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 의사 부인 살인사건’..4번째 파기환송심서 다시 유죄 판결대법원, 사망원인 및 남편 범인이란 증명 불충분..파기환송서울고법 “남편이 부인 목 졸라 살인”..징역 20년 선고 목에 손자국 없어..전문가들도 의견 엇갈려
  • ▲ 지난해 3월 남편 백씨의 현장검증 당시 모습(자료사진).ⓒ 연합뉴스
    ▲ 지난해 3월 남편 백씨의 현장검증 당시 모습(자료사진).ⓒ 연합뉴스

    “피해자의 사망원인은 목을 졸라 죽인 ‘액사(縊死)’가 맞다”

    “범행 전후 남편이 보인 정황을 볼 때, 범행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1월 출산 예정일을 한달여 앞둔 만삭의 여성이 자기 집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세간에는 ‘만삭 의사 부인 살인사건’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은 남편의 우발적 살인을 인정한 1, 2심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20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부부싸움이 빚은 참극’으로 정리되는 듯 보였으나, 지난 6월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사건의 핵심 쟁점인 사망원인이 액사(縊死. 목 졸라 살해함)라는 근거와 범인이 남편이라는 사실을 원심이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는 것이 파기환송 이유였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남편을 범인이라고 판단, 다시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대법원 재상고심 재판부로 '공'이 넘어갔다.

    이 사건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윤성원 부장판사)는 검안의와 부검의, 법의학전문가와 교수 등을 증인으로 불러, 대법원이 판시한 사망원인과 범인을 밝히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망원인을 액사라고 보는데 무리가 없고,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에 비춰 범인이 남편이라는 점이 충분히 입증됐다는 점을 들어 피고인 백씨(32)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계획적인 살인의 동기는 인정되지 않지만 백씨가 피해자와 몸싸움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본다”

    “백씨가 부인을 살해한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충분히 인정된다”
     - 서울고법 형사 7부


    # 재판부 “사망원인은 ‘액사’가 틀림없다”, ‘사고사’ 주장한 남편의 항소 기각

    재판부는 숨진 박씨의 사망원인을 '액사'라고 판단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피해자 목 부위 피부의 까짐이나 오른 쪽 턱 부위에 생긴 멍, 목빗근 근육 속 출혈 등의 상처는 액사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소견으로, 목을 조르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숨진 부인 박씨(당시 29세)의 머리 정수리 부분에 있는 1.5cm 크기의 상처, 박씨의 얼굴에 있는 멍자국과 찢긴 상처 등은 목이 졸리는 과정 또는 남편과 다투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남편 백 씨의 이마와 양팔 등에 있는 상처를 피해자가 반항한 흔적으로 봤다.

    하지만 남편 백 씨는 부인의 사망원인을 기도가 막혀 일어난 질식사라고 항변했다.

    만삭인 부인이 욕실에서 넘어지면서 욕조 안으로 상체가 넘어갔고 이 과정에서 욕실 벽 또는 욕조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면서 의식을 잃었다는 것이 백 씨 주장이었다. 그리고 기도가 막힌 채 의식을 잃은 부인이 그 자리에서 질식사했다는 것이 백씨의 논리였다.

    그러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런 백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검의, 검안의, 법의학자의 의견, 범행 장소 및 사체 사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사망원인은 ‘이상 자세에 의한 질식사’가 아니라 ‘액사’가 맞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 남편이 보인 석연치 않은 태도..부인과 연락두절, 알면서도 태연

    남편을 범인으로 보는데 입증이 충분치 않다는 대법원의 판시이유에 대해서도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백씨의 집 침실 등에서 나온 혈흔과 상처, 범행이 일어난 직후 남편이 보인 정황을 근거로 범인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부의 몸에 있는 여러 상처 외에도 옷과 침대 이불 등에서 나온 혈흔은 둘 사이에 있었던 다툼의 흔적으로 보인다”

    특히 재판부는 범행이 일어난 추정 시각에 남편이 석연치 않은 행동을 보인 것에 주목했다.

    ▲ 사건이 일어난 당일 아침부터 오흐 늦게까지 전화를 전혀 받지 않았고 ▲전문의 1차 시험 다음날은 보통 휴식을 취하는데 평소보다도 이른 시간에 도서관에 간 점 ▲집에 가면서 승강기 안에서 팔의 상처를 확인 한 점 ▲부인이 연락이 안된다는 말을 듣고도 친구들에게는 전화를 걸면서 부인에게는 전화하지 않은 점 등은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제 사건을 파기환송한 대법원 재판부도 백 씨의 행적이 석연치 않다는 점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범행이 일어난 집에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이 전혀 없고, 당일 CCTV에서도 특이한 점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제3자의 범행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덧붙였다.

    백씨는 지난해 1월 서울 마포구 도화동 자신의 집에서 출산을 한 달 정도 앞둔 부인 박모씨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재판부가 ‘우발적 살인’ 혐의를 인정해 백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지만, 사건이 마무리 된 것은 아니다. 대법원 재상고심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관건은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판시이유를 재판부가 모두 충족했는가에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이 지적한 사항을 충분히 입증했다는 입장이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특히 숨진 박씨의 사망원인이 ‘액사’라면, 목에 손자국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전혀 없는 이유가 완전히 해명되지 않아, 재상고심이 이 부분을 어떻게 판단할지 주목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법의학 전문가들마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