시한 특별통행증은
    말 그대로 특별한 일 외에는 승인이 불가능하다.
    주민들은 부모나 형제가 보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

    2011년 탈북한 혜산출신 김혜심 씨는
    "하루는 어머니가 몇 해 전에 황해도로 시집간 언니가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셨다.
    둘째아이 해산달이 임박했는데 언니의 통행증 신청이 거절당해 오지 못한다는 소식이 왔다.
    '남쪽도 아닌 북쪽에서 살면서 왜 이렇게 이산가족처럼 헤어지면 만날 수 없냐.'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푸념하셨다."고 증언했다.

    "시장에서는 밤마다 아침에 장보따리를 이고 메고 집을 나선 엄마들을 찾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진동한다. 북한의 시장은 짐 보관이 불가능하다. 간혹 보관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도적이 무서워 맡기지 않는다. 좁은 시장문은 저녁이면 마중을 나온 가족들의 인파로 붐빈다."고 전했다.

    김씨는 "아내를 찾는 남편들의 목소리, 엄마를 부르는 자식들의 고함소리로 귀가 멍하다.
    가족들은 저만치 짐을 이고 나오는 아내를 보면 오랜만에 만나는 듯 반갑게 뛰어간다.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한 여인들은 짐 보따리를 나누어 메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산가족 상봉 하셨네요'라고 하면서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이런 모습들을 가리켜 '이산가족 상봉'이라고 불렀다.
    가족이 그리워도 통행이 불가능하고 10년 넘게 군대 나간 아들이 보고 싶을 때에도
    늘 이렇게 말한다. '이놈의 이산가족 상봉은 언제 이루어질지'라고 한탄한다."고 전했다.

    또한 2012년에 탈북한 함흥출신 박경철 씨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밀수꾼에게 속아 중국에서 돈 벌어오겠다고 편지 한 장 달랑 써놓고
    중국으로 갔다. 반년만 벌면 집 장사밑천을 마련해 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난 동생이
    떠난 지도 10년이 돼온다. 해마다 동생 생일이면 어머니는 동생의 낡은 흑색사진을 꺼내 드시고 한참을 우신다."고 한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전쟁 때 헤어진 가족이면 신청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중국으로 간 가족은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다려도 만날 수 없는 동생과의 만남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이산가족 상봉이 되어버렸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는 "북한사람들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을 때마다
    남과 북의 가족들 만남도 좋지만 같은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형제들도
    지역구별 없이 마음 놓고 만남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바란다고 저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고 말했다.
    [국내최초 탈북자신문 뉴포커스=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