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진화포커스 제81호>
    21세기 미·중패권 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金 暎 浩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국제정치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 과정과 결과는 한국의 안보 뿐만 아니라 경제 등 모든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벌써 그 영향이 피부로 와 닿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에 대비한 국가전략과 정책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다.

       최근 미·중 양국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 선수를 친 쪽은 미국이다. 지난 1월 발표된 21세기 군사전략 지침에서 미국은 아시아를 최우선시하는 전략으로 급선회했다. 이 지침의 핵심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책 마련이다. 사실 미국은 21세기 들어서자마자 이런 대책을 구상했지만 9·11테러 이후 10년간 계속된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으로 인하여 실현에 옮기지 못했다. 새로운 지침과 함께 테러와의 전쟁도 사실상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미 미국은 중국과 동남아국가들 사이에 영유권 분쟁이 일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가까운 호주 북부 지역에 해병대를 상시 주둔시키기로 결정했다.

       중국도 미국의 전략에 대응해 과거 도광양회(韜光養晦) 노선을 벗어나서 더욱 적극적 전략을 취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을 방문한 중국 차기 지도자 시진핑은 “광활한 태평양은 미국과 중국 양국이 같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공간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1949년 3월 맥아더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일본 점령 이후 태평양은 “앵글로-색슨족의 호수”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시진핑은 이제 태평양은 더 이상 ‘미국의 호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의 5세대 지도자가 미국의 안방 워싱턴을 방문하여 미국의 전략적 텃밭인 태평양을 공유하자고 나선 것은 양국 간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시진핑 발언 이후 중국은 금년 국방비를 처음으로 1000억 달러 넘게 책정했다. 지난 20년간 꾸준히 두자리 숫자의 증가를 보여온 결과이다. 이 액수는 미국 국방비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중국의 경제력 증가와 함께 그 차이는 급속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미·중 패권 경쟁의 ‘패권’(覇權)이라는 말은 헤게모니(hegemony)를 번역한 말이다. 패권(覇權)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 용어는 우리 말로는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패권 질서는 강압적 방식에서부터 합의를 중시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 그러니까 패도(覇道)보다는 왕도(王道)에 가까운 패권 질서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중심의 패권 질서는 ‘왕도적 패권’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와 달리 구한말 중국과 일본의 패권 추구는 ‘패도적 패권’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미·중 패권 경쟁기에 접어들면서 그것이 어떤 양상을 띨지는 우리의 국익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과거 세계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패권국가의 교체는 두 번 일어났다. 첫번째는 대영제국으로부터 미국으로 패권이 교체된 경우이다. 두 나라는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이라는 이념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화적으로 바톤 터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 사이에 벌어진 두번째 패권 대결은 소련의 몰락으로 막을 내렸다. 이처럼 이념이 서로 다른 이질적 패권 추구 국가들 사이의 평화적 패권 교체는 매우 어렵다. 두번째 패권 경쟁기에 한반도가 분단되었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경험했다. 그만큼 패권 경쟁의 부정적 영향력은 깊고도 오랜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다가올 패권 경쟁에 잘못 대처했다가는 국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미·중 패권 경쟁은 역사상 세번째가 되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은 그 경쟁의 바로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개혁과 개방정책을 추구하고 있지만 정치체제 면에서 미국과 동북아 지역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아직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미·중 패권 경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미·중 패권경쟁은 한국에게 커다란 전략적 딜레마를 안겨줄 것이라는 점이다. 브레진스키는 최근 그의 저서 ‘전략적 비전’에서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미·중 패권경쟁기 불확실한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은 역사적 경험을 중시하고 현실주의적 노선을 견지하는 것이다. 구한말 이후 역사는 주변 그 어떤 강대국보다도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유지되고 미국의 ‘왕도적 패권질서’에 속했을 때 한국이 번영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중국의 부상과 패권 추구에 대비해 나가는 것이 국익에 부합된다.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등장하고 있는 중국과 경제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의 국익에 부합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중 FTA 체결은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한·미동맹을 ‘냉전의 잔재’로 보고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외교’를 취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존의 한·미동맹관계를 재조정하여 군사·외교·안보 측면에서 대중국경사정책(對中國傾斜政策)을 취하는 것은 우리의 국익에 부합되지 않는다. 핵 개발에 나선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한국에게 한·미동맹을 폐기하거나 재조정하라는 중국의 요구는 현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지만 한국 주도의 한반도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중국이 통일과 한·미동맹의 양자택일을 요구할 경우 한국은 커다란 전략적 딜레마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 미국이 재정적자의 증가로 국방비를 대폭 삭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부담도 늘어나게 될 전망이다. 나아가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도 예정되어 있다. 미·중 패권 경쟁으로 구한말 이후 가장 중요한 전략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선거철로 접어들면서 온통 집안 싸움에 열중하고 있다. 국회는 의석수를 늘려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고, 국방개혁과 같은 중요한 법안은 안중에도 없다. 미·중 패권 경쟁기에 우리의 군사·경제 안보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가 될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일부 세력은 열을 올리고 있다. 정치인들은 국가 재정은 아랑곳않고 표를 얻기 위해 복지정책을 쏟아내기에 바쁘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일까? 구한말에도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고 집안 싸움하다가 나라가 망했다. 미·중 패권 경쟁에 대비한 국가전략과 대책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하루빨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할 때이다. ◎

    ※ 선진화포커스는 본 포럼의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