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팬신데렐라가 만나

    앨리스로 변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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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드라마 '청담동 앨리스'가 27일 16회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청담동이라는 화려한 배경에 젊은 사장, 화려한 패션 전시장 같은 요란한 세트를 들고 나와 또 그렇고 그런 이야기 아닐까 싶었지만, 사랑을  진지하게 탐구하려는 시도로 평가를 받았다.  

    아르테미스 회장인 장 티엘 샤, 한국명 차승조(박시후 분)와 가난한 집안 출신의 똘똘한 디자이너 한세경(문근영 분)은 파국의 수많은 관문을 넘어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다.
    한세경으로 보자면 청담동 입성이고, 차승조로 보자면 사랑의 쟁취이다. 

    청담동 앨리스는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피터팬과 신데렐라가 만나면 어떤 결말이 나올까?

    십중팔구는 파국이다.

    이 파국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피터팬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다. 
    과잉보호 또는 애정결핍, 원인은 대부분 부모와 연관되어 있다.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아왔다면, 어른이 되고서도 부모 보호를 벗어나기를 싫어한다.
    배우자를 고를 때 부모의 그림자를 찾으려든다.

    반대로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해정결핍도 피터팬 증후군의 원인이다.
    부모 사랑을 받지 못하다보니 그 내면에 어린아이의 모습이 담겨있다.
    어릴적 결핍했던 사랑을 애인에게, 아내에게, 남편에게 받아내려고 끊임없이 상대방을 괴롭히고, 짜증내고, 시험하고 그리고 의심하면서 사랑을 확인하려고 한다.



  • "네 사랑을 증명해보라"는 차승조의 결정적인 대사가 이런 종류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지,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분석하고 분석하지만,
    이렇게 증명하기 위해 인수분해와 미적분을 반복하다 보면 바위같이 든든한 사랑도 결국 산산조각 모래처럼 쪼개져서 먼지처럼 허공으로 흩어지고 만다.

    부모사랑의 결핍으로 나타난 피터팬 증후군을 요즘엔 성인아이(Adult Child)라고 부른다.
    몸은 다 컸지만, 사회적으로 기반을 닦고 성공한 듯 보이지만,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살지만, 그 내면은 어린아이이다.
    내면의 어린아이는 10살이기도 하고 15세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6살이기도 하다. 

    남편이나 아내가 이유없이 어린아이 같이 자기 중심적인 방식으로 괴롭힌다면, 배우자의 내면을 들여다보시기를. 그렇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행동과 말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일생동안 비판할 꺼리만 찾아낼 수 밖에 없다.  

    이런 결혼생활, 정말 괴롭기 이루 말할 수 없다.
    파국이거나, 아니면 자식때문에, 사회적 체면때문에 결혼이란 울타리안에서 죽을 때까지 갖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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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의 경우 신데렐라 증후군이 있다.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나 좋은 남자 만나 일시에 신분상승을 이루는 여성들의 아주 오래된 꿈이다.
    그런데 신데렐라가 되려면 상대방 남자가 비교적 완벽해야 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사회적인 신분이 든든하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과 지위를 가져야 하며, 재산이 부유층에 속하고, 인격이 완성된 사람이다.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사랑을 찾아서 희생과 노력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랑이 도망을 가면 쫓아가서 잡아올 줄도 알아야 한다.

    피터팬이 성인이 되려면 엄마와 같이 완벽한 모성을 가진 여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차승조가 어릴쩍 울고 있는 자신을 감싸주던 어머니를 상상하는 장면은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모성과 여성을 동시에 가진 완벽무비한 상대는 현실에서 거의 없고,  신데렐라의 성공에 필수조건인 완벽남도 거의 없으니, 피터팬이 신데렐라를 만나면 깨지는 것이 정상이다.

    청담동앨리스는 말하자면, 피터팬과 신데렐라가 만나는 사랑이야기이다.
    피터팬 차승조, 신데렐라 한세경…
    파국으로 가야 정상이지만, 작가는 여기에 변수를 넣어 해피엔딩으로 이끌었다.

    처음엔 신데렐라가 피터팬을 잘 이끌고 보듬어 안고 가는 것 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차승조가 끝끝내 피터팬인 이상, 신데렐라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설사 신데렐라가  모성을 발휘해서 자신의 여성성을 잠깐 내려놓고 무한한 모성을 발휘해서, 차승조를 어린아이로, 자신은 어머니로 변신시키는 연기를 하기로 결심하고, 일단 사태를 봉합한다고 해도, 일시적인 미봉책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청담동 앨리스는 구태를 따르지 않았다.
    피터팬 편을 들지도 않았고, 신데렐라 편을 들지도 않았다. 

    피터팬 + 신데렐라 = 파국이 일반적인 공식이다.

    청담동 앨리스는 이 공식을 바꿨다.  

    피터팬 + 신데렐라 + a = 앨리스의 공식을 만들어냈다.
    비극을 선택하지도, 무리한 해피엔딩으로 억지를 부리지도 않았다.
    비극이나, 무리한 해피엔딩으로 이끌어 갔다면, 재미있는 또 하나의 통속드라마가 됐을 것이다.

    통속으로 빠질 수 많은 함정을 피해서 나왔다.
    그래서 + a의 요소를 대입했다.
    시도는 좋았고, 어느 정도 궤도에도 올랐다.

    그렇지만 완성도는 조금 부족했다.
    좀 더 숙성시킨 + a 변주곡을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