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도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의회를 찾은 `통영의 딸' 신숙자씨의 남편 오길남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죽지 않고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정말 짐승의 꼴이라도 뼈만 앙상한 모습이라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줘서...내 아내와 두 딸과 제가 얼싸안고 부둥켜 안고 실컷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씨는 이날 북한에 억류돼 있는 부인 신씨와 두 딸 혜원,규원 `구출 운동'을 위해 미 의회를 찾았다. 미 의회에서 개막된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8차 총회에서의 증언을 위해서였다.

    이날 오씨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어린 두 딸과 부인을 두고 홀로 북한을 탈출한 회한이 가득해 보였다. 한국, 미국, 일본, 캐나다, 카메룬, 폴란드 등 6개국에서 참석한 10여명의 의원들의 표정도 숙연해졌다.

    "2005년까지는 저의 가족이 북한에 살아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저의 딸이 살아있다고 믿어주시겠죠. 나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행여 바람 앞에 등불이라도 꺼질세라 `통영의 딸' 구출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오씨의 목소리는 애절함을 넘어섰다.

    1985년 방북 이전 독일에서 찍었던 어린 두 딸의 바이올린 연주 사진을 든 오씨의 목이 메었다.

    "정말 연약하고 고립무원의 그 가족의 그 고초를, 흘리는 눈물을...아마 뼈밖에 안 남았고 앙상한 몸으로 흘리는 눈물을 내 손으로 닦아주고 싶습니다."

    오씨의 증언에 앞서 오씨 가족의 얘기를 담은 10여분짜리 다큐영화가 행사장에서 상영됐다. 회의장 화면에는 회한에 찬 오씨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내가 바보였죠. 모든게 잘못이었죠. 이미 너무 늦었어요."

    오씨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18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미국 방미기간에 `통영의 딸' 구출운동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관심을 기대했다.

    그는 방미 활동 목표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족들의 생사확인과 그것을 넘어서서 가족 송환 내지 가족이 재결합해 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오씨는 16일에는 미 국무부 인권담당자들과 만나고, 18일에는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해 `통영의 딸' 구출운동을 위해 16만여명이 참여한 온오프라인 서명 청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또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앞에서 가족들의 조기 송환을 위한 집회도 가질 계획이다.

    IPCNKR의 올해 총회에서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고발하고 북한 내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추적하는 한편 북한의 인권개선을 위한 방향 모색 등이 집중 논의됐다.
    국제의원연맹은 전세계 61개국의 국회의원 200여명이 탈북자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2003년 결성한 단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