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재춘 이재춘 前 駐러시아 대사 회고록 <외교관으로 산다는 것> 책표지ⓒ
    ▲ 이재춘 이재춘 前 駐러시아 대사 회고록 <외교관으로 산다는 것> 책표지ⓒ

    최근 6자회담 한국측 수석대표가 바뀌면서 회담재개를 위한 당사국들간의 물밑접촉이 가시화 되고 있다. 주러대사로 내정된 위성락 전 수석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회담은 회담을 위한 회담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견해를 우회적으로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의 회담이 회담을 위한회담에 불과 하였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6자회담이 시작된 2003년 8월 부터 지금까지 수석대표로서 회담에 참여했던 5-6명의 외교부 고위직 인사들을 필자가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기 해보면, 이들 모두가 북한 핵 문제가 6자회담을 통해 해결될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6자회담에 매달려야 하는지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북한이 그들이 개발한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고, 이러한 상황은 1994년 북-미간 제네바 합의 당시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도 달라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을 것 이라는 가정과 환상을 가지고, 중국과 미국이 중심이 되어 6자회담이라는 틀을 만들었던 것이다. 중국은 자국이 회담장소를 제공하고 중재역할을  자임하면서 미국을 견제하고 남-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회담을 주선하였다. 미국은 제네바 합의에 대한 미련도 있었지만, 중국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북한과의 대화통로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회담에 참여하였다. 러시아와 일본도 각기 나름의 명분과 목적을 가지고 회담 당사국이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중국이 강력히 주장했던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거부하기 어려운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이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핵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핵무기 보유현상의 타파'가 목표가 되어야 하는데 '평화적 해결' 운운으로는 처음부터 현상타파라는 목적의식이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상유지'를 도모하고 있는것이 6자회담의 현주소라고 볼 때 이 회담을 통해 무엇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이 회담을 보이콧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경우 졸지에 우리는 평화파괴국이 되고 북한이 평화 애호국으로 둔갑할 것이며, 북핵문제 전반에 관하여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하는 형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북핵문제는 해결책이 없는것인가. 그렇지 않다. 북한정권이 핵무기를 유지개발 함으로써 얻을수 있는 것보다 잃을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게 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것은 답답하고 소극적인 대응이지만, 이 방법 이외에는 속시원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무한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지난 10여년 동안 기회는 여러번 있었지만, 우리는 시간을 헛되게 보냈다. 수차례에 걸친 미사일 발사실험, 핵실험, 천안함격침, 연평도 공격 등등 계속되어 온 북의 도발에 대하여 유엔 결의안을 통해 각종 제재조치가 이루어 졌지만, 오히려 한국정부는 대화요 평화요 인도주의요 하면서 제재는 커녕 종북주의로 일관 하였다. 그러니 북한당국은 오히려 얻는 것이 잃는 것 보다 많았다고 계산하지 않았겠는가. 

    종북정권이 끝나고 언필칭 보수 정권이 들어 섰다고 하는 데도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으니 어찌된 일인가. 김정일이 천안함과 연평도 공격으로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입었어야 다시는 그런 도발을 생각도 못하고 핵무기에 대해서도 재고할 기회가 되었을 텐데  아쉬움이 너무도 크다.  

    6자회담은 어쩔 수 없이 계속할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대통령은 임기 내에 꼭 김정일과 만나야 하는 것인가?  러시아산 천연가스같은 중요한 전략 물자를 반드시 '적진'을 파서 땅 밑으로 들여와야 하는 것인가? 당분간은 LNG로 들여올 수는 없는가?  이른바 7대종단 대표들이 평양에 가서 포교활동을 하고 왔다는데,  북한이 종교를 인정하는 나라인가?

    어제로 버마 랑군 폭파사건 28주년을 맞았지만, 어느 신문에서도  그때의 북한의 만행을 다룬 기사를 보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