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트위터' 친구들, <나꼼수> 등 左派 일색

    팔로윙 하는 트위터 인사들, 김용민-주진우-진중권-조국...


    정리/김필재    
     
    대선 출마 문제를 놓고 ‘간보기’에 열중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그동안 익명으로 트위터 활동을 해왔다. 安씨는 2010년 10월25일 인터넷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트위터를 일찍부터 이용해 왔습니다”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트위터는 자기가 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동안 강연 같은 것을 많이 해서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어요. 팔로워가 생기면 지속적으로 관리할 자신도 없고요. 제가 여러 가지를 동시에 잘하기보다 하나에 집중해서 하고, 어느 정도 되면 다음 것으로 넘어가는 스타일이에요.”

    安씨는 이어 자신이 팔로잉하는 인사들을 아래와 같이 공개했다.

    “주로 단체를 팔로합니다. 테크크런치(미국의 IT 전문 뉴스블로그)나 뉴욕타임스 같은 매체를 팔로하고요, 사람으로는 토머스 프리드먼(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말콤 글래드웰(<아웃 라이어> 저자), 존 그리샴(소설가), 존 도어(벤처캐피털리스트) 같은 분을 팔로합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안연구소의 김홍선 대표, 시골의사 박경철씨 등이 있습니다.”

    <경향신문> 최근 보도에 따르면 安씨는 여전히 익명으로 트위터를 하고 있으며 내용은 비공개라고 한다. 팔로잉도 安씨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한 상태이다. 安씨는 앞서 언급한 단체 및 인사들 외에 새로이 팔로잉하고 있는 인사들이 늘었는데 모두 左派 일색이다.

    구체적으로 김호기(노무현재단 운영위원), 공지영(작가), 김용민(<나꼼수> 제작PD), 주진우(<시사 IN>기자, 나꼼수 고정 출연자), 진중권(비평가, 前 민노당원), 김여진(영화배우), 조국(서울대 교수), 김제동(방송인), 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 이재웅(Daum 커뮤니케이션 창업자) 등이다.

    安씨는 SNS 외에 페이스북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408명의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폐쇄적인 SNS 활동 이유에 대해 安씨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는 페이스북을 인맥 관리용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면 친구요청을 사양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친구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 상식과는 안 맞는 것 같아요. 저는 모르는 사람의 친구요청이 오면 ‘예전에 저랑 만난 적이 있는지요?’ 하고 메일을 보냅니다. 혹시 내가 기억을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메일을 보내는 걸로 대개 정리되더라고요.”

    安씨는 최근 발간한 대담집《안철수의 생각》에서 자신이 가장 중요시 하는 화두로 ‘소통’과 ‘합의’를 강조했는데, 그의 실제 SNS 생활은 ‘소통’은 커녕 ‘불통’ 내지는 ‘먹통’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는 ‘화합’을 주장하지만 언동은 ‘좌파적(左派的) 관점’에 있기 때문에 ‘분열적’(分裂的)이다. 이 같은 그의 속성은 SNS 활동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정리/김필재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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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印 씨, 從北단체 민가협(民家協)에서 잔뼈 굵은 인물 

    김필재  
      
    [1] 김근태 前 민통당 고문 사망당시 빈소를 찾았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4.11 총선에서 민가협 출신의 인재근(印在謹, 現 민통당 의원, 김근태 前 고문의 부인) 씨를 공개 지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印 씨는 총선 전인 3월29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안철수 교수님이 응원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安 씨의 글을 링크(link)했다. 안 씨는 당시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김근태 선생과 인재근 여사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인재근 여사의 사람에 더 이상의 아픔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용기 있고 신념을 가진 여성, 인재근과 함께 도봉의 새로운 미래가 열리기를 희망합니다”라며 印 씨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2] 印 씨는 1985~1998년 민가협(民家協, 민주화실천가족운동본부) 총무, 1989~1999년 서울민통련(서울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하단 주석 참고) 상임부의장 및 의장을 거쳐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다. 印 씨가 몸담았던 민가협은 국보법 폐지와 비전향장기수 등 소위 양심수, 성적소수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 등을 보호하는 데 주력해 온 단체다.

