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SSM 심야영업 금지’ 법안 통과1~2인 가구 야간활동 많아⋯ 시장활력 ‘기회’
  • ▲ 지난 가을 전주 남부시장에 야시장이 열리자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 지난 가을 전주 남부시장에 야시장이 열리자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전통시장 건물의 옥상. 하늘정원에 좌판을 깔고 노란 조명을 켜지면 야시장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다. 밴드가 공연 준비를 하며 튜닝하는 소리가 들리고 여기저기 분주하게 수공예품 장터가 펼쳐진다.

    부산에서, 대전에서 젊은 보따리 장사 사장님들이 전주까지 원정영업을 하러 왔다. 지난 가을 전주 남부시장의 밤풍경이다.

    전주 남부시장 번영회 황상택 상무는 “고령화되고 있는 시장에 새로운 고객층을 창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야간 시간대를 활용하다보니 젊은 층들의 유입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이나 젊은 부부들이 시장에 와서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기게 됐다”고 황 상무는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올 해부터 대형마트와 SSM은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 영업을 할 수 없다. 지난 달 30일 ‘골목상권 보호’를 취지로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매월 1-2회 의무휴업을 도입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심야시간대 대형 유통업체들이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으로 향할 것인가?  열악한 환경의 전통시장보다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편의점만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지만 전통시장 상인들 입장에서도 이 법안이 기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에 해법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야(夜)시장이다. 대형유통점이 잠든 사이 밤 시간대를 이용해 전통시장 쇼핑문화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구의 절반 이상이 싱글족이거나 2인가구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싱글족들은 심야시간에 먹고 마시며 사람을 만나고 쇼핑하는 데 익숙하다. 

    김앤커너스 김영호 대표는 시장을 집과 직장에 이은 제 3의 공간으로 만들자며 이른바 ‘제 3의 장소’ 전략을 소개했다. 

    “전통시장을 단순히 물건 파는 장소가 아니라 ‘감성’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해관계를 벗어난 타인과 타인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제 3의 장소로 전통시장을 변화시킨다면 일본의 선술집 이자카야나 파리의 오픈카페처럼 사랑받게 될 것입니다.”

    독점이 된 심야시간대를 이와 같이 문화공간으로 활성화한다면 전통시장의 성공적인 변신이 가능할 것이다. 

    이미 야시장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 시장도 있다.

  • ▲ 온양온천시장 금요야시장은 다양한 먹거리로 인기를 모았다.
    ▲ 온양온천시장 금요야시장은 다양한 먹거리로 인기를 모았다.

    대표적인 시장이 바로 지난해 가을 시범적으로 야시장을 운영한 전주 남부시장.

    ‘젊은이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여보자’는 취지로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대개 전통시장들은 오후 9시만 되면 문을 닫는다. 전주 남부시장은 문화체육관광부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아 저녁 8시에 문을 열어 자정 무렵까지 음악공연 등 이벤트로 젊은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행사를 담당한 서민정씨는 “수공예품 등을 파는 젊은 사장님들이 전국에서 모여들고 젊은이들이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자랑했다.

    죽어있던 밤 시간을 이용해 새로운 손님을 창출한 셈이다.

    상인들의 반응도 좋다. 시장에서 30년째 양품점을 운영해온 새로나양품 김만순(54) 사장은 “시장에 그렇게 젊은이들이 많이 올 줄은 몰랐다. 요즘은 날이 추워져서 야시장을 못하지만 한번 놀러왔던 젊은 친구들이 낮 시간에도 또 찾아오곤 한다”고 말했다.

    이젠 남부시장을 다니다 보면 20대로 보이는 젊은 커플들이 쉽게 눈에 띌 정도다. 

    남원상회 이종필(38) 사장도 “사람이 많이 오니 자연스럽게 매출도 올랐다. 콩나물 국밥이나 순대국밥 집도 줄이 길게 늘어섰고 생필품을 파는 가게들도 장사가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야시장을 경험한 상인들은 하나 같이 “시장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증언했다. 아직은 시험단계에 있지만 그 가능성을 증명한 셈이다. 

    충남 아산에 위치한 온양온천시장도 지난 여름 ‘금요야시장’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금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상인들 개발한 야시장 음식을 팔아 인기를 모았다.

    온양온천시장 시장사업단 진유라 사무차장은 “지역 사회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시장 홍보가 많이 됐다”고 말했다.

    김영호 대표는 “국내 시장도 홍콩이나 동남아의 야시장처럼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외국의 시장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관광객이나 지역주민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장에는 한국적인 맛과 멋이 있기에 새로운 고객층인 젊은이들과 외국 관광객들이 놀 수 있다”고 전통시장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지자체와 전통시장이 힘을 모아 장기적인 야시장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제까지 야시장의 성공사례는 모두 단발성에 그쳤다. 정부의 지원 덕분에 시도해 본 단기 이벤트성 행사로 장기적으로 운영하기에는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상인들이 직접 힘을 모아 야시장 운영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지원책을 요구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