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의 생애 마지막 日記

    趙甲濟  
      
    「7년 전을 회고하니 감회가 깊으나 지나간 7년간은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일부 반체제인사들은 현 체제에 대하여 집요하게 반발을 하지만 모든 것은 후세에 史家(사가)들이 공정히 평가하기를 바랄 뿐」 
      

       1979년 10월17일은 朴正熙 대통령에게는 운명적인 날이었다.
    10월유신 선포 7주년인 이날 부산에서는 전날에 이어 대규모 야간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朴대통령은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 베풀어진 유신선포 7주년 기념 축하연에 참석하였다.
    공화당 최영철(崔永喆)의원의 사회로 노래시합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한 의원은 「바보같은 사나이」를 부르고 내려갔다.
     만찬도중 부산을 다녀온 구자춘(具玆春) 내무장관은 朴대통령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고
    朴대통령은 『뭣들 하고 있는 거야!』 라고 역정을 냈다.
    청와대 비서진은 공화당 사무총장 신형식(申炯植)씨에게 눈짓을 했고 만찬은 밤 9시반쯤 끝났다. 朴대통령은 청와대로 들어오자마자 정승화(鄭昇和) 육군참모총장을 불러 공수부대 1개여단을 부산으로 급파하도록 지시한 다음 비상국무회의 소집을 최규하(崔圭夏) 총리에게 지시했다. 

       중앙청 3층의 국무회의실에서 밤 11시30분에 급히 소집된 비상국무회의는
     부산시 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로 의결하였다.
  • 이날 朴대통령은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일기를 썼다.
    「7년 전을 회고하니 감회가 깊으나 지나간 7년간은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일부 반체제인사들은 현 체제에 대하여 집요하게 반발을 하지만 모든 것은 후세에 史家(사가)들이 공정히 평가하기를 바랄 뿐」 
   
   朴 대통령은 아마도 이날 새벽이나 자정 무렵에 이 짤막한 글을 썼을 것이다.
 그는 부산에서 「독재타도」 「유신철폐」를 외치며 파출소를 습격하고 경찰차를 불태우고 있는 시민·학생들을 떠올리면서 일기를 쓰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가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내뱉던 말이 있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
  
   40代에 임신한 어머니가 끈질기게 지우려 하였던 생명은 태어나
집권 18년 동안 나라의 運命(운명)과 국민들의 삶에 천지개벽의 변화를 몰고 왔다.

兄은 우익 손에 죽고 부인은 좌익 손에 죽고 본인은 부하 손에 죽었다.
 가슴을 관통당하고 남긴 마지막 말은 “난 괜찮아.”
  
질풍노도의 시대에 淸濁(청탁)을 다 들이마시면서도 끝까지 순수한 영혼을 유지해간
그는 더러운 강물을 삼켜 바다와 같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호쾌한 영웅도 아니고
 나폴레옹과 같은 電光石火(전광석화)의 천재도 아니었다.
부끄럼 타는 영웅이고 눈물이 많은 超人, 그리고 한 소박한 서민이었다.
 그는 한국인의 애환을 느낄 줄 알고 서민의 숨결을 읽을 줄 안 土種(토종) 한국인이었다.
 민족의 恨(한)을 자신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근대화로써 그 한을 푼 혁명가였다.
누가 그의 무덤에 침을 뱉을 것인가?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