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9년 4월 30일 '경향신문'이 폐간되는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이승만 정권의 언론 탄압으로 기억하고 있다. 

    1946년 10월 6일 창간한 경향신문. 창간 1년만에 신문 발행부수에서 1위를 차지했을 만큼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리고 1952년 이승만 정부의 발췌개헌안 국회 통과를 비판하는 사설을 시작으로 대표적인 야당지를 표방하고 나섰다. 

    경향신문 폐간의 이유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경향신문의 정파성과 허위보도가 근원적 이유로 알려졌지만 역사는 이 사건을 '언론탄압'으로 기억한다.

    경향신문은 폐간된 지 361일 만인 1960년 4월 27일 복간됐다. 그리고 5월 29일자 신문에 4.19로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의 하와이 망명을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지난 11일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제20회 이승만포럼의 주제가 바로 이 경향신문 폐간사건이었다. 역사가 기억하는 '언론탄압'. 이승만 정권의 실수를 부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폐간을 결정하는 과정을 당시 공보실장을 맡은 전성천의 회고록 '십자가 그늘에서'를 토대로 꼼꼼히 살펴보는 것일 뿐.

  • ▲ ⓒ윤희성
    ▲ ⓒ윤희성

    이날 발표자로는 故 전성천의 막내 동생 전상근 LC 종합건설주식회사 회장이 나섰다.

    전성천은 1959년 1월 31일 공보실장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1960년 4월 7일 해임됐다. 전성천이 기억하는 경향신문 폐간사건의 내막을 소개한다.

    회고록 74 Page

    "분명한 사실은 이 경향신문 폐간을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일은 없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자유당의 강경파들이 모의하고 합심해 실행한 것이다. 형식적으로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고 공보실장의 이름으로 발표하게 만든 것뿐이었다."

    회고록 79 Page

    "경향신문은 내가 공보실장에 부임하기 이전부터 정부와 자유당이 노리는 대상이었던 것 같다. 나의 전임자였던 오재경 실장은 적어도 자유당에서 경향신문을 폐간시키려고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스스로 공보실장직을 그만두었던 것 같다. 신문을 폐간시키고 언론자유를 말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지 않고 싶었던 때문이 아닐까?"

    당시 자유당은 물론 경무대 비서실까지 공보실장을 압박했다. 1959년 1월에 임명됐고 4월 30일에 경향신문이 폐간되기까지 전성천 공보실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측근들에게 경향신문 폐간에 관한 지시사항을 받은 것.

    회고록 87 Page

    "경향신문 폐간사건의 주역은 자유당 당무회의뿐만이 아니다. 경무대 비서실의 박찬일 비서는 3월부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불러 "어른께서 노발대발하셨다"는 등, 마치 자기가 이 대통령이나 되는 것처럼 야단법석이었다. 이 대통령이 진정 노발대발하는 정도였다면 그 동안 한 번쯤은 공보실장인 나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4월에는 최인규 내무장관과 홍진기 법무장관의 압박도 있었다. 전성천은 스스로 공보실장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여러가지 상황에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다.

    결국 공보실에서 경향신문을 폐간시켜야 할 사유를 문서화해 국무회의에 제출했고 법안은 통과됐다. 전성전 공보실장은 해임 후 언론탄압에 대한 책임을 지고 1960년 5월 20일부터 1962년 6월 4일까지 2년간 서대문 교소도에서 옥고를 치뤘다.

    전성천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억울한 사람이다. 자신에게 법안을 상정하라고 압박했던 이승만 정부의 아첨꾼들은 모두 책임을 지지 않았다. 어찌보면 맞는 말이다. 역사의 평가도 이승만과 당시 공보실장을 맡은 전성천에게 돌을 던지는 형국이기 때문.

    하지만 이번 포럼을 통해 바라본 당시 경향신문 폐간사건의 내막은 경향신문도, 전성천 공보실장도 어쩌면 판단력이 흐려진 이승만 대통령도 모두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향신문 폐간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아마도 권력에 아부하고 권력을 탐하는 惡人들의 정치논리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은 아닐까?

    단순히 이승만과 전성천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기에는 경향신문 폐간사건으로 361일간 희생된 대한민국 언론의 자유가 지나치게 가볍게 다뤄지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