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양양 조기경보전대…참수리 편대 등 동해 최전선 수호“옛날 군대는 이미 ‘전설’…장병들 피곤함 풀어줄 수 있었으면”
  • 육군과 해군이 함께 바다를 지키는 곳이 있다. 바로 강원도 양양군에 있는 108전대, 일명 조기경보전대다.

    기자는 지난 9월 27일 격오지 부대 탐방 마지막 순서로 해군의 도움을 얻어 제1함대 108전대를 찾았다. 양양군은 속초나 간성에 비해서는 후방인지라 주변 환경도 어느 정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조그만 기지에 참수리 편대와 항공지원대, 대함무기 부대 '동거'

    108전대 앞에서 기다리는 1함대 공보과장 장원준 중위를 만나 안내를 받으며 기지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조기경보전대 소속 참수리 편대가 이날 새벽 임무를 마친 뒤 기지 내 숙소에서 쉬고 있었다.

    108전대 기지에는 참수리 편대와 함께 항공지원대와 지대함 공격부대가 함께 들어서 있었다. 참수리 편대가 정박한 곳 건너편에는 육군 경비정이 있었다.

    “되게 좁죠? 사실 이 곳은 조기경보전대 소속 참수리 고속정들이 임무를 마친 뒤 잠깐 들러 쉬고 가는 곳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시설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 ▲ 해군 108전대 내 참수리 승조원(간부) 숙소 내부.
    ▲ 해군 108전대 내 참수리 승조원(간부) 숙소 내부.

    장 중위는 기지 내 참수리 고속정 승조원들이 쉬는 막사로 안내했다. 여기서 편대장과 정장 등을 만났다.

    편대장(소령)에게 ‘동해 최전방 해군부대의 일상생활을 보러 왔다. 아무런 포즈나 훈련 필요 없이 병사들 쉬는 모습 그대로 보고 싶다’고 하자 “그런 취재도 다 있냐”고 반문했다. 편대장은 솔직하게 최근 군대 생활 이야기를 해줬다.

    “옛날 군대요? 요즘은 솔직히 간부와 장병 사이에 큰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서로 고생하는 거 아는데 뭐 큰 소리 칠 필요가 있습니까? 게다가 이제는 간부들도 ‘병사들도 다들 남의 집 귀한 아들들인데’라고 생각하기에 웬만해서는 소리도 안칩니다.”

    90년대 해군의 유명한 함정 내 가혹행위 사례를 몇 가지 이야기해주자 편대장은 “미친 인간들 아니냐. 그런 짓은 상상도 못 해봤다”며 놀랬다. 다른 간부들도 가혹행위 사례를 듣더니 놀란 듯 멍한 표정이었다.

    “요즘 군대는 하지 말라는 것 안 하고, 하라는 것만 제대로 해내면 편합니다. 임무 외에 다른 일을 시키는 간부도 거의 없습니다. 사회가 발전한 만큼 군대도 함께 변한 겁니다.”

    다른 간부는 이제는 병사들이 더 편하게 생활한다고 말했다.

  • ▲ 족구를 하는 참수리 편대의 간부들.
    ▲ 족구를 하는 참수리 편대의 간부들.

    “이제는 군대에서도 출퇴근 개념이 생겼습니다. 오전 일과시작에 출근했다가 일과가 끝나면 생활관으로 퇴근한다는 겁니다. 오후 5시에 칼퇴근하는 건 병사 밖에 없습니다. 어떨 땐 부러워요.”

    일단 편대장, 정장 등과 함께 막사와 고속정을 둘러보기로 했다.

    조금 허름해 보이는 막사, 여전한 고속정 그래도…. 

    2층 건물인 막사는 겉보기에는 조금 허름해 보였다. 하지만 간부들 숙소와 병사들 숙소, 육군 경비정 숙소와 당구대, 탁구대 등을 갖춘 오락실, PC와 플레이스테이션 등을 갖춘 게임장 등 웬만한 시설은 다 들어가 있었다.

    “실은 침실이 부족합니다. 전체 인원이 60여 명, 그 중 병사들이 절반이 채 안 되는 데 이들이 함께 잘 침실이 없습니다.”

    조기경보전대라는 임무 특성 상 인원의 3분의 1은 고속정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타군에 비해서는 여전히 열악한 환경이었다.

  • ▲ 참수리 고속정 내의 침대. 캔버스 그물망 대신 철제 침대로 바꿨다.
    ▲ 참수리 고속정 내의 침대. 캔버스 그물망 대신 철제 침대로 바꿨다.

    “고속정 침대는 최근에 개조해 그나마 나아졌습니다. 한 번 가보시겠습니까?”

    정박해 있는 고속정은 배 뒷 갑판에 20mm 벌컨 2기를 장착한 후기형이었다. 고속정 내 침실로 들어서자 과거의 악명 높던 ‘캔버스 그물침대’ 대신 스테인리스 금속판으로 받친 신형 침대가 보였다.

