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記者’ 직함이 부끄러워지는 시대

    惡에 대해 타협하는 서생들을 ‘합리적 보수’로 변장시켜 대중들을 기만하고,
    자신들도 기득권 구조에 잽싸게 올라타 버린다. 참 영악스럽다.


    金成昱    
  •   1.
      거짓과 煽動(선동)을 일삼는 언론이 제자리 찾기 전엔
      박근혜 정부도 한 걸음을 내딛기 어렵다.
     
      ‘윤창중 논란’은 한국 언론의 低劣(저열)한 수준을 확인시킨 사건이다.
    27일 언론사들은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의 이정희 前의원 비판을 또 다시 물고 늘어졌다.
    11일 ‘박종진의 쾌도난마’에서 한 윤 대표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내용인 즉 “이정희 후보가 가냘픈 척, 순진한 척 웃으면서 눈동자를 보면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여자 유시민을 보는 것 같다” “2차 대선후보 TV 토론회는 한 편의 막장 드라마” 등이다.
     
      從北·좌파매체는 물론 사이비 보수매체들까지 윤 대표가 “막말 방송을 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TV토론에서 反국가·反헌법적 선동과 거짓을 일삼던 이정희에 대한 비판을 오히려 ‘막말’로 단죄한 것이다.
    이들의 통상적 화법은 從北(종북)은 ‘進步(진보)’, 愛國(애국)은 ‘極右(극우)’라는 식이다.
    2008년 광우병 조작과 2010년 천안함 음모론, 2012년 안철수·문재인 사기극 보도를 떠올리면 이상할 것도 없는 언론의 고질병이다.
     
      2.
      슬픈 일이지만 소위 보수매체들도 한심스럽다.
    시스템 혜택은 최대로 누리곤, 대한민국과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從北세력에 대해선 굴종하고 ‘자유투사’들은 촌스런 極右로 매도한다. 惡(악)에 대해 타협하는 서생들을 ‘합리적 보수’로 변장시켜 대중들을 기만하고, 자신들도 기득권 구조에 잽싸게 올라타 버린다. 참 영악스럽다.
      
      대선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보수언론 역시 국가의 본질적 문제, 핵심가치(core value)는 철저히 외면해 버렸다. 문재인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 연방제’, 이정희가 주장하는 ‘코리아연방제’ 등 연방제 赤化(적화)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다. 6·15선언과 10·4선언에 대해서도 침묵하긴 마찬가지다.
     
      문재인이 주장하는 국가보안법폐지, 서해평화협력지대 등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설명치 않았다.
    시청 앞 광장에 10만 명 넘게 모여 “NLL 사수”를 외쳐도 단 한 줄의 기사를 싣지 않지만, 오히려 TV조선 같은 매체는 장성민 등 DJ 제자들을 내세워 “연방제 통일이 뭐가 문제냐”고 선전했다.
     
      언제나 그랬다. 정권이 바뀌는 민감한 시기엔 保險(보험)을 들었다.
    나라가 넘어갈 위기를 보고도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에 서왔다.
     
      3.
      소위 보수매체들이 북한 인권을 언급은 하지만 진지한 고민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들의 도덕적 우위를 뽐내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통일은 말할 나위 없다. 북한동족을 해방할 유일한 길이며 한반도 내전을 정리해 청년의 활로를 개척할 혈로인 ‘자유통일’에 대해 비판적이다. 통일비용을 과장하고 중국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체념론을 확산시킨다.

    북한의 체제와 정권에 대한 지원을 인도적 지원이라고 둘러댄다. 이 땅을 국민들의 불평·불만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從北·좌파를 확산시키며 동북아의 외톨이로 전락시켜간다.
     
      ‘眞實(진실)’을 외면하고 ‘勇氣(용기)’를 잃어버린 기자들은 통일강국 건설에 장애가 될 뿐이다.
    박근혜 당선자의 성공은 이들 언론을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나는 지금 기자라는 직함이 부끄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