    [주: 민통련은 제5공화국 시절인 1985년 3월 25개 좌파성향 재야 단체들이 연합-발족한 단체다(1985년 9월 20일 민청련, 한국기독교농민회 총연합회, 노동선교협의회, 민중불교운동연합, 전남사회운동협의회, 전북민주화운동협의회, 부산민주화운동협의회, 충남민주화운동협의회, 충북민주화운동협의회,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서울노동운동연합 등 합류). 민통련은 1983년 9월 출범한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필두로 1984년 6월에 출범한 민민협(민중민주운동협의회), 1984년 10월에 출범한 민주통일국민회의가 모체가 됐다.]

    구체적으로 비전향장기수는 간첩·빨치산 출신으로 전향하지 않은 장기좌익수(左翼囚)를 말한다(<조갑제닷컴> 2008년 11월12일자 보도 인용, 작성자: 김성욱).

    단체는 홈페이지에서 “민가협은 창립부터 지금까지 양심수 석방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양심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석방에 인색했던 정부를 강하게 규탄하고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양심수를 사회문제화 시켜냈다”고 적고 있다.

    민가협은 특히 “1999년 12월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를 결성, 활동을 벌인 결과 2000년 9월3일 마침내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밝힘으로써 비전향장기수들의 ‘이념적 고향’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한임을 밝히고 있다.

    민가협은 ‘국보법폐지국민연대’와 함께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파괴를 기도했던 종북단체 ‘통일연대’ 및 反美폭동을 일으켜 國軍까지 폭행했던 ‘평택범대위’ 등에 참가해왔다.

     

  •  민가협은 줄곧 국보법 문제와 관련, “국가보안법, 사회안전법, 보안관찰법 등 민주주의와 인권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악법철폐를 위해 쉼 없이 노력해 왔다. 그 결과 사회안전법(1989년), 전향제도(1998년), 준법서약서(2003년)가 폐지됐다”고 밝히고 있다.

    단체는 또 “국정원, 경찰 대공분실, 검찰 공안부, 공안문제연구소(現 치안정책연구소) 등 공안수사기구에 대한 감시활동과 문제제기를 해왔으며, 이러한 활동은 2004년 7월, 공안문제연구소 폐지를 이끌어내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하여 국가의 대공(對共)기능 해체에 앞장서왔다.

    [3] 민가협 산하에는 양심수후원회(명예회장 권오헌)라는 조직이 있다. 이 조직은 비전향좌익수 송환에 앞장서 왔는데, 예컨대 2008년 4월27일 종로5가 기독교회관 강당에서 총회를 열고,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을 반드시 이루어냅시다!”, “6.15, 10.4선언 고수 이행, 국가보안법 양심수 없는 세상을 위해 힘차게 나아가자”는 총회 결의문을 채택 발표했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2005년 5월28일 전북 회문산에서 열린 소위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전야제’라는 간첩·빨치산 추모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55년 전 우리 선배(先輩)들이 피 흘려 싸웠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적은 55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이다. 산화해 가신 영령들을 추모하고 그 뜻을 계승해 자주 민주 통일을 이루는 계기로 삼자”(인터넷 <통일뉴스> 보도 인용)

    당시 행사에서 경남지역 빨치산 출신 박순자는 “죽은 동지(同志)들은 외세를 반대해 투쟁했다”며 “해방 60돌, 당(黨) 창건 60돌, 6.15 5돌인 올해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북(北)으로 간다. 통일은 다 됐다”라고 주장했었다.

    비슷한 시기 權 명예회장은 경기도 파주 보광사에 조성된 소위 ‘통일애국투사묘역 연화공원’이라는 간첩·빨치산 추모공원 준공식에서도 “이 묘역이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평생 헌신적으로 통일애국운동을 해온 분들을 모신 만큼 이 묘역이 갖는 의미를 어떤 국립묘지에도 비할 바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從北전문 인터넷 백과 <팩트파인딩넷> 인용)

     


  • 權 명예회장은 70년대 최대 공안사건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에 연루되어 3년4개월 복역했었다. 그는 △6.15/10.4선언 이행 △국보법 폐지 △한총련 합법화 △북한인권법 반대 등을 줄곧 주장해왔다.

    2005년 8월2일 서울 종로에서 열린 ‘한총련정치수배해제’ 촉구 발언에서는 “지금까지 정권연장을 위한 전략으로 한총련을 탄압해 왔다. 자기 조국을 사랑했다고 해서 탄압받아야 하는가”라며 利敵단체로 판시된 한총련을 두둔하기도 했다. <조갑제닷컴: 2012년 7월11일자 보도>

    정리/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