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의 간디와 네루, 한국의 李承晩과 朴正熙

    인도는 가난을 극복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유럽보다 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朴承用    
     
    혁명이나 독립을 통해 새로이 등장하는 지도자들의 사상이나 경제관은 국가의 진로와 국민의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인도와 한국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65년 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을 때 인도의 지도자들은 국가의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自由(자유)민주주의였다. 독립과 건국지도자들의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비전 때문에 인도인들은 대체로 언론과 結社(결사)와 거주이전의 자유와 시위 및 抗議(항의)와 종교의 자유와 투표의 자유 등 自由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들을 享有(향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도는 장군이나 종교지도자나 黨(당)에서 選定(선정)한 간부들이 아닌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사람이 국가를 책임지고 통치하는 나라가 되었다. 인도는 제3 세계 국가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적어도 제도상으로는, 모범적인 민주주의국가로 공인되었다. 그러나 인도 건국 지도자들의 경제 비전은 실패였다.

  • 〈인도독립운동의 지도자인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와 인도의 첫 번째 수상인 자와하랄 네루(Jawaharlal Nehru) 및 그의 딸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는 빈곤퇴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빈곤을 恭敬(공경)하였다. 그들은 자립경제와 민족자긍심을 강조하였다. 그 결과 인도는 50년 동안 세계 최하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이코노미스트> 2012년 9월29일字)〉

  • 국민의 70%가 맨발로 다닐 만큼 가난했다. 국민의 대다수가 文盲(문맹)이었다. 饑饉(기근)과 대량 餓死(아사)의 재난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캘커타 같은 대도시에서는 거리에서 태어나서 거리에서 살다가 거리에서 죽는 사람이 不知其數(부지기수)였다. 평균수명이 40세도 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구 9억의 ‘亞大陸(아대륙) 국가’ 인도의 국민총생산은 인구 5000만 미만의 한국보다도 적었다. 聖者(성자)로 추앙받고 있는 간디와, 성자 같은 政治家(정치가) 네루의 ‘물질 경시·정신 중시 사상’과 ‘사회주의적 자주경제 정책’ 때문에 인도의 민중은 반세기동안 가난의 지옥에서 고난을 당했다. 21년 전 싱(Singh) 재무장관의 ‘경제 자유화 조치’ 이후 인도는 고도성장을 시작하면서 가난의 굴레에서 겨우 벗어나기 시작했다.

  • 65년 전 한국은 인도는 물론 아프리카보다 더 가난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자나라들인 유럽연합보다 더 부유하다. 英 <이코노미스트>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었다.

    <참혹한 전쟁으로 황폐화된 1960년의 한국은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한 지역과 동일한 국민소득을 가진, 세계에서 最貧國(최빈국) 중 하나였다. 2011년 말에는 한국은 구매력평가(PPP)로 계산하여 국민 소득이 3만 1750달러가 되면서 평균 3만 1550달러인 유럽연합보다 더 부유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근로 연령(working life) 以內(이내)에 개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富國(부국)이 된 유일한 나라이다. 한국은 대부분의 貧國(빈국)에게 성장의 모델이 된다. 너무 커서 모방할 수 없는 중국이나 대만, 싱가포르, 홍콩보다도 더 훌륭한 모범이 된다. 이들 세 나라는 한국보다 부유하지만 모두 예외에 속한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도시국가이고, 대만은 主權(주권)문제 때문에 독특한 경우에 속한다.…
     (<이코노미스트> 2011년 11월12일字)>

  •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설계도를 만든 李承晩(이승만) 대통령과 이 설계도에 따라 선진 富國(부국)건설에 身命(신명)을 바친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이 없었더라면 이런 꿈 같은 기적이 가능했을까? 대한민국이 유럽보다 더 잘사는 나라가 될 줄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극악무도한 공산주의자 김일성은 말할 것도 없고 간디나 네루 대신 위대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先覺者(선각자) 李承晩 대통령과 경제건설의 超人(초인) 朴正熙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건국-건설의 지도자였다는 것은 하늘의 축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