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성을 싫어하면서도 나는 왜 울어야 했던가?” 
      
     1994년 7월9일 평양의 한 대학생의 고백
    趙甲濟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북경 특파원(前 서울 특파원) 바바라 데믹 기자가 작년에 쓴 《부러운 게 없어요-북한의 보통 삶》(NOTHING TO ENVY. ORDINARY LIVES IN NORTH KOREA)이란 책이 話題(화제)이다.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겪은 삶을 오랜 인터뷰를 통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月刊朝鮮>이 1991년 신년호 부록으로 내어놓은 책('북한, 그 충격의 실상: 가 본 사람과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과 비슷한 접근법이다. 모든 對北(대북)정책은 북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파악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진실에 기초한, 뿌리가 든든한 정책이 된다.
     
      이 책에는 준상이란 청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1961년에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在日(재일)동포를 부모로 둔 청년이 1994년 7월9일 김일성 사망 발표일에 겪었던 일이 재미 있게 그려져 있다.
     
      평양의 한 대학 재학생이던 준상은 토요일 오전 기숙사에서 책을 읽다가 "중대 발표가 있으니 운동장으로 집합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그는 核(핵)위기가 드디어 전쟁으로 악화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정오 무렵 운동장엔 약 3000명이 도열하였다. 정오가 되자 확성기를 통하여 여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햇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을 울리면서 터져나왔다. 김일성이 죽었다는 발표였다. 학생들 사이에서 신음과 흐느낌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한 학생은 쓰러졌다. 학생들은 무엇을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한 사람씩 머리를 감싸안고 주저앉기 시작하였다.
     
      준상은 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진 젊은이였다.
    그도 따라서 주저앉았다. 다른 학생들에게 그의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고 땅 바닥만 내려다 보았다. 그는, 주변에서 나는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면서 다른 동급생들의 슬퍼하는 표정을 훔쳐보았다.
     
      그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는 자주 울어 아버지로부터 "계집아이처럼 약하다"고 꾸지람을 듣는 그였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눈가를 만져봐도 눈물이 없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나는 뭔가 잘못된 것인가? 김일성이 죽었는데도 왜 슬퍼지지 않는가? 김일성을 사랑하지 않았단 말인가?
     
      준상은 갑자기 무서워졌다. 고독감을 느꼈다.
    위대한 수령의 突然死(돌연사)에 모든 학생들이 슬퍼하는데, 자신만 無心(무심)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는 여기서 울지 않으면 자신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장래, 노동당 입당 문제, 그의 생존이 걸려 있다.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니 준상은 겁이 났다.
     
      그는 해를 향하여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면 눈물이 솟아날 것이라는 계산을 하였다.
    눈을 오래 뜨고 노려보았다. 그리고 소리지르면서 울기 시작하였다. 기계적 동작을 되풀이하였다. 갑자기 진짜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는 꿇어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진짜로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부러운 게 없어요》라는 책의 著者 바바라 데믹 기자는 脫北(탈북)하여 한국에 온 준상씨에게 조지 오웰의 《1984년》 번역본을 주었다고 한다. 준상 씨는 이 책을 다 읽고는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를 정확하게 묘사한 것 같아 놀랐다는 평을 하더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