    “저희 편대는 매일 출항했다가 귀항합니다. 함정 내 취사시설이 없어 1박 이상의 항해를 하지 않습니다. 이런 고속정의 특성 상 침대도 좁고 공간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진 겁니다. 고속정에도 ‘스카이라이프’를 달아 휴식하는 장병들은 TV 시청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편대장과 정장, 주임원사의 안내를 받아 함교로 들어가 보니 전자해도를 비롯해 새로운 장비들과 보강시설도 몇몇 보였다. 모두 2002년 제2연평해전(서해교전) 이후 설치한 것이라고 했다.

    “함교 앞 방풍유리는 물론 곳곳에 방탄 처리를 했습니다. K2 소총 거치대도 그렇습니다. 또한 천안함 폭침 이후로는 ‘EPIRB’도 장착했습니다.”

    ‘EPIRB’란 ‘Emergency Position Indicating Radio Beacon(무선표지설비)’의 줄임말로 배가 조난을 당했을 때 그 위치를 GPS 신호로 쏴주는, 일종의 조난신호용 비컨(Beacon)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소나(Sonar. 수중음파탐지기)를 제대로 장착할 수 없어 민간용 어군 탐지기를 대신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편대장과 정장 등은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웃었다.

    고속정 뒷 갑판에는 CRRC(Combat Rubber Raiding Craft. 기습전투용 고무보트)도 하나 있었다. 용도는 인명구조용이라고 했다. 주임원사의 설명이다.

    “천안함 폭침 당시 고속정이 침몰 현장에 갔어도 승조원들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고속정 갑판과 해수면의 차이가 2미터를 넘는데 어떻게 구조할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그 이후 이렇게 고속정 기지마다 CRRC를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 ▲ 참수리 고속정의 간부들이 족구를 하는 동안 병사들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 참수리 고속정의 간부들이 족구를 하는 동안 병사들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들 고속정은 동해에서 초계 임무를 맡는다. 해안에서 가까운 해역은 육군 경비정들이 지킨다. 고속정이 정박한 곳 맞은편에서 육군 철벽부대 장병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언제 나가느냐 물으니 매일 출항한다고 했다. 이들이 타는 배는 2차 대전 때 보던 어뢰정 같은 모습의 소형 선박이었다. 무장도 빈약했다. ‘생활하기 힘들지 않냐’고 묻자 병사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솔직히 육군에 입대해서 배 탄다고, 휴가 나가서 친구들에게 말하면 아무도 안 믿습니다. 저도 제가 배 탈 줄 몰랐다니까요.”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 이후 관심 멀어진 동해 수호

    이렇게 육군과 해군이 함께 지내는 108전대는 ‘최전방 부대’다. 그럼에도 사회에서는 무관심하다.

  • ▲ 막사 내의 당구대와 탁구대. 과거에 비해서는 좋아졌지만 다른 부대에 비하면 낙후한 시설이다.
    ▲ 막사 내의 당구대와 탁구대. 과거에 비해서는 좋아졌지만 다른 부대에 비하면 낙후한 시설이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사회의 이목은 대부분 서해로 쏠려 있다. 소형 잠수정과 공기부양정, 장사정포를 이용한 북한의 기습도발에 대한 대비도 모두 서해로만 쏠려 있다.

    하지만 북한의 잠수정과 잠수함이 활동하기에 ‘이상적인 바다’는 바로 동해다. 수심이 깊은데다 연중 절반 가량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해역이 많아 잠수정이 활동해도 소나로 탐지하기 어렵다. 북한 특수부대의 후방 침투 또한 ‘공해’가 있는 동해가 더욱 수월하다.

    6.25전쟁 초기 해군의 백두산함이 북한군 특수부대 700여 명을 수장시킨 ‘대한해협 해전’이나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도 이런 이점을 활용한 것이었다. 반면 이들의 침투를 막는 해군 장비나 시설은 여전히 열악하다.

    특히 고속정으로는 서해와 비교가 되지 않는 거대한 파도와 깊은 수심의 바다에서 작전을 펼치기에는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 때문에 동해를 지키는 고속정 편대는 매일 출항과 귀항을 반복한다. 매일 임무 수행을 하기에 승조원의 피로도는 극에 달한다.

    하지만 이런 고속정 승조원들이 생활하는 곳은 ‘여론의 관심 밖’에 있다. 국방예산을 심의하는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들은 언론에 과시하기 좋은 예산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러다보니 국방예산 편성에서도, 전력 증강계획에서도 108전대와 같은 동해안 기지는 늘 후순위다.

    군 격언 중에는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적과 대치중인 상황에서는 경계만 잘 해도 적의 기습도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 수뇌부가 이 말을 기억하고 있다면 최전방에서 경계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