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춘 회고록 표지 사진ⓒ
    ▲ 이재춘 회고록 표지 사진ⓒ

    김정일이 죽었어도 한반도 정세는 좀처럼 변할 움직임을 포착할 수 없다. 김정일의 이른바 유훈통치로 북한의 대남 대결정책이 요지부동인데다, 중국의 대북지원 정책이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조짐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북한의 핵폐기를 지지한다고 하지만, 만일 이로 인해 북한체재가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면, 체재붕괴 보다는 핵무장한 북한을 선택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의 이러한 입장을 잘알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따라서 선군정치와 핵보유를 고집할 수밖에 없으며 중국과 북한 공히 '현상유지' 정책을 고집 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공생적 역학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중관계의 구조적인 변화가 없이는 우리가 기대하는 '현상타파'는 불가능 하기 때문에 중국의 정책변화를 위해 우리의 모든 역량과 수단을 동원하여야 할 것이다.

    우선, 한-중 양국간의 전략협의를 궤도에 올려놓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2008년 5월 북경에서 개최 되었던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중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합의 되면서 양국간의 '차관급 전략대화'가 가동되기 시작하였지만, 그동안의 대화운용 실태를 보면 말이 '전략대화'이지 정말 중요한 사안, 예컨대 북한의 긴급사태 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등은 거론조차 봉쇄하려는 것이 중국측의 태도 였다고 한다. 그러니 그런 대화에서 무엇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최근에 서울에서 열렸던 전략대화에서도 김정일 사후의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핵심적인 문제에 관하여는 전혀 논의도 안된 것으로 알려 젔는데,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로서는 중국측이 거북하게 반응하는 이슈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중국을 설득해 나가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중국이 정책을 변경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중국이라고 해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나라가 아니다. 모택동시대를 거처 지금까지 변화와 변혁을 계속 해오고 있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일당독재의 중국체제와 그들의 가치관이 바뀔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자구적인 노력은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정부가 이런 신념을 가지고 의연하고 당당한 외교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중국이 종종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작년 11월 하순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 다이빙궈 외무담당 국무위원이 갑작스럽게 서울에 오겠다고 통보하고, 무리하게 주선된 대통령 면담 자리에서는 잡담만 하다가 연평도와는 관계없는 6자회담을 불숙 꺼내는 등 결례를 했다. 금년 7월 김관진 국방장관 방중시에는 장관의 상대가 아닌 중국군 총참모장이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을 맹비난하는 발언을 하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또 최근에 중국어선들의 우리 경제수역에서의 불법어로를 단속하던  우리 해경 요원을 중국인 선장이 살해한 사건에 대하여도 적반하장격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인들이 한국을 깔보게 된 것이 혹시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는지 한번쯤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6천만명을 아사시킨 모택동을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새해가 되면 역대 대통령들이 신년사를 발표하는데 거의 예외 없이 한자의 4자성어를 내놓고 한자풀이 해석을 달아 놓는다 . 이번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임사이구'를 표어로 했고,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은 '안거낙업'을 내놓았다. 나는 우리지도자들이 왜 이런 구습에 젖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세종대왕이 쓰셨다고 해설까지 해 놓았는데 명나라를 종주국으로 모시던 당시 조선왕조 때의 일을 21세기 대명천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가? 곧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고 하는데, 후진타오에게 이를 해설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나는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전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을 제처두고, 꼭 생소한 한자를 들먹이며 해설까지 해야 하는지, 중국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볼지 한 번쯤은 짚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로, 중국을 변화 시키기 위한 국제 연대와 공조가 중요하다.

    한국 혼자의 힘으로 중국을 변화 시키는 것이 지난한 일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우리의 노력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와 협력이 화대되면 될수록, 그 가능성은 증대될 수 있을것이다.

    국제공조의 핵심대상국가는 미국과 일본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한의 핵을 제거하는 일, 북한인민들의 인권을 개선 하는 일, 그리고 북한의 민주화를 통하여 통일 한국을 이루어 내는 일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주의와 인권존중의 공동의 이념과 제도를 가지고 있는 한-미-일 이 협력할 때, 중국이라는 벽을 허물어 낼 수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할수 있을 것이다. 

    당분간은 과거사 문제만을 가지고 일본과 씨름하기에는 우리가 당면한 상황이 너무도 엄중한데 정부가 이를 간과하는 듯하여 안타깝기 그지없다. 

    김 정일이 죽은 날 동경으로 날아갔던 이 대통령이 일본총리와의 정상회담 시간의 2/3를 위안부문제에 관한 논쟁으로 허비(?)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대세를 보는 안목이 그정도 밖에 안되는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